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은 세계 어디서나 통하는 보편적인 진리
본문/골1:1-8절
1: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2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에게 편지하노니 우리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3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음이요
5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6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7 이와 같이 우리와 함께 종 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 그는 너희를 위한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요
8 성령 안에서 너희 사랑을 우리에게 알린 자니라.
성경의 어떤 구절들은 마치 수수께끼와도 같습니다. 그래서 알 듯 모를 듯 무슨 뜻인지 도무지 감이 잡하지 않는 구절들이 많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본문에 나오는 6절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6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이 구절 속에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열매를 맺어 자란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모두다 신체가 자라고, 지혜가 자라듯이 영적으로 자라고 열매를 맺고 싶어 하실 것입니다. 만약 그런 마음이 없다면 영적으로 죽은 자들입니다. 영이 살아서 진짜 참 구원의 자리에 앉아 있다면 그런 마음은 누구에게나 다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 주일부터 이 말씀의 의미를 본격적으로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복음은 우리가 단지 이해하고 동의 해야 할 교리가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반드시 믿고 경험해야 할 능력이 복음입니다. 그것이 분명히 롬1:16절에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은 세계 어디서나 통하는 보편적인 진리이고, 그 능력도 누구나 경험할수 있는 보편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에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라고 롬1:16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6절에는 더욱 잘 나타나고 있는데, 6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먼저 ”복음“이라는 단어에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해야 우리가 열매를 맺고 자랄수가 있습니까? 바꾸어 말하면 어떻게 해야 변화될 수가 있습니까? 비결은 하나 복음뿐입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율법의 행위나 인간적인 어떤 노력으로도 불가능합니다. 오직 복음으로만 가능합니다.
다시 원론으로 돌아가서, 바울은 복음이 효과가 있다는 것을 이 절에서 세가지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첫째,복음은 과거에도 역사했다고 합니다.
”이 복음이 이니 머희에게 이르매“
복음은 골로새에 도착하기 전 이미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되었습니다. 그리고 효과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여전히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복음은 과거에 확실히 효과가 있었습니다.
둘째로, 복음은 현재도 역사합니다.
”너희 중에서와 같이“라고 하였습니다.
복음은 현재 골로새 성도들에게도 역사하고 있습니다. 골로새 교회 성도들은 복음을 들은 후 복음의 능력을 경험했고 열매를 맺고 자라고 있는 중입니다. 즉 복음은 과거 다른 사람에게만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나에게도 효과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셋째로, 복음은 미래에도 역사할 것입니다.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이것은 골로새 성도들이 온 천하에서 열매를 맺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전에 ”너희 중에서와 같이“라고 쓰여 있기 때문입니다.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 도다.“
복음은 과거 다른 곳에서 역사했고, 지금 현재 골로새에서 역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골로새 외에 또 다른 곳에서도 역사하고 있고 복음이 전해지는 곳이면 어디든 즉 온 천하에서 역사할 것입니다. 복음은 세상 끝날까지 역사할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복음의 보편성“이라고 합니다.
복음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역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는 모든 이들에게 보편적으로 역사합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면 복음은 오늘 지금 여러분들에게도 역사합니다. 여러분에게도 효과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의심을 떨쳐버리고 그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귀신들려 쓰러지는 어린 아이를 둔 부모는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고쳐달라고 하였으나 고치지 못하였습니다. 그 후에 예수님 앞에 나왔습니다. 그는 예수님에게 ”할수 있거든 우리 아들의 병을 고쳐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호통을 쳤습니다.”할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그 부모는 ”내가 믿나이다.“라고 하면서 아이를 고쳐 달라고 하여 고침을 받은 것입니다.
1.여러분은 복음의 능력으로 변화되었습니까?
에바브라를 통해 복음이 골로새에 이르렀을 때, 그것을 믿은 사람들은 복음의 능력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이것이 본문의 구석구석 나타나 있습니다.
