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일기> 비에라 히라난다니
“한 사람은 온 세상보다 소중합니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굴러가는 커다란 역사의 바퀴는 수많은 개인들의 삶과 이야기들의 움직임으로 이루어져 있을 것이다. ‘전쟁’ 이라거나 ‘정치’ 혹은 ‘폭동’ 혹은 ‘테러’라는 말 아래 뭉뚱그려진 많은 사람들의 일상과 평범한 하루하루는 어떤 방식으로 무너지거나 달라질 수 있는지 우리는 종종 잊어버리곤 한다. 커다란 역사적 사건 한 가운데 있었던 그 누구에게나 행복하고 좋기도 하고 슬프고 싸우고 힘들기도 한 복잡하고 다채로운 일상이 있었을 것이다.
비에라 히라난다니의 동화 <밤의 일기>에서는 한 아이가 자신이 태어나면서 돌아가신 엄마에게 쓰는 편지 형식으로 인도-파키스탄 분쟁에서 살아남은 자신과 가족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1947년 파키스탄 지역에 살던 어린 니샤는 인도의 독립과 동시에 종교에 따라 분리된 파키스탄을 떠나 힌두교가 인정받을 수 있는 새 인도 땅으로 떠나간다. 니샤는 태어나고 자란 땅에서, 그리고 엄마가 살았던 그 집에서 왜 떠나가야 하는지 좀처럼 이해할 수가 없다. 니샤의 엄마는 아이를 낳자마자 돌아가시고, 니샤는 쌍둥이 형제인 아밀과 할머니인 다디 그리고 의사인 아빠 또, 주방 일을 돕는 카지와 함께 살고 있다. 니샤는 책을 많이 읽고 글을 잘 쓰지만 가족 이외에 아무와도 말을 하지 않는 아이다. 반대로 쌍둥이 형제 아밀은 늘 밝고 명랑하고 그림도 잘 그리지만 글을 잘 읽을 수는 없다.
이 책에서 좋았던 부분은 카지와 니샤가 재료를 손질하고 음식을 하면서 따뜻하게 시간을 보내고 이야기를 주고받는 부분이었다. 재료의 생김새, 냄새 그리고 질감까지 따뜻하고 섬세하게 묘사를 하고 있는데 낯선 재료와 풍경임에도 마치 내가 카지의 주방에서 요리를 같이 하고 있는 기분이 들 정도로 자세하고 마음에 와 닿았다.
엄마의 세계인 이슬람과 아빠의 세계인 힌두교 사이에서 태어난 니샤의 삶은 두 세계를 모두 이해하는 삶이기도 하고 두 세계 사이에서 선뜻 어느 쪽을 선택하기 어려운 삶이기도 했다. 니샤가 이슬람의 인도에서 힌두교의 인도로 떠나가는 여정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라시드 외삼촌을 만난 일이다. 라시드 외삼촌이 니샤와 아밀의 얼굴에서 엄마를 발견했을 때 니샤는 새로운 우주가 열리는 느낌을 받는다.
가족들의 일상을 성격을 말투를, 마당의 열매를, 동네의 풍경을 꼼꼼하게 섬세하게 표현하는 니샤의 시선은 죽을 정도의 목마름과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과 폭력을 마주하는 무시무시한 순간의 느낌까지도 자세하게 그려내어 마음 깊이 울림을 준다. 니샤가 죽음의 위기 속에서도 순간 순간의 행복이나 신의 뜻 아니면 무엇이라도 의미를 찾으려고 애썼던 것은 그러한 삶의 고통의 이유를 찾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니샤가 만난 삶의 기적과 순간의 기쁨 그리고 엄마의 흔적까지도 몹시 감동적이면서 많이 아프게 느껴졌다.
커다란 역사의 폭풍 속에서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니샤는 마지막까지도 결코 이해하지 못한다. 그저 충분한 물과 사랑하는 가족들 그리고 학교에 다니는 평범한 일상에 대한 감사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니샤의 가족들이 무사히 새로운 인도에 도착하고 마침내 다시 카지를 만나서 정말 다행이었지만 마음이 완전히 놓이지는 않았다. 아직도 많은 어려움이 니샤 앞에 남아있음을 알 것 같았고, 어딘가 수많은 또 다른 니샤와 가족들이 고통 속에 죽거나 힘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인도의 커다란 역사적인 사건 속에서 니샤의 성장 그리고 가족, 또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나가는 일까지 보여준다. 작은 여자 아이의 삶 하나가 얼마나 복잡하고 경이롭고 소중한지 알았다. 이 세상에 수많은 존재들이 그 생명이 얼마나 귀한지 새삼 마음에 새겨본다.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봄시내 작성시간 21.07.02 '작은 여자 아이의 삶 하나가 얼마나 복잡하고 경이롭고 소중한지'
대목에서 크게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래요. 누구의 삶도 마찬가지겠지요. 모두가 소중한~
자신이 세상에 오던 날 세상을 떠난 엄마,
그 아이는 어떤 마음일지
새삼, 아이의 마음에...마음이 갑니다~ -
작성자산새 작성시간 21.07.05 온 세상보다 소중한 한사람...
한 아이가 자라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도 하죠~
태어남과 돌아감.
읽고싶어지네요. -
작성자미나리 작성시간 21.08.02 온 세상보다 소중한 한 사람... 아기에겐 엄마라는 존재가 그런 사람일 텐데요 묵직한 이야기가 담겨 있어서 호흡을 가다듬고서 책을 펼쳐야 될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