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韩民族性差异挺微妙
张宏杰
《环球时报》 ( 2006-05-22 第11版 ) 【字号 大 小】【打印】【关闭】
朝鲜历史的源头与中国纠缠难分,在文化上受到中国的强烈辐射。同质的社会、一样的文化,两国的民族性当然会有太多的共同点。然而在诸多相同之下,却隐藏着一些我们不易体会到的微妙不同。 一刚一柔 中国国土广袤,气候变化很大,东西南北的民性本也有万种差别。千百年来,由于不断迁移融合,逐渐形成了宽容和平、随遇而安的统一性格。 朝鲜国土面积狭小,只相当于中国一省,地理环境比中国还要封闭,几千年来逐渐形成了单一民族。由于地理接壤,朝鲜人的性格气质与中国东北人相近,都是粗朴豪爽,刚强不屈,并且由于半岛和山区的封闭性而形成了特有的固执坚定。 中国历史上经历了很多变故,有过很多次的逆来顺受。所以,中国人经验丰富,深通妥协的智慧,善于随机应变。 朝鲜自古与外界交往不多,历史简单得一张纸就可以写尽,所以民族性格中保留了许多上古遗风,血液里还残存着游牧时代的凶悍野性。 从汉末到清末的两千年间,朝鲜屡遭外族入侵,但却从来没有接受过异族的直接统治。他们在危险和挑战面前总是毫不犹豫地选择直接抗争,并且总是从自己的倔强刚强中得到回报。仅举一例。公元612年,好大喜功的隋炀帝率领水陆两部共130多万人浩浩荡荡远征朝鲜。如果按照中国人的思维方式,朝鲜人的最佳选择当然是俯首称臣。然而朝鲜人却不懂什么叫“识时务者为俊杰”,他们选择了“以卵击石”,并且居然凭借难以置信的顽强,硬是在辽东城和平壤城前挡住了隋军。 朝鲜人就像一把没有弯折过的钢刀,一次次的反抗像一次次淬火,结果是使这把刀越来越锋利。面对外族,他们没有中国人这样深刻的屈辱记忆和心理伤害。所以他们不懂什么叫“屈服”、“隐忍”、“大度”、“圆融”。他们只知道“以血还血”、“以牙还牙”。虽然经过了千年死气沉沉的封建统治,他们的血性并没有消磨,他们的骨头一如以往的硬。当他们在20世纪醒来之后,这种刚健立刻化为经济建设中的奋斗精神,化为体育场上的拼搏意识,化为国际交往中的强硬不屈。 一个认真一个懂得变通 中国人的信仰可虚可实,可进可退。如同太极一样空灵玄奥。积极进取时,信奉的是入世的儒学,遇到挫折时,又可以退隐到佛道两家。在号召和呼吁时,是堂皇正大的礼义纲常,然而在处理实际问题时,又常常迂回前进,紧贴利益。在中国,能够通达权变的人才是真正的英雄人物。历代伟大的君主或者杰出的大臣都是深通阴阳两道的人物,他们一手紧握道义,一手紧握利益,功成名就。 而朝鲜人则远比中国人心实。他们不懂什么叫融合、迁就,既然接受了儒学就要彻底放弃佛教。因此,在儒学传入朝鲜后,儒教与佛教之间发生了一场“你死我活”的激烈斗争,把佛教彻底赶出了意识形态领域。 一个急躁一个从容 韩国人的急性子举世闻名。到了韩国,你会发现韩国人最常用的口头语是“快点快点”。韩国人什么都快,走路快,开车快,经济发展快,当然盖好的大楼有时候地基可能不够坚实。韩国人的最大缺点是没有耐性,考虑问题容易偏激片面。 而中国人的慢性子也是闻名遐迩。在中国,政府官员的首要素质就是“成熟稳重”,什么事都要“研究研究”。中国人看问题最讲究全面辩证,四平八稳。 形成这种反差的原因同样在于地理和历史。由于面积小人口少,朝鲜作为一个国家,反应能够相当迅速。一片云彩过来,全朝鲜都要下雨;国王的命令,第二天就能得到回应。由于历史简单,文化较浅,对挫折的记忆不深,朝鲜人也很少有中国人那样患得患失的心理。 而中国的体积使它的动作不能不缓慢悠然。这就像一只大象,再怎么敏捷,看上去也是笨头笨脑。在信息时代以前,一个消息从中国一端传到另一端,往往需要数月甚至半年的时间。皇帝的命令,即使是十万火急,用六百里快马日夜兼程地传递,等到了目的地,也可能成了昨日黄花。中国太大,情况太复杂,任何一项措施,都得慎之又慎。 老人和少年 在漫长的历史中,所有可能发生的事情都在中国发生了。中国人实在是世界上最见多识广的民族,所以他们也积累了最丰富的生存智慧。因为中国历史悠久,人们见多识广,也就没有太大火气,也没有太多锐气,一切都追求四平八稳,全面辩证。 韩国人则如同一个未经多少世事的少年,还没有被世事磨去棱角。他血气方刚,身手敏捷。当危机到来的时候,老人和少年的反应当然不同。 西方炮舰的重击惊醒了睡梦中的中国。屡遭重创之后的中国慢慢清醒,开始了自强过程。