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목 : 승학산 치유의 숲길 탐방기.
*승학산 3코스 치유의 숲길 답사
낙동강과 바다가 만나는 기수지역이 가까워지면서 강은 은빛 물결로 흐른다. 강폭도 넓어지고 하구는 유속이 느려 퇴적물이 쌓여 섬이 생긴다. 그러다가 긴 세월이 지나면서 여럿 섬과 섬이 아름다운 풍경을 만든다. 사하는 칠백 리 낙동강이 종지부를 찍으며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 섞이는 곳이다. 사하는 예부터 배가 드나드는 포구와 물류의 중심지였다. 강과 바다를 품에 안은 땅은 인간의 삶에 안식을 주는 가나안이다. 거기에는 생명의 탄생과 소멸 자연의 풍요로운 풍경과 전설 구수한 옛이야기가 있다. 오늘은 사하의 최 서쪽 승학산 3코스 치유의 숲길을 걷는다. 들머리는 제석골 산림공원이다. 어디를 가더라도 물과 나무는 언어고 인문학이다. 물을 머금고 있는 푸른 나무 군락은 영혼의 보금자리다. 인간이 육지에서 살았던 처음의 장소도 나무 위였다. 나무는 인간을 키우고 진화시킨 어머니다. 그래서 그러한지 어떠한 나무숲도 인간을 영적인 세계로 끌어간다. 느리게 걷다가 어느덧 삼나무 명상 치유의 숲길로 들어간다. 그 호젓한 길에 풍덩 빠져 자신을 잊어버린다. 벌써 나무 방향이 온몸을 자극한다. 그만큼 싱그럽고 상쾌하다. 키가 30m에서 40m까지 자라는 삼나무는 군락을 잘 이루고 나무껍질이 적갈색 또는 암적갈색으로 색감이 눈자위에 문신을 그린다. 숲의 의자에 앉아 명상에 잠긴다. 미끈미끈한 삼나무 군락에 숨이 편하고 감동의 물결이 인다. 숲 사이 햇빛이 내리면서 더욱 음이온이 방출되어 심신의 묵은 통증마저 가시는 것 같다. 삼나무는 추위를 싫어하는 늘 푸른 바늘 잎나무다. 일본이 본적이다. 일본 역사책 <일본서기>에 보면, “다케하야 스사노오노 미코토 라는 신(神)이 내 아들이 다스리는 나라에 나무가 없으면 곤란하다고 하여 자기 몸의 수염과 털을 뽑아 삼나무 편백 나무를 만들었다.” 한다. 그렇다고 보면 삼나무는 신화(神話)에 등장하는 고상한 나무다. 꽃도 큰 열매도 없는 삼나무지만 우람하고 당당하여 그늘을 만들고 새들이 살 수 있는 그야말로 더 없는 축복의 나무다. 천재 화가 고흐의 그림 ‘별이 빛나는 밤’에도 레바논의 국기에도 삼나무가 그려져 있다. 가야 할 시간이지만 쉽사리 엉덩이를 털지 못한다. 삼나무 향이 그윽하여 더욱 가라앉고 한없이 내려가면서 나를 돌아본다. 나 자신을 찾아 나답게 살고 싶어요.라는 외마디가 목젖에 걸린다. 시간은 흐르고 어쩔 수 없이 오솔길을 나선다. 쉬엄쉬엄 걸어가니 돌을 아주 잘게 부수어 깔고 바닥도 잘 다져진 폭이 큰 임도가 나온다.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걸어본다. SBS 스페셜 ‘걸음아 날 살려라.’가 얼핏 떠 오른다. 신발에 꽁꽁 갇혀있던 발이 해방된다. 발은 우리 몸의 모두를 담아있다. 맨발로 걸으면 발을 펴고 굽히고 비트는 등 갖가지 운동을 할 수 있다. 엄지발가락부터 다섯 발가락이 또 뒤꿈치부터 발바닥 근육이 다 골고루 퍼지면서 움직이므로 그 효과가 탁월하다. 맨발 걷기는 혈액순환 소화 기능 향상 두통 해소 당뇨 치매 예방 피로회복 항노화(anti – aging) 효과도 있다. 고 한다. 그야말로 만병통치라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인간은 언제부터 신발을 신기 시작했을까. 신발은 인간과 자연을 분리했다. 그러므로 신발을 신고부터 인간은 땅에 자연에 거슬리는 짓을 하게 되었다. 옛적에는 지배층만이 신발을 신었다. 고대 왕릉에서 왕이 신던 황금신발이 발굴된다. 신발은 인간의 부와 권력을 나타내는 잣대였다. 맨발이 되면 땅의 감촉을 느끼고 그것은 흙으로 돌아가는 인간의 회귀를 가르치는 화두가 된다. 맨발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곧 맨발 건강 쉼터에 이른다. 의자에 앉아 맨발을 닦고 신발 신고 다시 산길을 걷는다.
*승학산 억새밭과 정상 경관.
잠깐만에 억새 군락지에 다다른다. 그런데 어쩐 일일까. 장장 29ha에 이르는 억세 밭이 말끔하게 깎여져 있다. 그 부산 제1의 억새밭 구경하러 왔는데 기대가 무너진다. 그러나 연전에 이곳을 찾아왔을 때의 기억이 회상된다. 그때는 가을이었고 누런 억새들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어 감동이고 장관이었다. 바람이 불면 억새가 흔들렸다. 바람이 더 세게 불면 억새는 누웠다 일어났다. 쏟아지는 햇빛에 억새가 눈부셨다. 그러나 그건 아련한 추억이지만 현실의 환상이 된다. 어느덧 억새 노을 전망대에 선다. 탁 트인 전망에 홀연 눈이 섬벅거린다. 바로 보이는 아름다운 감천만과 제석골에 자리 잡은 부산 일 과학고 좌로는 구덕산 시약산 우로는 승학산 정상과 방금 올라 온 제석골 아파트군이 파노라마 풍경을 만든다. 그 수려한 경치를 등에 업고 승학산 정상으로 향한다. 길목에“2017년 낙동 정맥 훼손지 복원사업을 실시한 지역입니다. 2017년 11. 부산광역시 사하구.”라는 안내를 본다. 승학 헬기장을 지나고 화엄사로 내려가는 이정표 지나 승학산 정상에 우뚝 선다. 돌비에 ‘학명우천성문사해(鶴鳴于天聲聞四海:학이 하늘에서 우니 온 세상에 다 퍼진다.)와 새천년 미래 웅비 사하 2000년 단 사하구청’도 있다. 다른 돌비에는 ‘승학산’(497m)과 배면에는 고려 말 무학대사가 이곳에 이르러 ‘산세가 준엄하고 기세가 높아 마치 학이 힘차게 날아오르는 형상’이라 하여 승학산(乘鶴山)이라 부르게 되었다. 는 내용이 있다. 정상은 그야말로 사방이 탁 틘 일망무제다. 서북 편으로 낙동강 줄기가 유유히 흐르고 철새들의 천국 자연 그대로 생태의 섬 을숙도가 아스라하다. 그 너머 김해 쪽의 들판과 신어산 줄기의 마루 금이 연무 속에 신비하다. 아래로는 명지 신도시와 낙동강 하구와 바다가 만나는 기수지역의 모래섬들이 황홀한 풍경을 만든다. 그 너머 부산 신항만과 가덕도 거제도가 한 폭의 수채화를 그린다. 얼마나 아름다운지 혀를 내두르게 한다. 가슴까지 탁 터지고, 사람 몸이 천 냥이면 눈이 구백 냥이라고 하더니만 눈에서 경이로운 불꽃이 일어난다. 한참을 그렇게 두리번거리며 구경한다. 보면 볼수록 입이 벙긋거려 다물지 못한다. 그러나 더 머뭇거릴 수 없어 걸어 온 길을 되돌아 승학 문화 마루 터까지 뚜벅뚜벅 걷는다.
