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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정의 <<언제나 삶은 도망자처럼>>시집 서평

작성자천봉선|작성시간06.03.27|조회수55 목록 댓글 1
 

시집서평



  이상정 시집 <<삶은 언제나 도망자처럼>>에서

---------------------------------------------------- 이창원



  이상정 시인의 시집으로는 <<감칠맛 나는 시>><<미스 후라보노의 명상>><<나는 사건이다>><<그대 아는가, 당신은 나의 시라는 것을>><<꿈의 작업>> 등이 있다.



  먼저 이 시인의 시집 <<삶은 언제나 도망자처럼>>의 상재를 축하한다. 시인이 작품집을 이어서 낼 수 있는 건 복 중의 복이다. 첫 시집을 냈을 때의 기쁨, 그것은 출판해 본 사람이 아니면 느끼기 어려운 일이다. 문단에 등단하여 작품을 계속 만들어 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창작활동으로써의 시짓기는 어둠 속에서 찬란한 말씀의 빛알갱이를 캐내는 작업이다. 그 빛이 자신을 밝게 하는 것만으로도 그 가치는 충분하며, 더 나아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면 참으로 보람차고 명예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상정은 처음 <<감칠맛 나는 시>>를 찾아 나섰고 더욱 아름다운 사랑을 위해 <<미스후라보노의 명상>>을 하게 된다. 그리하여 자신의 삶이 가치로운 것이며 그것을 통해 역사적 현실을 직시하고 <<나는 사건이다>>라고 인식한다. 하지만 그건 자신의 가정이 화목하고 사랑의 대상이 분명할 때 흔들림 없이 크게 발전해 갈 수 있는 것. <<그대 아는가, 당신은 나의 시라는 것을>>  마침내 가치로운 삶은 희망차게 살아가는 데 있다고 생각하고 그 희망을 <<꿈의 작업>>으로 펼쳐낸다. 하지만 나이만큼의 성장도 만만치 않아 <<삶은 언제나 도망자처럼>> 비켜가고 있다고 생각하며  시적 몸부림으로  일상생활 속 정면 승부를 걸고 있다.  


  산다는 게 깨어있지 않으면 늘 헛다리 잡기 마련이다. 깨우쳤다 하더라도 조금만 게을리하면 어느 새 제자리에서 뱅뱅 돌 뿐 무거워지는 몸뚱이를 어쩌지 못하다가, 또 하나의 고개를 넘기 위해 이상정은 자신의 몸을 세상의 소용돌이에 내던져 본다.  


  오늘날 몸뚱이 六의 시대을 의미하는 제6시집 <<삶은 언제나 도망자처럼>>은 <땅끝에 서다><구름을 밟고 서다><살아서 죽는 법><꿈의 왜곡><말티즈 단무지><실착행위>의 6부로 나뉘어 있고, 임병호 시인의 해설에서 <패러독스의 미학>이라는 제하에 ‘꿈과 현실의 뒤틀린 상황에 대한 시인의 반응은 깊은 상처의 노출을, 감내할 수 없는 아픔으로 상징화 했고, ‘話者를 통해 시단을 비판하고, 시인을 꾸짖으며, 자신도 뉘우치는 시인정신을 보여준다.’고 했다.


  이제 이상정의 시세계로 들어가 본다.

  부제 '임근우 화백의 그림을 보며' 전문 생략․ ․ ․ 화석이 된 물고기가/네 입속으로 걸어간다/ 내 몸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어우르는 우주.<고고학적 기상도>에서


  까마득하게 잊었던/ 코흘리개 친구들이 모인다고/ 불혹의 나이에 날아 든 통지문//․ ․ ․ // 만나는 얼굴마다 저마다 업의 연륜이 쌓여/ 중후한 멋이 풍긴다//․ ․ ․ <설레이는 만남>에서



  이상정은 작품 속에서 강건함을  보이고 희망의 계단을 하나하나 오르고 있다.

  비록 삶이 고달프더라도 그 자체를 즐길 줄 알면 구름을 타고 날으는 시인이 될 수 있으리라.

 

  얼어 죽을 듯 냉방버스를 타고/ 바기오에서 바탕가스까지/ 무려, 열 두 시간을 달렸다// 밤비를 맞으며 출발한 우리는/ 2,500미터의 고산지대를 내려와/․ ․ ․ <민도르 섬 하이트비치>에서


   시인은 여행을 통해 얻어지는 체험을 시간과 공간의 변화에 따라 서술해 간다. 마치 고행하는 수도승 같이․ ․ ․.  몸둥아리가 힘들고 색다른 만큼 뇌파는 더욱 활성화 되어 간다.