먼저 바울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을 ”성도“그리고 ”신실한 형제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골1:2절에, 2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에게 편지하노니 우리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또 복음으로 변화된 그들 때문에 기도할 때마다 감사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 3절입니다.
3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또 에바브라를 통해 그들의 믿음과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다고 합니다. 본문 4절입니다.
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음이요.
또 이 믿음과 사랑은 소망에서 난 것이고 그 소망은 복음을 들은 것에서 나온 것이라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본문 5절입니다.
5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또 복음을 통해 그들이 열매를 맺고 자라고 있다고 말합니다. 6절입니다.
6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그리고 그들이 바른 종에게 참 진리를 배웠고 사랑이 그들 속에 있다고 말합니다. 7-8절입니다.
7 이와 같이 우리와 함께 종 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 그는 너희를 위한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요
8 성령 안에서 너희 사랑을 우리에게 알린 자니라.
이것들은 모두 마치 합창을 하듯이 그들이 복음을 듣고 변화되었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경험한 변화를 한마디로 요약할 수가 있습니다. 바로 ”신 망 애“ 즉 믿음,소망,사랑입니다.
4-5절입니다.
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음이요
5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본문에 보시면 신망애라 나타나 있습니다. 그것이 데살로니가 교회 신자들이 진짜 구원받은 표식이라고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살전1:1-4절에, 1:1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2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3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4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그런데 바울은 그들에게 이렇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살전5:1-9절에 경고의 말씀을 한번 보시겠습니다.
5:1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2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3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4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5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6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7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8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9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심이라.
중요한 말씀은 8절에 있습니다.
8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다시 신망애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소망 사랑은 구원받은 증거일 뿐 아니라 휴거의 자격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반드시 신망애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장으로 유명한 고전13장에 13절에서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바울이 왜 여러 가지 덕 중에서 신망애를 꼽았을까요? 그리고 왜 이 신망애가 ”항상 있을 것“이라고 말했을까요? 같은 장 8-10절에 보시면
8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9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10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라는 말씀에 비추어 볼 때 그 말의 의미는 세 가지가 사라지지 않고 항상 남아 있을 것이란 뜻입니다.
고전13:13절 다시 보시면, 13 그러므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언제까지나 남아 있을 것입니다. 이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사랑입니다.(공동번역)
신망애는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고 필수 불가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삶 속에서 신망애가 나타나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골로새 신자들은
1.복음 진리를 듣고,
2.소망을 갖게 되고,
3.그 소망을 통해 믿음과 사랑을 나타내었습니다.
신망애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와 여러분들도 이처럼 삶 속에서 신망애를 나타내고 있습니까? 즉 여러분들도 이처럼 복음을 듣고 변화되었다고 고백할 수 있습니까?
2.왜 많은 이들이 복음을 듣고도 변화가 안됩니까?
골로새 성도들은 복음을 듣고 변화되었다고 합니다. 본문4-6절을 보십시오.
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음이요
5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6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그런데 왜 오늘날은 복음을 들어도 변화되지 않습니까? 실제로 교회들마다 변화되지 않는 명목상의 신자들이 차고 넘칩니다. 왜 그럴까요? 그 해답이 5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복음을 ”복음 진리의 말씀“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의미를
[바울은 이 메시지를 기술하기 위해 ”말씀, 진리, 그리고 복음“이라는 세 개의 단어를 사용하는데 이 단어들의 상호 관계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구약성경에서나 신약성경에서 ”진리“라는 개념의 중요성을 생각할 때 이 단어에 독립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진리인(또는 진리를 담고 있거나 보여주는)메시지, 즉 복음의 메시지(특히 엡1:13 참고 고후6:7,딤후2:1)이다.
구약성경에서 “진리”는 종종 신뢰성과 진정성 개념을 수반하는데 이 의미가 신약성경으로 넘어온다. 그래서 ‘진리의 말씀“은 의지할 수 있는 말씀 또는 메시지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바울이 말하고자 한 바는 신뢰할 만한 소망의 토대를 제공하지 못하는 거짓 교훈과 복음은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이 될 것이다.]