*승학 문화 마루 터에서 싸리골 약수터까지
여기에는 화장실도 있고 예쁜 반달 모양의 나무 데크 공연장도 있다. 팔각 정자와 여러 갈래 길이 만나는 장소라 그런지 휴식하는 등산객이 꽤 많다. 여기서 재넘이 마루터 지나 구덕산으로 가는 길이 있으나 승학산 3코스 치유의 숲길로 발을 옮겨 너럭바위 전망대로 걷는다. 구덕산은 부산 서구를 싸고 있는 산중의 산이다. 부산의 등뼈인 금정 산맥 끄트머리에 자리하고 있다. 산기슭에 구덕사가 있고 구덕고개 밑으로 구덕 터널이 있다. 잘게 부순 자갈이 촘촘히 깔린 임도 길이다. 길가 나무에 꽃이 한창 피고 있다. 너럭바위 전망대에 도착한다. 잠시 쉬면서 호흡을 가다듬는다. 다시 걸어 재넘이 마루 터와 갈리는 낙조 전망쉼터에 닿는다. 여기서 보는 승학산과 억새밭 왼쪽으로 보이는 낙동강 하구와 바다 경치는 어마지두 탄성을 지르게 한다. 걸음을 옮긴다. 코숭이 자갈마당이 나온다. 이정목에 싸리골 약수터 1.66km라고 적혀 있다. “산행길이 잦아지면 병원 길이 멀어진다.”는 문구도 보인다. 지금부터 싸리골 약수터까지는 내리막길이다. 길이 순탄하여 발걸음이 가뿐하다. 애면글면 공기가 청정한 소나무 우거진 옛길로 들어선다. 이름 모를 약수터가 나온다. 나무 의자에 앉아 걸어 온 길을 잠시 더듬어 본다. 길마다 안내표지가 있고 도로가 깔끔하고 시설이 더할 나위 없이 잘 정비되어 있다. 걸을수록 기분이 좋아지는 길이고 수려한 경치에 정신이 황홀해지는 길이다. 여기도 몇 그루 동백나무가 만개해있다. 그 붉은 선혈 같은 꽃은 나무 위에서 피고 통째로 떨어져 땅에서 다시 피고 보는 이의 마음에 숨어들어 한 번 더 피어 한 송이 꽃이 세 번 핀다는 동백꽃. 그 붉음과 처절한 아름다움이 가슴을 후벼내는 동백꽃을 멍하니 본다. 조금 후 자리에서 일어나 얼마간 더 내려오자 싸리골 약수터다. 싸리골 약수터는 사하구에서 먹는 물 공동시설로 지정하여 관리한다. 지정번호 사하-제2호다. “자연이 살아야 우리가 산다.” 글귀도 보인다. 마을에서 온 여러분이 운동도 하고 물도 받고 있다. 조금 더 내려오니“산림 내 들개의 무리가 출몰하니 등산객께서는 주의를 바라며 이를 목격하신 분은 119상황실로 신고 부탁드립니다.” 안내도 읽어 본다. 이제 승학산 3코스 치유의 숲길 걷기를 옴나위없이 마치게 된다. 이 코스를 걸으면서 시종 아름다운 자연에 감탄하고 착각에서 벗어난 나를 만날 수 있었다. 새로운 환경과 경험이 나를 변화시킨 것이다. 현대병을 앓는 우리는 이런 숲길을 걸으면서 스스로 치유의 문을 열어야 한다. 자신의 가장 깊은 내면까지 걸어 내려가 내 뼈를 찾고 영혼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끝)
(2) 제목 : 몰운대 다대포 해안공원 아미산 전망대 답사기.
*몰운대와 다대포 해안공원 답사.
다대포 겨울 바다는 장엄한 서사시다. 눈이 시린 수채화다. 실핏줄 같은 개여울이 합쳐 작은 강을 만들고 거기에 애환과 역사를 담아 큰 강이 되면서 1,300리를 유장히 흘러온 낙동강 물이 바다와 만나는 기수지역 하구가 있고 큰 강이 입 안 가득 물고 온 퇴적물을 시나브로 뱉어내며 그지없이 아름다운 모래섬을 만들고 텃새와 철새들이 보금자리를 틀어 새들이 천국을 건설한 이곳 다대포 해안은 푸르고 푸른 감동이다.
몰운대 걷기는 다대포 공영주차장이 들머리다. 처음 화손 대 방향으로 간다. 초입부터 늠름한 곰솔에 기분이 한껏 고조된다. 손질 잘한 길과 오솔길 중 오솔길로 걷는다. 음수대가 나오니 입이 바싹 칼칼하다. 무슨 이유일까. 틀어 본다. 수도꼭지가 부드럽다. 한 모금 마신다. 물맛이 입에 감친다. 흘끗 보니 수질검사서가 붙어 있다. 화장실도 있다. 반듯하고 깔끔하다. 빈틈없는 시설이다. 간이 운동장에서 사람들이 배드민턴을 친다. 한가하고 여유로운 광경이다. 고개티를 넘어 화손 대에 도착한다. 다대포 바다는 한 번 더 변신하여 절경을 선보인다. 파도에 깎여 나간 해식애와 해식동 그 수려함에 감탄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 틈을 비집고 서 있는 작은 섬 팔봉섬 솔섬 고래섬이 겨울 바다 위에 무연이 떠 있다. 눈썹 위에 떠도는 아름다운 섬이다. 흩어져 낚시하는 태공들이 보인다. 화손대는 감성돔이 많이 잡히는 유명한 낚시터다. 앞바다는 푸른 호수처럼 잔잔하고 게으른 햇빛에 되비치는 윤슬이 보석같이 곱다. 일출의 배경이 되는 모자 섬과 하얀 등대가 시선을 빼앗는다. 바다 건너 구평동과 두송 반도가 풍경에 곰비임비 덧칠한다. 그 뒤로 암남공원 더 멀리 영도 태종대가 아슴아슴하다. 먼바다부터 연안까지 간간이 배가 떠 있는 광경은 한 폭 그림이다. 다대포와 몰운대는 조선 시대 국방의 요충지였다. 임진왜란 초기 1592년(선조25년) 음력 9월 1일 벌어진 부산포 해전(눈에 보이는 앞바다)에서 이순신 장군이 가장 아끼던 녹도 만호 정운 장군 등 6명이 전사한다. 정운 장군은 해전이 일어나기 전 몰운대란 지명을 듣고 정운의 운이 다하는 몰운대라고 하면서 자기의 전사를 예고했다고 한다. 정운 장군이 전사한 음력 9월 1일을 부산시민의 날로 정하여 부산시에서 추모행사를 하고 있다. 오백 년 전 임진년 싸움에서 전사한 조선 수군 장수의 나라 사랑 정신과 용기를 기리고 이어가는 부산시민의 기백에 저절로 마음이 숙연해진다. 잘 다독인 길은 편하고 해방감을 준다. 빨간 씨앗을 모자이크한 돈 나무도 있다. 겨울에 보는 빨간 열매로 눈이 따스하게 충혈된다.
사백 년 전 몰운대는 몰운도라는 섬이었다. 낙동강 물의 토사 퇴적으로 다대포와 연결 육지가 되었다. 안개가 구름처럼 자주 끼어 보이지 않는 섬이라고 몰운대라 칭명했다. 잘 자란 해송이 이어지는 길은 알지 못할 기쁨을 준다. 침운대로 향한다. 자갈이 많은 해안 위에 전망대가 있고 포토존도 있다. 시간은 속절없이 지나가고 해조음 따라 솔 향기 그윽한 길을 걷는다. 늘 푸른 아름다운 숲이 울창한 둘레 길은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빨간 띠를 허리에 두른 작고 예쁜 등대도 보인다. 해안절벽 남쪽 해안경비 초소를 개방한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대마도 방향의 탁 트인 바다는 오래 묵은 체증까지 술술 내리게 한다. 앞바다는 빼어난 경관이다. 자연이 빚은 조각배 같은 섬, 동섬과 등대섬이 보인다. 다대포 객사 방향으로 나간다. 옛날 여행객이 묵어간다는 다대포 객사(부산 시 문화재 기념물 제3호)를 관람하고 몰운대 시비를 구경한다. 우거진 청정숲길을 터벅터벅 걸어 다시 주차장으로 나간다. 낙동강 하구의 최남단 해발 78m 몰운대는 그야말로 비경이고 몸속으로 녹아드는 숨어있는 명승지이다. 우리나라에 고구마를 처음 가져온 일본 통신사 조엄은 해사일기에서 “아리따운 여자가 꽃 속에서 치장한 것 같다.” 하며 몰운대의 경치를 극찬했다.
