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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창작 이론

<제44신> 시품(詩品) / 임보 (시인)

작성자군불|작성시간26.06.05|조회수32 목록 댓글 0

 



<제44신> 시품(詩品) / 임보 (시인)


로메다 님,
인품(人品)이라고 하면 사람의 성품 곧 사람됨을 이르는 말이 아닙니까?
말하자면 다른 동물과는 달리 인간만이 지닌 사람다움의 성품입니다.
사람이기는 하지만 사람답지 못한 불량배들은 인품을 갖추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한편 어떤 사람을 두고 그 인품이 높다느니 혹은 낮다느니 하고 따지기도 합니다.
이럴 경우 인품은 인간이 마땅히 지녀야 할 덕성의 정도를 나타내는 말로도 보입니다.


시품(詩品)이면 시가 지닌 품격(品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품과 마찬가지로 이 역시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는 다른 글과는 달리 시가 갖추어야 할 시다움의 성품을 가리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시의 질(質)의 고하(高下)를 지칭하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시품을 논하는 일은 시적 특성과 시의 품질을 거론해야 하는 번거로움에 부닥치게 됩니다.
동양적 시관(詩觀)에서는 시인과 시를 하나로 묶어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시는 그 사람됨과 같다.'(詩類其爲人)
―(明) 田藝 『香宇詩談』


'그 사람을 벗어나서 그 시가 없고 그 시를 벗어나서 그 사람이 없다.' (人外無詩 詩外無人)'
―(淸) 自珍 『書湯海秋詩集後』


'시의 등급은 같지 아니하니, 사람이 어느 경지에 이르게 되면
바로 그 경지의 사람에 걸맞는 시가 생산됨을 보게 된다.'
(詩之等級不同 人到那一等地位 方看得那一等地位人詩出)
―(淸) 徐增 『而庵詩話』


시와 그 시를 빚은 사람과 동일시하려는 것이 앞의 두 사람의 지론입니다.
문체와 사람을 하나로 보려는 서구인의 생각과 다르지 않습니다.
글 속에는 작자의 생각과 감정이 담겨 있게 마련이니 당연한 얘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품의 고하에 따라서 시의 질도 달라진다는 것이 세 번째 글의 요지입니다.

'시품은 인품에서 나오는 것이다.
인품은 정성스럽고 순박하고 충성스러운 것을 으뜸으로 삼고
초연히 자연에 들어 풀 베고 밭 갈며 사는 자를 그 다음으로 친다.
분주하게 왔다갔다하며 세속의 부귀를 좇는 자에 대해서는 말해 무엇하겠는가.'
(詩品出于人品 人品 款朴忠者最上 超然高擧 誅茅力耕者次之 送往勞來 從俗富貴者無譏焉)
―(淸) 劉熙載 『詩槪』

유(劉}의 글은 인품의 등급을 세 부류로 나누어 논하고 있습니다.
정성스럽고 충박한 것을 으뜸으로 삼고 자연에 은거함을 다음으로 칩니다.
이러한 견해는 유교의 이념이 적극적으로 개입된 것으로 보입니다.
세속적 명리를 좇아 부화뇌동하면서 살아가는 자들은 아예 언급할 가치도 없는 부류로 경원시하고 있습니다.
시품은 인품에서 나온 것이라 했으니 앞의 세 등급은 곧 시품에도 적용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품의 품(品)은 격(格)이나 체(體) 혹은 풍격(風格), 풍모(風貌) 등과도 서로 어울려 사용되어 오고 있는데,
일찍이 유협(劉 )은 『문심조룡(文心雕龍)』에서 시품을 여덟 가지[八體](A)로 나누어 논의했고,
당의 왕창령(王昌齡)은 『시격(詩格)』에서 다섯 종류(B),
교연(皎然) 『시식(詩式)』에서 19글자(C)로써 문장의 특징을 구분하였습니다.
이를 발전시켜 사공도(司空圖} 『시품(詩品)』에서 24풍격(D)으로 구분하여 사언시(四言詩)로 읊고 있습니다.
그러나 질의 고하를 따지는 것이라기보다는 작품 속에 담겨있는 시정신의 특색을 지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품에 관해서는 그 뒤에도 많은 시인들에 의해 논의되어 왔지만 

극히 추상적이고 주관적인 것이어서 객관성을 지닌 분류로 보기는 곤란합니다.
천태만상인 사람의 성품도 그 우열을 객관적으로 따질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예로부터 청정(淸淨)한 삶을 높이 평가해 온 동양적 시관(詩觀)에서는 시의 '청신(淸新)'을
소중히 생각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다음의 두 작품들을 보면서 시품을 생각해 보도록 하십시다.



