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시간 여행 / 박남희
내가 너에게 가기까지가 시간이다
너는 감자, 어쩌다 무지개
그러다 바람, 이럴 땐 적당히 꽃이라고 해두자
네가 나를 규정하지 않았으므로
나는 나를 모른다
그러므로 네가 내게 오기까지가 시간이다
나는 날마다 너를 찾아 시간 여행을 떠난다
나는 여행을 떠나면서 누군지도 모르는 너에게
소크라테스를 사랑하는 자들이
소크라테스에게 붙여준 이름을 붙여준다
아토포스,
아마도 이것은 너의 이름이 아닐지도 모른다
내가 너에게 가는 길을 알지 못하므로,
도처에 길이 너무 많다
아무 길이나 들어서서 너를 찾다가
깜박, 나를 잊는다
시간 여행을 하면 할수록
시간의 한가운데가 비어 있다는 걸 알았다
그 안에
생각이 없어서 아름다운 것들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빈 것이 아름다운 것이라는 진리가 나를 깨웠다
빈 꽃병이 꽃을 유혹하듯
그 빈자리가 너를 꽃피게 했다는 걸 알았다
- 시집『어쩌다 시간 여행』 (여우난골,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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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남희 시인(문학평론가)
1956년 경기 고양 출생. 숭실대 국문과 및 고려대 대학원 국문과 석/박사과정 졸업
1996년 〈경인일보〉, 1997년 〈서울신문〉신춘문예에 당선
시집『폐차장 근처』『이불 속의 쥐』『고장난 아침』『아득한 사랑의 거리였을까』『어쩌다 시간여행』
평론집『존재와 거울의 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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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월요일
어쩌다 월요시편지
그렇게 또 1,042번째 편지를 띄웁니다.
박남희 시인의 시집 『어쩌다 시간 여행』의 표제시입니다.
- 어쩌다 시간 여행
아토피(Atopy)라는 피부병이 바로 아토포스(Atopos)에서 왔습니다.
어디에서 왔는지 어떻게 왔는지 알 수 없는 질병이기에 붙여졌지요.
아토포스는 본래 장소 혹은 공간의 개념입니다.
박남희 시인은 이것을 시간의 개념으로 확장시킵니다.
유레카!
이렇듯 시는,
알았던 세계으로부터 모르는 세계로 우리의 시야를 확장시킵니다.
여기서 당신에게 묻습니다.
시인은
내가 너에게 가기까지 혹은 네가 나에게 오기까지가 '시간'이랍니다.
하지만
정작 나에게 너는, 너에게 나는 언제나 없는 장소(아토포스)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시인은 무엇을 깨달았던 것일까요?
나는 당신에게 왜 이 시를 들려주는 것일까요?
"빈자리가 너를 꽃피게 했다"는 마지막 문장은 매우 중요한 힌트가 되겠네요.
그럼 이만 총총.
2026. 6. 22.
달아실 문장수선소
문장수선공 박제영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