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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비잔티움으로의 항해* / 나희덕

작성자군불|작성시간26.06.16|조회수31 목록 댓글 0

 





비잔티움으로의 항해 / 나희덕

이따금 그의 항해를 생각한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고 탄식하던 예이츠는
성스러운 도시 비잔티움으로 향했다
살았지만 죽은 것죽었지만 산 것들의 연옥을 향해
 
난항을 거듭하던 배가
거친 파도에 흘려보냈을 슬픔을,
기나긴 여정 속에서
견뎌야 했을 고독한 밤들을 떠올린다
 
이따금 나의 항해를 생각한다
 
비잔티움을 향해 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를 태운 배와 나를 태운 배가
어느 항구에선가 몇 번은 조우했으리라
 
언젠가 그는 지하도 입구에서 나를 배웅해주었다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그는 묵묵히 바라보며 지하도 입구에 서 있었다
내 등이 더는 보이지 않을 때까지
 
나의 항해를 지켜주는 눈빛 하나가 저 위에 남아 있구나
 
그는 지금도 지하도 입구에 서서
나선형 계단 아래 깊어지는 어둠을 응시하고 있을까
 
항구에 잠시 든 배들은
서로의 등을 토닥이고 손을 흔들고
 
다시자신만의 비잔티움을 향해 떠나고
 
지하도 위의 별 하나가 어둠 속에서 깜박인다
먼 항구의 등대처럼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가 말년에 쓴 시의 제목.
 
 
계간 문학과 사회》 2026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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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희덕 시인
1966년 충남 논산 출생. 연세대 국문과 졸업, 동 대학원 석사 및 박사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사라진 손바닥』『야생사과』『말들이 돌아오는 시간』『파일명 서정시』『가능주의자』시와 물질
시론집 『보랏빛은 어디에서 오는가』『한 접시의 시』『문명의 바깥으로』,
산문집 『반통의 물』『저 부빛들을 기억해』『한 걸음씩 걸어서 거기 도착하려네』『예술의 주름들』등
1998년 김수영문학상, 2019년 고산문학대상 및 백석문학상, 2022년 영랑시문학상 및 대산문학상 시 부문 수상 
현재 서울과학기술대 문예창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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