날머리로 나와 해안 산책로를 걷는다. 제123 전망대를 거치는 해식애가 아름다운 해안 데크 로드를 걷는다. 그 망 없이 바라보는 바다와 섬 해안의 경치는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이다. 이제는 다대포 해수욕장 공원으로 간다. 다대포 바다 광활한 해안에 부산 사하구는 생태탐방로를 준공했다. 2008년부터 8년 동안 즉 2015년까지 307억 8900만원을 옴니암니 들여 연안 정비사업을 마무리했다. 다대포 해수욕장 자연습지를 가로지르는“생태탐방로”가 새롭게 탄생했다. 이제 다대포 해안은 사진작가들의 단골 출사지가 되었다. 낙동강과 바다가 만나는 기수역의 풍부한 특산물인 재첩, 엽낭게, 조개, 해수 식물을 체험할 수 있는 학습장도 꾸며져 있다. 어떻게 그렇게 수려한 해변이 있는지 바닷물을 머금은 백사장 길을 걸으며 발자국마다 추억을 심는다. 돈은 거인이다. 도깨비 금방망이다. 그 불모의 습지에 개발비가 뚝딱 들어가니까. 힐링 휴양지가 되고 체험장이 된다. 다목적 광장, 중앙 잔디광장, 꿈의 낙조 분수도 살핀다. 이때쯤 나는 아예 보드랍고 맑은 모래밭인 해수욕장으로 걸어 나가 밀려오는 파도를 가슴에 상감하며, 아미산 전망대로 향한다. 오금 저리는 모래밭을 하염없이 멍하게 걸어서 간다. 시간이 멈추는 생의 한때 그 넘실거리는 파도를 머리에 이고 간다. 바닷바람이 머리칼을 흔들고 따뜻한 햇볕이 감정을 적시며 리듬을 만든다. 파도는 끝없이 밀려오고 밀려간다. 대체 어쩌자는 것인가. 최초의 생명을 탄생시킨 바다 지구를 정화해 생명이 사는 환경으로 만드는 신(神)의 바다. 파도는 으르릉거리며 밀려오고 가고, 그 무한한 반복에 기가 질린다. 아무려나 해조음 들으며 사박사박 걸어간다. 백사장에 발자국이 찍히다가 이내 파도에 씻겨 사라진다. 인간도 저 발자국처럼 순식간에 사라지는 허망한 존재가 아닐까. 백사장은 길이 900m 폭 100m이며 간물때는 해안에서 300m 거리의 바다까지 수심 1.5m여서 가족 단위 피서지로 알려지고 유명하다. 또 부산서 유일하게 해돋이와 해넘이를 볼 수 있는 다대포 해변. 그렇게 걷다가 도로에 도착 아미산 입구에 들어선다.
*아미산 전망대 답사.
생태탐방로에서 이어지는 아미산 노을 마루 길은 나무 데크 계단을 올라가는 길이다. 군데군데 포토존이 있다. 겨울임에도 이마에 땀이 후줄근하다. 아미산 전망대에 도착한다. 어렴풋한 을숙도에서 가덕도 거제도 사이 광활한 갯벌, 강물과 모래섬, 푸른 바다와 구름을 빗질하는 아득한 하늘은 자연이 빚은 축복의 풍경이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면서 탄생한 금빛 모래섬이 눈부신 생명의 터전을 이룬다. 풍요와 상상으로 터질 것 같은 모래섬은 해마다 살아 움직이듯 빠르게 변화한다. 연신 탄성을 지른다. 바닷물의 영향으로 해안선과 거의 평행으로 형성된 좁고 긴 퇴적 연안사주인 도요 등-신자도-진우도 등은 일렬로 늘어서 마치 울타리를 쳐놓은 것 같다 하여 울타리 섬이라고 부른다. 게다가 삼각주로 대표되는 도요등 백합등 맹금머리등은 길쭉한 금고리 생김으로 선이 부드럽고 우아하여 더욱 아름답다. 이곳은 아름다움이 모성 회귀하는 경치다. 그토록 찾아다니던 꿈의 여행지가 바로 여기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
낙동강 하구언 일대는 동양 최대의 철새 도래지이다. 이곳은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개어귀 지역으로 수생식물이 서식하고 물고기 조개 곤충이 풍부하고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울 수 있는 모래밭 갈대밭이 있어 새들이 살기에 천혜의 장소다. 을숙도에서 사자도 십리 등으로 광활하게 펼쳐진 하구는 천년 기념 물 제179호로 지정되어 있다. 참새 때까치 노란턱뫼새 붉은머리오목눈이 등은 텃새이고 백조 큰고니 흑부리오리 흰죽지쇠기러기 등은 겨울 철새이고 황새 왜가리 뜸부기 쇠제비 갈매기 흰물 떼 새 등은 여름 철새이다. 우리나라를 지나가면서 봄가을 잠깐씩 머무는 나그네새도 있다. 마도요 좀도요 노랑발도요 등 도요새무리와 왕눈물떼새 검은머리물떼새 등이다. 그 곱고 예쁜 모래섬 같은 새의 이름을 공 굴려서 불러본다. 그때마다 입술에서 쉬리쉬리 소리를 내며 날아오르는 새 떼 이건 영락없는 판타지다. 그러나 자연의 맑은 공간을 비집고 장림공단과 아파트군이 시선을 빼앗기도 한다. 인간은 자기를 낳아 주고 길러준 자연을 끝내 무너뜨리고 말 것인가.
스키 슬로프처럼 길게 텍(tech)으로 연결된 아미산 전망대는 가장 뛰어난 뷰 포인트(view point)다. 이곳에 서면 눈이 횅해지고 저절로 감탄하게 된다. 낙동강 유역에서 신석기 문화의 엄지인 유적 빗살무늬토기가 대량 발굴되었다. 그 빗살무늬토기의 빗살처럼 햇빛이 내리고 전적으로 자연에 기대어 살아가던 원시인들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어쩐지 이곳은 쉽게 떠날 수 없는 마력이 있는 것 같다. 커피숍에서 차를 시켜 전망대 의자에 앉는다. 시간은 흐르고 해는 점차 서쪽으로 기운다. 해가 넘어갈수록 가덕도 방향으로 넘어가는 그 찬란한 일몰이 점점 비경을 만든다. 해가 섬들의 마루 금에 걸릴 즈음 그 붉게 불타는 노을의 황홀한 장관은 으악 비명을 지르게 한다. 바다와 썰물에 드러난 하구의 모래섬에 반사되는 까치놀은 한편의 동양화고 멜로드라마(melodrama)다. 아직도 그 몽롱한 경관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영업 종료 차임 벨이 울린다. 일몰과 함께 붉은 꽃불로 저무는 노을의 이내가 돌아가는 나의 발등을 흥건하게 적신다. (끝)
(3) 제목 : 부산 사하구 암남공원 갈맷길 트레킹.
