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를 알자-3
죄로부터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본문/행전5:30-31절
30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31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 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성경의 기록들은 예수님이 왕이심을 증거 합니다.
사극중에 보면 왕을 소재로 한 영화와 드라마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의 왕이 아닙니다. 그들은 그 시대를 살았던 백성들의 왕일 뿐입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우리의 왕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단시 예수님을 구세주로만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탄생에 관한 기록들을 살펴보시면 예수님이 왕이라는 것을 알수가 있습니다.
이사야9:6절에 보시면 이사야가 예수님을 왕으로 태어날 것을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대표적인 메시야 예언중의 하나입니다.
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것임이라.
다음으로 예수님의 족보를 보시면 예수님이 왕이라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마태1:1절에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로 시작하여 예수님의 족보를 보시면 왕의 족보입니다.(마1:6-11)
다음으로 마리아를 방문한 가브리엘의 천사의 증언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왕인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눅1:32-33절입니다.
32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33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또 세례요한의 아버지 제사장인 사가랴의 말을 보면 예수님이 왕인 것을 알수가 있습니다. 눅1:69-71절에서,
69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70 이것은 주께서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71 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일이라 .
그리고 동방박사들의 출현과 경배가 예수님이 왕이심을 증거해 줍니다. 그것이 마태2:9-11절에서 발견됩니다.
9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 있는지라
10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11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그들이 예수님께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렸는데 이것은 다 왕에게 드리는 예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왕인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실 왕이십니다.
예수님은 왕이십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착각을 한 것처럼 외국 압제에서 우리를 해방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은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왕이십니다.
마태1:21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그런데 죄에서 구원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질까요? 여기에 대해서 무지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탄생과 예수님의 희생이 헛되게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헛되게 믿는 목사들, 헛되게 믿는 신자들이 광장히 많습니다. 그래서 죄로부터의 구원이 실제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성경을 통해 자세히 알아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1.예수님은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십자가의 중요성은 다음 구절들에 나타나 있습니다.
고전2:2절,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갈6:14절, 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인간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가 없고 십자가의 대속을 통해서만 구원이 가능합니다.
십자가는 기독교의 상징입니다. 또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입니다. 복음을 성경에서는 십자가의 도라고 부릅니다. 십자가의 중요성 때문에 사복음서 기자들은 예수님의 사역보다도 예수님의 마지막 주간에 대해서 굉장히 많은 부분을 할애했습니다. 마태복음은 2/5, 마가복음3/5. 누가복음1/3, 요한복음1/2을 항애했습니다. 십자가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십자가가 왜 중요합니까?
그것은 십자가를 통해서만 구원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이들이 착한 삶을 살면 죽은 후에 좋은 곳에 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선행은 죄 값을 만족시킬 수가 없습니다.
왜 선행이 죄 값을 만족시킬 수가 없습니까? 선을 행하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심을 받은 인간이 선을 행하며 사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래서 죄 값을 대신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이 할수 있는 최고가 선인에 선이 죄 값을 대신할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가 없습니다. 4대 성인이라고 일컬어지는 소크라테스나 공자도 석가도 자기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누구도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마치 장기가 심각하게 훼손된 사람에게 새로운 장기의 이식 수술이 유일한 희망인 것처럼 대속은 인간에게 유일한 희망입니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대속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대신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대속이고 그것이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하신 일입니다.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로 죄의 값을 지불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무엇으로 우리를 대속하셨습니까? 피를 통해서입니다. 성경이 죄 사람을 말할 때 예수님 십자가 피로 좁혀 들어갑니다.
히브리서9:22절에, 22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베드로전서118절에, 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피에 생명이 있기 때문에 피를 순환시키는 심장이 멈추면 사람은 죽스빈다. 죄의 삯은 사망인에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기 때문에 죄의 삯은 피로 지불해야 합니다. 즉 생명으로 값을 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죄의 값으로 지불하신 것은 하나님의 보배로운 피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한 사람의 죽음으로 모든 사람이 죄 용서를 받을수 있을까요?