쉽게 말해서 ”복음 진리의 말씀“은 진짜 복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골로새 성도들이 복음을 듣고 변화된 이유입니다. 그들이 바울이 인정하는 에바브라를 통해서 참 복음을 들었습니다.(7절) 이것이 또 골로새 성도들은 변화되었는데, 왜 오늘날은 복음을 듣고도 변화되지 않는 이들이 그렇게 많은지 그 이유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참 복음이 아니라 왜곡되거나 희석된 복음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로이드 존스 목사님과 수많은 학자들은 [오늘날 구원파적인 그릇된 복음이 교회 안에 두루퍼져 있습니다. 신앙의 행위를 강조하면 바로 율법주의 이단으로 매도하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유명한 교단이나 교회라고 해서 섯불리 믿지 말고 오직 성경을 기준으로 분별을 잘해야 합니다.]
마태복음15:14절에, 14 그냥 두라 그들은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시니,
이 구절이 이단을 조심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정통 속에 가짜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입니다. 정통이라는 탈을 쓰고 가짜들이 많으니 각별히 조심하라는 말씀입니다. 그전의 구절들이 이것이 그런 의미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태15:7-9절입니다. 7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 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8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9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여기서 ”사람의 계명“은 유대교에 만연해 있는 율법에 대한 그릇된 해석들을 가리킵니다. 즉 유대교의 교리 중 일부였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도 복음에 대한 그릇된 해석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과거의 바리새인들처럼 이것을 분별하지 못하고 앵무새처럼 교단의 교리 그대로 가르치는 목사들이 많습니다. 그들이 바로 여러분이 주의해야 할 영적인 맹인들입니다. 그러므로 목사라고 그리고 교단의 교리라고 다 믿지 말고 행전17장11절에 베뢰아 교회 사람들처럼 오직 성경을 기준으로 잘 분별하고 성경적인 것만 받아들이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을 안 읽고, 진리를 사모하는 마음이 없는 자에게는 그것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3.무엇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참 복음 진리입니까?
무엇이 사람을 변화시킬까요? 한마디로 ”복음“입니다. 다시 무엇이 사람을 변화시킬까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복음 안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율법이 아닙니다. 은혜가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이것은 다음 성경 말씀에서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고전15:10절에,
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디도서2:11-13절에서도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은 복음 안에 나타나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11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12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13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히브리서12:28절에도,
28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이처럼 은혜가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그래서 바울이 본문 6절에서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은혜“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그러나 골로새 성도들은 은혜를 ”참으로 “깨달은 것처럼 그렇게 깨닫지 못한 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변화가 안되었습니다. 변화되려면 골로새 성도들처럼 ”참으로“은혜를 깨달아야 합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바울은 복음을 ”은혜의 복음“이라고 불렀습니다.
행전20:24절에서, 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바울은 복음을 이렇게 부른 이유는, 그 내용이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은혜를 담고 있습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해주고 공급해 줍니다. 복음이 제공해주는 은혜에는 두 가지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설교자들은 한면만 강조 합니다. 하나만 그래서 하나만 일고 있는 신자들이 많습니다. 슬프게도 그들 중 다수가 은혜를 색욕거리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래서 성경에 이런 말씀들이 있는 것입니다.
롬6:1에, 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6:15절에, 15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은혜는 두 가지 면을 다 아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것이 골로새서 성도들처럼 ”참으로“은혜를 깨닫는 것입니다.(6절) 저는 그것을 이해하기 쉽게 은혜의 양면을 갈라디아서 3:13-14절을 통해 쉽게 설명해 드리려고 합니다.
