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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행복한 삶을 누리는 당신

작성자풀그림자|작성시간16.07.20|조회수50 목록 댓글 0


행복한 삶을 누리는 당신


이문복

 

관람(참배?)을 마친 일행들이 철조망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탈출을 막기 위해 고압전류가 흘렀었다는 아우슈비츠의 철조망. 나는 그 너머로 펼쳐진 하늘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대량학살의 현장 아우슈비츠(폴란드 명 오슈비엥침)의 하늘과 구름은 무심히도 맑고 평화로웠다. 그러나 여기 갇혀 죽음보다 비참한 삶을 이어가야 했던 사람들에게는 저 맑음과 평화로움이 오히려 야속하고 암담하였으리라.

내 맘대로 다닐 수 있는 자유여행이었다면 이곳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 ‘대량학살은 아우슈비츠 이전에도 이후에도 있었고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거늘. 내 나라에서 벌어지는 참사에 속수무책인 채 관광객으로 남의 땅 찾아와, 이미 박제가 된 과거의 현장에서 한숨지으며 울분과 비탄이라니? 자책과 냉소를 방패삼아, 내 마음은 한사코 아우슈비츠로부터 눈을 감거나 도망치려 하고 있었다.

일행들도 함께 우울하여, 아우슈비츠를 떠나 프라하로 향하는 버스 안은 침묵으로 가라앉아 무거웠다. 차창 밖에 흐르는, 동화 속 마을처럼 아름다운 폴란드의 시골 풍경조차 아프고 덧없어 차라리 눈을 감아버렸다. 어둠 속에서 나를 바라보는 퀭한 시선이 있다. 여남은 살이나 되었을까? 어린 소년이 더 어린 동생 둘의 손을 양손에 꼬옥 잡고 있다. 너무 가슴 아파서 차마 찍어오지 못한 제1수용소의 사진 속 소년이다. 살았을까? 그 소년은 살아남았을까? 살아남았다 해도 온전한 삶을 누리진 못했으리라. ‘잘 자거라, 아가야. 하늘나라에서 부디 편안하여라.’ 꾹꾹 눌러 삼켰던 눈물이 솟구치면서 문득 기시감을 느낀다. 씨랜드 수련원 참사, 세월호의 비극, 구의역 사고어린 생명들의 희생 앞에, 그 때나 지금이나 비슷한 기도를 되풀이 하면서 나는 믿지도 않는 하나님과 하늘나라를 간절히 원하고 있는 것이다.

핸드폰을 열어 아우슈비츠에서 찍은 희생자들의 유품사진을 들여다본다. 엄청나게 쌓인 신발, 안경, 머리빗, 이름과 주소가 새겨진 소지품 가방, 심지어 장애인들의 목발까지 있다. 훨씬 전 책에서 보았고 인터넷에도 무수히 떠돌고 있는 사진들을 굳이 찍어온 마음. 결국 외면하지도 도망치지도 못한 내 마음을 들여다본다. 그 옆에는 내 나라에서 담아온 슬픈 사진이 있다. 작업 공구와 함께 있는 컵라면과 나무젓가락 쇠 숟갈이 가슴을 저미는, 구의역에서 스크린 도어를 고치다 참변을 당한 (세월호의 아이들과 나이가 같은) 19세 소년 노동자의 작업 가방에 들어있던 유품 사진이다. 타인인 내가, 잊지 않으려는 다짐과 애도의 마음으로 핸드폰에 담은 사진을 소년의 부모는 가슴에 담아, 지우려 해도 평생 지우지 못할 것이다. ‘엄마, 직장생활은 원래 다 힘든 거지? 3개월 지나면 더 괜찮아지고, 1년 지나면 더 괜찮아지는 거지?’ 소년이 생전에 했던 이 말과 함께.

 

맥락 없이 치닫는 상념에 불쑥 끼어들어 찬물을 끼얹는 낮은 목소리가 있다. ‘그래서? 그래서, 어쩌겠다는 말인가? 너는 무엇을 원하는가, 왜 여기 있는가, 무엇을 했는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머쓱해진 내 상념은 허둥지둥 숨을 곳을 찾다가 두서없이 떠오르는 시 한 자락에 걸려 넘어진다

 

오늘도 저녁이면 따뜻한 집으로 돌아와/다정한 가족들과 맛있는 음식을 나누며/언제나 즐겁고 행복한 삶을 누리는 당신//하지만 바로 그 순간에도/행복이라는 말조차 모른 채 진흙탕 속을 뒹굴며/오직 빵 한 조각을 위해 싸우다가

-프리모 레비¹의 시 이것이 인간인가부분

 

그 다음 구절은잘 기억나지 않는다. 비겁한 내 기억이 너무 고통스러운 구절은 건너뛰는가보다. 그러나 띄엄띄엄 떠오르는 몇 구절만으로도 새삼 부끄럽고 아프다.

 

생각해보라, 이것이 과연 인간인지//… …//당신 스스로 깊이 깨닫는 사람이 되기를/… …/따뜻한 집에 있을 때든/ 혼자 길을 걸을 때든/잠자고 있을 때든, 깨어있을 때든

 

 

프라하에 거의 도착했다는 안내 방송이 들린다. 침울하게 가라앉았던 일행들은 다시 활기를 찾아 사뭇 들뜬 분위기이다. 그들은 오늘 밤 유람선을 타고 프라하의 야경을 즐길 것이다. 그 속에 나도 끼어 있을 터이다. 그러나 눈감아도 보이고 모르는 척 방관해도 뒤따라오는 무언가가 내 안에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덧없이 죽어간 자들의 노래²이든 살아남은 자의 아픔³이든 뼈아프게 끌어안고 돌아가리라.

 

 

 

 

¹1919년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출생. 파시즘에 저항하는 레지스탕스 운동과 빨치산 활동을 하다가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로 끌려감. 아우슈비츠에서의 처절한 경험과 사유를 바탕으로 이것이 인간인가』『휴전』『주기율표』『익사한 자와 구조된 자등 회고록 출간. 아우슈비츠 경험과 동유럽 유태인 빨치산 투쟁을 그린 자전적 장편소설지금이 아니면 언제?캄피엘로상비아레조문학상수상. 시집 살아남은 자의 아픔은 이탈리아 최고의 시인에게 주는존 플로리오상수상. 격렬한 고발 대신나치라는 현상의 본질을 추적한 증언자로 높이 평가받았으나 1987년에 투신자살함.

 

²˜³프리모 레비의 시집 살아남 은 자의 아픔에 수록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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