사도행전20:28절에, 28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이 말씀을 보시면 사람의 피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피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피로 그랬습니다. 하나님은 몸이 없습니다. 피가 없습니다. 죽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땅에 인간으로 오신 것입니다. 제물이 되어 죽기 위해서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던 것입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피는 하나님의 피입니다.
▲모든 거래의 원칙은 비중이 같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히10:1-4절에서, 10:1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2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하게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제사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3 그러나 이 제사들에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4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황소가 염소의 피는 죄를 없이하지 못합니다. 죄를 덮어주기만 합니다. 같은 피조물이라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은 짐승보다 귀하므로 소나 양의 죽음으로 대속이 불가능합니다. 대속에 유효하기 위해서는 지붕이 같아야 합니다. 이것이 모든 거래의 원칙입니다.
사람은 소나 양보다 더 귀합니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합니다. 온 세상에 있는 모든 동물보다 귀합니다. 왜냐하면 그 가치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모양대로 지음을 받은 것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가치는 온 세상을 다하고도 안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한분이 희생을 했으면 온 인류의 죄를 다 담당하고도 남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피를 보배로운 피라고 했습니다.
벧전1:19절에, 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예수님의 피는 보혈입니다. 보혈이 무엇을 뜻합니까? 금과 같은 보배는 작은 부피라도 굉장히 가치를 지닙니다. 예수님의 보혈은 양의 문제가 아닙니다. 구약시대 때 수많은 소와 양들이 죽어갔습니다. 그것을 다 모으면 한강이 넘쳐 흐를것입니다. 예수님의 피는 양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피입니다. 예수님의 피는 그 모든 양과 염소의 피를 능가합니다. 예수님의 피는 모든 인류의 피를 능가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그 피를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피를 믿고 그 피를 의지하시기를 바랍니다.
2.하나님은 시바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보혈로 우리 죄를 사하셨을 뿐 아니라. 그 피로 우리를 사셨고 왕이 되셨습니다.
많은 목사님과 신자들이 구원을 단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을 믿고 죄 사함을 받는 것”으로만 생각합니다. 실제로 수많은 목사와 신자들이 피상적으로 구원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구원은 그렇게 주어지지 않습니다. 왜 구원이 그렇게 주어지지 않느냐? 왜냐하면 하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을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반쪽짜리 진리가 문제입니다. 그것은 미혹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모든 죄를 지셨고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여기까지가 반쪽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흘린 보혈로 우리의 죄를 사하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흘린 보혈로 우리를 값 주고 사셨습니다.
행전20:28절에,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고전7:23절, 23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계시록5:9절, 9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심지어 베드로 사도는 자기를 사신 주를 부인하면 이단이라고 했습니다.
벧전2:1절, 2:1 그러나 백성 가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예수님은 주님이시고 왕이시며 우리의 임금이라는 것을 부인하면 멸망케 할 이단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피로 우리의 죄를 사할 뿐만 아니라 우리를 사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임금이 되셨습니다.(빌2:5-11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은 대제사장인 동시에 왕임을 의미합니다.
이 진리를 다른 방식으로 설명해보면 예수님은 구약이 약속하고 있는 그리스도입니다. 메시야입니다. 베드로가 마태복음16:16절에서 말한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라는 고백에서 하나님의 아들은 예수님의 신분이고, 그리스도를 예수님의 직분입니다.
예수님은 본래 그리스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셨는데, 기름부음받은 자를 뜻하는 그리스도가 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구약에서 기름부음을 받은 그리스도는 제사장과 왕과 선지자인데 선지자들은 의식을 행하지 않았고 왕과 제사장만 기름붓는 의식을 행했습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은 예수님이 특별히 왕이시고 제사장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대제사장으로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그 죽음을 통해서 왕이 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 자체가 예수님은 구주일 뿐 아니라 왕임을 의미합니다. 이 진리는 예수님의 탄생 기록에도 분명하게 계시 되어 있습니다.
누가2:8-11절, 8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9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마태2:1-3절,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3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믿음은 영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임금과 구주로 마음에 모셔들여야 합니다.
