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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년대초 대구…넝마주이 소년((( 1970년대초만 해도 대구 지역 곳곳에는 넝마주이나 아침에 밥을 얻어 먹으러 다니는 거지, 허잡스러운 물품을 팔러다니는 상이군경 등이 많았다. 블록 담장에 지친 몸을 기댄 채 해바라기를 하며 생모를 생각하는 듯 어린 넝마주이의 표정이 더없이 서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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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년대 대구 물장수 아저씨((( 60년대만 해도 대구의 상수도 보급률은 형편 없었다. 변두리 달동네 주민들은 매일 공동우물에 가서 물을 길어오거나 매일 동네를 방문하는 물장수 아저씨한테 물을 사먹어야만 했다. 이때는 드럼통이 급수통으로 이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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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년대 개구쟁이들의 신천나들이((( 60년대 동구 신천동 푸른다리 근처 징검다리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한 아이(왼쪽에서 네번 째)가 갓난애기를 등에 업고 돌보는 장면이 웃음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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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름과자를 아시나요?((( 반세기 전만 해도 '국민학교' 앞은 불량 군것질거리의 집산지였다. 특히 뜨겁게 달궈진 철통 안에 설탕을 집어넣으면 금세 양철통에서 구름이 피어올랐다. '구름과자'로 인기가 높았던 솜사탕 제조기는 척박한 일상을 살던 아이들에겐 꿈결 같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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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 제가 이 잡아 드릴께요((( 공중위생 시스템이 전무했던 60년대에는 이와 벼룩, 빈대가 주민들의 몸 곳곳에 기생했다. 볕이 좋은 날 동구 신천동 푸른다리 근처 판잣집 앞에서 어머니의 머리카락을 헤집으면서 이를 잡아주고 있는 딸의 눈매가 더없이 훈훈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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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년전 주막((( 50여년전 북구 팔달교 동쪽 끝은 모래언덕이었다. 하지만 매년 장마철 상습침수 구역이라 집을 지을 때 1m 정도 높게 계단처럼 돋웠다. 사진속 초가집은 주막으로 칠곡 방면에서 시내쪽으로 오던 행인들이 잠시 쉬며 막걸리를 마시던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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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개구쟁이들의 놀이터 '준공 직전의 경북도청'((( 준공 직전 공사 중인 경북 도청 창문 턱에 올라가 손을 잡고 놀고 있는 동네 개구쟁이들. 도청은 옛 중앙공원 자리에서 1966년 4월1일 현재 자리로 이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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