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성탄절 설교

작성자여호와의 산에오를자!|작성시간25.12.24|조회수71 목록 댓글 0

25년 성탄 메시지

 

본문/누가복음2

지난 시간에 이어 오늘은 누가복음에 나타난 성탄 이야기와 오늘 성탄절을 맞이하여 본문에 나오는 말씀 중

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의 말씀을 가지고 오늘 거룩한 주님의 성탄 축하 메시지를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누가복음서에 나타난 구주 탄생 기사

누가2:1-20절까지 보시면 마태복음과 그 상황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2장을 나누기 전에 먼저 3:23절 이하의 족보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23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하실 때에 삼십 세쯤 되시니라 사람들이 아는 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위는 헬리요

24 그 위는 맛닷이요 그 위는 레위요 그 위는 멜기요 그 위는 얀나요 그 위는 요셉이요.

계속 올라가서 3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38 그 위는 에노스요 그 위는 셋이요 그 위는 아담이요 그 위는 하나님이시니라

이것은 이스라엘의 족보가 아닙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족보는 아브라함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이 족보는 아브라함 위에까지 올라갑니다. 이것은 인간의 족보입니다. 누가복음은 예수님을 이스라엘과만 연관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구세주로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타난 족보는 서로 어떤 차이가 있는 것입니까?

누가복음의 족보는 예수님의 육체적인 혈통, 즉 마리아의 혈통을 따라 올라간 족보입니다.

누가복음2:23절에 나오는 헬리라는 사람은 요셉의 장인 즉 아미라의 아버지입니다. 사실 육체적으로 말하자면 예수님은 요셉과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그래서 마리아의 혈통을 따라 올라가서 아담까지 그리고 하나님까지 연결된 것입니다. 그러나

마태복음에 나타난 족보는 법적인 족보입니다. 법적으로 말하자면 예수님은 양부인 요셉의 혈통을 따라 올라가야 합니다. 이 족보는 아브라함에서부터 시작해서 왕의 혈통인 다윗과 솔로몬을 통해서 요셉까지 연결됩니다. 이것은 법적인 족보이면서 왕으로서의 족보입니다.

이렇게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타난 족보가 서로 다른 것은 두 복음서가 각각 왕으로서의 예수님의 모습과, 인간으로서의 예수님의 모습을 강조하려는 의도에서 씌어졌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의 족보에 관련된 이러한 배경을 염두에 두고 2:1절 이하를 보시면, 여기에는 동방 박사도, 왕을 찾는다고 이야기고, 황금과 유향과 몰약의 이야기도 나오지 않습니다. 5절 이하를 보시면

5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6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7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7절에서 우리는 탄생하신 아기가 구유에 뉘여 있는 모습을 봅니다. 그 다음에 8절에 보시면

8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고, 목자들은 베들레헴 밖에 있었습니다. 이때 목자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8-18절입니다.

9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13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15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16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17 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전하니,

18 듣는 자가 다 목자들이 그들에게 말한 것들을 놀랍게 여기되,

이제 흩어놓았던 퍼즐의 조각들을 다시 모아봅니다. 어느날 페르시아의 상공에 유달리 아름답게 별 하나가 갑자기 나타났습니다. 어떤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메시야가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것입니다. 그것을 동방에 있던 박사들이 보았습니다. 그들은 곧 먼 여행을 떠났습니다.

한편 베들레헴 지경 바깥에 있는 목자들은 갑자기 그들을 둘러 비취고 있는 영광의 빛을 보게 되고 천사들의 노래 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리고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우리의 구주가 탄생하셨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목자들은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즉시로 아기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구세주가 탄생한 사실을 기뻐하면서 떠나갑니다.

그후 많은 시간이 흐릅니다. 6개월 혹은 그 이상의 많은 시간이 흘러간 후에 동방에서 출발하였던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이스라엘에서 탄생하셨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팔레스타인 땅에까지는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팔레스타인의 어디인지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물어 보았던 것이고, 선지자들의 대답을 듣고 베들레헴까지 내려온 것입니다. 그때에 동방에서 보았던 별이 등장합니다. 그 별은 자라난 예수님이 있는 곳까지 박사들을 인도합니다. 그곳은 예수님이 태어나신 마굿간이 아닐 것입니다. 동방의 박사들은 집에 들어가서 예수님 앞에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리고 경배를 드립니다.

