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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창작 이론

<제55신 - 1> '낯설게 하기'의 장치들 / 임보 (시인, 교수)

작성자군불|작성시간26.06.16|조회수37 목록 댓글 0

 



<제55신 - 1> '낯설게 하기'의 장치들 / 임보 (시인, 교수)


로메다 님,
그러면 시에서 '낯설게 하는' 어떤 장치들이 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낯선 문장(리듬과 배행)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있네.

산에서 우는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없이
꽃이 지네.
김소월 「산유화」


이 시의 내용은 간결합니다.
'산에는 일 년 내내 꽃이 외롭게 피었다 진다. 산새는 그 꽃이 좋아 산에서 산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시어의 반복, 짧은 배행 등 일상적 문장과는 전혀 다르게 늘어 놓았습니다.
시인은 산에 사는 외로운 꽃과 새를 통해 자신의 고독한 삶을 투영하고자 했는지 모릅니다.
7.5조의 자연스런 변형에 반복의 리듬을 잘 살린 작품입니다.
시는 이처럼 시각적인 배행도 낯설지만 리듬을 담고 있어서 일상어와는 다른 느낌을 줍니다.



2. 낯선 상황


[상황 1]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김소월 / 「엄마야 누나야


이 시는 강가에 집을 짓고 살고 싶다는 단순한 소망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집의 앞뜰은 모래밭, 뒤뜰은 갈대밭입니다. 현실 속에서 이러한 곳에서 자리 잡은 집은 없습니다.
여름 한철이면 혹 몰라도, 모래먼지와 거센 강바람을 맞으며 강변에 터 잡아 살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런데 소월은 자연의 환유지요. '엄마' '누나'라는 호칭으로 보아 화자는 소년입니다.
소년은 이지적인 아버지에겐 무모한 자신의 소망(강변 살이)이 통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감성적인 여성 가족들에게 호소합니다. 강변은 소년의 이상향입니다.
금모래 빛의 시각적 이미지와 갈잎의 노래가 환기하는 청각적 이미지의 조화도 아름답습니다.



[상황 2]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김소월  「진달래꽃」


이 시의 내용도 간단합니다. 내가 싫어 님이 떠날 때는 잡지 않겠다고 합니다.
오히려 진달래꽃을 꺾어 가실 길에 뿌릴 터이니 밟고 가시라고 합니다.
세상에 떠나가는 님을 위해 꽃을 뿌리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일상에서 볼 수 없는 낯선 상황입니다.
소월은 이런 낯선 상황을 통해 아름다운 사랑을 구현코자 했을 겁니다.
꽃을 밟고 떠나간 님의 마음이 어떠할까? 아마 오리도 못가 되돌아올지도 모릅니다.
이 노래에는 님을 붙잡고자 하는 고도의 구애 작전이 담겨 있습니다.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린다'는 저 시퍼런 의지를 보십시오.
거기에 꺾이지 않을 목석 같은 님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상황 3]

간밤엔 언덕 위 빈집 문 여닫는 소리 들리고
밤새도록 해수 앓는 소리 들리고
철거더철거덕 돗자리 짜는 소리 들리더란다
십년 전 농사 버리고 떠난 영감 왔나부다
그래서 날 새면 올라가 보리라고
동갑네들 동트기만 기다렸더니
닭이 울기도 전에 부고 전화부터 왔다
영감 유언 따라 고향에 묻히려 내려온다고
못살아 고향 등지고 떠난 사람은
저승길도 곧장 가기가 서러워
아픈 다리 끌고 절고 고향집 들러 가는가
빈집에서 혼자 밤샘 얼마나 서글펐을까
들여다보는 동갑네들 짓무른 눈에
사랑방 댓돌 옆으로 빈 오줌독
엎어진 검정고무신 한 짝을 비집고
봄이라고 비웃듯 오랑캐꽃이 피어 있다
신경림 「오랑캐꽃」


간밤에 빈집에서 인기척 소리며 돗자리 짜는 소리가 친구들의 귀에 들렸다고 합니다.
고향을 등지고 살다 저 세상으로 떠나가는 한 노인의 고향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형상화하기 위해
시인은 하나의 환청을 설정했습니다.
죽은 사람의 영혼이 옛집에 찾아와 엣적의 삶을 재현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야말로 기상천외한 낯선 상황이지요.
그러나 그 낯선 정황이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감동적인 요소로 작용합니다.
검정 고무신과 오랑캐꽃은 그 노인의 현세와 내세의 모습을 상징한 것 같기도 합니다.