   바기오에서는/ 누구나 우산을 들고 다닌다/ 어김없이 오후에는 비가 내리고/ 그래서 아침 한낮에 빨래를 걷는다// ․ ․ ․ 눈부신 태양은 잠시잠깐/ 사시사철 푸른 나무들이 매연을 먹고 그 날이 그 날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시간 속에서/ 제각기 틀린 시계를 찾고 다닌다//․ ․ ․ 사람들은 여름 옷 한 가지만 입는다/ 고온 다습한 이곳에서는 늘/ 옷이 젖어 있다// 바기오에서는/ 눈이라는 것을 모른다/ 늘 한결같은 계절/그래서 사람들은 느긋하다/ 아니, 게으르다// 바기오에서는/ 깡마른 개들이 쓰레기를 뒤진다․ ․ ․ <바기오에서는>에서


  보이는 것들을 자연스레 잘 표현하고 있다.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는 건 독자에게 가치로운 작업이다. 허나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걸 쓰는 건 공해로울 수 있다. 다른 사람이 느끼지 못하는 부분이 무엇이고, 생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무언지, 좀더 생각해 볼 일이다. 환경의 척박함을 직접 체험함으로써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이 얼마나 좋은 곳인가를 느끼게 하는 것. 여행을 가지 않아도 아름다움을 느끼도록 하는 대목은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어 보인다.


전문 생략․ ․ ․ / 미당 선생의 노래비 앞에서/ 구성지게 한 수 읊어보다/ 그리고 그의 죽음을 생각하다// ․ ․ ․ / 가족들 모두 전세금 없어 내몰리듯 / 땅끝에 서다/․ ․ ․ // 돌아가야 하리 길 위에 방황하는 자/ 힘겨운 여정 다 끝낸 자/ 돌아가야 하리 내 육신 뉘일 곳/안락한 집으로․ ․ ․ 서해안 노을지듯/ 생의 막바지는 고속도로.<땅끝에 서다>에서


  위 작품에서 미당 선생의 노랫말 한 마디 있었으면 더 좋아 보이지 않을까 한다. 끝연에서 '생의 막바지는 고속도로'라는 말이 탄력 있어 보인다.


  어느 날 불현듯/ 갈색부분인 홍채(虹彩)가/ 검은 눈동자의 동공(瞳孔)에 잠식 당한 거야// 내 눈은 멜라닌 색소가 갈색인 황인종/ 네 눈은 멜라닌 색소가 푸른 색인 백인종// 동공의 작은 조리개/ 이곳을 통과하는 빛의 세계는 다 잡힌다/ 물체의 현상들/ 눈 속으로 들어온 빛의 그림/ 홍채를 움직여 동공의 수축작용으로/ 빛의 양을 조절하여 사물을 구별한다// 당신의 눈은 포도막염이 출중하여/눈이 충혈되고 눈부셔 눈물이 나네/ 흐린 당신의 눈으로 사십 년을/ 분별하였다네// 내 어머니는 이런 아픈 눈으로/자식들을 돌보았다.<홍채와 동공>에서


  이성과 감성을 잘 조화시켜 가고 있다. 감정에 너무 치우치지 않고 이성적 언어로 접근하는 건 자신 뿐 아니라 독자에게도 논리적 사고를 일깨운다.


  내게 잘못이 있다면/ 당신을 죽도록 사랑한 죄뿐/ 내가 그토록 처절하게/ 붙잡는데도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당신/ 당신은 오히려/ 코웃음치며 고통의 나락으로/ 몰고 갔지요 그런 당신을// 내 오늘/ 반평생 같이한 / 징글맞은 물건을 버리듯/ 당신을 버리려 합니다/ 시를 버림으로써/ 진정한 시인이 되려 합니다/ 시적 삶을 살아가는/ 시인이 되려합니다.<시를 버리다>에서


