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의 말 / 강영은
너와 나는 같은 모국어를 쓰고도 서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너는 왜 나를 좋아하니 내가 언제 그러는 너는 나를 왜 미워하는데 그런 적 없어 네가 던진 말은 전혀 다른 목적지에 닿는다 경유지가 다른 말처럼 마주 보기만 한다 누군가 말한다 80억 인구가 각자 다른 말을 한다고 그것이 초원 위를 누비는 언어의 방식이라 할지라도 마디마디 다른 음절을 알아듣는다면 슬픔도 하나가 될까? 말과 말 사이의 거리 말과 말 사이의 깊이 말과 말 사이의 넓이는 바벨의 탑에서 바라본 지형일 뿐이라고, 하늘과 땅을 오가는 목숨의 셈법은 다르다고, 태초의 말씀이 몸을 입어 사랑을 가르친다 불신과 원망의 탑을 생각 밖으로 옮기니 들린다 듣는 귀가 달라도 마음속에 들린다 나 당신 사랑해요 나도요 ㅡ계간 《시와소금》2026년 여름호 -------------------------------
* 강영은 시인 1957년 제주 서귀포 출생. 제주교육대학, 방송통신대 국문과 졸업,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석사 2000년 《미네르바》 등단. 시집『최초의 그늘』『풀등, 바다의 등』『마고의 항아리』『상냥한 시론詩論』『너머의 새』『그리운 중력重力 』등 시선집『눈잣나무에 부치는 詩』 에세이『산수국 통신』등.
***************************************************************** 같은 모국어를 쓰면서도 서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의 세계. 사랑하면서도 서로의 몸말마저 어긋나는 사랑의 세계. 80억 인구가 각자의 말로 공중의 빛이 되는 세계. 바벨탑은 끝내 도착하지 못했지만 사람은 사랑을 한다. 어쩌면 무의식은 의식보다 먼저 상대를 알아보는지도 모른다. 너의 눈빛을 듣는다. 너의 입술을 듣는다. 너의 심연을 듣는다. 사랑은 가만히 귀 기울이는 일이다. 검은 선글라스를 벗고 풀빛 콩깍지를 쓰는 일이다. 사랑은 믿어야 사랑이다. 난 너를 사랑해. - 이우디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