행인 / 박소란
녹슨 맨홀 뚜껑 같은 게
거기 잠자코 붙은 껌 같은 게
나를 본다 내 이름을 중얼거린다
눈을 깜박이는 게
입술을 지그시 깨무는 게
나를 기다린다
늦지도 이르지도 않은 나의 귀가를
어느 날은 컹컹 짖고 어느 날은 냐옹 울기도 하는
횡단보도
절룩이는 다리로 나를 따라 집까지 온다
병원 같은 게
입원실 간이침대 옆 쪼그려 앉은 그림자 같은 게
쉽게 부서지는 게
부서지고도 반짝이는 게
공병 같은 게
나와 함께다
함께 먹고 함께 잠든다
함께 꿈속을 거닌다 지옥의 숲을 산책하듯이
일어나 아침이야, 흔들어 깨울 수 없지만
재촉할 수 없지만
허둥지둥 문을 나서면
바퀴에 깔린 장갑 같은 게
부르르 손을 떠는 전단 같은 게
주워 들면 피가 조금 난다
- 시집『수옥』 (창비,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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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소란 시인
1981년 서울 출생. 동국대 문예창작과 졸업.
2009년 《문학수첩》등단.
시집 『심장에 가까운 말』『한 사람의 닫힌 문』『있다』『수옥』등.
신동엽문학상, 내일의한국작가상, 노작문학상, 딩아돌하작품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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