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3번째 편지 - 여러분은 2026년 여름을 어떻게 설계하시렵니까?
오늘은 1년 52주 가운데 스물다섯 번째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입니다.
특별한 날이냐고요? 저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부터 여름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6월 15일부터 9월 20일까지, 모두 14주. 관상대 기준으로 98일 동안 우리는 여름 속을 살아가게 됩니다.
여러분에게 여름은 어떤 의미를 가진 계절인가요?
예전의 저는 여름을 그저 더운 계절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땀을 조금 흘리고, 찬물을 자주 마시고, 며칠 잠을 설쳐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끝나는 계절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이런 말을 자주 듣습니다.
“올해 여름이 앞으로 가장 시원한 여름일지도 모른다.”
기상 이변으로 여름은 해마다 더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더위는 이제 잠시 참고 지나가는 불편이 아니라, 우리의 몸과 일상, 도시의 안전까지 바꾸는 조건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지난해 서울의 여름도 그랬습니다. 6월 중순부터 이미 더위가 시작되었고, 7월에는 기록적인 열대야가 이어졌습니다. "서울 열대야 일수 46일, 역대 1위." 기사 제목 하나만으로도 그 여름이 얼마나 길고 뜨거웠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비도 예전과 달랐습니다. 차분히 오래 내리는 장마보다, 어느 날 갑자기 도시를 뒤흔드는 폭우가 잦아졌습니다. 지난해 8월 수도권에 큰비가 내렸을 때 기사들은 “극한 호우”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도로가 막히고, 하천 출입이 통제되고, 곳곳에서 침수 소식이 이어졌습니다. 날씨는 더 이상 하루의 기분을 좌우하는 정도의 배경이 아니었습니다.
그 여름 동안 세상도 조용하지 않았습니다. 정치와 경제의 큰 뉴스가 이어졌고, 의료와 안전, 통신 보안 같은 생활의 문제도 자주 우리 앞에 놓였습니다. 자연의 열기와 사회의 긴장이 함께 밀려온 계절이었습니다.
저 역시 그 여름 동안 월요편지를 쓰며 여러 생각을 했습니다. 건강을 생각했고, 행복을 생각했고, AI의 변화를 생각했고, 민주주의와 폭력의 문제도 생각했습니다. 처음에는 서로 다른 주제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모입니다.
“변화의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올해 여름을 시작하며 저는 그 질문을 다시 붙잡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여름이 제게 알려 준 답은 분명했습니다.
여름은 그저 버티는 시간이 아니라, 미리 설계해야 하는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여름의 설계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나를 지키는 설계', 다른 하나는 '나를 키우는 설계'입니다.
먼저, 여름에는 '나를 지키는 설계'가 필요합니다.
젊을 때는 더위를 이겨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피곤해도 참고, 잠을 설쳐도 버티고, 일정이 많아도 밀어붙이면 된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계절은 더 이상 바깥의 일이 아닙니다. 계절은 몸 안으로 들어와 하루의 리듬을 바꾸고, 마음의 결을 바꾸며, 때로는 생각의 속도까지 바꿉니다.
더위와 싸워 이기는 사람은 없습니다. 무리하게 버티다 보면 결국 몸이 먼저 신호를 보냅니다. 문제는 몸이 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신호를 제때 듣지 않는 데 있습니다.
여름을 잘 지낸다는 것은 몸의 온도를 지키고, 마음의 온도를 지키고, 말의 온도를 지키는 일입니다. 바깥세상이 뜨거워졌다고 해서 내 안의 중심까지 끓어오르게 두지 않는 일입니다.
그래서 이번 여름에는 몸의 신호를 조금 더 일찍 들으려 합니다. 무리한 일정을 줄이고, 한낮의 이동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며, 잠과 물, 그리고 휴식을 더 소중히 여기려 합니다. 몸이 지치면 마음도 거칠어지고, 마음이 거칠어지면 말과 판단도 함께 흔들립니다. 여름에는 몸을 지키는 일이 곧 마음을 지키는 일이고, 마음을 지키는 일이 곧 관계와 품격을 지키는 일입니다.
