學然後知不足(학연후지부족)
* 한자 풀이
學(배울 학) 然(그럴 연) 後(뒤 후) 知(알 지) 不(아닐 부) 足(족할 족)
- '不'자는 뒤의 한자 첫 자음이 'ㅈ'이나 'ㄷ'으로 발음될 때, '부'로, 아닌 경우에 '불'로 읽힘
* 문구 해설
배운 후에 부족함을 알게 된다.
* 원문 보기
雖有嘉肴, 弗食不知其旨也. 雖有至道, 弗學不知其善也. 是故學然後知不足, 敎然後知困. 知不足, 然後能自反也. 知困, 然後能自强也. 故曰敎學相長也.
(수유가효, 불식부지기지야. 수유지도, 불학부지기선야. 시고학연후지부족, 교연후지곤. 지부족, 연후능자반야. 지곤, 연후능자강야, 고왈교학상장야.)
- 비록 맛좋은 안주가 있더라도 먹지 않는다면 그 맛을 알 수 없고, 비록 훌륭한 도(道)가 있더라도 배우지 않으면 그 가치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배운 연후에야 부족함을 알게 되고 가르친 연후에야 어려움을 알게 된다. 부족함을 안 연후에야 스스로 반성할 수 있고, 어려움을 안 연후에야 스스로 강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르치는 일과 배우는 일은 다 함께 성장하는 것이다.

역사학자 황수영 교수의 1944년 휘호
* 출전 : 예기(禮記) 중, 학기(學記)편
* 해설 :
'학문의 세계는 너무나 심원·광활하여 이때까지 자신이 쌓아 온 학문이란 창해일속(滄海一粟:넓고 큰 바다의 한 알의 좁쌀)에 못 미치는 보잘것없는 것임을 알았다.'는 ?e문에 대한 경건(敬虔)과 겸허(謙虛)의 고백이 담겨 있는 말이다.
흔히 학문의 길은 형극(荊棘:가시밭)의 길이요, 끝없는 인고(忍苦:고통)의 길이라고들 한다. 그러기에 공자(孔子)는 역경(易經)을 읽을 때 가죽으로 꿰맨 책 끈이 세 번이나 끊어질 정도로 '위편삼절(韋編三絶)'을 했고,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분이 소식(蘇軾)은 '학문하는 일은 급류(急流)를 거슬러 올라가는 것과 같다.(學書如急流:학서여급류)'라 하였으며, 당나라의 사학자인 이연수(李延壽)는 '북사(北史)'에서 학문에 뜻을 둔 사람은 쇠털처럼 많지만, 학문을 이룬 사람은 기린의 뿔처럼 드물다.(學者如牛毛 成者如麟角:학자여우모 성자여린각)'라고 탄식하였다.
학문을 어느 정도 해 보지 않고서는 자신의 학식이 얼마나 짧고 보잘것 없는가를 알 수 있다. 학문을 접하지 않은 무식(無識)의 상태에서 사람은 자신의 처지를 모르고 거만하거나 경솔해지기 쉽다. 소크라테스도 '너 자신을 알라'고 했는데, 그것은 "너의 무지를 바로 보아라"는 뜻이다.
학문을 시작하는 이의 처지는 흡사 큰 산 오르기를 앞두고 정상(頂上)을 바라보는 사람과 같다. 공자(孔子)께서 동산(東山)에 올라 노(魯)나라가 작은 줄 알았고, 태산(泰山)에 올라 천하(天下)가 한 눈에 들어왔다고 했듯이(登太山而小天下:등태산이소천하), 학문의 경지가 올라갈수록 보이는 진리의 세계도 그만큼 많아지고 수행해야 하는 학문의 길도 더 많아지는 것이다.

佳芸(가운) 金在圓(김재원) 作
* 관련 한문 글귀들
1. 敎學相長(교학상장) [가르칠 교, 배울 학, 서로 상, 자랄 장]
=효학상장(斅學相長), 교학반(敎學半)
- 가르치는 것도, 배우는 것도 함께 지덕을 성장하게 하는 것이다.(권오돈 역 [예기])
- 사람에게 가르쳐주나 스승으로부터 배우거나 다 나의 학업을 증진시킨다.(고사성어사전)
- 남을 가르치는 일과 스승에게서 배우는 일은 다 함께 자기의 학문을 증진시킴.(동아한한대사전)
2. 玉不琢(옥불탁)이면 不成器(불성기)요, 人不學(인불학)이면 不知道(부지도)니라.
(옥 옥, 아닐 불, 쫄 탁, 아닐 불, 이룰 성, 그릇 기,
사람 인, 아닐 불, 배울 학, 아닐 부, 알지, 길 도) - 예기, 학기편
옥은 다듬지 않으면 그릇이 되지 아니하고, 사람은 배우지 않으면 도(道)를 알지 못한다.
3. 後生可畏(후생가외)
(뒤 후, 날 생, 가히 가, 두려울 외)
늦게 공부하는 자는 가히 두려울 만 하다.
- 논어(論語) 자한(子罕)편
새롭게 공부를 시작하는 후학자는 젊고 기력이 왕성하므로 쉬지 않고 배우니 그 진보의 깊이는 두려워할 만하다는 뜻이다. 그만큼 젊은 사람들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4. 등태산이소천하(登太山而小天下)
(오를 등, 클 태, 뫼 산, 어조사 이, 작을 소, 하늘 천, 아래 하)
태산에 오르면 천하가 조그맣게 보인다는 말.
- 맹자(孟子) 진심상(盡心上) 편
"공자께서 노나라 동산(東山)에 올라가서는 노나라를 작게 여기시고, 태산에 올라가서는 천하를 작게 여기셨다. 그렇기 때문에 바다를 구경한 사람에게는 어지간한 큰 강물 따위는 물같이 보이지가 않고 성인(聖人)의 문에서 배운 사람에게는 어지간한 말들은 말같이 들리지가 않는 법이다."
맹자는 이 말에 이어 물의 성질과 해와 달의 밝음과 진리에 뜻을 둔 사람의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노나라는 조그만 나라다. 그러나 노나라 도성이나 시골이나 앞이 막힌 평지에서는 노나라가 큰지 작은지를 볼 수도 알 수도 없다. 설사 간접적으로 견문을 통해 노나라가 작은 나라인 것을 알고 있다 해도 그것을 실지로 느끼지는 못한다. 그러나 노나라 전체를 굽어볼 수 있는 동산에 오르게 되면 노나라가 어느 정도인 것을 환히 굽어보게 되므로 노나라가 과연 작은 나라로구나 하는 것을 알 게 된다.
그러나 노나라가 조그맣게 보이는 동산에서는 천하가 어느 정도 넓다는 것을 모른다. 다만 넓은 천하에 비해 노나라가 작은 것만을 알뿐이다. 하지만 높이 솟아 있는 태산 위에 오르게 되면 넓은 줄만 알았던 천하마저 조그맣게 보이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바다를 구경한 사람은 크게 보이던 강물이 너무도 작게 생각되고, 성인과 같은 위대한 분에게 조석으로 가르침을 받은 사람은 옛날 좋게 들리고 훌륭하게 느껴졌던 말들이 한갓 말재주나 부린 알맹이 없는 것으로 느껴질 뿐이라는 것이다.
이상이 맹자가 한 말의 본뜻이었는데, 지금은 이 "태산에 오르면 천하가 작게 보인다"는 말을 좋은 뜻에서보다 사람의 일관성 없는 태도를 비유해서 말하기도 하고 "개구리가 올챙이 적 생각을 못한다"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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