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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2013년 경기도 합격생 지은설입니다.
저는 대학에서 무용을 전공했고 교육대학원에서 교직을 이수하였습니다. 체육에 연고가 없었기 때문에 임용을 준비하면서 어려운 점이 많았습니다. 조언을 받을 사람도 없었고 모르는 것이 생겨도 물어볼 곳이 없어 주로 임용카페에 의존하며 혼자 해결하곤 했습니다.
사실 임용을 처음 준비하면서 가장 걱정되었던 부분은 실기였습니다. 무용을 전공했기 때문에 임용에 관련된 종목을 접해볼 기회도 없었고, 과연 내가 저 많은 종목들을 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컸습니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인터넷 검색을 통해 코리아를 알게 되었고, 이론을 준비하기에 앞서 대학원을 다니는 동안 실기를 조금 조금씩 준비해 나갔습니다.
처음에는 무섭고 어렵게만 느껴졌던 실기가 점차 익숙해졌고, 원장선생님의 지도를 받으며 실력이 늘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이 정도면 나도 임용에 도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실기를 준비한 기간은 그리 길진 않았지만 원장선생님의 임용 맞춤지도로 짧은 기간에 기초를 익힐 수 있었습니다. 임용을 준비 할 수 있도록 자신감을 갖게 해주신 원장선생님께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그 경험은 독이 될 수 있다.’ 대학원을 졸업하던 해에 이론 준비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경험삼아 시험에 응시했습니다. 공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너무 편안한 마음으로 시험을 보게 되었고 합격을 하진 않았지만 놀랍게도 합격에 가까운 점수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경험이 바로 독이었습니다. 임용이 쉽게만 느껴졌고 조금만 공부하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임용은 편안한 마음으로 풀면 공부를 하지 않아도 충분히 풀 수 있는 문제가 꽤 많습니다. 기출문제가 쉽게 느껴지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하지만 공부를 많이 하면 할수록 잘 풀어야 한다는 긴장감과 압박감이 커서 문제를 쉽게 풀 수가 없습니다. 저는 1년 동안 공부를 한 뒤 다시 시험에 응시했지만, 글씨가 보이지 않을 정도의 지나친 긴장감으로 문제조차 제대로 읽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안타깝게 1점차로 불합격하게 되었습니다.
‘임용에서 가장 중요한 마인드 컨트롤’ 한 번의 실패로 뼈저리게 느꼈던 점은 마인드 컨트롤 이었습니다. 잘 해야겠다는 욕심과 지나친 긴장이 실패의 원인이었기 때문에 두 번째 해에는 공부보다 마인드 컨트롤에 더 많은 신경을 쏟았습니다. 불안을 줄이기 위해 루틴을 만들어서 그 시간 그때 그곳에서 그것을 하려고 했고, 반드시 해야 할 것을 미리한 뒤 나머지 시간은 공부 할 것 인지, 쉴 것인지를 결정했습니다. 계획은 되도록 일어나는 시간, 시험 보는 과목 등 시험 당일 스케줄 맞춰서 세우고 움직였습니다. 물론 계획대로 진행된 날은 거의 없지만 계획을 세웠기 때문에 어느 정도 목표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계획이 엇나가면 그때그때 계획을 다시 세웠습니다. 또 양궁 기보배선수의 루틴카드 기사를 보고 저도 저만의 시험루틴카드를 만들어서 시험을 보기 전 루틴카드를 떠올리면서 마음에 안정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마인드 컨트롤을 위해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노력했고, 늘 웃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또 나 자신을 믿고 합격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물건이 바닥에 떨어져도 ‘물건이 바닥에 붙었네!' 라고 생각했고, 징크스가 생겨서 지키지 못하면 불안이 오기 때문에 쓸데없는 징크스를 만들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입 꼬리만 올려도 엔돌핀이 나온다는 얘기를 듣고, 웃음이 나오지 않아도 억지웃음이라도 지으려했던 기억이 납니다. 불안에 잠이 오지 않을 때도 웃었고, 시험을 보러가는 기차 안에서도 그리고 시험을 보기 직전 시험장에서도 입 꼬리를 올려 억지로 웃으려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혼잣말로 ‘괜찮아! 잘할 수 있어! 나를 위한 시험이야!’ 를 끊임없이 외쳤습니다. 시험을 보는 도중에 어려운 문제가 나와도 ‘너만 어려운거 아니야, 남들도 어려워. 