그러나 여름을 잘 지낸다는 것이 단지 무너지지 않는 것에 그쳐서는 아쉽습니다. 여름은 우리를 지치게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를 크게 만들 수 있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번 여름을 피하는 계절이 아니라, 제 안의 깊이를 키우는 계절로 삼아 보고 싶습니다.
사계절 가운데 여름만큼 자연의 생명력이 강렬하게 드러나는 계절도 드뭅니다. 짙은 숲과 거센 폭우, 뜨거운 태양 앞에 서면 우리는 아름답다는 말만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 감정을 경험합니다.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깨닫는 동시에, 그 거대한 생명력의 일부가 된 듯한 벅찬 마음도 느끼게 됩니다.
미학에서는 이런 감정을 '숭고미(Sublime)'라고 불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압도적이고 숭고한 계절을 어떻게 보내고 있습니까?
현대 사회에서 여름은 흔히 '피서'와 ‘휴가’라는 이름으로 소비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휴가는 때로 휴식이 아니라 또 하나의 소비 경쟁이 되곤 합니다. 더 멀리 떠나고, 더 많은 일정을 채우고, 더 많은 사진을 남기느라 정작 쉬지 못하는 휴가도 적지 않습니다.
그것은 진정한 쉼이라기보다 노동의 피로를 잠시 잊기 위한 도피이거나, 다시 일하기 위해 에너지를 보충하는 과정에 그치기 쉽습니다.
저는 이번 여름휴가에는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스콜레(Schole)’의 개념을 떠올려 보고 싶습니다. 영어 단어 ‘학교(School)’의 어원이기도 한 스콜레는, 생계유지를 위한 노동이나 일상적 의무에서 벗어나 오직 자기 자신을 위해 바치는 자유로운 시간, 곧 ‘진정한 여가’를 뜻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여가는 노동의 반대말이거나 일의 하위 개념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는 “우리는 여가를 즐기기 위해 노동한다”고 말했습니다. 그에게 스콜레는 인간이 지적이고 도덕적인 탁월성을 추구하며 행복에 이르는 중요한 길이었습니다.
여름이 선사하는 대자연의 숭고미는 우리를 진정한 스콜레의 상태로 이끄는 강력한 매개가 될 수 있습니다. 거대한 자연의 힘 앞에서 우리의 자아는 한없이 작아집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세속적인 계산과 일상의 번뇌도 그 앞에서는 함께 작아집니다.
우리가 여름 숲을 걷거나 거대한 자연 앞에 서는 이유는 단지 시원한 그늘을 찾기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내면의 뼈대를 다시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식물들이 여름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가장 치열하게 광합성을 하며 자신의 굵기를 키워 내듯, 우리 역시 여름의 자연이 뿜어내는 숭고한 에너지를 마주하며 내면의 깊이와 철학을 확장할 수 있습니다.
노동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휴식이 아니라, 그 자체로 온전한 목적이 되는 여가. 그것이 바로 우리가 여름의 대자연 속에서 회복해야 할 스콜레의 본질입니다.
저는 올해 여름휴가가 단순히 더위를 피하는 물리적 피서를 넘어, 정신의 고도를 높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어디를 가든 짙푸른 녹음이 우거진 숲이나 웅장한 대자연 앞에 잠시 멈춰 서서, 그 압도적인 생명력이 전하는 무언의 메시지에 귀 기울여 보려 합니다.
자연의 숭고미가 선사하는 찰나의 경외감속에서 일상의 무게를 내려놓고, 저만의 스콜레를 누리는 깊고 충만한 여름을 맞이하고 싶습니다.여름은 피해야 할 계절이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잘못 맞으면 우리를 지치게 하지만, 잘 설계하면 우리를 지키고 키우는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2026년 여름을 보내기 위해 세운 설계입니다.
여러분은 2026년 여름을 어떻게 설계하시렵니까?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6.6.15. 조근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