겨울이었고 해안과 바다는 안개가 자욱하다. 사이사이 겨울비가 내리기도 했다. 일기예보에 전국에 비나 눈이 온다고 하더니만. 과연 그러했다. 이제는 어느 정도 맞아떨어지는 기상예보가 되었다. 해안은 회색 물안개가 피어올라 그대로 겨울 추상화를 그린다. 황량하게 번지는 안개는 추위와 습도 때문에 더 을씨년스럽다. 저 도시의 스모그 같은 안개 위로 우중충한 하늘이 보이고 그 너머 아득한 곳에 있는 서울에는 폭설이 내렸다. 첫눈으로는 삼십 수년 만에 가장 많이 내렸다 한다. 요즘 하루에도 수없이 입에 오르내리는 북악산에도 첫눈이 내렸을 것이다. 첫눈이 내리면 그 첫눈에 발자국을 찍으며 떠나겠다는 사람이 있었다. 옛 고승의 시에서처럼. 이름 모를 그가 과연 떠날 수 있을까. 첫눈은 첫사랑처럼 순결하고 시의 모국어다. 그러한 첫눈을 어긋나게 사용하고 있다. 이제 시인 화가 가수들의 의식에서 싸구려 첫눈이 될지 모른다. 그러나 첫눈은 누구에게나 사랑의 그림이고 마음에 항상 내리면서 쌓이는 눈 나라 편지다. 그때 그 잿빛 하늘에 송도 해상케이블카가 움직인다. ‘부산 에어 크루즈’라는 새로운 이름을 달고 겨울 하늘길을 가고 있다. 송도해수욕장 동쪽 송림공원에서 여기 암남공원까지 1.62km 구간을 운행한다. 암남공원 갈맷길 케이블카는 이제 부산의 명물로 떠 올랐다. 그 안개 짙은 바다 위 허공을 지나서 먼 풍경으로 송도로 가는 하늘의 크리스탈 케빈은 나의 공상을 한껏 나래 치게 한다. 아래로 들머리인 암남 공원주차장이 차츰 멀어진다. 해안선을 따라가는 암남공원 갈맷길은 겨울의 가장 아름다운 선율이다. 겨울비는 내리다가 멈추고 멈추다가 다시 내린다. 오전에 듣는 파도 소리에 시나브로 마음이 젖는다. 갈맷길은 해양성 나무와 기암절벽 아래로 보이는 바다로 절경을 이루고 있다. 저 안개 사이로 떠 있는 크고 작은 배들은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서울에서 내리는 눈이 여기서는 비가 되어 추적추적 내린다. 첫눈이 첫사랑이 비가 되어 내 눈에 고인다. 해풍이 불면 바다는 건반을 치듯이 높았다가 낮았다가 리듬을 탄다. 그러나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전혀 낯설지 않다. 갈매기 울음과 파도 소리를 머금은 바람은 끓고 있는 밥물처럼 온몸을 데운다. 잠깐 햇빛이 나오기도 한다. 여우비다. 출렁다리를 지난다. 몸이 출렁거릴 때마다 내 작은 방울은 마음에서 딸랑거린다. 그 고즈넉한 절 마당에서 듣든 풍경소리에 공명하며 울리든 내 작은 방울 소리가. 간혹 목이 꽉 잠길 때마다 어둡고 깊게 울리든 내 작은 방울 소리가. 나는 지금 내가 가는 곳을 알 수가 없다. 저 작은 방울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나의 의식은 애면글면 풍경에 빨려들어 걷고 걸을 뿐이다. 겨울비가 내리는 해안의 나무숲은 시(詩)다. 그게 겨울의 음유시다.
*포구 나무 쉼터에서 후문까지
포구 나무(일명:팽나무) 쉼터가 나온다. 예부터 나무꾼이나 나물 캐는 처녀 해안가 초병들이 식수를 구하는 유일한 샘터도 있다. 그 옛날 어업으로 살아오든 마을 아낙네들이 고개 너머 이곳에 찾아와 먼바다로 고기잡이 간 남정네를 그리워하며 무사히 돌아오기를 빌며 흰색 붉은색 베를 나무에 두르고 샘물 한 바가지 정화수로 올리고 기도하던 곳이다. 포구 나무 의자에 앉아 우거진 숲과 바다를 본다. 여기 어느 곳엔가에서 그 옛날 비손하든 여인들의 모습을 한번 그려본다. 과거 현재 미래는 의식의 흐름이다. 자리에서 일어서는 데 겨울비가 더 굵어진다. 어쩔 수 없이 우산을 편다. 두도 전망대 이정표가 나온다. 비는 더 줄기차게 내린다. 저 주룩주룩 내리는 빗소리 사이 갈매기 울음을 듣는다. 여기는 새들의 땅이다. 인간은 언제부터 하늘을 나는 꿈을 꾸었을까. 두도 전망대에서 바다와 두도를 바라본다. 여기 모지포 원주민들은 두도를 대가리 섬이라 부른다. 어감이 투박하다. 두도는 개발의 발톱이 비켜 간 원시의 섬이다.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은 자연의 보고이다. 암남 반도 남동쪽 바위섬 두도는 ‘갈매기의 천국’이다. 갈매기와 여러 종의 바닷새들이 터전을 이루고 어울려 산다. 섬 주위로 해식애가 발달해 있다. 겨울비가 내리고, 바위섬에는 새들이 날아오르고 바다는 애틋한 그리움을 몇 섬씩 지고 파도친다. 차라리 이렇게 이 두도 전망대에서 영원히 서 있고 싶었다. 그 겨울비가 겨울 섬이 겨울 바다 공간에 악보를 찍어대는 갈매기 울음, 그건 교향곡이고 그리움이다. 그 내면의 완성으로 걸어가는 현실의 기쁨을 이야기할 때가 되었다. 언젠가 때가 되면 사랑의 노래를 연주하겠다고 약속한 그 바닷가 풍경이 손닿지 않는 그리움이란 것을 비로소 알았다. 이 길을 지나는 누군가가 저 비속으로 사라지듯이 서둘러 가버리는 시간의 틈으로 나도 당신도 사라지게 된다. 그것이 어찌 아픔이 아니고 그리움이 아니랴. 우리가 입술이 달도록 뱅뱅 굴리는 사랑도 오로지 관능의 마술이 아닐까. 아무리 극적인 사랑의 신화도 아픔이 없으면 의미가 없고 관객도 없다. 오늘 암남공원 갈맷길 트레킹의 시간만이라도 고스란히 아픔과 그리움에 푹 젖어 걸어보고 싶었다. 두도 전망대에서 돌아 나온다. 비는 질정 없이 내린다. 안개가 지나간 숲은 이미 동화의 나라다. 두 갈래 길이 나타난다. 풀이 더 무성하고 사람이 덜 다닌 길로 걷는다. 이 길을 걸어도 다른 길과 만나게 될 것이지만. 길은 헤어지고 만나고 한다. 우리가 헤어지고 만나고 하듯이. 남동쪽 바다 해변이 나타난다. 부산환경공단 중앙사업소와 국제수산물 도매시장이 보인다. 그 규모가 놀랍다. 더 저편으로 감천항이 보이고 아직은 해가 남았는지 구름 사이로 붉은 햇무리가 언뜻언뜻 보인다. 갑자기 빗줄기가 그쳤다. 그 흐느끼듯 내리든 겨울비 멈추지 않을 것 같았던 비가 졸지에 그치는 그 변화가 놀랍다. 내리는 겨울비의 낭만과 바닷새를 마음에 담아 걸은 그 길은 영감의 원천이어서 나의 작은 방울은 심하게 딸랑거렸다. 나의 평생 여행이 겨울비처럼 짧고 오늘 갈맷길의 몰입은 그보다 더 짧은 것 같다. 제 3전망대가 나온다. 날씨가 맑았다면 활기가 넘칠 건데 부산 바다 풍경은 썰렁하고 황량하다. 비 온 뒤 우중충한 도시는 회색의 풍경화를 그린다. 그런데 그때 느닷없이 구름이 걷히면서 햇살이 비친다. 사방이 밝아지며 형언할 수 없는 환희의 공간이 펼쳐진다. 이맘때쯤이면 습관성으로 나타나는 인간실존의 술래잡기 주인공이 된다. 영혼은 사후 세계는 있는지, 우주는 어떻게 탄생 되었고 과연 신의 솜씨인지. 영혼, 사후 세계, 신의 개념 역시 과학 실험과 증명으로는 밝힐 수가 없다. 이런 비물질적인 세계는 과학의 영역을 벗어나기에 실증은 무의미하다. 영혼은 비 물질인가 반물질인가. 이제 물질의 역학 구조를 이해하는데 신(神)이 더 이상필요 없게 되었지만 자기의 생명을 희생하는 사랑과 지치지 않고 삶의 의미를 찾는 수많은 사람에게 아직 신(神)은 절대자이다. 현재 물질에 대한 과학적 해석은 거의 다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털 없는 원숭이로 지구에 출현한 인류에게 우주는 여전히 두렵고 신비스러운 곳이다. 과학과 인문학의 발달로 이제 인간은 스스로 신(神)을 경험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신이 될 수는 없다. 겨울비 직후 저 도시와 바다의 공간이 신비이듯이 나와 우리가 찾아가는 정점은 현상 이면의 비 물질이 암시하는 의미를 보고 들을 수 있는‘나’라는 존재의 확인인 것이다. 겨울 암남공원 여행은 그렇게 꿈속의 꿈처럼 마쳤다. (끝)
(1) 제목 : 승학산 치유의 숲길 답사.