  이상정 시인다운 작품이다. 가장 사랑하는 걸 버릴 줄 알므로써 진정한 주인이 되는 것은 이 시인의 다음 시집에도 좋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모두 떠난 텅 빈 공간/ 장수투구벌레 같은/ 굴삭기 한 마리// 청명산 한 자락/ 끝을 쪼개고 있어// 하늘/ 공간/ 금가듯/ 깨지는 소리/ 대뇌피질을 뚫고// 딱따구리같이/ 진종일 내 머리를/ 두들기고 있어// 두들기고 있어/ 내 속에 감추어 둔/ 언어들이/ 내 속에 언어들이/ 종을 흔들고 있어.<두들기고 있어>에서


   주제를 잘 부각시킨 작품이다. 울화통을 잘 삭히며 미적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핸드폰의 단축키를 눌러/ 메모리된 번호를 지운다/ 이제는 거의 쓸모가 없는/ 별 영양가 없는/ 발신번호를 지운다// 끈적한 사연들을 안고 있는 숫자가/ 실수였다고// 그 비밀스런 일들이 지워지네/ 모래시계만큼의 순간에/ 아주 간단하게 지워지네// 이렇게/ 삭제하시겠습니까?/ 예./ 삭제되었습니다.// 게임 오버.<내 너를 지운다>에서



   스스로 때에 맞추어 추억을 지운다. 무엇이나 허용된 공간은 있어 필요 없는 것들을 버려야 새로운 걸 담아낼 수 있다. 지나고 나면 그 걸 후회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선택해야 할 시간. 우리는 고뇌한다. 고뇌의 아름다움. 아픔을 곱게 물들여 갈 줄 아는 사람은 기어이 알찬 씨알을 거두게 되리라.  


  나의 사랑 함께 가자 러브텔로/ 한 점 부끄럼 없이 무인도에/ 너와 그곳에서 함께 뒹굴며/ 사랑노래 불러보자/ 나의 사랑 나의 자유여/ 긴 머리 쓸어내리며/ 정이 듬뿍 담긴 눈빛으로/ 그댈 처다 보리라/ 몸속에 몸 밀어 넣으며/ 말하리라 나의 모든 것이라고/ 너의 존재는 나의 존재라고/ 너의 사랑은 나의 힘이라고/ 너의 육체는 나의 일부라고/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이여/ 함께 가자 함께 가자/ 둘만의 장소로 모든 것 다 버리고/ 사랑으로 하나가 되는/ 나의 손길 닫는 곳에/ 꽃처럼 피어나는 몸을 보리라/ 그 꽃 따먹으며/ 음부에 입 맞추리라/ 나의 사랑 나의 자유여/ 샘솟는 나의 욕망을 잠재워 줄이여/당신의 옹달샘을 마시노라/ 목숨보다 진한 자유여.<나의 사랑 나의 자유>에서


   자유로운 문체로 이어간다. 둘만의 사랑을 위한 이상향을 만들어 낸다. 목숨보다 더한 자유를  얻는다. 자신의 생각을 작품 속에 구체화함으로써 여유로운 생활을 스스로 만들어 감이 좋아 보인다.  


  구름 위에 집을 짓고/ 구름 위에 길을 내고/ 구름 속에 몸을 묻는/ 아득하여라 뒤돌아보면/ 벼랑 끝 구름 가려진 길/ 내 걸어 온 길 구만리/ 바다가 산 위에 있는 도시에서/ 산비탈 집을 짓고 나 살았네/ 숨막히는 매연 속에서 너 살았네/ 하루 두 번 구름 위를 지날 때면/ 지상의 모든 것들 가리워 보이질 않아/ 뒤돌아 본 세월 같아서/ 기억만 있을 뿐/ 너 가는 길 보이질 않아도 가다보면/ 어느 덧 구름을 밟고서 뒤돌아보면/ 빈 손/ 옷 한 벌/ 허상 뿐/ 모두가 구름 같아서/ 모두가 구름 같아서.<구름을 밟고 서다>에서


  꿈꾸듯 살아가는 삶. 허망하게 생각되는 자신을 본다. 푸념스런 언어들. 체념하듯 내뱉는 말. '모두가 구름 같아서' 슬픔의 노래는 독자를 슬프게 한다. 허망한 마음에서 벗어나 희망차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건 무얼까, 사랑하기, 아름다움 만들기, 보람찬 일 하기. 빈 손에 찬란한 생명의 빛이 가득해 보인다.    



