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를 가엾게 여기며
-이신
한낮에 벼논에서 김을 매는데
땀방울이 논바닥으로 떨어진다
누가 알리, 밥상 가운데 쌀밥이
밥알 하나하나가 농부의 괴로운 고생이란 것을
憫農(민농)
-李紳(이신, 772~846)
鋤禾日當午조화일당오
汗滴禾下土한적화하토
誰知盤中飱수진반중손
粒粒皆辛苦립립개신고
[감상]
농사철, 농번기라는 말이 생소하다. 시골에서 태어났지만, 도시 생활하며 자란 내 삶이다. 이 시의 배경인 시대도 지역도 지금의 내 상황과는 달라서 농사 지어 세금낸다는 말이 저 호랑이 담배피던 이야기인 것만 같다. '민농'이라는 중국 시인이 쓴 이 시를 읽자니, 나에겐 쌀밥 한 그릇의 가난이 먼저 떠오른다. 나는 배 곯으며 자란 세대가 아니지만, 밥 앞에서 만큼은 유독 가난이 떠오른다. 밥상머리 앞에서 아버지, 어머니에게 듣고 자란 것이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밥은 삶이고, 삶은 가난과 연결되었던 부모님 시절이 느껴진다.
이 시는 농부의 고생을 보고 마음 아파하는 시인이 연상된다. 농사 지어 세금을 내는 농부의 고단한 인생, 관아 관리들의 세금 징수, 그리고 그런 모습을 제3 자의 입장에서 보면서 서글프고 마음 아파하는 시인이다. 지금의 우리도 내가 열심히 땀 흘려 벌고 모은 돈을 세금으로 낼 때면 그렇게 아깝고 배가 아프고 속이 상한다. 국가에 원천 징수되는 세금은 늘 국민의 피 같은 돈이라고 하지 않던가.
지금의 우리는 잘 먹고 잘 살아서 쌀밥 한 그릇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를 때가 많은 듯하다. 먹고살기가 이전보다는 많이 좋아져서 음식 아까운 줄 모르며 사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사람마다 마음 씀씀이와 생활습관이 다르겠다만, 이전 시대에 비해 함부로 남기고, 못다 먹어 남기고, 그냥 먹기 싫어 남기고 그리고 그 남긴 것은 그냥 버릴 뿐이다. 아이들도 또한 그러하고 젊은 세대도 또한 그러하다. 뭔가 굉장히 풍족한 시대를 사는 느낌이다.
‘憫農’ 시를 대하니 자꾸만 부모 세대가 생각이 나고 내 아버지가 떠오른다. 베이비부머라 불리는 아버지 세대들. 이제는 나이가 70~80대에 속하겠다. 병이 들고 몸이 쇠약해지고 거동이 불편해지는 시점이다. 자식과 자손들 먹여 살리겠다고 오로지 돈 버는 데에만 골몰하고 집중했던 분들이다. ‘천박한 자본주의’라 부르든 말든 돈이 최고인 세상을 살아온 분들이다. ‘나도 한번 잘 살아보자’며 죽을힘을 다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만 했다. 그래서 자꾸만 농부의 땀방울이 그 세대들의 땀방울같이 느껴진다.
단돈 500원 은행 이체 수수료 아낀다고 몇 킬로를 걸어 다니신다. 택시비가 아까워 손을 떠시는 분이 버스 요금이라고 덜 아까우실까. 그저 아침 일찍, 약속 시간 일찍 움직이면 될 뿐이다. 버릴 게 어디 있었으랴. 사람도 못 먹는데, 짐승한테 줄 것까지 있었으랴. 그렇게 못 먹고 못 입고 세운 집안이고 이 나라가 아닐까 싶다.
보릿고개, 나무뿌리 캐 먹던 일을 우리 세대는 책으로만 알뿐이다. 손가락이 돌아가고 고관절이 부서지고 무릎 연골이 다 닳았다. 그래도 돈 벌어서 좋고 쌀밥 먹을 수 있어 좋고, 집 사서 좋다고 한다. 그들이 일궈 놓은 터 위에서 오늘도 빼 먹을 게 없나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자식이 될까 내가 나에게 무서움을 느낀다.
밥알 하나하나가 괴로움이고 고생이다. 농부의 수고를 누가 알까. 한여름 땡볕에서 김을 매느라 땀방울이 줄줄 흐른다. 벼논에 들어가 일을 해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농부의 고생을 모른다. 논밭에 나가서 농사일을 해 본 적이 없는 나는 농부의 그 고단함을 모른다. 한여름 택배 일을 하는 그들의 땀방울도 나는 모른다. 빵 공장에서 기계에 몸이 끼여간 그들의 고통도 난 모른다. 삼각김밥과 컵라면으로 끼니를 대충 때우며 살아가는 그들의 삶을 나는 모른다. 어디 그뿐이랴. 수많은 직업과 작업장에서 땀방울을 흘리는 세금 내는 그들의 辛苦를 나는 모른다. 나는 아직도 가난과 고생에 대해 모른다.
시인은 농부를 대표로 내세웠지만, 그 내면에는 구슬땀 흘리는 무명의 얼굴도 모르는 그 땅의 백성들이 아닐까 싶다. 그때의 밥알은 내 부모 시대의 한 푼이었겠지. 그 한 푼이 지금 우리에게는 피 같은 ‘돈’이겠지 싶다. 태어나 보니 좋은 시절이고, 살아보니 그저 누렸던 것들이 참 많다.
나의 편함과 안락함 뒤에는 누군가의 구슬땀이 있었음을 잊지 않겠다. 내가 할 일은 내 아이들과 다음 세대들에게 내가 누리는 것에 대한 그 누구의 수고와 고생을 잊지 않게 가르치는 일이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