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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표고 / 고명재

작성자군불|작성시간26.06.20|조회수41 목록 댓글 0

 





표고 / 고명재

감량중인 복서는 말린 표고를 물고 하루를 겨우 버틴다 한다 저녁이 되면 접시에 버섯을 뱉는데 몽실몽실한 것들이 접시에 구른다 이런 식으로 일주일을 버티고 나면 침이 말라 표고도 부풀지 않는데 스테인리스 그릇에 표고를 뱉으면 깡깡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바로 그때 복서는 새처럼 가볍다 귀와 코에 폭포와 벼랑을 달고 아주 작은 풀벌래 소리도 듣는다 내가 사랑했던 이들이 그렇게 떠났다


※ 모라카와 조지, <더 파이팅>.


- 시집 『어깨에 머리를 기대던 시절』 (난다 ,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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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명재 시인
1987년 대구 출생. 영남대 국문과 졸업 및 동 대학원 국문학 박사 수료
202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등단
시집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산문집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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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싱과 관련된 시를 오랜만에 읽습니다. 이 시를 읽기 전까지,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시는 박후기 시인의 시입니다. 시집 『격렬비열도』에는 복싱과 관련된 여러 편의 시가 있습니다. 시 「복서연대기」에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틈을 노려라/ 파고들지 않으면 살 길은 없다// 아버지는 내게 세상을 파고드는/ 인파이터가 되라고 주문했다’라고요. 참 먹먹합니다.

왜 우리는 인파이터가 되어야만 하는 것일까요. 상황에 맞춰 툭툭 치고 빠지는 아웃복서의 삶이 더 안전하고 편해 보이지만, 실상의 우리는 억지로 링 위로 떠밀려 있습니다. 소중한 것을 품기 위해, 혹은 지켜내기 위해 우리는 기꺼이 링의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가 무거운 펀치를 견뎌내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렇게 온몸으로 삶을 받아내다 보면, 고명재 시인의 시 속 복서처럼 어느덧 침마저 말라버린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다 내어주고, 바짝 말라 마침내 새처럼 가벼워졌을 때야 비로소 들리는 아주 작은 풀벌레 소리. 그런데 저 소리가 삶의 영광 따위는 아닐지 모릅니다. 아무리 노력하고 투쟁해도 잃어버릴 수밖에 없는 것도 있으니까요. 실제의 삶은 해피엔딩보다 새드엔딩이 더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사랑했던 이들이 그렇게 떠났다’라는 화자의 담담한 고백이 시리고 아프게 들리는 까닭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왜 성공을 확신하지도 못하면서 저렇게 인파이터의 삶을 살아가는 것일까요. 어쩌면 인파이터의 걸음이란 승리가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내딛는 미련한 발걸음일지도 모릅니다. 비록 그 끝이 깡깡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상실일지라도, 온몸이 부서지라 파고들었던 그 치열한 시간만큼은 우리에게 거짓이 아닌 진실입니다. 링 위에서 다 타버린 복서의 눈에 비로소 작은 풀벌레가 밟히듯, 우리도 매일 상처 입으면서도 누군가를, 그리고 삶을 인파이터의 마음으로 인내하며 살아내는 중일 것입니다.

치열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떠나보낼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면, 그것 또한 제 시 「플래니모」에서 말하고 있는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누군가에겐 잊혔다는 말도 행복하다’와 같은 고백처럼, 인파이터로서 묵묵히 견뎌내야 할 수밖에 없는 삶의 행로일 것입니다. 아프고 아프고, 지독하게 아프겠지만.

오늘 우리는 인파이터로서 기꺼이 하루를 살아내고 있습니다. 비록 새드엔딩일지라도 도망치지 않고 온몸으로 부딪쳐 껴안은 상처라면, 그 또한 인파이터가 삶을 가장 뜨겁게 사랑했다는 증거일 테니까요. 미련했지만, 후회 없는 삶이었다고 마지막 순간에 미소 지으며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시 쓰는 주영헌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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