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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同人 1985 / 한정우

작성자군불|작성시간26.06.22|조회수19 목록 댓글 0

카페 同人 1985 / 한정우

한 풍경이 흘러갔다

담쟁이가 주인 없는 담을 넘는다
벌건 속살을 드러내던 능소화
올여름에는 피지 않았다

역병이 길어지는 동안
우리들 방학도 길어지고
일몰의 그림자도 짙어졌다

수업 후 동인에 모여 따뜻했던 시간들
턴테이블이 멈추고
긴 탁자에 놓였던 어묵탕 국물도 식은 지 오래,
제자들 그윽한 저녁 풍경을 온몸으로 품었던
노시인의 따스한 의자도 더는 볼 수 없어

사람들을 기다리던 대문은
세 번째 봄을 넘기지 못하고 아주 잠겼다
나무 빗장 밖에는
아직 돌리지 못한 발길들이 서성이는데

우리는 역병을 예기치 못하고
길어질 방학을 예기치 못하고
추억의 몰락을 예상치 못했다

무언의 더딘 세월이다

그 많은 풍경들
담쟁이 담 밑에 고이 묻혔다


- 시집 『어깨에 머리를 기대던 시절』 (달아실 ,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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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정우 시인
강원도 춘천 출생  
2019년 남구만 신인문학상 수상으로 등장
시집 『우아한 일기장』『어깨에 머리를 기대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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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1일 목요일 저녁, 참 오랜만에 용인문학회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2000년대 초반, 사무국장 직함으로 10여 년 동안 분주하게 문학회 살림을 맡아 하던 기억들이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이후 문학회를 떠나 시간을 보내다, 이번에 세 번째 시집을 발간하게 되면서 다시 문학회를 찾은 것입니다.

이날 행사는 제 세 번째 시집의 출판 기념회이면서, 동시에 용인문학회 시 창작반의 종강 행사를 겸하는 자리였습니다. 무엇보다 지난 12년간 시창작반을 묵묵히 이끌어 오셨던 김윤배 시인의 퇴임식이기도 했습니다.

용인문학회 시 창작반의 역사는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문학회 회원이었던 박해람 시인이 처음 강사를 맡았으며, 이후 몇 년간의 공백기를 거쳐 2013년 회장이었던 김종경 시인이 김윤배 시인을 초빙하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시창작반엔 많은 이야기가 숨어있습니다. 제가 시인으로 활동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용인문학회 시 창작반 덕분이었습니다.

처음 시 창작반을 개강하면서 수업을 들을 분들을 모집했습니다. 최소 다섯 명 이상은 모집이 되어야 시작할 수 있는데, 그 인원이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이럴 때 운영진이 (비자발적으로) 참여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처음에는 시를 전혀 몰랐으나, 시 창작반 강의를 듣고 1년 만에 등단하게 되었습니다.

시 창작반은 수업도 재미있지만, 수업만큼 재미있는 것은 수업을 듣는 동인들 간의 교류입니다. 제가 수업을 들었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매주 금요일 저녁 모여 술잔을 기울였습니다. 이 모임에는 이름도 있었습니다. 바로 금계(金契)입니다. 지금은 유명한 시인·소설가가 된 수강생부터 수업에는 관심이 없으나 사람이 좋아 보였던 사람들까지 참 다양했습니다. 시 속 <카페 同人>은 시 창작반이 모였던 장소 중 한 곳입니다.

<카페 同人>을 운영하시는 분도 ‘시인’이라고 전해 들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책장에 시집이 가득 놓여 있었습니다. 오래된 턴테이블에서는 옛날 노래가 흘러나오고…. 1990년대 인사동 <시인학교>를 옮겨 놓은 듯한 분위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카페 同人>은 이름은 아직 유지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 마음도 풍경도 변하기 마련. 시에서 화자가 말했던 역병(코로나)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시 창작반 얘기를 조금 더 해 볼까요. 시 창작반 종강 행사에서 김윤배 시인은 나직한 목소리로 "시 창작반을 운영한 12년 동안 총 열두 명의 등단자를 배출했습니다. 그 시간이 꿈결처럼 지나갔습니다”라고 소회를 밝혔습니다. 김윤배 시인은 이렇게 말을 이었습니다. “나는 나이가 들어 시 창작반을 더는 운영하지 못하지만, 좋은 강사가 이 자리를 이어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후인에 대한 염려와 걱정까지 해 주셨습니다.

시를 공부한다는 것은 기술적으로 시를 쓰는 방법을 배우는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을 보듬고 염려하며 근심하고, 위로할 수 있는 ‘시의 마음’까지 함께 배우는 것일 겁니다. 저는 시 창작반을 통해 배운 그 '시의 마음'이야말로 메마른 세상에서 우리가 서로에게 내어줄 수 있는 가장 따뜻한 의자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랜만에 용인문학회에서, 문학회 회원들의 온정을 시와 함께 품어 안을 수 있어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 시 쓰는 주영헌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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