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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일의 시

(제목) :승학산 치유의 숲길 트레킹

작성자경주남산|작성시간26.06.18|조회수34 목록 댓글 0

(제목) :승학산 치유의 숲길 트레킹

바다가 가까워지면서 낙동강은 은빛 물결로 흐른다. 강폭도 넓어지고 하구는 등에 지고 온 토사물로 섬이 생긴다. 그러다가 오랜 세월이 흘러 섬과 섬이 이어지고 육지가 된다. 사하는 칠백 리 낙동강의 퇴적으로 생겨난 땅이 더러더러 있다. 그리고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으로 예부터 배가 드나드는 포구와 물류의 중심지였다. 강과 바다를 품에 안은 땅은 인간의 영원한 안식처다. 거기에는 생명의 탄생과 소멸, 자연의 풍요로운 풍경과 스토리텔링이 있다. 오늘은 사하의 최 서쪽 승학산 3코스 치유의 숲길을 걷는다. 들머리는 제석 골 산림공원이다. 어디를 가더라도 물과 나무는 언어고 문학이다. 물을 머금고 있는 푸른 나무 군락은 영혼의 보금자리다. 인간이 출현한 최초의 장소도 나무 위였다. 나무는 인간을 키우고 진화시킨 모유다. 그래서 그러한지 어떠한 나무숲도 인간을 영적인 세계로 끌어간다. 느리게 걷다가 어느덧 삼나무 명상 치유의 숲길로 들어간다. 그 호젓한 길에 풍덩 빠져 자신을 잊어버린다. 벌써 방향이 온몸을 자극한다. 그만큼 싱그럽고 유쾌하다. 키가 30m에서 40m까지 자라는 삼나무는 군락을 잘 이루고, 나무껍질이 적갈색 또는 암적갈색으로 색감이 마음에 평화를 준다. 숲의 의자에 앉아 명상에 잠긴다. 미끈미끈한 삼나무 군락에 감동의 물결이 인다. 숲 사이 햇빛이 내리면서 더욱 음이온이 방출되어 심신의 묵은 통증마저 가시는 것 같다. 삼나무는 추위를 싫어하는 늘 푸른 바늘 잎 나무다. 일본이 본적이다. 일본 역사책<<일본서기>>에 보면, “다케하야 스사노오노 미코토 라는 신()이 내 아들이 다스리는 나라에 나무가 없으면 곤란하다고 하여 자기 몸의 수염과 털을 뽑아 삼나무 편백 나무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보면 삼나무는 신화(神話)에 등장하는 고귀한 나무다. 꽃도 큰 열매도 없는 삼나무지만 우람하고 당당하여 그늘을 만들고 새들이 살 수 있는 그야말로 더 없는 축복의 나무다. 천재 화가 고흐의 그림별이 빛나는 밤에도 레바논의 국기에도 삼나무가 그려져 있다. 가야 할 시간이지만 쉽사리 엉덩이를 털지 못한다. 삼나무 향이 그윽하여 더욱 가라앉고 한없이 내려가면서 나를 본다. 나 자신을 찾아 나답게 살고 싶어요.라는 외마디가 목젖에 걸린다. 시간은 흐르고 어쩔 수 없이 오솔길을 나선다. 쉬엄쉬엄 걸어가니 돌을 아주 잘게 부수어 깔고 바닥도 잘 다져진 폭이 큰 임도가 나온다.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걸어본다. SBS스페셜걸음아 날 살려라.’가 얼핏 다가온다. 신발에 꽁꽁 갇혀있던 발이 해방된다. 발은 우리 몸의 모두를 담아 있다. 맨발로 걸으면 발을 펴고 굽히고 비트는 등 갖가지 운동을 할 수 있다. 엄지발가락부터 다섯 발가락이 또 뒤꿈치부터 발바닥 근육이 다 골고루 퍼지면서 움직이므로 그 효과가 탁월하다. 맨발걷기는 혈액순환 소화 기능 향상 두통 해소 당뇨 예방 치매 예방 피로회복 항 노화(anti aging) 효과도 있다. 고 한다. 그야말로 만병통치라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인간은 언제부터 신발을 신기 시작했을까. 신발은 인간과 자연을 분리 시켰다. 그러므로 신발을 신고부터 인간은 땅에 자연에 못쓸 짓을 하게 되었다. 옛적에는 지배층만이 신발을 신었다. 고대 왕릉에서 왕이 신던 황금신발이 발굴된다. 신발은 인간의 부와 권력을 나타내는 잣대였다. 맨발이 되면 땅의 감촉을 느끼고 그것은 흙으로 돌아가는 인간의 회귀를 가르치는 나침판이 된다. 맨발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곧 맨발 건강 쉼터에 이른다. 맨발을 털고 신발을 신고 다시 산길을 걷는다.

*승학 산 억새밭과 정상 경관.

