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생 꿈을 꾸고 또 꿈속으로 들어가 꿈을 그릴 테다.
- 3개월, 그 짧은 시간 동안의 긴 고민 끝에
변선진
작품 후기
첫 작품.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위해 이야깃거리를 찾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고치고, 편집을 하고. 책이 만들어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과정의 중심에 내가 있었다. 모두 내가 했다. 머릿속으로 늘 생각해 왔던 거였지만 실행에 옮기는 것이 처음이라 익숙하지 않았던 ‘그림책 만들기’.
짧은 시간 안에 이야깃거릴 가지고 그림을 그리는 동시에 글을 쓴다는 것이 참 쉽지 않았다. 대략의 스토리를 짜 놓고 그림 그리는 작업을 하면서, 내가 느꼈던 감정을 글보다는 그림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크게 다가왔고, 그렇게 제한된 시간 안에서 그림에 대한 비중이 커질수록 글에 쏟을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시간이 좀 더 있었다면 지금보다 더 만족스러운 글과 그림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든다.
짧은 시간 때문에 드는 아쉬움은 또 있다. 바로 처음에 계획했던 두 점의 작품 모두를 마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다. 애당초 3개월 안에 두 작품은 무리였음을 한 작품을 가지고도 쩔쩔 매었던 이제야는 깨달았지만 말이다.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작업은 ‘글’을 쓰는 작업이었다. 작업 내내 힘든 줄 모르고 신나게 그렸던 그림과는 달리 글 작업을 할 때에는 생각만큼 잘 풀리지가 않아서 힘들었다. 차라리 어린이를 위한 책이 아니었더라면 좀 더 수월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어린이 책을 쓰는 것이 무엇보다 어려운 이유는 가장 단순하고 간결한 문장 속에 하고자 하는 이야기 모두를 담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나의 작품 멘토이자 현 동화책 작가이신 순우쌤께서 말씀하셨다. 가장 단순하고 간결한 어린아이의 말을 쓰는 것이 힘들어 쩔쩔 매고 있는 나의 모습이, 선명히 떠오르지도, 느껴지지도 않는 ‘어린 나’의 마음을 애써 떠올리려 하는 나의 모습이 왠지 씁쓸했다.
동화책과 그림책에 자꾸 손이 가게 했던 가장 큰 힘은 책 속 단순함이 말해 주는 참 많은 것들이었다. 나는 늘 동화책의 그 힘센 매력을 생각하며 작품에 임했는데, 그것이 좀 과했던 것 같다. 돌아보면 나는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 해서 힘들었던 게 아닐까 싶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넘쳐나는데 그것을 자제할 내공이 부족했다.
첫 작품. 돌아보면 하나하나가 모두 아쉽게만 느껴진다. 왜 더 발칙하지 못했어. 왜 더 시적이지 못했어. 더 잘할 수 있었노라 나를 다그치고 있다. 작품이 탄생하는 모든 과정의 중심이 다른 누구도 아닌 ‘나’였기 때문에 아쉬움은 더 크게 남는 것 같다.
나는 평생 꿈을 꾸고 또 꿈속으로 들어가 꿈을 그릴 테다.
하지만 내겐 ‘아쉬움’을 성장의 발판으로 삼고 더 높은 곳으로 뛰어오를 수 있는 힘이 있다.(자랑할 만한 장점이다.) 앞으로 죽을 때까지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가건 나의 직업은 “예술가”일 것이라고 결심한 이상, 첫 작품에서 느낀 아쉬움을 발판으로 삼아 뛰어오르게 될 ‘더 높은 곳’은 얼마든지 남아 있다.
졸업 작품을 명목으로 한 꿈속에 들어가기로 했던 결심은 성공적이었다. 가장 큰 꿈에 뛰어들어 서툴게라도 꿈속을 살고 나니까, 가장 큰 꿈 뒤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또 다른 꿈들이 자꾸자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시작이 반이다. 나는 이제 꿈속에 들어가겠다고 결심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는 방법을 알았다. 용기를 가지기까지의 시간이 조금 더딜지라도, 나는 평생 꿈을 꾸고 또 꿈속으로 들어가 꿈을 그릴 테다. 꿈을 살 테다.
‘작품 일지’라기 보단, 작업하는 동안 내 머릿속을 거쳤던 수많은 생각의 나래
2009. 3. 23. 월요일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어린아이―혹은 어린 나―의 감정이라면,
무슨 감정? 사랑․행복․분노․슬픔
분노와 슬픔은 파랑(blue)의 감정
:☆도 아니고, ★도 아니지만, ○은 두렵고 무섭고 싫어.
○은 ‘어린 나’의 두려움의 대상. 혹은 지금까지도.