이 문제를 틀려도 합격에 지장 없을 거야!’ 라고 생각하면서 마음을 다스렸습니다. 그 결과 편안한 마음으로 시험에 응할 수 있었고 1차에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임용은 장기레이스’ 공부는 이미 한 해를 통해 어느 정도 되어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타이트한 스케줄에 쫓겨서 쪼이듯이 공부하기 보다는 6월까지는 정말 하고 싶은 것도 마음 것하고 놀면서 여유를 가지고 공부했습니다. 사실 6월까지는 거의 공부를 하지 않았고 학원에 다니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합격한 해에는 제가 좋아하던 요가강의도 다시 시작했습니다. 가까운 휘트니스센터에서 하루 1~2시간정도 8월 말까지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돈을 벌 목적은 아니었지만 공부만 하다보면 너무 고립되는 느낌이 들어서 많은 사람도 만날 수 있고, 운동도 하면서, 용돈도 벌 수 있는 요가수업은 수험생활에 큰 활력이 되었습니다. 요가강의를 꾸준히 했던 것이 3차 실기에도 도움을 주었고, 수업실연에도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이유들 때문인지 첫 해에는 ‘많이 힘드냐? 얼굴에 그늘이 졌다. 유쾌함이 없어졌다.’ 등의 말을 많이 들었다면, 그 다음 해에는 ‘예뻐졌다. 좋아 보인다.’ 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공부를 어느 정도 하신 분이라면 공부의 범위를 늘리고 더 깊게 더 많이 공부하기보다는 기본에 충실하면서 초반에는 조금 여유를 가지고 하고 싶은 것도 하면서 본인에게 투자하는 것도 지치지 않고 롱런하는 좋은 방법이라 생각 됩니다. 임용은 1년을 보는 장기레이스이기 때문에 초반에 너무 달리면 후반에 지치게 됩니다. 물론 초수생이라면 초반부터 힘껏 달려야겠지만, 공부를 많이 하셨다면 초반에 여유를 가지고 후반에 달릴 힘을 비축하는 것도 페이스 조절에 효율적이라 생각됩니다. 저는 초반에 많이 놀았기 때문에 1차, 2차, 3차까지 버틸 힘이 남아있었던 것 같습니다.
‘정보는 모르는 것이 약이다' 1차 시험이 끝난 뒤 논술은 논술노트를 만들고 논술수업을 들으며 준비했습니다. 최규훈 선생님의 수업을 들으며 문제만 적어놓았던 논술노트를 다시 꺼내 답안을 채워갔고, 논술수업을 들으며 배운 내용을 복습하는 형태로 진행했습니다. 1차 합격 발표가 나기 전까지는 발표가 난 후에 봐야할 즉 본격적으로 외워야 할 자료와 논술노트를 만드는데 치중했습니다. 2차를 준비하기 전에는 1차 점수가 잘 나오면 논술공부를 정말 열심히 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막상 합격할 만큼의 점수를 받았음에도 이상할 만큼 공부가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발표가 나기 전까지는 공부를 혼자 따로 하기보다 그저 학원수업을 충실했고, 발표가 난 후의 일주일을 대비할 벼락치기 자료를 만들면서 발표를 기다렸습니다. 합격발표가 난 후에는 그 자료를 바탕으로 암기하고 복습하면서 정신없는 벼락치기 일주일을 보냈습니다.
저는 무용을 전공했기 때문에 체육 선후배도 없었고 시험정보도 없어서 출제위원이 누가 들어갔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공부했습니다. 출제위원을 몰랐기 때문에 사회학을 계속 공부할 수 있었고,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기본에 충실하면서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논술시험의 많은 문제가 준비했던 논술노트와 벼락치기 자료에서 나왔고 이 때문에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논술을 쓸 수 있었습니다. 모르는 문제도 제가 준비했던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했고 그 결과 아주 높은 점수는 아니지만 커트에서 14점정도 높은 점수를 받게 되었습니다. 출제위원이 들어간다고 해서 꼭 본인의 전공을 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출제위원의 정보에 휘둘리기 보다는 기본에 충실하면서 흔들리지 않는 것이 심리적으로 더 안정되고 공부에 매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정보가 없었던 것이 오히려 저에게는 득이 되었습니다.
‘3차는 자신감이 답이다.’ 3차 준비는 코리아의 스케줄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체력이 많이 떨어진 터라 처음에는 타이트한 스케줄을 따라가는 것이 너무 벅차고 힘들었습니다. 특히나 무용을 전공했기 때문에 체육인들의 체력을 따라간다는 것이 너무 버거웠고, 체육인들이 정말 대단해보였습니다. 하지만 학원 스케줄에 따라가다 보니 버겁던 스케줄에도 점차 적응이 되었고 체력도 많이 향상되었습니다.