잠깐만에 억새 군락지에 다다른다. 그런데 어쩐 일일까. 장장 29ha에 이르는 억세 밭이 말끔하게 깎여져 있다. 그 부산 제1의 억새밭 구경하러 왔는데 실망이 크다. 그러나 연전에 이곳을 찾아왔을 때의 기억이 회상된다. 그 때는 가을이었고 누런 억새들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어 감동이고 장관이었다. 바람이 불면 억새가 흔들렸다. 바람이 더 세게 불면 억새는 눕다가 일어났다. 쏟아지는 햇빛에 억새가 눈부셨다. 그러나 그건 아련한 추억이지만 현실의 환상이 된다. 어느덧 억새 노을 전망대에 선다. 탁 트인 전망에 홀연 눈이 섬벅거린다. 바로 보이는 아름다운 감천만과 제석 골 명당에 자리 잡은 부산 일 과학고 좌로는 구덕산 시약산 우로는 승학산 정상이 방금 올라 온 제석 골의 아파트군이 시야를 소용돌이치게 한다. 그 수려한 경치를 등에 업고 승학산 정상으로 향한다. 길목에“2017년 낙 동 정맥 훼손지 복원사업을 실시한 지역입니다. 201711. 부산광역시 사하구.”라는 안내를 본다. 승학 헬기장을 지나고 화엄사 내려가는 이정표 지나 승학산 정상에 우뚝 선다. 돌비에학명우천성문사해(鶴鳴于天聲聞四海:학이 하늘에서 우니 온 세상에 다 퍼진다.)와 새천년 미래 웅비 사하 2000년 단 사하구청도 있다. 다른 돌비에는승학산’(497m)과 반대 면에는 고려 말 무학대사가 이곳에 이르러산세가 준엄하고 기세가 높아 마치 학이 힘차게 날아오르는 형상이라 하여 승학 산(乘鶴山)이라 부르게 되었다. 는 내용이 있다. 정상은 그야말로 일망무제다. 서북 편으로 낙동강 줄기가 유유히 흐르고 철새들의 천국 을숙도가 큰 고래처럼 헤엄친다. 그 너머 김해 쪽의 들판과 신어산 줄기의 마루 금이 연무 속에 신비하다. 아래로는 명지 신도시와 낙동강 하구와 바다가 만나는 기수 지역의 모래섬들이 황홀하다. 그 너머 부산 신항만과 가덕도 거제도가 한 폭의 수채화를 그린다. 얼마나 아름다운지 정신이 어뜩하다. 가슴까지 탁 터지고 사람 몸이 천 냥이면 눈이 구백 냥이라고 하더니만 눈에서 경이로운 불꽃이 일어난다. 한참을 그렇게 두리번거리며 구경한다. 보면 볼수록 입이 벙긋거려 다물지 못한다. 그러나 더이상 머뭇거릴 수 없어 걸어 온 길을 되돌아 승학 문화 마루 터까지 단숨에 간다.

승학 문화 마루 터에서 싸리골 약수터까지

여기에는 화장실도 있고 예쁜 반달 모양의 나무 데크 공연장도 있다. 팔각 정자도 있고 여러 갈래 길이 만나는 장소라서 그런지 휴식을 하는 트레킹 족이 곰비임비 꽤 많다. 여기에서 재넘이 마루터 지나 구덕산으로 가는 길이 있으나 승학 산3 코스 치유의 숲길 코스인 너럭바위 전망대로 걷는다. 구덕산은 부산 서구를 싸고 있는 산중의 산이다. 부산의 등 줄인 금정 산맥의 말단부에 위치하고 있다. 산기슭에 구덕 사가 있고 구덕고개 밑으로 구덕 터널이 있다. 잘게 부순 자갈이 촘촘히 깔려 있는 임도 길이다. 길 어깨 나무에 꽃이 한창 피고 있다. 너럭바위 전망대에 도착한다. 잠시 쉬면서 호흡을 다스린다. 다시 걸어 재넘이 마루 터와 갈리는 낙조 전망쉼터에 닿는다. 여기서 보는 승학산과 억새밭 왼쪽으로 보이는 낙동강 하구와 바다 경치는 완성된 정물화다. 다시 걷는다. 코숭이 자갈마당이 나온다. 이정 목에 싸리골 약수터 1.66km라고 적혀 있다. “산행길이 잦아지면 병원 길이 멀어진다.”는 문구도 보인다. 지금부터 싸리골 약수터까지는 내리막길이다. 길이 순탄하여 발걸음이 서붓하다. 자연을 더 느낄 수 있고 공기가 맑은 소나무 우거진 옛길로 들어선다. 이름 모를 약수터가 나온다. 나무 의자에 앉아 걸어 온 길을 잠시 생각한다. 길마다 안내가 잘되어 있고 도로가 깔끔하게 다듬어져 있고시설이 더할 나위 없이 잘 정비되어 있다. 정말 기분 좋은 길이고 그 수려한 경치에 정신이 옹송옹송한 몽환의 길이다. 여기도 몇 그루 동백나무가 만개 해있다. 그 붉은 선혈 같은 꽃은 나무위에서 피고 통째로 떨어져 땅에서 다시 피고 보는 이의 마음에 숨어들어 한 번 더 피어 한 송이 꽃이 세 번 핀다는 동백꽃. 그 붉음과 처절한 아름다움이 가슴을 후벼내는 동백꽃을 멍하니 본다. 조금 후 자리에서 일어나 얼마간 더 내려오자 싸리골 약수터다. 싸리골 약수터는 사하구에서 먹는 물 공동시설로 지정하여 관리한다. 지정번호 사하-2호다. “자연이 살아야 우리가 산다.” 는 글귀도 보인다. 마을에서 온 여럿이 운동도 하고 물도 받고 있다. 조금 더 내려오니산림 내 들개의 무리가 출몰하니 등산객께서는 주의를 바라며 이를 목격하신 분은 119상황실로 신고 부탁드립니다.”는 안내도 읽어 본다. 이제 승학 산 3코스 치유의 숲길 트레킹을 옴나위없이 마치게 된다. 이 코스를 걸으면서 시종 아름다운 자연에 감탄하고 착각에서 벗어난 다른 나를 만날 수 있었다. 새로운 환경과 경험이 나를 변화시킨 것이다. 현대병을 앓는 우리는 이런 숲길을 걸으면서 스스로 치유의 문을 열어야 한다. 자신의 가장 깊은 내면까지 걸어 내려가 내 뼈를 찾고 내 영혼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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