  과거를 묻지 마라/ 이미 잊은 지 오래/ 구멍 난 가슴으로/ 휑하니 지나는/ 바람/ 내 너를 잊기 위해/ 구멍난  머리/ 모두가 허무/ 업에서 시작된 걸/ 비움으로 돌아가자/ 죽어야 사는 것을/ 살아서 죽어야/사는 것을.<살아서 죽는 법․1>에서


  무위자연, 자연스레 변해가면 좋을 텐데. 갈수록 나약해져 가는 몸. 비워도 비워지지 않는 갈등. 모든 걸 놓아야 더욱 편안히 다가오는 맘. 잘 죽어지기 위한 시인의 몸부림이 커 보인다.


  나는 내가 아니라/ 네가 나이고/ 내가 너이니라/ 형체는 있어도/ 마음은 허하니라/ 순간의 기억들을 모두 죽여/ 살았으되 죽은 몸/ 내 머리는 기억을 거부하는 구멍 난 뇌세포들로 가득 차/ 과거는 없고 현재만 있는/ 어제처럼 오늘을/ 하루하루 순간순간/ 현상을 지우며/간직하길 거부하며/ 살았으되 죽은 삶/ 죽었으되 살아 있는 삶.<살아서 죽는 법․2>에서



  있는 것도 아니요 없는 것도 아닌 꿈같은 삶. 뭘 바라는가, 몸을 곧곧히 하고 맘을 출렁이지 않도록 한다. 시인은 시간과 공간의 변화에 따른 흔들리는 마음을 고요하게 지켜내기 위해서 언어의 보약을 먹는다. 약의 효과가 어떻게 나타날지, 얼마나 갈지, 앞날을 예측하지 못하면서 천성으로 그렇게 해야만 억압된 상태를 벗어날 수 있다고 믿기에 스스로 처방해 간다. 


  그냥 존재하라/ 내가 없어 자유자라/ 내가 없어 죄가 없고/내가 없어 업이 없고/ 그냥 있어 나이니라/ 어디서 왔고 왜 사느냐고/ 묻지를 말자/ 그냥 있고 그냥 살고/ 가고 오고가 없으니/ 있음이라/ 모든 것을 기억에 담지 마라/ 마음을 비워 우주가 있게 하라/ 우주의 몸으로 마음을 보라/ 마음은 자기의 모양에서/ 살아온 삶을 담는다/ 세상너머의 세상을 살 듯 살자.<살아서 죽는 법․12>


  살다보면 내가 현장에 없어야 주변 사람들이 편안해 할 때가 있다. 때에 맞춰 스스로 자신을 죽일 줄 알아야 제대로 사는 것. 스스로 없어짐은 더 큰 나라를 위하는 것. 이 시인은 우주의 섭리를 쫓아가려 한다. 더 너른 곳으로 가 어떠한 것에도 자유롭고자  한다. 여기서 죽어지는 연습은 더 나은 삶을 위한 대장부의 길이 되고 있다.


  범국민적 시책으로/ 14세 이상 23세까지 모여/ 대동단결 윷놀이 한 판/ 아우 방 반 고흐의 그림이/ 널브러져 있어 난장판/ 아래 마을 박가네 초상/ 빈 상여가 조종을 울리며 지나가네/ 난쟁이의 슬픈 울음/ 상갓집 문상에 조의금 받아 돌아오는 길/ 바닷가 바닷길 기어 건너/ 기어 오른 기암 절벽 끝/ 책장처럼 무너지는 꿈/ 잊어버린 집과 아이들/ 노량진 수산시장을 배회하다/ 다시 돌아오는 길/ 귀신과 놀다.<꿈의 왜곡․7>에서


  현실세계와 꿈의 세계가 어우러진다. 꿈의 세계를 현실로 인식하면 늘 깨어있는 마음으로 사는 거와 같다. 귀신과 어울릴 수 있는 건, 이 시인의 마음이 더욱 밝게 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개나리 진달래/ 목련지고 나니/ 파란 세상에/ 보라빛 향기/ 한줌 꽃잎에 코를 박는다// 아, 이 향기/ 죽고 싶다.<잔인한 사월>에서


  죽고 싶도록 아름다운 세상은 잔인한가, 부드러운 봄바람에도 뚝뚝 떨어져 내리는 자목련에 너무도 슬퍼지는 맘. 아름답게 죽어지는 모습을 본다.


