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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순이를 아시나요?

작성자추월|작성시간20.05.23|조회수125 목록 댓글 0

조선 오백년!
초롱초롱 박철홍의 역사는 흐른다! 75

ㅡ 영조 친모, 담양출신 최복순!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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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순이를 아시나요?

조선 21대 왕 영조의 친엄마!

'동이'라는 드라마로 우리에게 잘 알려 졌죠?

'동이' 즉 최복순이가 저의 고향 담양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아랫 글을 읽으면 자세히 알 것입니다.

그동안 제가 역사 글을 써 오면서 그 댓가로 아무 것도 바라는 것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편은 주제가 제 고향 담양과 관계가 있어 쓰는 김에 제 고향 담양 홍보도 곁 들여져 있으니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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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의 세 여인들,

인현왕후, 장희빈, 숙빈최씨!

이 중에서 숙빈최씨가 가장 덜 알려져 있었다. 사실 숙빈최씨도 장희빈이나 인현왕후때문에 많은 드라마에 나오기는 했다. 그러나 그녀들에 가려져 거의 주연이 아닌 조연으로만 나왔다.

드라마에서 숙빈최씨는 무수리나 천한 궁녀로만 그려지다가 어쩌다 숙종의 성은을 입어 영조를 낳은 정도로만 나온다. 그리고 드라마는 장희빈의 죽음과 함께 끝나고 만다.

그런데 얼마 전 MBC TV 월화드라마 숙빈최씨를 오롯한 주인공으로 한 ‘동이’가 방영되었다. 대장금을 만든 이병훈 감독 작품이라 꽤 히트를 치면서 숙빈최씨가 드라마에서도 인현왕후나 장희빈 동급으로 떠 올랐다.

숙빈최씨는 그동안 왕비나 후궁들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신분인 천민출신으로 알려졌다. 훗날 자기 아들 영조에게도 왕이었지만 엄청난 신분적 열등감을 물려줄 수밖에 없는 숙명을 타고난 최숙빈!

그런 최숙빈에게 MBC 드라마가 붙여준 이름은 '동이'(同伊)이었다.

왜 동이로 이름을 붙였는지는 모르겠다.내가 아는 한 역사적 근거는 전혀 없다. 제작진이 별 뜻 없이 지은 이름일 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무슨 생각이 있어서 지은 이름일 수도 있다.

어쨌든 간에, 한자 '이'(伊)가 위진남북조 시대(3~6세기) 이래 3인칭 대명사로 쓰인 적이 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전근대 중국인들 같았으면 '동이'란 말을 듣고 '그와 함께(同)' 혹은 '그녀와 함께'라는 뜻을 머릿속에 떠올렸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숙빈최씨가 동이라는 이름으로 드라마에서 뜨자 내 고향 담양에 오래 전 부터 전해 내려 오던 숙빈최씨에 대한 설화가 다시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일명 담양군 월산면에 있는 용흥사의 전설이다.

그런데 동이라는 드라마에서는 용흥사이야기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 참 아쉬운 일이다. 대장금도 만든 이병훈 PD가 용흥사 전설을 드라마를 구상하기 전에 몰랐지 않았나 싶다. 동이라는 드라마에 용흥사 스토리를 넣었으면 드라마는 훨씬 더 흥미로워 졌을 것이다.

아마 대장금 못지 않게 시청률도 올랐을 것이다. ^^

그렇게 했으면 담양을 배경으로 촬영되어 전국적으로 담양을 알릴 기회가 되었을 것인데 그러지 못해 많이 아쉬운 일이 되었다.

하지만 그 드라마의 주인공인 동이, 영조의 친모인 숙빈최씨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숙빈최씨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용흥사의 전설이 다시 떠오른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담양군 월산면에는 용흥사(龍興寺)라는 절이 있다. 바로 인근에 있는 내장사, 백양사처럼 전국적으로 이름이 날 만큼 유명한 사찰은 아니지만 상당히 큰 사찰이다.

내 어렸을때는 절보다는 용흥사 절 주위에 있는 계곡을 용사라고 불렀고 그 계곡이 더 유명했다. 용사의 계곡이 유명한 것은 깊은 산속이 아닌 길가 바로 옆으로 맑은 물이 사시사철 흘러 내리기 때문이다.

지금은 계곡 주변에 수 많은 식당이 생겨 옛날 흥취를 찾기는 힘들지만 아직도 맑은 물은 철철 흘러 내린다. 광주근교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유명한 피서 계곡이기도 하다.

용흥사에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계곡물처럼 흘러 내려 오고 있었다. 하지만 동이라는 드라마가 나오기 전 까지는 전설의 주인공인 숙빈최씨가 역사적으로 각광을 받지 못해 묻혀진 전설이 되었다.

담양군 용흥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본사인 백양사의 말사로 백제 때 인도승 마라난타에 의해 창건되었다 전해진다.

