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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성

<장미공주>_ 20260413

작성자마포 조인성|작성시간26.06.07|조회수25 목록 댓글 0

우리의 시간은 함께 간다


      

 바람도 잠이 들어 성 앞의 나무들은 나뭇잎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그럼 죽은 거지!” 조용히 듣고 있던 아이가 바람도 잠들었다는 얘기에 발끈했다. 그렇다. 모든 것이 죽은 듯 잠이 들었다. 시간이 멈추었다. 아이의 말대로 죽음과 다를 것이 없다. 황인찬 시인의 <백 살이 되면>이란 시가 떠올랐다.

 

백 살이 되면 좋겠다

 

아침에 눈을 뜨지 않아도 된다면

좋겠다

 

엄마가 불러도

깨지 않고

 

아빠가 흔들어도 깨지 않고

모두 그렇게 떠나고 나면

 

창밖에 내리는

빗소리에 가만히 귀 기울이면 좋겠다

 

물방울이 풀잎을 구르는 소리

젖은 참새가 몸을 터는 소리

 

이불 속에서 듣다가

나무가 된다면 좋겠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그 나무 밑에서 조용히 쉬고 계시면 좋겠다

 

빛을 받고

뿌리를 뻗으며

 

오래 평화롭게 잠들 수 있다면 좋겠다

 

그 잠에서 깨어나면

여전히 한낮이었으면 좋겠다

 

온 가족이 모여 내 침대를 둘러 싸고 있으면 좋겠다

부드러운 오후의 빛 속에서

 

잘 쉬었어?

오늘은 기분이 어때?

 

내게 물어보면 좋겠다

그럼 나는 웃으면서

 

백 년 동안 쉬어서 아주 기분이 좋다고

 

그렇게 말할 수 있다면 좋겠다

정말 좋겠다

 

지난 시간에는 부모의 마음으로 <장미공주>를 읽었다. 간절히 바라던 아이를 낳은 엄마의 마음, 불행으로부터 딸을 지켜주고 싶은 아빠의 마음, 누릴 수 있는 많은 것들을 딸에게 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 이 모든 것들이 실패했지만 결국은 찾아오는 평화, 그래서 위로를 받고 안도감을 느꼈다.

 

이번에는 장미공주의 마음에 집중해 보았다. 태생부터 바랄 게 없는 완벽한 공주의 삶이다. 모두의 축복 속에서 태어나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수 있는 자질까지 선물 받았다. 그러나 어쩌면 저주받은 운명이라는 그림자가 내내 따라다니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공주는 알게 모르게 그런 시선을 느끼며 숨이 막혔던 것은 아닐까. 백 년 동안의 잠을 스스로 청하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장미공주의 백 년은 죽음 그 이상의 고통과 시련이다. 인생에서 단절시켜야 할 망각의 시간이다. 얼른 백 살이 되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건너뛰고 싶은 시간. 이처럼 고단함이 느껴져 <백 살이 되면>이란 시가 떠올랐다.

 

<백 살이 되면>의 화자는 오로지 자신만이 홀로 잠들었다 깨어나는 상상을 한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날 때 가족들이 반겨주기를 소망한다. 사춘기에 접어든 나의 큰딸은 이러한 마음에 가까운 것 같다. 끝내는 따뜻한 관심과 사랑을 바라지만, 지치고 힘든 자신이 스스로 여유를 되찾을 때까지는 떨어져 있기를, 그때까지는 가족들 각자의 일상을 누리기를 바라는 마음 말이다.

 

부모가 된 나의 입장에서 그것은 불가능하다. 가족 구성원 하나가 무너질 듯 힘든 시간을 보내는데 나머지 가족들이 괜찮을 리가 없다. 함께한다는 것, 그것은 가족의 운명이다. 그러니 모두 함께 잠이 들고 함께 일어나는 <장미공주>의 이야기에 더 마음이 간다. 장미공주, 즉 사춘기 아이의 마음을 읽어보려 했지만 결국엔 부모의 입장으로 종결되고 말았다.

 

백 년이란 오랜 시간에도 사람들은 장미공주를 잊지 않고 그녀의 세상을 향해 문을 두드리며(심지어 죽음을 각오하고) 그녀의 성으로 찾아온다. 그녀를 가장 사랑하는 부모는 그녀의 세상 안에서 그녀와 함께 잠들었다가 함께 깨어난다. 그리고 그들에게만 멈췄던 시간은 다시 이어진다. 이렇듯, 세상은 우리를 외면하지 않으며 우리의 인생을 잠식할 만큼의 고통도 지나고 나면 잠을 자고 일어나듯 한순간일 뿐이다. 언제 그랬냐는 듯 일상이 계속될 것이고, 그 한 고비만 넘기면 우리는 죽을 때까지 행복할 것이다. <장미공주>를 읽으며 내 아이도 나처럼 안도감을 느끼고 외롭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의 시간은 함께 가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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