저는 실기를 대학원 다니는 동안 3개월, 그 다음해에 2개월, 합격한 해에 1개월 정도 미리 준비했기 때문에 3차를 준비하는 동안에 실력이 크게 향상되진 않았습니다. 나는 정체되어있는데 주변사람들의 향상되는 실력을 보면서 불안하기도 했지만, 욕심을 버리고 다치지 않는 범위에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리도 미리 준비를 했기 때문에 실기장에서도 연습처럼 안정된 상태에서 실기를 볼 수 있었고, 만족할 만 한 점수를 받게 되었습니다.
체육과 나오신 분들은 단기간에 준비하는 것도 물론 가능하겠지만 무용을 전공하신 분이라면 꼭 미리 실기 준비를 조금씩 하실 것을 추천합니다. 2차가 끝난 후 단기간에 실기를 완성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진도가 매우 빠르게 진행되기 때문에 실기가 자신 없다면 미리 준비하셔야 합니다.
제가 코리아에서 선택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수업실연입니다. 수업실연을 지도하는 학원은 코리아가 유일하기 때문에 코리아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원장선생님의 강의는 물론 3차에서도 도움이 되지만 실제 현장에 나가서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내용들이어서 정말 체육교사 준비를 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수업실연은 내가 직접 해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의 수업실연을 보는 것도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학원에 설치된 4개의 간이 수업실연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고 서로의 장단점을 지적하면서 많은 발전이 있었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의 수업을 듣고 장점이 있다면 빠르게 흡수해서 내 것으로 만드는 작업을 계속해서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종목, 어떤 모형이 나와도 그에 맞춰서 수업을 할 수 있도록 수업목차를 4가지 버전으로 만들고 계속 반복했습니다.
어떤 종목이 나올지 몰라서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지만, 다행히 원장선생님과 마지막에 다뤘던 축구가 나와서 당황하지 않고 수업실연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수업실연시험이 있던 전날 밤, 원장선생님 앞에서 수업실연 했던 축구 경기규칙, 심판법, 시범, 단서 등의 내용과, 그동안 배웠던 수업 노하우와 스킬을 시험장에서 자신 있게 모두 쏟아내고 나왔습니다.
시험이 끝난 후 다른 사람들과 얘기하다보니 문제도 잘못 읽어서 모둠과 조원도 잘못 설정하고 조금 산으로 간 부분이 있는 것 같아서 불안했지만, 놀랍게도 29.7이라는 거의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제가 내린 결론은 시험지에 나왔던 요소 하나하나보다 수업의 유연함과 자신감이 수업실연의 포인트라는 점입니다. 요소를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했더라도 수업을 자신감 있고 유연하게 진행했다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면접은 준비를 제대로 못해서 수업실연시험이 끝난 날 도서관 앉아 불안에 떨며 면접 프린트를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막상 시험장에서는 코리아에서 면접 스터디하며 토의했던 내용들이 떠올라서 거침없이 얘기하고 있는 저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코리아에서 밤마다 면접토의 했던 내용들이 실제 면접에 큰 도움이 되었고, 준비할 것이 너무 많아 면접책 한번 읽어보지 않고 시험장에 들어가게 되었지만 생각보다 무리 없이 면접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합격을 하고나니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보냈지만 모든 것이 정말 좋은 추억으로 남을 수 있을 것 같아 너무 기쁩니다. 수험생보다 더 바쁘셨던 원장선생님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인생에서 가장 힘든 한 달이었지만 코리아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행복하게 준비하지 못 했을 거예요.
유난히 추웠던 겨울과 바쁜 스케줄로 인한 배고픔을 함께했던 지혜언니, 지유언니, 미애언니, 은주언니, 정연이, 수진이, 유정이, 막내 희진이 함께해서 너무 의지되고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우리 86라인 봉주, 태유 옆에서 많이 도와줘서 정말 고맙고, 함께 합격하게 되어서 너무 좋다. 실기전담 용덕이와 첫 면접 스터디 함께했던 형준 오빠, 민진 오빠, 수원까지 가방 셔틀 해주셨던 진환오빠도 감사합니다. 시험 내내 한 조에서 함께한 세현이, 마지막으로 재훈 오빠, 진호 오빠 합격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코리아 12기 인연 계속 이어나갔으면 좋겠고, 모두모두 대박 나시길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