  양부모 낸시의 집은/ 아담한 별장이었다/ 달밤에 사진을 찍으려다/ 냇물에 필터를 떨어뜨린다/ 찾지 못한 필름처럼 창고에/ 추억은 가득 차고/ 나무들 사이사이 호박등은 피어/ 달빛을 지운다/ 내 삶은 언제나 도망자처럼 살아가는 것/ 살아남기 위하여/ 뛰어드는 것.<실착행위(失錯行爲)>에서


  현재의 위치에서 자신을 바라본다. 기어이 살아야 한다는 건 주변 환경과의 타협을 요구한다. 이제 장년으로서 더욱 깊은 생의 고찰로 찬란한 빛춤을 추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우연하게 브레이크 파열로 내 인생은/ 좌충우돌 사고가 난 것이었네/ 비탈길을 곤두박질쳐/ 허우적대는 한 시점/ 내 밭고랑에 잡초들이 가득했어요/ 남대문 시장골목을 빠져나와/ 밑 두꺼운 군화를 준비했어요/ 허벅지까지 올려 입고/ 포도밭 밑에서 술상을 받았어요/ 빨간 숯불에 타 들어가는 저녁 놀/ 이제는 고된 일 접어두고/ 어둠이 우리를 묻어 안식을 주네.<실착행위(失錯行爲)>에서


  어려운 시절 잘 이겨내고 눈에 들어오는 모든 빛들을 축복으로 받아들이며 자연의 이치에 고마움과 포근함을 느껴지게 하는 작품이다.