이제 크리스마스의 신화를 벗을 수 있습니까? 동방의 박사들과 목자들이 나란히 있는 그림이나 목자들이 무엇을 바치는 그림이 그려져 있는 성탄 카드들은 잘못된 것입니다. 성경은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늘 본문에서 우리가 확인해야 할 성탄 말씀은 10절입니다. 천사들이 목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온 백성이란 베들레헴에 도착한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한 말중에 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라는 유대인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땅에 과거부터 예언하셨고 2천년 전에 메시야로 오신 아기 예수님은 온 인류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롬15:9-12절에서

9 이방인들도 그 긍휼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된 바 그러므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10 또 이르되 열방들아 주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라 하였으며,

11 또 모든 열방들아 주를 찬양하며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하라 하였으며,

12 또 이사야가 이르되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하였느니라.

모든 열방들을 위한 온 백성 입니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이땅에 오신 목적을 주님께서 유언과 같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기 직전에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고 부탁하십니다.

그리고 큰 기쁨의 소식이란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의미합니다. 이땅에 오신 예수님의 구주 탄생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것은 우리인간의 이성과 지혜로는 있을수 없는 것입니다.

어떻게 신이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날 수가 있습니까? 어떻게 인간이 죽은이 사흘이 지났는데, 그것도 유대땅인 아열대 지역에서 이틀이 지나면 온 육체가 썩어들어가는데, 그 속에서 다시 살아나 사도행전 1장에 보시면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계시다가 하늘나라로 그들이 보는 그대로 승천하셨다는 게 이해가 됩니까? 그래서 기독교의 가장 중심은 이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오셨다는 탄생의 역사를 받아 들이기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이성으로 받아들일수 없기때 믿음의 영역입니다. 그 마음속에 성령이 역사하지 않으면 끝까지 이성과 지성으로 반응하기 때문에 받아 들일 수가 없게 됩니다.

그러면 이땅에 예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로, 예수님께서 온 인류에게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인간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모두 아담 안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마땅한 죄성을 갖고, 자범죄를 짓고 사는 죄인들입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아담의 원죄를 지니고 태어나기에 죄를 짓고, 죄성과 죄에 대한 죄책을 가지고 살아야 할 존재입니다.

인간은 죄 문제에서 해결할 수 있는 열쇠가 없습니다. 그래서 롬3:10절에,

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라고 하였으며, 그 지은 죄로 말미암아 영원한 심판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죄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하여 죄 없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십자가에 지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공생애 첫 시작과 함께 선포하신 말씀이 바로,세례받으시고 멘 먼저 선포하신 말씀이 마태4:17절의 말씀입니다.

17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우리의 죄 문제는 이땅의 죄 없으신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인간 모든 죄를 대신지시고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신 그 예수님의 대속의 십자가 사역을 믿고,,예수님의 보혈로 죄 씻음 받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그 십자가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 들여야 합니다. 그냥 성경에 그렇게 써있으니 머리로만 인식하고 입술로 중 염불하듯이 주여, 믿습니다.”라고 한다면 전혀 변화가 안 일어 납니다.

전인격적인 반응이 있어야 합니다. 이땅에 오신 예수님의 탄생의 목적을 지식적으로 알고 배우고, 그리고 내 자신의 죄 문제에 대하여 아파하고, 이 죄문제를 해결하기를 소원하는 감정적인 뜨거운 마음을 가지고,

의지적으로 예수님의 나의 구세주와 주인으로 모시는 고백을 할 때 내안에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이런 마음으로 고백기도를 자주해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새로운 피조물이니...라는 말씀이 여러분 안에서 그렇게 경험되어지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인간의 최대의 문제가 죽음의 문제입니다. 주님께서 이당에 오신 목적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죽음은 어떤 인간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사람들은 죽기를 원치 않습니다. 죽음을 피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태어나듯이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죽음을 향해 가는 그런 존재입니다.

태어나는 것 만큼 죽음은 가장 확실한 사실입니다. 이땅에 태어나는 모든 인간은 다같이 죽습니다. 이것은 필연입니다. 때로는 교만한 인간은 이 죽음을 피해보기를 원해서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하기도 합니다. 오늘날에는 유전자 생명공학에 희망을 두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국 히9:27절의 말씀처럼

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당하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심으로 인해 인류에게 미치는 이 죽음을 이길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누구든지 주님을 나의 주인으로 영접하고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라는 말씀이 실재가 됩니다. 육신의 죽음은 죽음이 아니라. 잠을 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한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영생의 축복을 얻게 됩니다. 그야말로 예수님의 탄생하시므로 구원의 빛이 누가복음1:79절의 말씀처럼

79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하니라.

