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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창작 이론

<제55신 - 3> '낯설게 하기'의 장치들 / 임보 (시인, 교수)

작성자군불|작성시간26.06.18|조회수28 목록 댓글 0

 



<제55신 - 3> '낯설게 하기'의 장치들 / 임보 (시인, 교수) 



5. 압축과 생략

시는 산문과 달리 분행하여 배열한다는 것이 우선 시각적으로도 낯선 구조의 문장입니다.
그런데 시의 문장은 불필요한 것들은 다 생략하고 버릴 수 없다고 생각되는 것들만 압축해서
간결하게 표현한 글이므로 독자를 긴장시킵니다.



흰 달빛
자하문

달 안개
물소리

대웅전
큰 보살

바람소리
솔소리

범영루
뜬 그림자

흐는히
젖는데

흰 달빛
자하문

바람소리
물소리
― 박목월 「불국사」


서술어와 수식어를 극도로 줄이고 몇 개의 명사들만으로 밤의 불국사를 그려낸 작품입니다.



햇빛에 물살이
잉어같이 뛴다
"날 들었다!" 부르는 소리
멀리 메아리친다
― 피천득 「비 개고」


4행으로 된 단시지만 깊이 따져 읽어보면 짧지 않은 서사적 구조를 가진 작품입니다.
여름날 젊은이들이 모처럼 귀한 친구가 왔든지 하루를 즐기기 위해 여울가로 천렵을 나갔습니다.
그런데 예상치 않게 비가 내려 강가의 주막에라도 들러 잠시 비를 긋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안달이 난 화자는 여울가에서 혼자 서성거리고 있다가 비가 그치고 햇볕이 들자
친구들을 향해 소리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정황을 산문으로 표현하려면 얼마나 장황하겠습니까.
그런데 짧은 몇 마디로 요약을 했으니 독자들에게는 얼마나 낯설게 느껴지겠습니까?



6. 상징 구조

상징은 감추면서 바꾸어 표현하는 기법입니다.
어떤 것을 직접 드러내지 않고 다른 사물로 바꾸어 간접적으로 제시합니다.
다름에 보인 작품은 나의 창窓이란 작품인데 무엇을 노래한 것인지 한번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해가 뜨면/ 창은 늘/ 산과 들판을/
방 안으로 날라 왔다.

방은/ 산과 들판을/ 품은 채/
온종일 앓았다.

그래서/ 밖은 / 항상/
비어 있었다.


해가 뜨면 창은 산과 들판을 방안으로 끌어들여 방은 온종일 앓게 되고 밖은 텅 비어 있었다는 얘기지요?
진술의 내용은 어렵지 않은데 그 상황이 잘 이해가 안 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창'이나 '방'은 실제의 창이나 방 같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감춰둔 본의本義가 따로 있는 것 같지요?
'창'을 '눈'이라고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그러면 '방'은 자연히 우리의 '내면'으로 연상될 겁니다.
이 글은 사물에 대한 우리의 인식 작용을 상징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산과 들판'은 사물의 대유이며, '앓은 것'은 사물의 본질을 천착하며 겪는 고뇌입니다.
그 과정을 통해 터득한 것이 '공포'입니다. 그것을 '밖은 비어 있었다'라고 했습니다.


이 작품의 연작시라고 할 수 있는 「산과 바다」를 읽어 봅시다.



산을 열면/ 바다가 있었다.

산보다/ 푸른 바다/ 음악이었다.

바다를 열면/ 다시/ 산이 돌아왔다.

돌아온 산은/ 바다보다/ 고운 소리를/
품고 있었다.


반야심경의 핵심이 되는 구절이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 아닙니까?
'사물色'의 근원을 궁구해 보면 결국 '없음 '에 지나지 않지만, 그렇다고   '허탈' 빠질 일이 아니라
'현상色'을 다시 긍정하면서 '허무空'를 극복해야 한다는 뜻으로 나는 이 구절을 받아들입니다.
부정의 부정을 통해서 다시 긍정으로 돌아오는 논리입니다,.
로메다 님, 이 작품 속에 나온 '산'을  '色'으로, '바다' '空'으로 대체해서 읽어 보기 바랍니다.
이 작품은 색과 공의 불교적 담론을 상징의 구조를 통해 표현한 것입니다.
이처럼 상징의 가면을 쓰고 다가온 작품이 독자에겐 낯설고 난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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