예수님이 임금이 되기 위해 태어나는 분임을 아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의 믿음의 대상이 예수님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믿음의 성격이 크게 달라집니다. 믿음은 요한복음에 의하면 영접하는 것, 마음에 모셔들이는 것입니다. 그것이 요한1:12절에,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예수님을 구주로만 모셔 들이면 구원받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반드시 임금과 구주로 모셔들여야 합니다. 그래야만 구원 받을 수 있습니다.
요한1:11-12절,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행전2:36절, 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행전16:31절, 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머리로만 동의하는 것은 참된 믿음이 아니며(지적동의) 마음으로 예수님을 임금과 구주로 인정하고 모셔 들여야 역사하는 참된 믿음이 됩니다. 마태7장에서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하신 그들은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었습니다.
머리로만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생각하지만 삶속에서 자기가 왕 노릇하고 죄와 세상이 자신의 주인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이 주인이고 자기가 주인이기 때문에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은 종이 주인을 따르듯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런 참 믿음을 가진 신자만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3.복음을 믿을 뿐 아니라 죄를 회개해야 예수님을 임금과 구주로 모셔들일수 있습니다.
행전20:21절에, 21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한 것이라.
히브리서6:1절,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우리는 복음을 믿을 뿐 아니라 반드시 자기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가 회개해야 하는 이유가 두 가지 있는데 그 중 첫 번째는 예수님이 구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갖든 회개를 하든 지옥에 가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회개 그 자체가 우리를 구원할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예수님의 피 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절망뿐인 우리에게 희망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피를 흘려 주셨기 때문에 회개하면 그 피가 우리에게 유효하게 된 것입니다. 즉 예수님이 구주가 되셨기에 우리가 회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계시록7:9-10절에, 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10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만약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사람이 되지 않았다면 예수님도 사람을 구원하실수가 없었습니다. 그분이 십자가를 지지 않았다면 그래서 피를 흘리지 않으셨따면 우리를 구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사람이 되시고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구원하심이 보좌에 계신 우리 하나님과 예수님께 있도다.”라고 찬양하지 않고 “구원하심이 보좌에 계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께 있도다.”라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회개를 촉구하는 것은 십자가 공로로 구원받는다는 진리와 전혀 충돌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삼았고 그분이 어린양이 되셨기에 우리가 회개해야 한다는 것은 전혀 충돌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회개해야 하는 이유 두 번째는 예수님이 임금이기 때문입니다.
사사기17:6절, 6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였더라.
사사기21:25절에, 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였더라.
이것이 왕이 세워지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불신자들의 상태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왕이 없는 백성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왕이 계신데 그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우리의 왕은 예수님이십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단순히 구주시라면 믿고 고백만 하면 천국에 가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구주이기 이전에 임금이십니다. 임금이기 때문에 죄 사함만 약속한 것이 아니고 우리에게 복종을 요구하십니다. 우리에게 충성을 요구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 복종하고 충성하려면 우리가 지금까지 복종하고 충성해 왔던 것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그것이 회개입니다. 그래서 세례요한과 예수님이 제일 먼저 외친 것이 믿으라는 것이 아니고 회개하라고 한 메시지였던 것입니다.
마태3:1-2절,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
2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마태4:17절, 17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마음의 왕이 바뀌지 않고 믿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왜 세례요한은 광야에서 회개하라고 외쳤을까요? 왜냐하면 왕이신 예수님이 오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왕이 바뀌어야 합니다. 왕이 바뀌지 않고 믿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마음이 천국이 되지 못하고 천국 백성이 되지 못하고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왜 회개하라고 외쳤습니까? 본인이 왕이셨기 때문입니다. 즉 왕이 바뀌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회개하면 왕이 바뀝니다.
그래서 주님이 우리 마음을 다스리시고 그래서 우리 마음이 천국이 되고 죽은 후에는 천국에 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회개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믿기만 하면 천국에 가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왜 개해야 합니다. 그것은 삼천명을 회개시킨 베드로의 설교에 분명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오순절 날 성령님이 강림하셨을 때 베드로는 성령에 충만하여 즉흥설교를 했습니다. 열흘간 설교를 준비한 것이 아니라. 기도했고 설교를 성령님의 감동으로 즉흥적으로 한 것입니다.