*승학산 3코스 치유의 숲길 답사
낙동강과 바다가 만나는 기수지역이 가까워지면서 강은 은빛 물결로 흐른다. 강폭도 넓어지고 하구는 유속이 느려 퇴적물로 섬이 생긴다. 그러다가 긴 세월이 지나면서 여럿 섬과 섬이 아름다운 풍경을 만든다. 사하는 칠백 리 낙동강이 종지부를 찍으며 바다와 합류하는 곳이다. 사하는 예부터 배가 드나드는 포구와 물류의 중심지였다. 강과 바다를 품에 안은 땅은 인간의 삶에 안식을 주는 가나안이다. 거기에는 생명의 탄생과 소멸 자연의 풍요로운 풍경과 전설 구수한 옛이야기가 있다. 오늘은 사하의 최 서쪽 승학산 3코스 치유의 숲길을 걷는다. 들머리는 제석골 산림공원이다. 어디를 가더라도 물과 나무는 언어고 문학이다. 물을 머금고 있는 푸른 나무 군락은 영혼의 보금자리다. 인간이 육지에서 살았던 처음의 장소도 나무 위였다. 나무는 인간을 키우고 진화시킨 모체다. 그래서 그러한지 어떠한 나무숲도 인간을 영적인 세계로 끌어간다. 느리게 걷다가 어느덧 삼나무 명상 치유의 숲길로 들어간다. 그 호젓한 길에 풍덩 빠져 자신을 잊어버린다. 벌써 나무 방향이 온몸을 자극한다. 그만큼 싱그럽고 유쾌하다. 키가 30m에서 40m까지 자라는 삼나무는 군락을 잘 이루고 나무껍질이 적갈색 또는 암적갈색으로 색감이 눈자위에 문신을 그린다. 숲의 의자에 앉아 명상에 잠긴다. 미끈미끈한 삼나무 군락에 숨이 편하고 감동의 물결이 인다. 숲 사이 햇빛이 내리면서 더욱 음이온이 방출되어 심신의 묵은 통증마저 가시는 것 같다. 삼나무는 추위를 싫어하는 늘 푸른 바늘 잎나무다. 일본이 본적이다. 일본 역사책 <일본서기>에 보면, “다케하야 스사노오노 미코토 라는 신(神)이 내 아들이 다스리는 나라에 나무가 없으면 곤란하다고 하여 자기 몸의 수염과 털을 뽑아 삼나무 편백 나무를 만들었다.” 한다. 그렇다고 보면 삼나무는 신화(神話)에 등장하는 고품격 나무다. 꽃도 큰 열매도 없는 삼나무지만 우람하고 당당하여 그늘을 만들고 새들이 살 수 있는 그야말로 더 없는 축복의 나무다. 천재 화가 고흐의 그림 ‘별이 빛나는 밤’에도 레바논의 국기에도 삼나무가 그려져 있다. 가야 할 시간이지만 쉽사리 엉덩이를 털지 못한다. 삼나무 향이 그윽하여 더욱 가라앉고 한없이 내려가면서 나를 돌아본다. 나 자신을 찾아 나답게 살고 싶어요.라는 외마디가 목젖에 걸린다. 시간은 흐르고 어쩔 수 없이 오솔길을 나선다. 쉬엄쉬엄 걸어가니 돌을 아주 잘게 부수어 깔고 바닥도 잘 다져진 폭이 큰 임도가 나온다.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걸어본다. SBS 스페셜‘걸음아 날 살려라.’가 얼핏 떠 오른다. 신발에 꽁꽁 갇혀있던 발이 해방된다. 발은 우리 몸의 모두를 담아있다. 맨발로 걸으면 발을 펴고 굽히고 비트는 등 갖가지 운동을 할 수 있다. 엄지발가락부터 다섯 발가락이 또 뒤꿈치부터 발바닥 근육이 다 골고루 퍼지면서 움직이므로 그 효과가 탁월하다. 맨발 걷기는 혈액순환 소화 기능 향상 두통 해소 당뇨 치매 예방 피로회복 항노화(anti – aging) 효과도 있다. 고 한다. 그야말로 만병통치라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인간은 언제부터 신발을 신기 시작했을까. 신발은 인간과 자연을 분리했다. 그러므로 신발을 신고부터 인간은 땅에 자연에 거슬리는 짓을 하게 되었다. 옛적에는 지배층만이 신발을 신었다. 고대 왕릉에서 왕이 신던 황금신발이 발굴된다. 신발은 인간의 부와 권력을 나타내는 잣대였다. 맨발이 되면 땅의 감촉을 느끼고 그것은 흙으로 돌아가는 인간의 회귀를 가르치는 방향타가 된다. 맨발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곧 맨발 건강 쉼터에 이른다. 의자에 앉아 맨발을 닦고 신발 신고 다시 산길을 걷는다.
*승학산 억새밭과 정상 경관.
잠깐만에 억새 군락지에 다다른다. 그런데 어쩐 일일까. 장장 29ha에 이르는 억세 밭이 말끔하게 깎여져 있다. 그 부산 제1의 억새밭 구경하러 왔는데 기대가 무너진다. 그러나 연전에 이곳을 찾아왔을 때의 기억이 회상된다. 그때는 가을이었고 누런 억새들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어 감동이고 장관이었다. 바람이 불면 억새가 흔들렸다. 바람이 더 세게 불면 억새는 누웠다 일어났다. 쏟아지는 햇빛에 억새가 눈부셨다. 그러나 그건 아련한 추억이지만 현실의 환상이 된다. 어느덧 억새 노을 전망대에 선다. 탁 트인 전망에 홀연 눈이 섬벅거린다. 바로 보이는 아름다운 감천만과 제석골에 자리 잡은 부산 일 과학고 좌로는 구덕산 시약산 우로는 승학산 정상이 방금 올라 온 제석골 아파트군이 파노라마 풍경을 만든다. 그 수려한 경치를 등에 업고 승학산 정상으로 향한다. 길목에“2017년 낙동 정맥 훼손지 복원사업을 실시한 지역입니다. 2017년 11. 부산광역시 사하구.”라는 안내를 본다. 승학 헬기장을 지나고 화엄사로 내려가는 이정표 지나 승학산 정상에 우뚝 선다. 돌비에 ‘학명우천성문사해(鶴鳴于天聲聞四海:학이 하늘에서 우니 온 세상에 다 퍼진다.)와 새천년 미래 웅비 사하 2000년 단 사하구청’도 있다. 다른 돌비에는‘승학산’(497m)과 배면에는 고려 말 무학대사가 이곳에 이르러 ‘산세가 준엄하고 기세가 높아 마치 학이 힘차게 날아오르는 형상’이라 하여 승학산(乘鶴山)이라 부르게 되었다. 는 내용이 있다. 정상은 그야말로 사방이 탁 틘 일망무제다. 서북 편으로 낙동강 줄기가 유유히 흐르고 철새들의 천국 을숙도가 큰 고래처럼 헤엄친다. 그 너머 김해 쪽의 들판과 신어산 줄기의 마루 금이 연무 속에 신비하다. 아래로는 명지 신도시와 낙동강 하구와 바다가 만나는 기수지역의 모래섬들이 황홀한 풍경을 만든다. 그 너머 부산 신항만과 가덕도 거제도가 한 폭의 수채화를 그린다. 얼마나 아름다운지 혀를 내두르게 한다. 가슴까지 탁 터지고, 사람 몸이 천 냥이면 눈이 구백 냥이라고 하더니만 눈에서 경이로운 불꽃이 일어난다. 한참을 그렇게 두리번거리며 구경한다. 보면 볼수록 입이 벙긋거려 다물지 못한다. 그러나 더 머뭇거릴 수 없어 걸어 온 길을 되돌아 승학 문화 마루 터까지 뚜벅뚜벅 걷는다.