소재는 파랑의 감정. 주제는 소녀가 무서워하는 것들.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 어린아이의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싶다. 하지만 어린아이가 ‘나’가 되어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너무 단순하고 쉽잖아. 어린아이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되, ‘나’의 이야기를 ‘나’가 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아! 동생. ‘나’보다 더 어린아이가 어린아이인 ‘나’의 두려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오. 좋은데?
예를 들면,
우리 언니 이야길 해 줄까? 우리 언니는 용감해! ☆를 정말 잘하고, ★도 하나도 안 무섭대! 그런데 그런 우리 언니도 무서워하는 게 있다는 거야. ○. 내가 언니에게 해 줄 수 있는 건, 바로 꼭 안아 주는 것.
오. 그래 좋다.
2009. 4. 11. 토요일
좀 더 어린아이의 입장에 서자. Be a child. 어린이가 되어야지. 어린 나는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피하고 싶어 했었나.
아빠의 고함 소리
듣지 않고 말하려고만 하는 어른들
아무도 언니를 믿어 주지 않는 것
(착하기만 한 어린이가 되는 것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보는 것)
모두와 똑같은 어린이가 되는 것
무표정하고 무관심한 어른들
나는 지금 어린아이의 두려움에 대해 말하려고 하는 것인데, 자꾸 어린 나의 슬픔, 싫음을 떠올리고 있네.
이렇게 용감한 우리 언니도 무섭고, 두렵고, 피하고 싶은 게 있대라고 범위를 무서움, 두려움으로 그어 놓았었구나.
용감하다. 씩씩하다.
하지만, 이렇게 씩씩하고 용감한 우리 언니가 으앙 울 때도 있어! 바로 나처럼 말이야.
여기서 바로 나처럼 말이야. 는 어른스러워 보이는 언니가 아기처럼 울 때도 있다는 이야기지. 마음속 어린아이의 눈물. 외로울 때, 슬플 때, 무서울 때, 아플 때, 답답할 때 눈물을 흘리곤 하지.
2009. 4. 19. 일요일
궁극적으로 나는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에 관심이 많다. 좁게는 어린 시절의 경험이 살아가는 데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 가에 대한 관심이 아주 많다. 그래서 교육이라는 분야에도 귀를 쫑긋 세우고, 어린아이들에게 이야기하는 그림 동화책에도 눈을 번쩍 뜨는 것이다.
2009. 4. 24. 금요일
언니의 생일날 엄마도 아빠도 모두가 바빠 온종일 텔레비전만 보았던 날,
(무관심: 건희의 생일 날, 엄마도, 나도, 큰언니도 바빠 온종일 건희와 함께 있어 주지 못했는데, 건희는 ‘대성통곡’. 거기서 모티브를 얻었다!)
2009. 4. 28. 화요일
글을 그대로 설명해 주는, 그러니까 말 그대로 글을 위한 그림을 그릴 것인가. 그림 그 자체의 독립성을 갖게 할 것인가. 하지만 독자의 대상을 아주 어린아이로 한다면, 글을 설명하는 그림을 그려야 하나? 두 개 다 그려 봐야겠다.
책 속의 ‘언니’의 두려움과 슬픔은 관계에서 비롯된다. 관심과 사랑. 어린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어른들의 관심. 고함 소리, 헤어짐, 무표정하고 무감각한 어른, 무관심, 믿음을 주지 못하는 것. 이 모든 것들이 책 속 ‘언니’에게 두려움의 대상이다. 곧, 나에게 두려움의 대상이다.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어른으로 산다는 것’을 할 때에도 그랬고, 작품의 글을 쓰는 작업을 할 때에도 느꼈지만, 나는 세상에 적당히 타협해 사는 어른들에 대한 반감이 크다. 때 탄 세상을 따라 구정물을 몸에 묻히는 어른들. 작은 일에 기뻐하지도, 슬퍼하지도, 또 그럴 여력도 없는 어른이 되는 것이 싫다. 두렵다.
어린아이들이 겪는 두려움의 대상은 참 다양하겠지만, 나는 관계, 어른과 아이의 갈등, 순수함을 잃는 것 등에 초점을 두었다.
아, 그림을 그릴 때, 한쪽엔 글처럼 어둡고 두려운 그림을, 또 다른 한쪽엔 그와 반대 되는 밝고 행복한 그림을 그리는 건 어떨까!
2009. 5. 6. 수요일
그림 작업 시작!
나는, 글 작가, 그림 작가, 편집자의 역할을 다해야 하는군.우선 글에 맞춘 그림을 다 그려 봐야겠다. 편집은 그 후에.