由于一生积习太深,所以自强的过程异常艰难痛苦。在迫人而来的形势面前,中国的举动显得过于迟钝、软弱无力并且犹豫不决。 在1840年中国惊醒的那一刻,朝鲜还在中国的身边睡大觉。中国都开始洋务运动了,朝鲜人还没有醒。直到被日本人吞并了,他们才猛醒过来。急躁的性格让他们匆忙踏上了现代化之路。韩国人的急性子和勤奋是经济发展的内燃机。1960年以前,韩国人曾经被认为是一个懒惰的民族。然而现在,他们以一种完全不同的风貌出现在世界面前。他们的步速世界第一,比香港、东京还要快。上世纪七八十年代,普通的韩国人都自愿加班加点工作,不要加班费。结果,仅仅几十年,韩国就成长为一个经济巨人,由世界上最穷的国家变成第十一大经济体。▲ (作者是辽宁学者。) (本版文章仅代表作者个人观点,欢迎读者参与讨论,电子信箱:taolun@peopledaily.com.cn)
《环球时报》 ( 2006-05-22 第11
"중국과 한국의 민족성에는 매우 미묘한 차이가 있다."
중국의 지한파 작가 장훙제(張宏杰)는 인민일보 국제시사 전문 자매지 환구시보(環球時報) 최근호 기고를 통해 양국의 민족성에는 많은 공통점이 있으면서 동시에 미묘한 차이가 감춰져 있다고 말했다.
먼저 부드러움과 강함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중국은 국토가 넓고 기후변화가 커 부단한 이동과 융합을 통해 환경에 적응하는 관용을 배운 반면 한반도는 면적이 협소하고 지리적으로 폐쇄돼 있어 단일민족으로 굽힐 줄 모르는 강한 기질을 유지해 온 결과라는 설명이다.
중국인들이 역사적으로 많은 변고를 거치면서 타협의 지혜를 배우는 사이 한국인들은 유목민족의 핏속에 흐르는 우악스런 야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 결과 한민족은 역사상 수많은 외침을 받았지만 어떤 위험 앞에서도 주저하지않고 항쟁을 선택하는 불굴의 정신을 이어왔다고 평가했다.
그는 한국인을 휘거나 부러지지 않는 칼에 비유, 외침 속에서 점점 담금질 돼 더욱 강하고 예리해졌다면서 굴복과 타협을 모르고 오로지 피에는 피로 갚는 강인한 의식이 20세기 이후 빛을 발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인과 중국인은 융통성에서도 차이가 두드러진다고 그는 지적했다. 중국에서는 임기응변에 통달한 인재가 진정한 영웅이 될 수 있지만 한민족은 융화와 타협을 모르고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식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조급함과 느긋함을 또 다른 민족성의 차이로 꼽았다. 한국인은 급하기로 소문났고 중국인이 굼뜨기로 이름이 난 것은 지리적, 역사적 상황 차이에서 기인했다는 분석이다.
한국에서는 국왕의 명령이 다음날이면 전국에 퍼지지만 중국에서는 반년이 걸려도 도달하지 않기 때문에 자연 한국인은 인내심이 적고 극단적 일방주의에 흐르기쉬운 성격을 갖게 됐고 중국인에게는 급한 상황에서도 지나치게 신중한 성격이 형성됐다고 그는 주장했다.
작가는 이밖에 중국인과 한국인을 각각 노인과 소년에 비유하며 중국인은 역사적으로 많은 곡절을 겪으면서 생존의 지혜가 축적됐지만 예기(銳氣)는 꺾여 창의적으로 앞서 나가려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에 반해 한국인은 혈기방장하고 몸놀림이 민첩한 소년과 같아 위기가 닥치면 노인처럼 행동이 굼뜨거나 결정을 주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례로 한국은 중국이 1840년 양무운동(洋務運動)으로 깨어났을 당시까지도 잠들어 있다 일본에 병탄됐지만 이후 조급한 성미가 에너지가 돼 현재 세계의 '경제거인'으로 거듭났다고 격찬했다.