*승학 문화 마루 터에서 싸리골 약수터까지
여기에는 화장실도 있고 예쁜 반달 모양의 나무 데크 공연장도 있다. 팔각 정자와 여러 갈래 길이 만나는 장소라 그런지 휴식하는 등산객이 꽤 많다. 여기서 재넘이 마루터 지나 구덕산으로 가는 길이 있으나 승학산 3코스 치유의 숲길로 발을 옮겨 너럭바위 전망대로 걷는다. 구덕산은 부산 서구를 싸고 있는 산중의 산이다. 부산의 등뼈인 금정 산맥 끄트머리에 자리하고 있다. 산기슭에 구덕사가 있고 구덕고개 밑으로 구덕 터널이 있다. 잘게 부순 자갈이 촘촘히 깔린 임도 길이다. 길가 나무에 꽃이 한창 피고 있다. 너럭바위 전망대에 도착한다. 잠시 쉬면서 호흡을 가다듬는다. 다시 걸어 재넘이 마루 터와 갈리는 낙조 전망쉼터에 닿는다. 여기서 보는 승학산과 억새밭 왼쪽으로 보이는 낙동강 하구와 바다 경치는 탄성을 지르게 하는 수채화다. 걸음을 옮긴다. 코숭이 자갈마당이 나온다. 이정목에 싸리골 약수터 1.66km라고 적혀 있다. “산행길이 잦아지면 병원 길이 멀어진다.” 문구도 보인다. 지금부터 싸리골 약수터까지는 내리막길이다. 길이 순탄하여 발걸음이 가뿐하다. 자연을 더 느낄 수 있고 공기가 맑은 소나무 우거진 옛길로 들어선다. 이름 모를 약수터가 나온다. 나무 의자에 앉아 걸어 온 길을 잠시 더듬어 본다. 길마다 안내표지가 있고 도로가 깔끔하고 시설이 더할 나위 없이 잘 정비되어 있다. 걸을수록 기분이 좋아지는 길이고 수려한 경치에 정신이 황홀해지는 길이다. 여기도 몇 그루 동백나무가 만개해있다. 그 붉은 선혈 같은 꽃은 나무 위에서 피고 통째로 떨어져 땅에서 다시 피고 보는 이의 마음에 숨어들어 한 번 더 피어 한 송이 꽃이 세 번 핀다는 동백꽃. 그 붉음과 처절한 아름다움이 가슴을 후벼내는 동백꽃을 멍하니 본다. 조금 후 자리에서 일어나 얼마간 더 내려오자 싸리골 약수터다. 싸리골 약수터는 사하구에서 먹는 물 공동시설로 지정하여 관리한다. 지정번호 사하-제2호다. “자연이 살아야 우리가 산다.” 글귀도 보인다. 마을에서 온 여러분이 운동도 하고 물도 받고 있다. 조금 더 내려오니“산림 내 들개의 무리가 출몰하니 등산객께서는 주의를 바라며 이를 목격하신 분은 119상황실로 신고 부탁드립니다.” 안내도 읽어 본다. 이제 승학산 3코스 치유의 숲길 걷기를 옴나위없이 마치게 된다. 이 코스를 걸으면서 시종 아름다운 자연에 감탄하고 착각에서 벗어난 다른 나를 만날 수 있었다. 새로운 환경과 경험이 나를 변화시킨 것이다. 현대병을 앓는 우리는 이런 숲길을 걸으면서 스스로 치유의 문을 열어야 한다. 자신의 가장 깊은 내면까지 걸어 내려가 내 유전자를 찾고 영혼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끝)
(2) 제목 : 몰운대 다대포 해안공원 아미산 전망대 답사기.
*몰운대와 다대포 해안공원 답사.
다대포 겨울 바다는 장엄한 서사시다. 눈이 시린 수채화다. 실핏줄 같은 개여울이 합쳐 작은 강을 만들고 거기에 애환과 역사를 담아 큰 강이 되면서 1,300리를 유장히 흘러온 낙동강 물이 바다와 만나는 기수지역 하구가 있고 큰 강이 입 안 가득 물고 온 퇴적물을 시나브로 뱉어내며 그지없이 아름다운 모래섬을 만들고 텃새와 철새들이 보금자리를 틀어 새들이 천국을 건설한 이곳 다대포 해안은 푸르고 푸른 감동이다.
몰운대 걷기는 다대포 공영주차장이 들머리다. 처음 화손 대 방향으로 간다. 초입부터 늠름한 곰솔에 기분이 한껏 고조된다. 손질 잘한 길과 오솔길 중 오솔길로 걷는다. 음수대가 나오니 입이 바싹 칼칼하다. 무슨 이유일까. 틀어 본다. 수도꼭지가 부드럽다. 한 모금 마신다. 물맛이 입에 감친다. 흘끗 보니 수질검사서가 붙어 있다. 화장실도 있다. 반듯하고 깔끔하다. 빈틈없는 시설이다. 간이 운동장에서 사람들이 배드민턴을 친다. 한가하고 여유로운 광경이다. 고개티를 넘어 화손 대에 도착한다. 다대포 바다는 한 번 더 변신하여 절경을 선보인다. 파도에 깎여 나간 해식애와 해식동 그 수려함에 감탄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 틈을 비집고 서 있는 작은 섬 팔봉섬 솔섬 고래섬이 겨울 바다 위에 무연이 떠 있다. 눈썹 위에 떠도는 아름다운 섬이다. 흩어져 낚시하는 태공들이 보인다. 화손대는 감성돔이 많이 잡히는 유명한 낚시터다. 앞바다는 푸른 호수처럼 잔잔하고 게으른 햇빛이 되비치는 윤슬이 보석같이 곱다. 일출의 배경이 되는 모자 섬과 하얀 등대가 시선을 빼앗는다. 바다 건너 구평동과 두송 반도가 풍경에 더욱 덧칠한다. 그 뒤로 암남공원 더 멀리 영도 태종대가 아슴아슴하다. 먼바다부터 연안까지 간간이 배가 떠 있는 광경은 한 폭 그림이다. 다대포와 몰운대는 조선 시대 국방의 요충지였다. 임진왜란 초기 1592년(선조25년) 음력 9월 1일 벌어진 부산포 해전(눈에 보이는 앞바다)에서 이순신 장군이 가장 아끼던 녹도 만호 정운 장군 등 6명이 전사한다. 정운 장군은 해전이 일어나기 전 몰운대란 지명을 듣고 정운의 운이 다하는 몰운대라고 하면서 자기의 전사를 예고했다고 한다. 정운 장군이 전사한 음력 9월 1일을 부산시민의 날로 정하여 부산시에서 추모행사를 하고 있다. 오백 년 전 임진년 싸움에서 전사한 조선 수군 장수의 나라 사랑 정신과 용기를 기리고 이어가는 부산시민의 기백에 저절로 마음이 숙연해진다. 잘 다독인 길은 편하고 해방감을 준다. 빨간 씨앗을 모자이크한 돈 나무도 있다. 겨울에 보는 빨간 열매로 눈이 따스하게 충혈된다.
사백 년 전 몰운대는 몰운도라는 섬이었다. 낙동강 물의 토사 퇴적으로 다대포와 연결 육지가 되었다. 안개가 구름처럼 자주 끼어 보이지 않는 섬이라고 몰운대라 칭명했다. 잘 자란 해송이 이어지는 길은 알지 못할 기쁨을 준다. 침운대로 향한다. 자갈이 많은 해안 위에 전망대가 있고 포토존도 있다. 시간은 속절없이 지나가고 해조음 따라 솔 향기 그윽한 길을 걷는다. 늘 푸른 아름다운 숲이 울창한 둘레 길은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빨간 띠를 허리에 두른 작고 예쁜 등대도 보인다. 해안절벽 남쪽 해안경비 초소를 개방한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대마도 방향의 탁 트인 바다는 오래 묵은 체증까지 술술 내리게 한다. 앞바다는 빼어난 경관이다. 자연이 빚은 조각배 같은 섬, 동섬과 등대섬이 보인다. 다대포 객사 방향으로 나간다. 옛날 여행객이 묵어간다는 다대포 객사(부산 시 문화재 기념물 제3호)를 관람하고 몰운대 시비를 구경한다. 우거진 청정숲길을 터벅터벅 걸어 다시 주차장으로 나간다. 낙동강 하구의 최남단 해발 78m 몰운대는 그야말로 비경이고 몸속으로 녹아드는 숨어있는 명승지이다. 우리나라에 고구마를 처음 가져온 일본 통신사 조엄은 해사일기에서 “아리따운 여자가 꽃 속에서 치장한 것 같다.” 하며 몰운대의 경치를 극찬했다.