본래는 용구사(龍龜寺)라 했는데 조선 숙종 때 숙빈 최씨가 어렸을 적 잠시 머물렀던 이 절을 찾아서 기도한 뒤 영조를 낳자 이후 절 이름을 용흥사로 바꾸었다. 용흥사 바로 뒷 산 이름도 몽성산(夢聖山)이라 고쳐 불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용흥사 주변 수북면 궁산리에는 중전터라는 곳도 있다.
지금도 마을 사람들은 그곳을 '중전'이라고 부른다.

특히 용흥사에는 동이와 관련된 전설에 신빙성을 더 해주는 용흥사동종(보물 1555)이 있다.

이 보물은 ‘조선시대 용흥사 스님 한 분이 효성이 지극한 소녀가 용흥사 절에 딸린 암자에 들어와 산신령의 인도로 고관대작을 만나 입궐한 후 왕을 낳을 것이라 예견하고 후세에 길이 남을 성군을 기리기 위해 용 네 마리로 장식된 범종을 제작해 부처님께 바쳤다’는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스님의 예견대로, 32년 후에 최복순이란 소녀가 전염병(장티푸스)에 걸린 가족과 함께 절에 피신해 들어왔다. 그리고 그 예견대로, 이 소녀는 산신령의 인도를 받아 나주목사를 우연히 만났고, 나주목사 부인의 소개로 인현왕후의 시녀가 되었다."

'산신령'이 자꾸 나오는 바람에 이야기가 진짜 전설처럼 되어 사실성이 많이 떨어진다. 그러나 이런 전설도 그냥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그럴만한 이유가 분명있다. 그래서 그 전설을 둘러싸고 있는 신비의 껍데기를 벗겨내면 때로는 진실된 역사적 사건을 얻을 때도 있다.

숙빈최씨에 대한 공식적인 출생기록은 단지 해주최씨 후손이라는 기록밖에 없다.

"빈(嬪, 정1품 후궁)의 성은 최씨이고, 그 조상은 해주 사람이다."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영장리에 소재한 소령원(최숙빈의 무덤)에 있는 이 비문에서 확인할 수 있는 정보는 위와 같이 최숙빈이 해주 최씨라는 사실뿐이다. 그런데 해주 최씨와 관련된 홈페이지들에 따르면, 그의 본관이 해주였다는 사실에 대해서마저 이견이 존재하는 듯하다.

이 이외의 숙빈최씨에 대한 출신 기록은 실록이나 정사에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는 다른 후궁들 보다는 많은 편이다. 그 기록들은 대부분 풍문이나 설화 성격이 강하다. 그마저도 그녀가 왕(영조)의 친모였기에 가능한 일이다.

또 실록이나 정식 기록에는 나오지 않지만 영조는 왕으로 등극한 뒤 모친과 관련된 용흥사 절에 6명의 상궁들이 거처할 수 있는 육상궁을 지어 주었다 한다. 그리고 세금을 면세토록 하는 특혜를 주었다고 용흥사 절 내부에서 전해져 오고 있다. 스님들이 육상궁 터라고 말하는 곳도 아직 남아 있다.

담양에 숙빈 최씨에 대해 전해져오는 이야기를 더 자세히 풀어 보자! 사실 담양에서도 비슷한 여러갈래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그 중 가장 사실로 추측되는 이야기로 풀어 가 보겠다.

숙빈 최씨 최복순이는 담양 창평면 출신이며 (현재는 대전면 갑향리) 최씨가 아주 어렸을 적 가족들이 장티푸스라는 전염병에 걸렸다. 복순이 가족들은 전염병으로 알려진 장티푸스 때문에 마을에서 쫒겨나 창평면에서 아주 가까운 월산면 용흥사 주변 산 속으로 들어와 움막을 짓고 살았다. 장티푸스로 가족들은 죽고 복순이만 홀로 남아 바로 근처 용흥사에서 길러 졌다.

어린 복순이는 항상 배고픔에 시달렸고 용흥사 들어가는 입구 큰 길가(현 월산면 바람재)에서 먹을 것을 찾아 헤메곤 했다.

용흥사 들어가는 큰 길은 예전에는 남도에서 한양으로 가는 중요한 길목이었다. 지금도 담양읍을 지나 장성 백양사를 거쳐 서울로 가는 지름길이다.

하루는 그 길가에서 최씨가 거지 꼴을 하고 서있는 것을 인현왕후 친척이 나주목사로 부임하러 가는 길에 동행하던 부인(민씨로 알려짐)이 복순이를 발견했다. 복순이가 행색에 비해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총명하게 보여 복순이 사정을 묻고 절의 허락을 받아 한양까지 데리고 가서 키웠다. 그러다 인현왕후가 왕비로 간택되어 입궁할 때 최복순이를 인현왕후 시녀로 따라 보냈다고 한다.

최복순이는 궁중에 들어가 무수리로 일했다고 알려져 있기도 하지만 인현왕후 소속 나인으로 일했다고도 전해진다.