이 설교는 온전히 성령께로부터 온 메시지였고 절대적인 것이었기에 성경이 되었습니다. 행전2:36-38절에 있습니다.
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이것은 신약시대의 초대 교회시대의 최초의 복음 전파였습니다. 베드로는 오직 믿음만 요구하지 않고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뿐 아니라 회개까지 배제한 “오직 믿음”이라는 말은 비성경적인 것입니다.
▲유대교...그리고 기독교가 종교화되고 부패할 때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보내시고 회개를 촉구하셨습니다.
“오직 믿음”이라고 외치는 사람이 목사라면 유명한 부흥사가 한 말이라면 신학박사가 한 말이면 맞는 말이고, 반대로 일반 목사가 “회개하라”고 외치면, 아니 세례요한도, 베드로도, 더구나 예수님 자신도, 사도바울도 틀렸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예수님은 구주인 것만 강조한 결과 수많은 성도들이 교회는 다녀도 회개를 하지 않고 그냥 죄 가운데 살아갑니다. 집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 목사가 되지만 결국 죄 가운데서 지옥에 가는 사람들이 수없이 나옵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지는 일이 예수님 당시 유대교 안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었고, 오늘날 기독교 안에서도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유대교가 점점 종교화되어 율법이나 가르치고 무슨 의식이나 행하고 부패할 때는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보내셨습니다.
선지자들은 성경을 강해하고 가르치는 일에는 관심이 없었으며 그들의 메시지는 단 하나 “회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너희들이 선민이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그렇게 살다가는 심판을 받고 멸망을 받으니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도 예외가 아닙니다. 신학이나, 전통, 강해설교,제자훈련을 이야기 하지만 목사들이 회개를 외치지 않기에 신자들이 세상의 참된 빛과 소금이 못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보내고 계십니다.
그 빛과 소금 중의 하나가 드문드문 회개를 강조하고 참 믿음을 가르치는 교회와 목회자인 것입니다. 교회 안에 수 많은 신자들이 지옥에 가고 있는데 그들을 깨워 회개하고 바른 믿음으로 천국 가도록 인도하는 일에 쓰임 받는 목사와 교회들인 사단이 얼마나 싫어하겠습니까? 그러니까 종교적인 교회를 통하여 이단으로 매도하는 것입니다. 바른 진리를 증거 하는 교회가 바로 진짜 참 교회읹 것입니다. 그것이 딤전3:16절에 교회의 본질이 뭐냐 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참된 진리를 증거하는 진리의 터와 기둥 되는 교회라고 합니다.
4.예수님을 임금과 구주로 인식하고 회개하는 사람만 죄 사함을 받고 천국에 들어갈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다음 세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1.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셨다.
2.하나님은 이런 예수님을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다.
3.예수님이 임금과 구주이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의 죄를 회개 해야 한다.
이것은 한치도 성경에서 어긋나지 않는 성경 자체가 말하고 있는 100%의 진리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 단계의 진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에게 죄 사함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구원이 주어지는 방식과 과정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 임금과 구주임을 알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사람들에게 죄 사함을 주십니다.
죄 사함은 위에 설명한 과정들을 거쳐서 주어지는 것이지 그냥 “내가 잘못했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십자가만 의지합니다.”라고 말한다고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이들이 자신이 의롭다고 하지 않으셨고 벌거벗고 사는 사람들이 허다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다 짊어지시고 돌아가셨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우리의 임금과 구주로 만드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주일 뿐만 아니라 임금이라는 것을 알고 예수님이 내게 임금이 되려면 반드시 회개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회개하는 자에게 죄 사람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구원은 이런 방식으로 이런 과정을 통해서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구원은 단순히 “죄사함”이 아니라 “죄에서 자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구원은 단순히 죄 사함만이 아니라 죄에서 자유 하게 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요한8:34-36절에 그 사실을 말씀합니다.