날머리로 나와 해안 산책로를 걷는다. 제123 전망대를 거치는 해식애가 아름다운 해안 데크 로드를 걷는다. 그 망 없이 바라보는 바다와 섬 해안의 경치는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이다. 이제는 다대포 해수욕장 공원으로 간다. 다대포 바다 광활한 해안에 부산 사하구는 생태탐방로를 준공했다. 2008년부터 8년 동안 즉 2015년까지 307억 8900만원을 옴니암니 들여 연안 정비사업을 마무리했다. 다대포 해수욕장 자연습지를 가로지르는“생태탐방로”가 새롭게 탄생했다. 이제 다대포 해안은 사진작가들의 단골 출사지가 되었다. 낙동강과 바다가 만나는 기수역의 풍부한 특산물인 재첩, 엽낭게, 조개, 해수 식물을 체험할 수 있는 학습장도 꾸며져 있다. 어떻게 그렇게 수려한 해변이 있는지 바닷물을 머금은 백사장 길을 걸으며 발자국마다 추억을 심는다. 돈은 거인이다. 도깨비 금방망이다. 그 불모의 습지에 개발비가 뚝딱 들어가니까. 힐링 휴양지가 되고 체험장이 된다. 다목적 광장, 중앙 잔디광장, 꿈의 낙조 분수도 살핀다. 이때쯤 나는 아예 보드랍고 맑은 모래밭인 해수욕장으로 걸어 나가 밀려오는 파도를 가슴에 상감하며, 아미산 전망대로 향한다. 오금 저리는 모래밭을 하염없이 멍하게 걸어서 간다. 시간이 멈추는 생의 한때 그 넘실거리는 파도를 머리에 이고 간다. 바닷바람이 머리칼을 흔들고 따뜻한 햇볕이 감정을 적시며 리듬을 만든다. 파도는 끝없이 밀려오고 밀려간다. 대체 어쩌자는 것인가. 최초의 생명을 탄생시킨 바다 지구를 정화해 생명이 사는 환경으로 만드는 신(神)의 바다. 파도는 으르릉거리며 밀려오고 가고, 그 무한한 반복에 기가 질린다. 아무려나 해조음 들으며 저벅저벅 걸어간다. 백사장에 발자국이 찍히다가 이내 파도에 씻겨 사라진다. 인간도 저 발자국처럼 순식간에 사라지는 허망한 존재가 아닐까. 백사장은 길이 900m 폭 100m이며 간물때는 해안에서 300m 거리의 바다까지 수심 1.5m여서 가족 단위 피서지로 알려지고 유명하다. 또 부산서 유일하게 해돋이와 해넘이를 볼 수 있는 다대포 해변. 그렇게 걷다가 도로에 도착 아미산 입구에 들어선다.
*아미산 전망대 답사.
생태탐방로에서 이어지는 아미산 노을 마루 길은 나무 데크 계단을 올라가는 길이다. 군데군데 포토존이 있다. 겨울임에도 이마에 땀이 후줄근하다. 아미산 전망대에 도착한다. 어렴풋한 을숙도에서 가덕도 거제도 사이 광활한 갯벌, 강물과 모래섬, 푸른 바다와 구름을 빗질하는 아득한 하늘은 자연이 빚은 축복의 풍경이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면서 탄생한 금빛 모래섬이 눈부신 생명의 터전을 이룬다. 풍요와 상상으로 터질 것 같은 모래섬은 살아서 움직인다. 연신 탄성을 지른다. 바닷물의 영향으로 해안선과 거의 평행으로 형성된 좁고 긴 퇴적 연안사주인 도요 등-신자도-진우도 등은 일렬로 늘어서 마치 울타리를 쳐놓은 것 같다 하여 울타리 섬이라고 부른다. 게다가 삼각주로 대표되는 도요등 백합등 맹금머리등은 길쭉한 금고리 생김으로 선이 부드럽고 우아하여 더욱 아름답다. 이곳은 아름다움이 모성 회귀하는 경치다. 그토록 찾아다니던 꿈의 여행지가 바로 여기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
낙동강 하구언 일대는 동양 최대의 철새 도래지이다. 이곳은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개어귀 지역으로 수생식물이 서식하고 물고기 조개 곤충이 풍부하고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울 수 있는 모래밭 갈대밭이 있어 새들이 살기에 천혜의 장소다. 을숙도에서 사자도 십리 등으로 광활하게 펼쳐진 하구는 천년 기념 물 제179호로 지정되어 있다. 참새 때까치 노란턱뫼새 붉은머리오목눈이 등은 텃새이고 백조 큰고니 흑부리오리 흰죽지쇠기러기 등은 겨울 철새이고 황새 왜가리 뜸부기 쇠제비 갈매기 흰물 떼 새 등은 여름 철새이다. 우리나라를 지나가면서 봄가을 잠깐씩 머무는 나그네새도 있다. 마도요 좀도요 노랑발도요 등 도요새무리와 왕눈물떼새 검은머리물떼새 등이다. 그 곱고 예쁜 모래섬 같은 새의 이름을 공 굴려서 불러본다. 그때마다 입술에서 쉬리쉬리 소리를 내며 날아오르는 새 떼 이건 영락없는 판타지다. 그러나 자연의 맑은 공간을 비집고 장림공단과 아파트군이 시선을 빼앗기도 한다. 인간은 자기를 낳아 주고 길러준 자연을 끝내 무너뜨리고 말 것인가.
스키 슬로프처럼 길게 텍(tech)으로 연결된 아미산 전망대는 가장 뛰어난 뷰 포인트(view point)다. 이곳에 서면 눈이 횅해지고 탄성을 지르게 된다. 낙동강 유역에서 신석기 문화의 엄지인 유적 빗살무늬토기가 대량 발굴되었다. 그 빗살무늬토기의 빗살처럼 햇빛이 내리고 전적으로 자연에 기대어 살아가던 원시인들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어쩐지 이곳은 쉽게 떠날 수 없는 마력이 있는 것 같다. 커피숍에서 차를 시켜 전망대 의자에 앉는다. 시간은 흐르고 해는 점차 서쪽으로 기운다. 해가 넘어갈수록 가덕도 방향으로 넘어가는 그 찬란한 일몰이 점점 비경을 만든다. 해가 섬들의 마루 금에 걸릴 즈음 그 붉게 불타는 노을의 황홀한 장관은 으악 비명을 지르게 한다. 바다와 썰물에 드러난 하구의 모래섬에 반사되는 까치놀은 한편의 동양화고 멜로드라마(melodrama)다. 아직도 그 몽롱한 경관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영업 종료 차임 벨이 울린다. 일몰과 함께 붉은 꽃불로 저무는 노을의 이내가 돌아가는 나의 발등을 흥건하게 적신다. (끝)
(3) 제목 : 부산 암남공원 갈맷길 답사기.
