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래의 등 / 조온윤 자기 꼬리를 물려고 빙빙 도는 개가 있었다 개는 돌아보는 순간 시야에서 달아나는 제 꼬리를 쫓으며 한참을 제자리에서 빙빙 빙빙 돌았다 개가 잡고 싶어 하던 꼬리는 지쳐 포기하는 순간에라야 사라졌는데 정말로 사라진 건 아니고 그저 개의 엉덩이에 그대로 달려 있을 뿐이었다 잡을 수 없는 꼬리의 존재를 개가 느끼듯이 언뜻 고갤 돌리는 주변시에 우두커니 서 있는 나의 뒷모습이 비쳤을 때도 등을 밀고 싶었던 것 같다 너 아무도 곁에 없대도 서 있지만 말고 원하는 곳으로 빛이 있는 쪽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서 등에 손을 얹어주고 싶어서 오래도록 자꾸만 도망치는 뒷모습을 찾았던 것 같다 혼자 하는 술래잡기처럼 제자리에서 빙빙 빙빙 --- <애지> 2026년 여름호 ====================== * 조온윤 시인 1993년 광주 출생. 조선대 문예창작과 졸업. 2019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나의 모험 만화』『햇볕 쬐기』『자꾸만 꿈만 꾸자』 청소년 시집 『도넛을 나누는 기분』 *********************************************************** ‘술래잡기’는 이 세상의 어린아이들의 놀이이지만, 그 주인공인 ‘술래’는 어느 누구도 하지 않으려는 최하천민의 역이라고 할 수가 있다. 술래는 ‘가위 바위 보’ 따의 내기에서 지고 만인들의 놀림감이 된 채 두 눈을 꼭 감고 있다가 숨어버린 친구들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꼭꼭 숨어버린 친구들을 다 찾아내면 이 관계는 역전되지만, 그러나 이 숨어버린 친구들을 찾아내기란 그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조용필의 ‘못 찾겠다, 꾀꼬리’라는 노래가 있듯이, 이 세상의 삶은 술래잡기처럼 어렵고 힘들 때가 많다. “자기 꼬리를 물려고 빙빙 도는 개”처럼 도저히 가망이 없고 승산 없는 싸움이 이 세상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제 꼬리를 쫓으며/ 한참을/ 제자리에서 빙빙” 돌아도 즐겁고 기쁜 일은 없고, “개가 잡고 싶어 하던 꼬리”는 “개의 엉덩이에 그대로 달려 있을 뿐”인데도 그 모든 행위들은 도로아미타불의 헛수고에 지나지 않는다. 존재하지 않으면서도 존재하는 것이 행복이고,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 행복이다. 우리는 모두가 다같이 ‘술래잡기’라는 이 놀이와도 같은 함정에 빠져서 자기 자신의 꿈과 희망과 그 모든 열정을 다 쏟아붓고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조온윤 시인의 [술래의 등]은 그러나 술래보다 더 무거운 짐을 지고, 그 술래의 몸짓에만 의존하는 등을 해방시켜주고 싶다는 노래라고 할 수가 있다. “아무도 곁에 없대도” 그저 서 있기만 하는 등, “빛이 있는 쪽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걸” 알려주어도 그저 아무런 생각도, 목적도 없이 무거운 등짐만을 지고 있는 등, 그 어떤 술래보다도 더 술래같고 더 바보같은 등이 있기 때문에, 우리 인간들은 이처럼 ‘술래잡기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기 꼬리를 물려고 빙빙 도는 개와도 같은 시인, “혼자 하는 술래잡기처럼/ 제자리에서/ 빙빙” 도는 시인, 이 세상에서 가장 나약하고 무기력한 시인의 무거운 등짐을 다 짊어지고, 그 주인의 충복으로 살아가는 [술래의 등]----. 조온윤 시인의 [술래의 등]은 자기 연민의 극치이자 그 바보같은 헛웃음이라고 할 수가 있다. - 반경환 (평론가) 명시 감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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