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35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36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죄 사함을 받아야 구원이 있는 것이고 죄 사함이 없이는 구원이 없는 것이므로 예수님은 죄 사함을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습니다.
마태26:28절, 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누가1:77절에, 77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
이렇듯 죄 사함을 받아야 구원을 얻는데 죄 사함은 회개하는 자에게만 주어집니다. 회개하고 믿는 자에게 말입니다. 구원은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것이며 그 죄사함은 회개하고 믿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죄 사함을 받을 수 없는 두 가지 죄가 있습니다.
다음의 두 가지 죄를 지으면 죄 사함을 받을 수 없고 따라서 구원을 받지 못하고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성령훼방죄를 지으면 죄 사함을 받지 못합니다.
죄 사함이 없으면 사람이 스스로의 죄의 값을 지불해야 합니다. 죄의 값는 사망입니다. 그러므로 죄의 값을 지불하기 위해 그는 죽어야 합니다. 이는 단순히 육체적인 죽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둘째 사망, 즉 지옥의 영원한 형벌을 말하는 것입니다.
막3:28-29절에 보시면,
2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모든 모독하는 일은 사하심을 얻되
29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되느니라 하시니,
많은 목회자들이 이 죄 때문에 지옥에 갑니다. 예수님이 성령의 권능으로 귀신을 쫓으시는데,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귀신 쫓아내는 이 권능을 바알세불(귀신의 왕)을 힘입어 쫓아냈다고 예수님을 매도하였습니다. 성령이 역사하는데 병을 고쳤는데 귀신 역사라고 합니다.
이 때 예수님이 위의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성령이 역사하는 데 자꾸 귀신 역사라고 하고 이단이라고 하는 것은 성령 훼방죄 입니다.
그리고 이 죄는 사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무서운 것입니다. 하지만 성령훼방죄도 두 가지가 있습니다. 모르고 한 것은 용서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알면서도 진짜 두 눈으로 확인해 놓고도 시기심이나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마귀역사라고 하는 것은 무조건하고 지옥행 입니다.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상대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그 사람은 100% 지옥행입니다. 그러므로 함부로 “귀신의 역사다, 이단이다.”라고 말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용서하지 않는 죄는 죄사함을 받을수 없습니다.
주기도문 중에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고 하신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으므로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이렇게 말하지 않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주기도문 중에서 단 한 문장에 대해서만 예수님이 부연 설명을 하십니다. 마태6:14-16절에 주기도문을 끝나고 부연설명을 하시면서
14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15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용서의 중요성은 일만 달란트 빚진자의 비유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빚진 자를 옥에 가둬버렸는데 거기가 천국이겠습니까? 아닙니다. 지옥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우리를 용서하지 않으신다는 말입니다. 죄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인데 죄사함이 주어지지 않으니 자기가 모두 책임지고 영원히 지옥에 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성도는 자백할 죄는 있어도 회개할 죄는 없어야 합니다.
마가복음4:12절에, 12 이는 그들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시고,
누가복음24:47절에, 47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회개한 사람도 성숙한 자가 아니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넘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죄가 그를 주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주관하는 죄가 있어요, 어떤 죄든지 아주 습관적이면서 자기를 주관하는 죄가 있어요, 그 죄는 회개해야 합니다. 그런 죄가 하나라도 있지 않도록 철저하게 회개하고 예수 믿는 신앙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누가15:7절에 예수를 믿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양 우리라는 말은 일종의 교회를 말합니다. 99마리는 열심히 신앙 생활하는 신자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00마리 중에 99마리는 영적으로 잘 하는데 한 마리가 길을 잃었다고 찾았습니다. 그리고 그 한 마리를 찾아오니까 하늘에서 기뻐서 잔치가 벌어졌다고 했습니다. 기독교인은 완전히 성숙해지기 전까지 완전히 거룩해지기 전까지는 죄를 짓습니다. 우발적으로 짓습니다. 그러나 그런 죄는 자백할 죄이지, 회개할 죄는 아닙니다. 그 죄가 습관적인 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죄에 종노릇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죄가 자신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예수님이 그를 다스리는 것이고 예수님이 왕이십니다. 그러나 육신이 있기 때문에 때때로 유혹을 받아서 넘어지는 것은 자백하면 되는 것이며 기독교인은 회개할 죄가 없습니다. 교회에 다닌다는 것이 여러분을 천국 보내주는 것이 아니고, 열심히 기도하고 금식한다고 여러분을 천국 보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죄에서 돌이키고 회개해야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왕 되심을 인정하지 않는 자를 멸망을 당합니다.
