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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침반 민조시극

김병원 <분홍빛 여백>

작성자이창원법성육|작성시간26.06.12|조회수6 목록 댓글 0

분홍빛 여백
김병원

바람이 벗겨 놓은
분홍빛 껍질 하나가 심곡천을 지나가고,
징검다리는 오래전 잊어버린 입술을 꺼내
물속에서 잠든 시간을 더듬으며 속삭인다
누군가 복사골이라 불렀던 지명은
지워진 문장의 안쪽에 남아 있다.

햇빛은 나무의 혈관 속으로 숨어들고
잎들은 제 그림자를 접어
황금새의 주머니에 넣어 둔다.

원미산 언덕 아래 한 아름 구름이
씨앗처럼 갈라져 하얀 꿈의 침묵을 흩뿌리는데
그 침묵은 기억의 꽃을 피워 올렸다.

그곳에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계절의 발자국이 남아 있었고
발자국들은 아직 끝나지 않은 축제의 뒤편을 걷는다
길은 자신이 길이었다는 사실을
노을 뒤로 붉게 숨기고 있을 때
저 멀리서 복숭아꽃 한 송이가 떨어지는 소리,
꽃잎이 날개를 얻어 날아오르는 소리였다.

그 순간 하늘은 한 장의 편지처럼 접혀
물속 우편함으로 들어간다
아직도 읽지 못한 문장들이
수면 아래에서 물비늘을 흔들며 헤엄치고
복사골은 분홍빛 여백 속에서 심장이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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