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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혼잣말을 키우는 사람 / 김휼

작성자군불|작성시간26.06.16|조회수27 목록 댓글 0

 






혼잣말을 키우는 사람 / 김휼

나는 혼자서 말을 배웠습니다
 
사는 곳은 일정하지 않습니다 입안엔 갈라진 혀가 있어 한 입으로 두 말을 할 때도 많아요
 
허구에 갇혀 지낸 날이 얼마이던가요 앞뒤 없이 튀어나오는 낱말로 당황할 때도 있어요 잘 감춰지지 않은 꼬리는 경제 선행 지수에 민감합니다
 
세모의 종이 울리며 누군가는 뭉툭한 망치로 두더지를 잡고 제 끝이 궁금한 누군가는 국도를 달려 수평선을 찾지만 얇은 위벽을 가진 나는 링거를 꽂고 누워 혼잣말을 키웁니다
 
가라앉는 법을 모르고 떠오르는 생각들이
중심을 고수하는 둥근 방에서 쏟아진 낱말을 주워 담는
 
나는 혼잣말을 키우는 사람
 
누워 보니, 매달려 있는 것들의 불안이 잘 보이는군요 머리를 늘어뜨린 우울과 만질수록 부푸는 근심. 작은 바람에도 샤랄라 뒤집어지는 기분
 
벽에 걸린 티브이에선 비파형 동검을 보여주고 있네요 어떤 죽음을 베어내기 위해 악기를 닮은 검을 만들었을까요
 
죽음의 날과 벼린 삶의 현을 한 몸에 지닌 비파와 검 사이로 굴러떨어진 얼굴, 두 동강 난 기분을 주머니에 주워 담는 나는 날뛰는 말들을 길들이느라 밤이면 흠뻑 젖습니다
 
출구가 보이지 않아 불안을 감출 수 없는 계절
 
무심코 던진 것들이 되돌아오는 꼭짓점에서
좁은 미간을 열고 혼잣말을 키우는 나는
틈틈이 둥근 알약을 삼키며 헐린 위벽을 세우고 있습니다
  
 
 —계간 《문학들》 2026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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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휼 시인(본명 김형미)
전남 장성 출생. 호남신학대 신학대학원 졸업 
2007년 〈기독공보〉 신춘문예 시 당선
2017년 《열린시학》 등단.
시집 『그곳엔 두 개의 달이 있었다』『너의 밤으로 갈까』 
사진시집 말에서 멀어지는 순간
백교문학상, 여수해양문학상, 윤동주문학상, 목포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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