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행 / 안도현 북, 이라는 글자는 우물의 얼음처럼 검지 북, 이라고 쓰고 북쪽을 생각하면 캄캄해지지 그렇다고 해도 아까시 꽃이 필 때 꽃을 따라 북으로 가는 트럭들 좀 생각해 봐 그 운전사에게는 북행이 참말로 환했을 거야 볕은 장글장글 따사롭고 바람은 솔솔 보드라운데* 말하자면 짐칸에 해를 태우고 가는 거잖아 꽃에게 삿대질할 일 없고 꽃자루의 멱살을 잡을 일도 없지 꽃들의 이동 경로를 따라간 건 아니지만 2018년 9월 18일, 나는 서울공항에서 평양국제비행장으로 가는 공군 1호기를 탈 기회가 있었어, 별다른 장식 없이 조용히 낡아가는 고려호텔에서 돌목어가 뭘까 하면서 돌목어식해를 먹었고 북, 이라고 아무도 종이 위에 쓰지 않는 계절이야 북쪽에서 바람이 불어오면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혼자 이렇게 적어보지 백설기, 약밥, 칠면조말이랭찜, 해산물 물회, 과일남새생채, 상어날개야자탕, 백화대구찜, 자신소심옥구이, 송이버섯 편구이와 볶음, 흰 쌀밥, 송어국, 도라지 장아찌, 오이숙장과, 수정과, 유자고, 강령록차 평양의 목란관에서 열린 연회의 차림표를 북쪽 표기대로 적었다가 북, 이라고 썼다가 지우지 북, 이라는 글자는 우물처럼 어두워서 북, 이라고 쓰면 수면의 최상부에 두레박 밑바닥 닿는 소리가 나서 * 백석의 시 「귀농」의 한 구절 = 계간『시의 시간들』 2024년 가을호 (창간호) --------------------------------- * 안도현 시인 1961년 경북 예천 출생. 원광대 국문과 및 단국대 대학원 문예창작과 졸업 1981년 《매일신문》신춘문예 시 등단. 시집『북항』『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쓸데없이 눈부신 게 세상에는 있어요』등 산문집 『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백석 평전』외. 1998년 소월시문학상, 2002년 노작문학상, 2005년 이수문학상, 2007년 윤동주상, 2009년 백석문학상 등 수상 현재 단국대 문예창작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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