  이번 시집에서 돋보이는 대목을 정리해 본다. ‘구름을 밟고 서다’ ‘시를 버리다’ ‘살아서 죽는 법’ ‘해안선 그 소라껍질 목걸이 너울대는’ ‘산호들의 꽃잔치’ ‘청명산 한 자락’ ‘아내의 좁아진 어깨를 두드려준다’ ‘죽순처럼 돋아난 흰머리칼’ ‘너의 존재는 나의 존재라고/ 너의 사랑은 나의 힘이라고’ ‘나의 손길 닿는 곳에/ 꽃처럼 피어나는 몸을 보리라/ 그 꽃 따먹으며/ 음부에 입 맞추리라’ ‘샘솟는 나의 욕망을 잠재워 줄이여/ 당신의 옹달샘을 마시노라/ 목숨보다 진한 자유여’ ‘여인의 좁은 어깨처럼/ 곡절 많은 여인의 울음처럼/ 숨죽여 핀 하얀 꽃잎에’ ‘내 걸어 온 길 구만리/ 바다가 산위에 있는 도시에서/산비탈 집을 짓고 살았네/ 숨막히는 매연 속에서 너 살았네’ ‘너 가는 길 보이지 않아도 가다보면/ 어느 덧 구름을 밟고서 뒤돌아보면/ 빈 손/ 옷 한 벌/ 허상 뿐/ 모두가 구름 같아서/ 모두가 구름 같아서’ ‘날마다 악기는 연주자의 손길 따라 울어’ ‘헉헉대던 젊은 날의 열정처럼/ 실크로드에 서서/ 돌아본다’ ‘벼랑 끝 허접스런 일 걸어두고/ 돌아가자 돌아가’ ‘구멍난 가슴으로/ 휑하니 지나가는/ 바람/ 내 너를 잊기 위해/ 구멍난 머리/ 모두가 허무/ 업에서 시작된 걸/ 비움으로 돌아가자/ 죽어야 사는 것을/ 살아서 죽어야 사는 것을’ ‘나는 내가 아니라/ 네가 나이고/ 내가 너이니라/ 형체는 있어도/ 마음은 허하니라/ 순간의 기억들을 모두 죽여/ 살았으되 죽은 몸’ ‘몸은 여기에 누워있는데/ 육신을 떠나는 혼을 위해/ 관을 만들자’ ‘나를 죽여 십자가를 진다’ ‘눈 아래 펼쳐진 거룩한 풍경/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제어할 수 있다/ 살아서 죽어 구천을 떠돈다/ 여기가 어딘가/ 나 없이 너 없는 우주’ ‘모든 것은/ 슬픔도 고통도 버려 없게 하라/ 기억에 두지 마라’ ‘죽음을 슬퍼하지 마라/ 시체를 내려다 본다/ 한동안 육신은 나를 지배했다/ 혼이 떠난 지금/ 몸안의 모든 세포가 오염되었다/ 귀속에서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인생사/ 아직도 내가 누군지 모른다/ 밤마다 꾸는 꿈/ 오늘의 불행이/ 내일의 희망이라는 것도/ 위로의 말 뿐/ 철칙은 비관하지 마라/ 나를 죽여 텅빈 상태로 들어가라’ ‘짜증은 이루고자 함에서 오는 것/ 뜻을 버려야 굴레에서 벗어나지’ ‘슬픈 곡조/육신의 노래//절정에 이르면/ 몸은 새털처럼 가벼워//너도 없고 나도 없는 세계’ ‘가족들의 곡소리가 들린다/ 터널을 통과하여 만난 아버지/ 살아 온 인생을 돌아본다/ 별로 이승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친구여 버리고 또 버리고 버리세/ 나를 죽여 네가 있는/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있는 우주’ ‘마음을 비워 우주가 있게 하라/ 우주의 몸으로 마음을 보라’ ‘그려 살아서 죽어야 진정사는 것을/ 왜 몰랐을까’ ‘만신창이 되도록 살아보세/ 나를 죽여 네가 있게’ ‘바닷가 바닷길 기어 건너/ 기어 오른 기암 절벽끝/ 책장 무너지는 꿈/ 잊어버린 집과 아이들/ 노량진 수산시장을 배회하다/ 다시 돌아오는 길/ 귀신과 놀다’ ‘전시를 앞두고 술 때문에/ 죽은 무명의 화가 얼굴/ 영안실 안 영전은 없고/ 죽은 자의 영혼은 날 부르네’ ‘내가 시인이여/시처럼 진솔하게 살아가는/ 시는 한 줄도 못쓰지만/ 시적 삶을 살아가는/그런 시인이여’ ‘시 비슷한 시를 써 가지고/ 시랍시고 우겨대는 시인이여/ 시시껄렁한 시가지고/ 시름시름 씨름하다/ 인생종칠 시인이여/요즘 도나 개나 시인인 세상에/ 죽여줄 시 한 줄 못쓰는/ 정말 시시한 시인이여/ 진짜 죽여주는 시 한 번 써보소’ ‘하늘 궁 저음으로 깔리는 영혼의 울음/ 이렇게 바람 부는 날에는/ 압구정동에서 배회하는 유 하가 생각난다/ 옷 깃을 여미듯/ 새 아침/ 모진 바람과 싸워 이길 일이다/ 이렇게 바람 부는 날은’ ‘산그늘 산그림자 물속에 앉아/ 고요한 저녁의 적막함을 삼키고’ ‘잘려나가도 어느새 자라/ 또 잘려지는 파란 정구지/ 가난한 집의 살림 밑천’ ‘햇볕 잘 드는 베란다에서/ 찌든 몸 말리는 하루’ ‘빨간 숯불에 타 들어가는 저녁놀’ ‘가을비 내려/ 젊은 아낙 좁은 어깨위로/ 서글픔이 파고들고/ 질척이는 산길을 오르는/ 상두군 소리가/ 더욱 처량하게 들리는/ 가을길을 걸으며/ 우리를 슬프게하는 것들에 대하여/ 생각해 보네’ 등.


  이 시인은 비교적 쉬운 언어로 생활 속의 시를 뽑아내고 있다. 특히 <살아서 죽는 법>의 연작에서는 우주속 자신을 객관화하여 깨우쳐가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잘 보여 주고 있다.   또한  <<꿈의 왜곡>>편에서 꿈을 현실화시켜 인생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꿈을 현실처럼, 다시 현실을 꿈처럼 살아가는 건 마음그릇을 키워 가는데 큰 도움이 된다.   이제, 현실을 몸뚱이로 땀 흘려 헤쳐 가는 실사구시(實事求是) 모습에서 더욱 아름다운 빛열매가 영글어 맺히게 될 것이다. 이번 시집은 시인 자신의 삶에 대한 완성의 과정을 잘 보이고 있으니 앞으로 더욱 찬란한 빛과 오묘한 소리의 세계를 열어가는 계기가 될 것으로 믿는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삶 속에서 희망을 가지고 아름답게 살아 갈 수 있도록 하는 시가 많이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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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송향만리 | 작성시간 06.03.31 글 포인트을 10내지 12로 하심 읽기가 더욱 편할텐데여 ..아직은 내 눈이 밝으니 망정이지요 ..많이 배우기도하지만 따라잡을수 없는 문학의 도란 나에게 멀기만 합니다 / 생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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