평강의 길, 영원한 천국 길로 인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탄생은 어느 특정인 사람이나 나라에 국한 된 것이 아니라. 이 땅의 모든 인간 인류에게 아주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이 구원의 소식보다 더 기쁘고 강력한 소식이 있습니까? 이 소식이 바로 복음입니다. 하나님은 이 복음을 우리 모든 믿음의 성도들이 만방에 전하기를 원하십니다. 첫 번째 복음은 천사가 목자들에게 전해 주셨지만 지금은 지에는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를 받은 우리 모두가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땅의 모든 성도들을 통해서 이 복음이 온 백성에게전파되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오늘 성탄절에 주시는 성탄 메시지가 아니겠습니까?

 

한걸음 더 나아가서 10절에서는 천사들이 목자에게 메시야 탄생에 대한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천사들은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뉴인 이 아기가 곧 구세주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여러분 세상을 구원하신 구주의 등장치고는 너무 시시하지 않습니까? 천사들은 구주가 아주 위대하고 엄위로운 모습으로 하늘에서 강림하셨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구유에 갓 태어나신 아기가 구주라고 하셨습니다. 온 인류의 구주가 한 인간으로 태어나셨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리얼하게 잘 표현해 주고 있는 기독교 작가 필립 얀시의 표현을 들려 드리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탄생에 대하여...

필립 얀시의 저서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What's So Amazing About Grace?)**에서도 그는 성탄과 성육신의 신비를 '은혜'라는 관점에서 매우 깊이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이 책에 나타난 주요 표현과 통찰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하나님의 모험: 연약함 속으로의 침투"
얀시는 성육신을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감행하신 **'위험한 모험'**으로 묘사합니다.
무력한 하나님: 그는 하나님이 로마 군대나 천군천사를 거느리고 당당하게 오신 것이 아니라, 누군가 돌봐주지 않으면 생존조차 불가능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은혜의 시작: 이는 하나님이 인간을 힘으로 굴복시키려 하지 않으시고, 인간의 가장 연약한 부분까지 함께 나누며 우리를 사랑으로 설득하려 하시는 '은혜의 방식'임을 강조합니다.
2. "거꾸로 된 가치: 가장 낮은 곳으로 임함"
책에서 얀시는 성탄의 배경이 결코 화려하지 않았음을 상기시킵니다.
마구간의 영성: 가장 거룩하신 분이 가장 불결하고 냄새나는 마구간에 임하셨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은혜가 자격 없는 자, 소외된 자, 낮은 곳에 있는 자들에게 먼저 향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설명합니다.
예상치 못한 방식: 사람들은 위엄 있는 왕을 기다렸으나, 하나님은 비천한 목자들의 경배를 받는 초라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얀시는 이것이 바로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놀라운 은혜'의 본질이라고 말합니다.
3. 책 속의 인상적인 통찰
"성육신은 하나님이 인간의 고통을 멀리서 지켜보시는 분이 아니라, 직접 그 고통 속으로 걸어 들어오신 사건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기 위해, 기꺼이 은혜가 필요한 존재(아기)가 되셨다."
얀시는 이 책을 통해 성탄이 단순히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우리 삶의 가장 어둡고 추한 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침투해 들어오는 살아있는 소망임을 전하고 있습니다.

높고 높이 계신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땅에 가장 낮은 말구유에서 탄생하셨는데, 그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계시하시는 천사를 본 목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매우 무서워했다는 것입니다.(9)

이는 세례요한의 부친인 사가랴나 마리아도 마찬가지였습니다.(1:1,12,30)

12 사가랴가 보고 놀라며 무서워하니,

30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뿐만 아니라 주의 천사를 본 모든 사람들이 한결같이 떨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그러했으며(6:4-5)에스겔 선지자도 그러했습니다.(1:28-2:2) 다니엘 선지자는 아예 혼절하여 앓아 누었다고 합니다.(8:27) 기드온 사사는 천사를 보고 죽는 줄 알았다고 하며 울었습니다.(6:22)

여러분 이렇게 신앙의 위인들도 하나님의 천사 앞에 다 떨고 무서워했습니다. 그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죄성을 지닌 인간이 거룩한 하늘의 존재앞에 떨 수밖에 없습니다. 왜 인간은 무서워하고 떱니까? 죄 때문에 그렇습니다.