결론으로 말씀드립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임금과 구주이십니다. 이 순서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래서 이 순서를 고수해야 합니다. 계시록에 나오는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의 마음속에 예수님이 계시지 않았다는 말은 그들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지만 임금으로는 영접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계3:20절에, 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누구든지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고 모셔들이지 않는 자는 결국 멸망합니다.
누가19:12-14절에, 12 이르시되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13 그 종 열을 불러 은화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 하니라
14 그런데 그 백성이 그를 미워하여 사자를 뒤로 보내어 이르되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나이다 하였더라.
이것은 예수님 자신에 대해서 자신이 왕이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종들 같지만, 주님을 따르는 자 같지만, 섬기는 자 같지만 실상은 자신이 왕이 되기를 원하고 예수님이 왕 됨을 원치 않는 사람들, 죄가 자신의 왕이 되기를 원하고 그래서 죄와 세상이 주는 것을 누리기를 원하는 자들은 예수님은 자신의 백성이라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들을 원수라고 칭하셨습니다.
“나의 왕 됨을 원치 않던 저 원수들을 끌어다가 죽이라” 둘째 사망인 지옥불에 던져넣는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세상에 다시 오실 때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고 진실로는 예수님을 임금으로 모셔들이지 않은 모든 거짓 된 신자와 목사들을 지옥에 던져 넣으실 것입니다. 문제는 나의 임금이 누구냐는 것입니다. 나의 영혼은 누구의 나라냐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에게 복종하고 누구에게 충성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더 늦기 전에 예수님을 왕으로 모셔 들이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백성을 사랑하는 왕입니다. 우리가 그분을 위해서 살아가면 그분은 우리를 돌보십니다. 목자가 양을 돌보듯이 돌보십니다.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십니다. 우리를 높이십니다.
인류가 한번도 보지 못했던 완전한 왕이십니다. 완전한 사랑 이십니다. 그분이 우리의 왕이 되시는 것보다 더 복된 일은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으로 자기 임금을 삼는 나라 (백성)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시편33:12절에, 12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선택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나라입니다. 거룩한 나라요, 왕같은 제사장이라고 했습니다.
빌립보서3:12절에,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바울이 푯대는 “주님께 완전히 잡힌바 된 완전히 통치된 상태”였습니다. 그것이 셋째 하늘 입니다.
그것이 천국에서 가장 영화로운 지경입니다. 그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안에서 그렇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철두철미하게 왕이 되실 때 나는 철두철미하게 종이 되고 철두철미하게 그분께 굴복하고, 예수님이 철두철미하게 나를 다스릴 때, 나는 단순히 나의 마음이 천국인 정도가 아니라. 셋째 하늘, 즉 하나님의 보좌나 보좌 주변 같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들은 말씀을 생각하시면서 다함께 기도합시다.
구원의 조건은 그냥 믿음이 아닙니다. 회개와 믿음입니다. 이 믿음에서 빼 놓을수 없는 것이 바로 예수님은 임금과 구주로 모셔 들이는 것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 같은 돈 많은 교회라도 그들은 예수님을 구주로만 믿으면 반쪽 자리 믿음밖에 되지 않아서, 그 안에 예수님이 안 계신다고 합니다.
우리는 철두철미하게 예수님을 임금과 왕으로 모셔 들여야 합니다.
그분께서 나를 실제적으로 다스리도록 나를 맡겨야 합니다.
주여 나를 다스려 주옵소서. 나의 주인이 되어 주시옵소서.
주는 철저하게 주의 종이 되게 하소서. 라고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