장훙제는 올해 34세의 몽골족 중국인으로, 중국작가협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중국인과 한국인의 국민성 비교연구' '중국인은 한국인에 비해 무엇이 부족한가' 등의 작품을 발표했다.
동아닷컴.
한국인은 ‘빨리빨리 소년’ 중국인은 ‘만만디 노인’
“한국인과 중국인은 굳셈과 부드러움, 진지함과 융통성, 조급함과 느긋함으로 대비되며 한마디로 소년과 노인에 비유될 수 있다.”
중국의 대표적 지한파(知韓派) 작가 장훙제(張宏杰)가 최근 런민(人民)일보 시사자매지 환추(環球)시보에 기고한 글에서 양국의 민족성을 비교분석해 한 말이다
가장 대표적인 차이는 굳셈과 부드러움. 중국은 국토가 넓고 기후변화가 커 환경에 적응하는 태도를 배운 반면 한반도는 면적이 협소하고 지리적으로 폐쇄돼 있어 굽힐 줄 모르는 강한 기질을 유지하게 됐다는 것.
그 결과 한민족은 수많은 외침을 받았지만 주저하지 않고 항쟁을 선택하는 불굴의 정신을 이어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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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대표적인 예로 수나라 양제가 서기 612년 130만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치러 갔을 때 한민족이 끝까지 싸워 수나라 군대를 막아낸 사실을 들었다. 중국인의 사고방식으로는 머리를 조아리고 자신을 신하라 칭하는 쪽을 택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는 한국인을 휘거나 부러지지 않는 칼에 비유하면서 “굴복과 타협을 모르는 강인한 의식이 20세기 이후 빛을 발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둘째는 진지함과 융통성. 중국인은 임기응변에 강한 사람이 진정한 영웅이 될 수 있지만 한민족은 융화나 무원칙적인 타협을 절대로 하지 않는 성격을 지녔다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유학을 쫓아 적극 입신(立身)했다가 좌절하면 불교나 도교로 숨어들었지만 한국에서는 유학을 받아들이면서 철저히 불교를 버렸으며, 조선시대에는 양자 간의 처절한 싸움이 전개됐다고 평가했다.
셋째는 조급함과 느긋함. 급하기로 소문난 한국인과 굼뜨기로 유명한 중국인의 차이는 역사적 경험과 지리적 차이에서 기인한다는 게 그의 분석.한국에서는 국왕의 명령이 다음 날이면 전국에 퍼지지만 중국에서는 반년이 걸려도 도달하지 않기 때문에 자연히 한국인은 인내심이 적고 과격한 반면 중국인은 급한 상황에서도 지나치게 신중하게 됐다는 것이다.
작가는 한국인과 중국인의 민족성 차이를 한마디로 소년과 노인에 비유했다. 중국인은 역사적으로 많은 곡절을 겪으면서 생존의 지혜가 축적됐지만 예기(銳氣)는 꺾여 창의적으로 앞서 나가려 하지 않는다. 반면 한국인은 혈기방장하고 몸놀림이 민첩한 소년과 같아 위기가 닥치면 노인처럼 행동이 굼뜨지 않다는 것.
일례로 중국이 1840년 양무운동(洋務運動)으로 깨어날 때에도 한국은 계속 잠들어 있었다. 그러다 일본에 강제 합방된 한국은 급한 성미가 에너지가 돼 몇 십 년 만에 세계의 ‘경제거인’으로 거듭났다고 격찬했다.
‘한국 사람들은 밥을 빨리 먹습니다. 자동차 산업, 일본에서는 100년 걸렸던 일, 한국에서는 30년 만에 이뤘습니다’라는 광고 카피가 생각나는 분석이다.
운영자 주>
지나인들은 경헌많고 노회한 사람들이고 한국인은 강한 소년과 같이 힘만있지 지헤가 없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결국 한국인 씹는 이야기..하지만 글쓴이가 몽골인이라서 그런지 한족보다는 사뭇 표현이 다릅니다. 번역한사람이 원문을 보여주고 이이있지 않으니... (원문 찾아 올립니다)
베이징=하종대 특파원 orionha@donga.com
::장훙제는:
올해 34세로 몽골족 중국인인 장훙제는 중국작가협회 회원으로 ‘중국인과 한국인의 국민성 비교연구’, ‘중국인은 한국인에 비해 무엇이 부족한가’ 등의 작품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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