한가지 예로 제자들과 예수님이 갈릴리 바다를 건널 때 바람이 풀고 파도가 일 때 제자들은 무서워 떨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편안하게 주무셨습니다. 왜 그럴까요? 죄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경찰만 보아도 비슷한 마음이 생기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은 직접 뵌다면 어떻게 될까요? 말할 수 없는 두려움과 아픔을 느낄 것입니다.

그 담대한 모세도 하나님 앞에 그 영광을 보면 심히 떨었습니다.(12:21/21 그 보이는 바가 이렇듯 무섭기로 모세도 이르되 내가 심히 두렵고 떨린다 하였느니라.)

그러니 우리같은 범인들이 하나님을 직접 목격한다면 아마도 에스겔 선지자와 같은 현상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같은 인간으로 태어나셔서 이땅에 오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 가운데 제2위의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그분도 직접 뵈면 엄청난 두려움에 휩싸일 것입니다. 변화산상에서 변화된 예수님의 영광의 형체를 직접 본 제자들은 어떠했습니까? 그 사실을 마태17:5절 이하에 나타나고 있는데,

5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6 제자들이 듣고 엎드려 심히 두려워하니

7 예수께서 나아와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이르시되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니,

매우 두려워했습니다. 또한 계시록에서도 주님의 영광스러운 형테를 목격한 사도 요한도 엄청나게 두려워했습니다.(1:9-17)

그러한 까닭에 하나님이 우리 같은 인간으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무서움 없이 하나님과 교제케 하시려고 인간으로 한 아기로 탄생하신 사건이 바로 성탄 사건입니다.

이제 그리스도께서 인간으로 오신 한 이유를 아실 것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두려움 없이 섬기게”(1:75) 하시려고 비천한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놀랍습니까? 여러분 그 높은 영광의 보좌를 버리시고 비천한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의 탄생은 희생적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제 누구든지 이런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 무서움 없이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10:19절에,

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나아가서 성령을 받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교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8:14-16)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이 성탄절앞에 우리는 이런 죄없으신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우리의 죄문제를 해결하시고자 이땅에 보내신 아버지 하나님께 찬양을 드립시다. 우리를 위해 낮아지신 예수님을 찬양합시다. 오늘 거룩한 성탄절 온전히 찬양으로 그분앞에 나아가기를 되기를 바랍니다.

 

성탄을 맞는 우리의 자세

우리는 이렇게 탄생하신 예수님을 어떻게 맞이하여야 하겠습니까? 마태복음의 초점은 그분은 왕이시다.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왕 되신 주님 앞에 나아와서 경배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누가복음의 메시지는 예수님께서 참 사람으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에는 경배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참 인간이신 예수님의 뒤를 따라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모본이 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심을 생각할 때마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여러분과 저는 성경에서 성탄을 축하하라는 말씀을 읽어보셨을 것입니다. 성경에는 그런 말씀은 사실 없습니다. 그려면 축하하지 말라는 말씀 입니까? 아닙니다. 그러니 축하해야 할 마땅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출생을 기억하라는 것은 없지만 예수님의 죽으심을 기억하라는 말은 있습니다. 성만찬의 의미가 그것입니다. 고전11:24절에 보시면,

이것은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해서 돌아가신 예수님, 그분의 죽으심을 기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제가 왜 이런 말씀을 드리겠습니까?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일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만약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떠난 출생 그 자체만 기뻐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의미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땅에 왜 오셨습니까? 그분은 죽으시기 위하여, 구속의 제물로서 그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서 드리시기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십자가를 떠난 크리스마스는 그 진정한 의미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성탄절은 예수님께서 죽으시기 위해 오신 날이 성탄절입니다. 나를 위해서 나의 죄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는 나 대신 죽으시려고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셨습니다. 그것이 성탄절입니다. 이런 성탄을 묵상하면서 이번 25년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다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

이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은 왕으로서, 우리와 같은 인성을 가진 인간으로서, 그리고 요한복음에서 가르치는 바와 같이 하나님의 아들인 신으로서, 그리고 우리를 위해 이땅에 오셔서 종과같이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기 위하여 종일 분주하게 사역하시는 종의 모습으로서 오셨습니다. 이 모든 것을 생각하시면서 우리가 어떻게 이번 성탄을 맞이할 수 있는지를 더 깊이 깨닫게 해 달라고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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