산은/ 구강산(九江山)/ 보라빛 석산(石山)//
산도화(山桃花)/ 두어 송이/ 송이 버는데//
봄눈 녹아 흐르는/ 옥 같은/ 물에//
사슴은/ 암사슴/ 발을 씻는다
― 박목월 「산도화(山桃花)」 전문



해와 하늘빛이/ 문둥이는 설어워//
보리밭에 달 뜨면/ 애기 하나 먹고//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
― 서정주 「문둥이」 전문



「산도화(山桃花)」가 제시하고 있는 내용은 단순합니다.
보랏빛 돌산에 이제 막 벙그는 두어 송이 산도화와 차고 맑은 개울에 암사슴이 발을 담그고 있는 정경입니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정제된 운율과 함께 산과 물의 조화,
식물과 동물의 조화 그리고 각 연의 색채 이미지의 다양한 배치가 놀랍습니다.

더욱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이 작품 속에 서려 있는 시정신입니다.
잡초 같은 것은 감히 범접도 할 수 없는 신성한 석산(石山)에 어쩌면 장차 천도(天桃)라도 매달 한 그루 산도화의 제시도 그렇거니와, 눈 녹아 흐르는 차고 맑은 개울에 청결 유순한 짐승인 사슴의 탁족(濯足)은 차원 높은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시인이 이 작품을 통해 표출해 내려는 것은 청정무구의 세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가 동경하고 있는 선경(仙境)과 같은 청정무구한 이 세계는 허황된 꿈이 아니라,
속된 일상적 자아와 혼탁한 지상적 세계에 대한 비판정신에 근거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문둥이」역시 훌륭한 작품입니다.
한을 극복하려는 격렬한 몸부림이 뼈아프게 담겨 있습니다.
화려한 수사와 야성적인 격정이 읽는 이의 심금을 사로잡습니다.
짧은 시행 속에 인간 원죄의 고뇌를 상징적으로 잘 표현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귀기(鬼氣) 서린 시의 천재성이 엿보입니다.


앞의 두 작품은 그야말로 상반된 시풍을 지니고 있습니다.
침잠/격정, 청정/욕망, 관조/번민 등의 상극을 보입니다.
의도하는 바들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작품의 우열을 가리는 것은 부당하지만,
시를 온유돈후(溫柔敦厚)로 보는 전통적인 동양의 시관에서는 전자의 시품을 위에 놓습니다.


시인을 단순한 기능인(技能人)으로 생각지 않고 구도인(求道人)으로 보려는 입장에서는
격조 높은 시는 고결한 정신 세계에 도달한 시인에 의해 생산된다
고 믿습니다.

치열한 욕구와 자기현시의 욕망은 생명의 본성이지만
이를 어떻게 초극하느냐를 인간다움의 덕성으로 보려는 것입니다
.

그리하여 담담한 가운데 억지로 꾸미려 하지 않는 졸박(拙朴)을 옛 사람들은 높이 사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시인은 사원에 예속되어 있지 않는 수도사들인 셈입니다.
로메다 님,
시품은 곧 인품, 시인의 품격입니다.



[참고 자료]
(A)[8체] : 典雅, 遠奧, 精約, 顯附, 繁縟, 壯麗, 新奇, 輕 
(B)[5격] : 高格, 古雅, 閑逸, 幽深, 神仙
(C)[19식] : 高, 逸, 貞, 忠, 節, 志, 氣, 情, 思, 德, 誠, 閑, 達, 悲, 怨, 意, 力, 靜, 遠
(D)[24풍격 : 雄渾 沖澹 纖  沈着 高古 典雅 洗鍊 勁健 綺麗 自然 豪放 含蓄 精神 縝密 疎野 淸奇 委曲 實境 悲慨 形容 超詣 飄逸 曠達 流動


- 임보 교수 시창작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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