겨울이었고 해안과 바다는 안개가 자욱하다. 사이사이 겨울비가 내리기도 했다. 일기예보에 전국에 비나 눈이 온다고 하더니만. 과연 그러했다. 이제는 어느 정도 맞아떨어지는 기상예보가 되었다. 해안은 회색 물안개가 피어올라 그대로 겨울 추상화를 그린다. 황량하게 번지는 안개는 추위와 습도 때문에 더 을씨년스럽다. 저 도시의 스모그 같은 안개 위로 우중충한 하늘이 보이고 그 너머 아득한 곳에 있는 서울에는 폭설이 내렸다. 첫눈으로는 삼십 수년 만에 가장 많이 내렸다 한다. 요즘 하루에도 수없이 입에 오르내리는 북악산에도 첫눈이 내렸을 것이다. 첫눈이 내리면 그 첫눈에 발자국을 찍으며 떠나겠다는 사람이 있었다. 이름 모를 그가 과연 떠날 수 있을까. 첫눈은 첫사랑처럼 순결하고 시의 모국어다. 그럼에도 첫눈을 어긋나게 사용하고 있다. 이제 시인 화가 가수들의 의식에서 할인 도매금 첫눈이 될지 모른다. 그러나 첫눈은 누구에게나 사랑의 그림이고 마음에 항상 내리면서 쌓이는 눈 나라 편지다. 그때 그 잿빛 하늘에 송도 해상케이블카가 움직인다. ‘부산 에어 크루즈’라는 새로운 이름을 달고 겨울 하늘길을 가고 있다. 송도해수욕장 동쪽 송림공원에서 여기 암남공원까지 1.62km 구간을 운행한다. 암남공원 갈맷길 케이블카는 이제 부산의 명물로 떠 올랐다. 그 안개 짙은 바다 위 허공을 지나서 먼 풍경으로 아련한 송도로 가는 하늘의 크리스탈 케빈은 나의 공상을 한껏 나래 치게 한다. 아래로 들머리인 암남 공원주차장이 차츰 멀어진다. 해안선을 따라가는 암남공원 갈맷길은 겨울의 가장 아름다운 율동이다. 겨울비는 내리다가 멈추고 멈추다가 다시 내린다. 오전에 듣는 파도 소리에 시나브로 마음이 젖는다. 갈맷길은 해양성 나무와 기암절벽 아래로 보이는 바다로 절경을 이루고 있다. 저 안개 사이로 떠 있는 크고 작은 배들은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서울에서 내리는 눈이 여기서는 비가 되어 추적추적 내린다. 첫눈이 첫사랑이 비가 되어 내 눈에 고인다. 해풍이 불면 바다는 건반을 치듯이 높았다가 낮았다가 리듬을 탄다. 그러나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전혀 낯설지 않다. 갈매기 울음과 파도 소리를 머금은 바람은 끓고 있는 밥물처럼 온몸을 데운다. 잠깐 햇빛이 나오기도 한다. 여우비다. 출렁다리를 지난다. 몸이 출렁거릴 때마다 내 작은 방울은 마음에서 딸랑거린다. 그 고즈넉한 절 마당에서 듣든 풍경소리에 공명하며 울리든 내 작은 방울 소리가. 간혹 목이 꽉 잠길 때마다 어둡고 깊게 울리든 내 작은 방울 소리가. 나는 지금 내가 가는 곳을 알 수가 없다. 저 작은 방울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나의 의식은 애면글면 풍경에 빨려들어 걷고 걸을 뿐이다. 겨울비가 내리는 해안의 나무숲은 시(詩)다. 그게 겨울의 음유시인이다.
*포구 나무 쉼터에서 후문까지
포구 나무(일명:팽나무) 쉼터가 나온다. 예부터 나무꾼이나 나물 캐는 처녀 해안가 초병들이 식수를 구하는 유일한 샘터도 있다. 그 옛날 어업을 터전으로 살아오든 마을 아낙네들이 고개 너머 이곳에 찾아와서 먼바다로 고기잡이 간 남정네를 그리워하며 무사히 돌아오기를 빌며 흰색 붉은색 베를 나무에 두르고 샘물 한 바가지 정화수로 올리고 기도하던 곳이다. 포구 나무 의자에 앉아 우거진 숲과 바다를 본다. 여기 어느 곳엔가에서 그 옛날 비손하든 여인들의 모습을 한번 그려본다. 자리를 털고 일어서는 데 겨울비가 더 굵어진다. 어쩔 수 없이 우산을 편다. 두도 전망대 이정표가 나온다. 비는 더 줄기차게 내린다. 저 주룩주룩 내리는 빗소리 사이 갈매기 울음을 듣는다. 여기는 새들의 땅이다. 인간은 언제부터 하늘을 나는 꿈을 꾸었을까. 두도 전망대에서 바다와 두도를 바라본다. 여기 모지포 원주민들은 두도를 대가리 섬이라 부른다. 어감이 투박하다. 두도는 개발의 발톱이 비켜 간 원시의 섬이다.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은 자연의 보고이다. 암남 반도 남동쪽 바위섬 두도는‘갈매기의 천국’이다. 갈매기와 여러 종의 바닷새들이 터전을 이루고 어울려 산다. 섬 주위로 해식애가 발달해 있다. 겨울비가 내리고, 바위섬에는 새들이 날아오르고 바다는 애틋한 그리움을 몇 섬씩 지고 파도친다. 차라리 이렇게 이 두도 전망대에서 영원히 서 있고 싶었다. 그 겨울비가 겨울 섬이 겨울 바다 공간에 악보를 찍는 갈매기 울음, 그건 교향곡이고 그리움이다. 그 내면의 완성으로 걸어가는 현실의 기쁨을 지금 이야기할 때가 되었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고 언젠가 때가 되면 사랑의 노래를 연주하겠다고 약속한 그 바닷가 풍경이 손닿지 않는 그리움이란 것을 비로소 알았다. 이 길을 지나는 누군가가 저 비속으로 사라지듯이 서둘러 가버리는 시간의 틈으로 나도 당신도 사라지게 된다. 그것이 어찌 아픔이 아니고 그리움이 아니랴. 우리가 입술이 달도록 뱅뱅 굴리든 사랑도 오로지 관능만의 마술이 아닐까. 아무리 극적인 사랑의 신화도 아픔이 없으면 의미가 없고 관객도 없다. 오늘 암남공원 갈맷길 트레킹의 시간만이라도 고스란히 아픔과 그리움에 푹 젖어 걸어보고 싶었다. 두도 전망대에서 돌아 나온다. 비는 질정 없이 내린다. 안개가 지나간 숲은 이미 동화의 나라다. 두 갈래 길이 나타난다. 풀이 더 무성하고 사람이 덜 다닌 길로 걷는다. 이 길을 걸어도 다른 길과 만나게 될 것이지만. 길은 헤어지고 만나고 한다. 우리가 헤어지고 만나고 하듯이. 남동쪽 바다 해변이 나타난다. 부산환경공단 중앙사업소와 국제수산물 도매시장이 보인다. 그 규모가 놀랍다. 더 저편으로 감천항이 보이고 아직은 해가 남았는지 구름 사이로 붉은 햇무리가 언뜻언뜻 보인다. 갑자기 빗줄기가 그쳤다. 그 흐느끼듯 내리든 겨울비 멈추지 않을 것 같았던 비가 졸지에 그치는 것을 보니 그 변화가 놀랍다. 내리는 겨울비의 낭만과 바닷새를 마음에 담아 귀가하려 하였는데 너의 음악은 너무 짧아 나의 작은 방울에 악보를 미처 적을 수 없다. 나의 평생 여행이 겨울비처럼 짧고 오늘 갈맷길 답사는 그보다 더 짧은 것 같다. 제 3전망대가 나온다. 날씨가 맑았다면 활기가 넘칠 건데 부산 바다 풍경은 썰렁하고 황량하다. 비 온 뒤 우중충한 도시는 회색의 풍경화를 그린다. 그런데 그때 느닷없이 구름이 걷히면서 햇살이 비친다. 사방이 밝아지며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의 공간이 펼쳐진다. 이맘때쯤이면 습관성으로 나타나는 인간실존의 술래잡기 주인공이 된다. 영혼은 사후 세계는 있는지, 우주는 어떻게 탄생 되었고 과연 신의 솜씨인지. 영혼, 사후 세계, 신의 개념 역시 과학 실험과 증명으로는 밝힐 수가 없다. 이런 비물질적인 세계는 과학의 영역을 벗어나기에 실증은 무의미하다. 영혼은 비 물질인가 반물질인가. 이제 물질의 역학 구조를 이해하는데 신(神)이 더 이상필요 없게 되었지만 자기의 생명을 희생하는 사랑과 지치지 않고 삶의 의미를 찾는 수많은 사람에게 아직 신(神)은 절대자이다. 현재 물질에 대한 과학적 해석은 거의 다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털 없는 원숭이로 지구에 출현한 인류에게 우주는 여전히 두렵고 신비스러운 곳이다. 과학과 인문학의 발달로 이제 인간은 스스로 신(神)을 경험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신이 될 수는 없다. 겨울비 직후 저 도시와 바다의 공간이 신비이듯이 나의 우리가 찾아가는 정점은 비 물질 방울 소리를 들을 수 있는‘나’라는 존재의 확인인 것이다. 겨울 암남공원 여행은 그렇게 꿈속의 꿈처럼 마쳤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