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이 말씀은 어렵게 느껴지지만 사실 간단한 이야기입니다. 나무에 달리셨다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까요? ”이는“이라는 말을 통해서 그것을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바로 믿는 이방인들에게 아브라함의 복과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것이 은혜의 양면입니다. 죄의 값은 사망(롬6:23)입니다. 생명이 피에 있다고(레17:1)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고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값을 지불 하셨기에 그 결과로 받는 것은 당연히 은혜입니다. 즉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피를 흘리시고 값을 지불한 결과로 오는 ”아브라함의 복“과 ”성령의 약속“이 은혜의 양면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은혜의 양면을 기록한 말씀입니다.
먼저, 은혜는 값없이 죄 용서를 받는 것입니다.
엡1:7절, 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이것을 여기서 바울은 ”아브라함의 복“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문맥에 의하면 아브라함의 복은 ”의롭다 하심“을 뜻합니다. 물론 그 외에도 아브라함이 받은 형통의 복도 포함됩니다. 그러나 가장 주된 복은 ”의롭다 인정함을 받는“것입니다. 십자가 보혈 공로에 의해 값없이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고 의롭다고 해주시는 것 이것이 바로 은혜의 한 면입니다.
다음으로, 은혜는 하나님의 돕는 은혜입니다.
히4:16절에, 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이것을 이 구절에서 바울은 ”성령의 약속“ 즉 ”약속된 성령“이라고 표현합니다. 성령은 보혜사이신데 원어로는 ”파라클레토스“라고 합니다. 그것은 ”돕는자“라는 뜻입니다. 값없이 주어지는 죄 사함만 은혜가 아닙니다. 값없이 주어지는 성령님(행2:38,8:20, 11:17)의 도움도 복음이 우리에게 제공해 주는 놀라운 은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엡2:8) 그런데 우리를 구원하는 은혜는 십자가의 공로와 성령님의 도우심 두 가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공로를 통해 정죄에서 자유케 되고, 성령의 도우심을 통해 내적 부패를 이깁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십자가의 공로로 의롭다 함을받고 성령으로 거듭나 새 사람이 됩니다.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구원입니다. 이제 바울은 왜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6절)라고 말씀하였는지 이해를 할 수가 있습니다.
결론을 내리겠습니다.
혹 교회에 다닌지 오래되었는데도 은혜의 복음이 이런 것이라는 것을 처음 들은 분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잘 듣고 참된 은혜의 두 요소를 알고 깨닫고 단순히 죄용서만 받는 것이 아니라 은혜의 성령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도움을 받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 복음의 두 요소를 알고 깨닫고 그 복음의 참된 진리를 받아들여서 참된 변화를 누려야 합니다. 안된다는 생각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복음은 세계 어디서나 통하는 보편적인 진리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복음 진리를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먼저, 율법은 사람을 변화 시킬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롬3:20절에, 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로마서7:14절이하의 바울의 경험도 그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
14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15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16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17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20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그러므로 절대로 율법주의에 빠지면 안됩니다.
다음으로, 반대편인 무율법주의 혹은 구원파적인 신앙주의에 빠져서도 안됩니다. 이 두 가지가 맹인 인도자를 따라갈 때 빠지게 되는 구덩이입니다. 수많은 영혼들을 지옥으로 이끈 이 두 함정을 피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 이시간 말씀드린 대로 하시기 바랍니다.
1.복음이 주는 은혜 중 하나가 성령님이라는 것을 깨달았으면, 죄를 회개하고 복음을 믿음으로 성령님을 받으십시오.
행2:37-39절에 성령님이 절대로 중요한 복음의 은혜중 두 번째 요소입니다.
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갈3:2절에도 나타나 있습니다.
2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갈3:5절에도 나타나 있습니다.
5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
이 구절들에 무엇이 나타나 있습니까? 죄를 회개하고 복음을 제대로 깨닫고 믿을 때 성령님이 임합니다. 즉 성령이 내주하십니다. 이것은 기도 많이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하고 이 복음의 두 양면성을 믿을 때 성령님이 임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 진리를 믿음으로 됩니다. 복음은 은혜를 제공합니다. 복음이 제공하는 은혜는 의롭다함과 성령의 약속 이 두가지 입니다. 땨라서 복음을 제대로 이해하고 믿을 때 우리 속에 성령님이 임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십자가를 지셨습니까? 왜 십자가의 고통을 감내하셨습니까? 우리에게 성령을 주셔서 죄를 이기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즉 우리를 거듭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것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는데, 왜 그것이 안되겠습니까? 그러므로 반드시 변화됩니다.
