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笑
-丁若鏞
有粟無人食, 多男必患飢。
達官必憃愚, 才者無所施。
家室少完福, 至道常陵遲。
翁嗇子每蕩, 婦慧郞必癡。
月滿頻値雲, 花開風誤之。
物物盡如此, 獨笑無人知。
혼자 웃다
-정약용(1762~1836)
곡식 있어도 먹을 자식이 없고
자식 많으면 주릴까 걱정이라네.
높은 벼슬아치는 꼭 바보천치고
영리한 자는 재능 써먹을 데가 없네.
집집마다 복을 다 갖춘 경우 드물고
지극한 도는 늘 무너지기 마련일세.
아비가 아끼면 자식은 탕진하고
아내가 지혜로우면 남편은 필시 어리석으며,
달이 차면 자주 구름이 끼고
꽃이 피면 바람이 망쳐 놓는구나.
세상만사 모두 이러한 걸
혼자 웃는 이유를 남은 모른다네.
[감상]
이름만 들어도 다 아는 정약용이다. 하지만, '혼자 웃다(獨笑)'라는 한시를 알거나 읽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듯하다. 실학자라고 하면 생각나는 인물이 바로 정약용 아니던가. 허구한 날 공리공담으로 수천 말을 하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원리니 개념이니 하면서 사상을 말하고 철학을 말한들 무슨 내 삶에 보탬이 되는가.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이론일랑 집어 치우라는 그의 삶과 학문적 태도가 좋았다. 실질적이고 실재적인 학문을 하고 내 삶에, 우리의 삶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 말과 행동을 하자는 그의 주장이 좋았다. '독소'라는 위의 시 또한 인생을 관조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인간사 '새옹지마'라 하지 않던가.
'독소'를 읽고나니 머피의 법칙이 떠오른다. 아니면 아이러니, 역설(페러독스) 쯤으로 이 시를 해석하면 될까. 서로 극명하게 엇갈리거나 상반되는 상황이나 처지를 말하고 있다. 처음엔 인생사가 다들 이런 것인가 싶었다. 오르면 내릴 때가 있고, 기쁘면 슬플 때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사람이 살다 보면 좋은 날도 있고 궂은 날도 있기 마련이니까. 그러다가도 다시 읽어 보면 ‘獨笑’의 시 내용은 조물주의 간섭인지 장난인지 정도가 심한 듯하다. 마주한 상황과 처지가 참으로 슬프고 비참하다. 그런데 또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네 인생사가 정말 다 이런 것 같다. 한편으론 남의 일이라 치면 공평한 듯하여 안심도 되고 또 한편으론 내 인생이 저와 같다면 비관하고 낙심할 지도 모르겠다. 세상만사가 이러함을 달관한 듯 정약용은 혼자 웃는다. 그 마음이 뭘까. 그 웃음은 뭘까. 씁쓸한 웃음일까. 시원통쾌한 웃음일까. 제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인생이 운명 앞에 고개 숙이고 저항 한번 하지 못한 체 그저 받아들여야 하는 삶일까. 아등바등거리며 버텨내고 질기게 참아내며 내게 죽어진 운명이든 숙명이든 바꾸려고 애를 써 보는 게 맞는 걸까. 지금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하며 만족하는 것이 최선일까. 인생 앞에 겸허히 몸을 숙이며 운명을 받아드리는 것은 과연 신 앞에 나약한 인간 존재임을 고백하는 것인가. 천지 창조주 앞에 인간의 경외심을 문학적으로 표현해 놓은 '시'일 뿐일까.
정약용이 혼자 웃는 이유를 아직도 찾고 있다. 아직 인생을 달관하지 못한 나는 혼자 웃는 이류를 모르겠다. 나도 그처럼 웃고 싶은데 웃음이 안 나오고 문제를 풀지 못한 아이마냥 허탈한 웃음만 나온다. 나도 더 인생을 살다보면 나중에는 혼자 웃을 수 있으려나. 아직은 운명에 내 삶을 맡기고 싶지 않아 운명 위에 올라타고픈 마음이 굴뚝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