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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개미 한 마리를 밟을 뻔한 날 / 강우근

작성자군불|작성시간26.06.17|조회수29 목록 댓글 0

 






개미 한 마리를 밟을 뻔한 날 / 강우근

그만 사라져도 좋겠다고 생각한 하루는
슬프거나 괴로울 때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자레인지에 살짝 돌린 땅콩 샌드위치를 한입 베어 물었을 때
해가 지기 전 새소리를 들으며 양팔을 벌린 채 언덕을 내려올 때

그만 이 세상에서 사라져도 괜찮다는 생각에 빠져듭니다
더는 생각이라는 것을 하지 않아도 좋은 것같이
충분한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을 때

어쩌면 앞으로 실수로 개미 한마리도 밟지 않을 수 있고
누구에게도 상처 주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있는
그런 푹신한 행복 속에서 저는 여러 번 죽습니다

저는 종종 아름다운 것을 마주할 때면 사라지기도 합니다
엉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질서를 지키는 나무가 가득한 숲에 가만히 서 있을 때
차들이 끊임없이 불빛을 내며 도로의 행렬을 이루는 것을 유리창 너머로 바라볼 때

작은 세계를 이루어 나가는 풍경들에서
살짝 발을 빼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렇게 저는 언습을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진짜 그것이 나타나면 아마도 다르겠지만

맑은 날에 뭉게구름이 흩어지듯이

컴퓨터 화면의
복원되지 않을 삭제 예정 파일같이

기억 속에서 말끔하게 사라질 수 있다면

그러나 인간은 너무 찐득찐득하고 물렁물렁합니다

노을이 지고 어두워지고 있는데

그동안 숨바꼭질을 하며
나무 뒤에서, 슈퍼마켓 평상 밑에서, 교회 의자 구식에서 서로를 발견하며 깔깔 웃었던 아이들은

심각한 표정이 되어
마지막으로 창고 깊숙한 곳에 숨어 있던 아이를 끌어안으며 엉엉 웁니다

작은 손들로부터 잔뜩 붙은 먼지가 털어지는
창고에서 깜빡 잠든지도 몰랐던 아이는
어쩔 줄 몰라 합니다


ㅡ계간 《창작과비평》 2026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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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우근 시인
1995년 강원 강릉 출생.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202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너와 바꿔 부를 수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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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 사라져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슬플 땐 미처 그런 생각조차 할 틈이 없었지 싶다. 목마를 때 시원한 맥주 한 잔, 배고플 때 잔치국수 한 그릇이 나를 사소한 죽음 너머로 데려간다. 실수로라도 실수하지 않고, 제법 행복한 소소한 일상은 내게 유효기간 없는 처방전이다. 죽어도 좋은 처방전. 왠지 달콤하다.

오늘 나는 햇살을 연습하고 바람을 예습한다. 사라지는 것들은 아름답고도 슬프므로.

"그러나 인간은 너무 찐득찐득하고 물렁물렁합니다."
아름다울수록 사실은 더 물렁하다.

첫눈은 언제나 순수하고 노을은 언제나 황홀하다. 아직 숨바꼭질은 끝나지 않았다. 내 안에 저장된 어린 친구들을 떠올리는 아침, 문득 그만 사라져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움이 자막처럼 올라온다.

나는 나에게 로그인한다.

- 이우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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