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봉루와 서예가 은초 정명수선생의 삶
[비봉루]
진주시 비봉산 아래에 있는 누각이다. 고려말의 충신인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선생이 장구지소(杖求之所. 지팡이와 짚신을 놓아두었던 곳)여서 정몽주의 후손인 정상진이 1939년에 2년간에 걸쳐 총면적 1,190㎡에 42.97㎡ 규모로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한옥과 일본식의 절충형으로 팔각지붕에 목조 기와로 지은 것이다.
누각의 오른쪽에는 진주여자고등학교가, 왼쪽에는 진주고등학교가 내려다보이며 진주시의 대표적인 건물 중 하나로서 2003년 경상남도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비봉루에서 바라보는 진주시가지 전경은 아름답기만 하다. 이곳 비봉루에서 각종 백일장, 사생대회 등 예술제의 각종 행사뿐 아니라 진주 차인회의 발족과 건전한 국내 차 문화 정신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는 중요한 장소로 제공하기도 하였다.
[은초 정명수 선생의 삶]
은초 선생은 1909년도에 진주에서 태어나 1926년 진주 농업학교에 입학하여 일본인 교사의 차별 교육과 일제 교육에 반기를 들어 동맹 휴학을 하고 1940년 진주시의 진남루 등 큰 건물의 휘호를 썼다. 7세 때 (1915년) 처음 붓을 잡은 은초 선생은 30세 때 성파 하동주 선생에게 체계적으로 서예를 배워 부친 정상진이 비봉루의 현판을 쓰게 하였다. 2001년 향년 92세로 타계할 때까지 이곳 진주에서 평생을 고고한 학의 기풍으로 사신 서예가이시다.
은초 선생께서 남긴 작품으로는 해인사 ▲해탈문 ▲촉석루 ▲남장대 ▲서장대 ▲진남루와 진주시청 1층 로비에 ▲위민 포덕(爲民布德 )의 현판을 비롯해 수많은 작품을 선사했다. 1970년도에는 진주여자고등학교 학생들을 상대로 서예를 가르치기도 하면서 한평생을 비봉루에서 서예만 매진하여 작품활동과 후진양성에 힘써왔다.
서예는 동양의 한문 문화권에서 오랜 역사를 이어 오면서 하나의 예술 장르로 형성되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모름지기 문자가 있는 곳에는 서예도 함께 따라다녔다고 볼 수 있으며, 글씨를 잘 쓴다는 것은 잘 쓰인 글씨를 통해 남의 시각을 즐겁게 할 뿐 아니라 그 자체가 자신의 즐거움이다.
2023년 9월 5일 시민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