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02월 01일 연중 제4주간 수요일 / 고향에서 버림받은 예수님
[ 오늘의 복음과 묵상 ]
"저 사람이 어떤 지혜를 받았기에
저런 기적들을 행하는 것일까?
..저 사람은 그 목수가 아닌가?"
< 마르 6, 1 - 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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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고향마을을 방문하면서 겪은 일화를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 사람은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하루종일 못가방을 옆에차고
못질과 대패질을 하던 그 목수잖아! "
고향마을 사람들은
완전히 새롭게 변신한 예수님의
금의환향을 좀처럼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고정 관념' 탓입니다.
예수님의 복음말씀은
귀에 들리지 않고
삼삼오오 모여 수군대며
회의적인 눈빛으로 바라봅니다.
누구나
과거에 매여 살면 실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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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살고있는 오두막은
예전에는 조그만 절이었습니다.
주지스님은
인도에서 도를 닦았고,
특히,
요가의 달인이라지요.
입소문이 나면서
불자들이 모여 들었고
전국에 산재한
'요가 선생'을 대상으로
전통 요가를 전수 하였으며,
그로인해 이름없는 산골짜기
작은 절은 문전 성시였는데..
언제 부터인가 주지스님에게
큰 고민거리(?)가 생겼지요.
우연잖게 주지스님 고향이
바로 그 동네 출신인데
시도 때도없이 코흘리게 시절의
친구와 동창들이 찾아와서는
야 이눔의 땡중아~!
네까짓게 무슨놈의 스님이야?! ^^
주지스님은
어릴적에 공부는 안하고
개구장이짓을 많이 했었나 봅니다.
결국은
권위와 체면에 상처를 입고
더는 버티지 못하고
타 지역으로 이사를 해서
오늘 날 그 절은
제 차지가 되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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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 말씀 중
가톨릭 신자가
눈여겨 볼 대목이 있습니다.
개신교 신자들은
"성당 다니는 사람들은
성모님을 믿는다"라고 말합니다.
"더러는 우상을 섬긴다" 라고
말하는이도 보았습니다.
"그게 아니라,
예수님의 어머니로써
공경하는것이다"라고 설명해도
완고함은 돌이킬 수 없고
이해할 여지가 없는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개신교 신자를 가족으로,
친구로 두신 분들은
때때로 입장 난처한 경험을
했을 것입니다.
그들이 내세우는 성경의 근거는
'예수님의 형제들'이라는
구절(마르 6,3 , 루카 8,19)입니다.
신학자들이 그동안 이 구절을
많이 연구하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일부 개신교 신자들은
'예수님의 형제들'이
성모 마리아에게서 난 예수님의
친형제들이라고 주장합니다.
성모님의 '평생 동정'에 대한
의문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미 4세기경부터 등장했습니다.
4세기의 유명한 성경학자 '성 예로니모'는
'예수님의 형제들'이라는 단어는 ;
예수님의 친형제가 아니라,
사촌들을 뜻한다고 설명하면서
성모님의 동정성을 옹호했습니다.
사실 신약 성경에서
'형제'라는 단어는 상당히
폭 넓은 뜻으로 사용됩니다.
같은 동족을 뜻하기도 하고 < 마태 5,22-24 >,
이복형제를 뜻하거나 < 마르 6,17-18 >,
더 넓게는
예수님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영적인 가족관계를
뜻하기도 합니다 < 마르 3,34 - 35 >.
바오로 사도는
이방인 교회 공동체에
편지를 쓸 적마다 그들을
' 형제 여러분' 이라
불렀습니다.<로마 1,13 ; 1코린 1,10 >.
그것은 그들이
친형제이기 때문이 아니라,
같은 믿음 안에서 같은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 1분 묵상 ]
이웃을 향한 선입견으로
예수님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어리석음을 범하는 신앙인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출신가문, 학벌, 돈, 학식 따위는
부질없는 껍데기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화려한 껍데기를 보고 환호합니다.
현 정권의 몰락에서
뼈아프게 실감하고 있지요.
우리 모두의 구원을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
주님께서 선포하신 말씀은
사랑과 평화요,
영원한 행복을 찾는
이정표 입니다.
아멘
2012 . 02. 01 (수).
오두막에서..
베드로 아저씨 엮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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