여러분, 이것은 느낌의 문제가 아닙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회개하고 복음을 제대로 깨닫고 믿으면 반드시 임합니다. 그 성령님이 우리에게 새 생며을 주어 새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이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지금부터 자신의 노력이 아니라 은혜의 성령님을 더 사모하시고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롬8:7-9절에, 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육신에 있는 자들“과 ”영에 있는 사람“입니다. 육신에 있는 사람은 아무리 몸부림쳐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영에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즉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영에 있는 사람이 될 수가 있습니까? 그것은 우리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우리 안에 오실 때 됩니다. 그래서 에스겔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신약시대를 성령의 시대라고 예언한 것입니다.
에스겔36:24-27절에, 24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새 언약 즉 복음은 ”내가“라는 첫 단어가 보여주듯이 인간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말씀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령님을 우리 안에 두심으로써 그 일을 하십니다. 이것을 우리에게 제안하고 약속하는 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자기 힘을 의지하지 말고 성령님만 의지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3.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성령을 좇아서 행하시기 바랍니다.
롬8:4절에, 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앞에서 에스겔서를 통해서 보았듯이 새 언약은 ”내가“ 곧 하나님이 성령을 주셔서 행하시는 것이 신약시대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뒤에 보시면 ”너희가“라는 말이 나옵니다.
에스겔36:27절에,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할 일을 하시면 사람도 할 일을 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이 성령을 우리 속에 두시면 그때부터 성령을 좇아 행해야 합니다. 이것은 로마서 8장 전체를 통하여 자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로마서8:1절에 보시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잇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말합니다. 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까? 2절을 보시면 ”이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죄와 사망의 법“은 로마서 7장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7:19절의 말씀처럼 ”원하는 선을 행할 수 없고 원치 않는 악을행할 수밖에 없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선을 행하려고 하면 행할수 잇고 악을 행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에스겔서에 나타나 있는 ”내가“에 해당 되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이게 전부입니까? 아닙니다.
롬8:4절에, 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물론 ”내가“ 곧 하나님이 앞서야 합니다. 성령이 필요합니다. 성령의 도움 즉 은혜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후 ”너희가“가 따라 붙어야 합니다.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졌기 때문에 그 은혜를 헛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성령을 좇아 행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에스겔서에 나타나 있는 ”너희가“에 해당하는 내용인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하나님) 하는 것이 있고, 너희가(우리)가 하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명의 성령의 법에 의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후 절대로 육신을 따라가면 안됩니다. 반드시 성령을 따라 행해야 합니다.
갈5:16절에 그 사실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말씀으로서,
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은혜는 대신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저절로 되게 하는 것도 아닙니다. 은혜를 본래 돕는 은혜 입니다.(히4:16) 때문에 회개하고 복음을 믿고 성령을 받은 후에는 반드시 성령님을 의히자고 성령을 좇아 행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여 우리가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4.그래도 안되면 육이 강해서 그런 것이므로 자신을 쳐야 합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금식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들은 말씀을 생각하면서 은혜의 양면성 은혜에는 두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1,십자가로 통한 속죄(구원)의 은혜이고 2.성령을 통한 돕는 은혜입니다. 하나만 은혜를 알면 안됩니다. 두가지 다 알고 두가지 다 받아들여서 우리가 사는 동안 진짜 변화가 일어나고 신앙의 성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성숙한 신자의 자리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것은 성령님을 의지하고 성령의 소욕을 따라 자신의 모든 의지를 동원해서 따라가야 합니다.
이렇게 되기를 우리가 변화되기를 두가지 은혜를 받고 깨닫고 새롭게 되기를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