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국(護國)과 초혼장(招魂葬) ]
- '호국(護國)'은 조선 후기 전쟁에서 전사한 인물을 ‘국가를 지킨 사람’으로 추모·봉안하는 풍습을 뜻하며,
'초혼장(招魂葬)'은 시신이 확인되지 않거나 영혼이 떠돌아 자리를 잡지 못한 경우 조상 영혼을 불러 장례를 치르는 의식을 말합니다.
독일의 바이에른 지방에서는 봄이 되어 에리카꽃이 피면, 세상을 제대로 살지 못하고 죽은 영아들이나 결혼하지 못하고 죽은 이들의 무덤에, 마을 처녀들이 꽃잎을 뿌리며 춤과 노래로 영혼을 달래는 풍습이 있었다.
그때 부르는 노래가 바로 『리타나이』이라는 민요다. 이 노래는 세월이 흐르면서 죽은이들을 위로하는 기도로 발전하여 교회에서 위령곡으로 불리게 되었다.
슈베르트는 이 『리타나이』를 죽은이 뿐 아니라 남아 있는 모든 사람에게 위로를 주는 것으로 발전시키고 싶었다. 그 결과 「요한 야코비」의 시집에 수록된 『모든 영혼의 안식을 위한 안도문』1, 3, 6연을 가사로 한 가곡 「리타나이」가 탄생한 것이다.
독일뿐 아니라 영혼을 불러 장사를 지내는 초혼장의 풍습은 여러 문화권에 있었는데,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 선조들은 외적의 침입으로 전장에 나가게 되면 그 전날 밤에, 등을 바늘로 쪼아 「충(忠)」이나 「용(勇)」 등의 글씨를 자자(刺字)하는 풍습이 있었다.
그리고 아내는 바늘로 쪼을 때 솟아나는 피를 저고리에 묻혀 고이 간직했다. 전쟁이 끝나도 남편이 돌아오지 못하면, 그 피묻은 저고리로 허공을 헤매고 있을 넋을 초혼하여 무덤을 만드는 초혼장을 지냈다.
비록 머나 먼 전장에서 죽을지라도 영혼은 가족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초혼장 때문에, 옛 병사들은 용감히 싸울 수 있었던 것이니 참으로 호국을 위한 거룩한 풍습이었다.
고려말 김주(金澍)는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다 귀국하던 도중, 압록강변에서 고려가 망하고 이씨 조선이 개국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는 하인에게 조복과 신을 벗어 주면서 부인이 죽으면 합장하라 이르고, 타국에서 은거생활로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 의리를 지켰다. 유물이 없으면 고인이 쓴 시나 글씨, 손때 묻은 책을 묻기도 했고, 사육신인 성삼문처럼 신주(神主)를 오지그릇에 담아 묻기도 했다.
경남 하동군 옥종면 삼장마을에는 치마무덤이 있다. 연산군의 스승인 청백리 조지서(趙之瑞)가 연산군의 횡포를 말리고 지탄하자, 이에 화가 난 폭군이 육시(六屍)를 내어 한강에 던져 버리도록 했다. 부인 정씨가 한강에 흘러내리는 피를 치마에 적셔, 그 치마로 한많은 남편의 넋을 초혼하여 장례를 치루어 생긴 무덤이다.
이유길은 임진왜란 때 왜구에게 살해 된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자,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이순신 장군을 따라 명량해전에 출전하여 왜적을 죽여 분을 풀었고 그 후 1618년(광해군 10) 도원수 강홍립, 좌영장와 더불어 우영장으로 건주위 정벌에 출전하여 끝까지 싸우다 전사하였다.
그 소식을 전해 들은 가족들이 고향인 파주에 초혼장으로 장례를 치렀다. 강창국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들인 강대한과 함께 조헌)의 의병들이 진을 구축하고 있는 금산으로 가서 용감히 싸웠으나 중과부적으로 마침내 칠백의사와 함께 순절하였다. 처 민씨가 노복을 시켜서 남편의 시신을 찾아오도록 하였으나 찾지 못하고 초혼장을 치렀다.
입었던 옷이나 갓, 신발로 무덤을 만드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임진왜란 때 전사한 이대원(李大源)은 유물이 없어, 그가 써서 남긴 친필의 시로 초혼하여 시총(詩塚)을 만들었다. 병자호란 때 많은 한국인이 납치되어 심양의 노예 시장에서 매매되었다.
돈이 있는 사람은 그곳까지 가서 속환(贖還)으로 돌아왔지만, 돈이 없는 사람은 웃옷을 벗어주며 고향 집에 가져다주어 넋이라도 묻게 해 달라고 애원했다는 사연들은 접할 때마다 눈물겹기만 하다.
인편 외에는 교통과 통신이 거의 불가능했던 그 옛날, 이역만리에서 입었던 옷이라도 보내와 영혼이라도 혈육 가까이 있게 했던 우리 민족이다. 잔혹한 일제의 침략에서 해방되면서 생긴 남북분단과 한국전쟁이라는 참혹한 역사는, 생사조차 모르는 수많은 이산가족을 만들어 내고 말았다.
그로 인해 한 민족이 같은 땅에서 생사조차 알지 못해, 초혼장마저 지내지 못한 채 얼마나 많은 영혼들이 분단의 아픔 속에서 방황하고 있음인가?
호국보훈의 달 6월을 맞아 우리 가곡 「비목」을 들으며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들을 추모하고, 지인들에게 수베르트의 가곡 「리타나이」를 전하면서 분단과 이산의 아픔을 달래 본다. <출처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