[상황 4]

공고

오늘 강사진

 음악 부문
 모리스 라벨

 미술 부문
 폴 세잔

시 부문
 에즈라 파운드
모두
결강

김관식, 쌍놈의 새끼들이라고 소리 지름. 
지참한 막걸리를 먹음.
교실 내에 쌓인 두꺼운 먼지가 다정스러움.

 김소월
 김수영 휴학계

 전봉래
 김종삼 한 귀퉁이에 서서 조심스럽게 소주를 나눔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제 5번을 기다리고 있음.

교사(校舍)
 아름다운 레바논 골짜기에 있음.
김종삼 「시인학교」


작품 속에 구현된 '시인학교'는 현실적인 세계가 아니라 시인이 꿈꾸고 있는 이상적인 공간입니다.
김종삼은 시간과 공간의 간격을 허물고 그가 좋아하는 에술가들로 시인학교의 구성원을 만들고
지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지중해 연안에 시인학교를 세운 것입니다.



[상황 5]

선계는 인간이 꿈꾸는 이상의 세계입니다.
실제로 존재하는 세계가 아니라 존재했으면 하고 바라는 세계입니다.
그러니까 이 세계에서는 기상천외한 사건들이 벌어지게도 됩니다.

전 畑이라는 짐승은 선하기 이를 데 없다
사나운 뿔도 날카로운 이빨도 없다
작은 몸통에 짧은 다리
체구는 볼 품 없는 느림보다
다만 털과 눈매가 곱다
어떤 맹수가 달려들면
몸을 공손히 도사린다
먹으면 먹히고
그냥 두면 다시 간다
그런데 만일 어떤 놈이 그를 삼키면 
그의 뱃속에 들어가 알을 낳는다
며칠이 지나 그 알들이 깨이면
전의 새끼들은 그 맹수의 등을 뚫고 세상에 나온다
그렇게 그는 천의 몸뚱이로 다시 살아난다
그래서 영리한 표범은 전을 멀리서 보기만 해도
무서워 줄행랑을 친다
- 임조 「전 


'전'이라는 짐승의 얘깁니다.
전은 '부드러움' 혹은 '선善'을 상징하는 동물입니다.
부르러움이 강함을, 선이 악을 제압한다는 것을 극적으로 형상화한 것입니다.
전이라는 짐승을 나타낸 한자  도 자전에 없는 것을 새로 만든 글자입니다.


[상황 6]

김춘수 시인이 즐겨 썼던 무의미 시 역시 지상적 현실을 의도적으로 뭉그러뜨려
낯선 세계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은종이의 천사는
울고 있었다.
누가 코밑 수염을 달아주었기 때문이다.
제가 우는 눈물의 무게로
한쪽 어깨가 조금 기울고 있었다.
조금 기운 천사의
어깨 너머로
얼룩암소가 아이를 낳고 있었다.
아이를 낳으면서
얼룩암소도 새벽까지 울고 있었다.
그해 겨울은 눈이
그 언저리에만 오고 있었다.
김춘수 「처용단장 10」


종이로 만든 천사가 코밑수염을 달았다고 울고, 천사의 기운 어깨 너머에서 얼룩암소가 아이를 낳으면서
새벽까지 울고, 그 해 겨울 눈은 그 언저리에만 온다는 정경입니다.
종이로 천사를 만들 수도 없을뿐더러, 설령 천사인형이라면 울 리도 없지요.
소가 송아지를 낳지 않고 아이를 낳는다는 것도 난센스며 눈이 암소 주변에만 내린다는 것도 비현실입니다.


- 임보 시창작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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