또 다른 이야기는 나주목사와 민씨부인이 부임하러 가는 길에 용흥사에서 하루 자고 가는데 민씨부인 딸이 방이 부족해 복순이랑 같이 잤는데 복순이를 아주 맘에 들어해 절의 허락을 맡고 복순이를 데리고 갔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복순이가 용흥사에서 낮잠을 자는데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 '갈재(현재는 장성군이지만 용흥사 부근에 있는 당시 남도에서 한양으로 가는 유명한 재)로 얼른 가보면 고관대작을 만날 것이다.' 라는 말을 듣고 갈재로 나가보니 나주목사로 부임하는 일행을 만나 나주목사 부인에게 꿈이야기를 하고 같이 동행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이야기의 공통점은 복순이가 어려운 환경때문에 용흥사로 와서 살았고 어느 순간 나주목사로 부임하는 일행을 만나 그들을 따라가 살다가 궁궐에 궁녀로 들어 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내 개인적 생각으로는 첫번째 이야기가 가장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어쨌든, 숙종이 숙빈최씨를 처음 보고 후궁으로 삼은 것도 인현왕후가 거주했던 궁에서 최씨가 인현왕후에 대해 안녕을 빌고 있는 모습에 반해서 그랬다고 한다.

그만큼 숙빈최씨가 궁녀시절 인현왕후와 관계가 깊었다.

후에 숙빈최씨가 후궁이 되어서도 철저하게 인현왕후 편에 서고 또 장희빈을 몰아내고 인현왕후를 복위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것만 봐도 담양에서 내려오는 나주목사부인 민씨부인과의 인연이 사실로 보인다.

인현왕후는 서인계열이었고 장희빈은 남인계열이었다. 그러다보니 숙빈최씨 또한 당연히 서인계열이 되었다.

서인은 경신환국(허적 유악사건으로 남인이 몰락하는 환국)으로 정권을 장악한 서인이 남인에 대한 처벌을 놓고 강경파 노론과 온건파 소론으로 갈라졌다.

다음 편에 이 이야기는 자세히 나온다.

서인노론은 연잉군 영조를 강력지지 했다.

영조가 즉위하는데 서인노론들이 주도적 역할을 했다.

당시 당쟁으로 세 여자들의 행적을 풀 수도 있지만 오늘은 정치적 색채를 빼고 전설같은 이야기만 한다.^^

어쩌든 숙빈최씨의 출생에 대한 정식 기록이 없는 것으로 봐서는 당시로서도 최하층 출신이라는 것이 확실하다. 양반가 출신이라면 정 1품 빈까지 한 후궁의 가문을 안 밝힐 수는 없었을 것이다.

숙빈최씨가 궁에 들어와서 하는 행적으로 봐서는 인현왕후와 관계가 아주 깊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에 소개한 담양 용흥사에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와 궁궐에서의 일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볼 때 공식적인 자료에서는 최숙빈의 실명을 확인할 수 없지만 그녀의 이름은 '동이'가 이닌 '복순' 이라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

드라마 속에서 부여된 '동이'라는 이름보다는 담양에서 전해지는 '복순이'라는 이름이 훨씬 더 친숙하지 않는가?

물론 사람에 따라 느낌이 다 다르겠지만 그래도 조선 왕들 중 백성들을 가장 생각 해준 왕으로 손 꼽히는 영조를 낳은 최숙빈이 천민에서 후궁으로 벼락출세한 그의 인생스토리를 전개하는 데에는 '최복순'이란 이름이 훨씬 더 어울린 다는 게 내 생각만 일까?

내 어렸을 적에는 맑고 시원한 계곡에서 무더위를 피하기 위해 용사 계곡을 찾았었다. 요즘에도 수 많은 피서객들이 계곡에서 물놀이를 하기 위해 찾아 오고 있다. 드라마 동이가 방영되고 나서는 담양에 전해오는 최복순의 전설을 어떻게 알고 동이, 최복순의 자취를 찾기 위해 용흥사 사찰을 둘러 보러 오는 관광객이 늘고 있다.

영조 친모, 최복순에 관한 담양에 전해오는 다양한 이야기는 인터넷을 통해서도 쉽게 만나 볼 수 있다.

드라마 동이의 실존 했던 인물일 가능성이 높은 ‘최복순’을 찾아 영산강 시원, 대숲맑은 생태힐링 도시 담양으로 떠나 보자!

역사 글에서 갑자기 담양관광 홍보 글이 되어 버렸다.^^

그래도 내 역사 시리즈에서 아주 벗어 나지는 않는만큼 이 정도는 이해 해주고 넘어 가자.

게다가 덤으로 담양에 오면 죽녹원, 관방제림, 오방길, 메타세콰이어 가로수 길, 소쇄원 등 등 일석십조의 효과도 누릴 수 있다.

담양은 이미 년 800만 관광객이 찾아오는 우리나라 최고의 관광지이지만 최복순으로 인하여 또 하나의 의미있는 여행지가 되어 가고 있다.^^


이어서 경종 1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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