-치과와 주사 컷 시작-
등장인물들은 강한 컬러로 그림처럼 그리고, 그 외의 것들은 강조하는 의미에서 사실적으로 그리는 건?
2009. 5. 9. 토요일
가끔 그림을 그리다가 잠시 일어나 거울을 보면, 내가 참 예뻐 보인다. 그림을 그리는 나는 참 예쁘다. 내게 물감 묻은 앞치마가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호란의 목소리가 좋구나.
벌써 5컷 째다. 한 컷 당 거의 3시간은 기본으로 걸리는 것 같다. 4일에 5컷. 하루에 한 컷 꼴. 앞으로 남은 컷은 까마득하다. 그렇지만 막막하지는 않다. 하지만, 정말 분발해서 그려야겠어. 다음 프로젝트를 위해서!
그림을 만지고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행복하다. 졸업 작품으로 그림을 택한 건,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물감 묻은 앞치마를 입고 그것이 참으로 익숙한 듯, 하루 종일을 지내는 것은 정말 신 나는 일이다!
2009. 5. 20. 수요일
일주일 만의 일지구나. 바닥으로 착 가라앉아 멈춰서는 절대로 움직이지 않을 것만 같았던 시간들이었는데. 다시 땅 위로 올라오고 있어.
‘욕심이 있어야 잘 살 수 있어. 욕심을 가져.’라고 말할 때는 아마 열정과 욕심을 헷갈려 말하는 것일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바라보는 그 끝이 돈, 권력, 명예와 같은 보편적으로 말하는 ‘성공’일 때 ‘욕심’을 가지라고 말하거나.
열정과 욕심을 헷갈리지 말자. 욕심이 바라보는 것은 대가이지만, 열정이 바라보는 것은 결코 대가가 아니야. 지금 내가 하고자 하는 것들이 욕심이라 느껴진다면 과감히 버려. 하지만, 그것이 열정이라면 멈추지 마.
남은 시간을 완성도를 위해 쓸 것인가, 열정을 불태우기 위해 쓸 것인가.
삶의 허를 찌르는 이야기.
신기하게도 어린아이들은 다 알고 있다. 간결하고 단순한 말 속에는 이제는 어른이 되어 잊어버린 가장 중요한 진리가 있다. 기교를 부리기 전에 간결하고 단순한 말로 시작해라. 그것이 바로 순수하고도 진실하게 마음에 와 닿는 목소리일 것이다.
2009. 5. 25. 월요일
다시 처음부터 생각해보자.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나의 말’로 단순히 풀어서 써 보자.
흔히들 어린아이가 싫어하는 것. 두려워하는 것을 떠올리면 무엇을 떠올릴까?
피망을 먹는 것(만화『짱구는 못 말려』에서 비롯된 생각), 주사를 맞는 것, 치과에 가는 것. 전혀 낯선 사람이 전혀 모르는 말을 하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 어둠 속 시계 소리, 상상 속 괴물?
사실 이러한 것들은 큰 문제가 아니다. 진짜로, 아이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들은 바로, ‘관계’에서 비롯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어른들이 주목해야 할 어린아이들의 두려움의 대상은 외적인 그 무언가가 아닌, 보이지 않는 무언가라는 것이다. 그저 눈에 보이고 맛이 나는 초콜릿으로 어린아이의 두려움을 달랠 수 있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진짜, 진짜로 어린아이들이 원하고 필요로 하는 것은 사랑, 관심. 바로 눈에 보이지 않지만 따뜻함으로 느껴지는 것들이다.
“사랑하는 이 세상 모든 엄마, 아빠들에게”라고 첫 장에 쓰고 싶군.
좋아. 아주 간단하게 줄일 수 있는 모든 단어를 줄여서 이야기를 써 보자.
내가 무서워하는 것은 피망도, 주사도, 치과도, 미국 사람과 영어로 대화하는 것도, 어둠 속 시계 소리도, 오밤중 나타나는 괴물도 아니야. 내가 진짜 무서워하는 것은, 상상만 해도 가슴속 눈물이 가득 차게 하는 것은 아빠의 고함 소리, 헤어짐, 아무도 내 말을 믿어 주지 않는 것, 외로움, 기뻐하지도, 슬퍼하지도, 화내지도 않는 어른들. 으앙. 내 마음을 달랠 수 있는 건, ‘울지 마’라고 말하면서 초콜릿을 주는 것이 아니라, 나를 세상에서 가장 세게 꼭 안아 주는 거야! 아. 따뜻하다.
왜 자꾸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데? 그러면서 지금 나는 ‘내가 바란 건 해결책’이 아니라고 이야기하지 못해서 끙끙 머리 아파하고 있는 거야. 진정 더 깊은 원기둥 속으로 들어가 봐. 더 깊이, 더 깊이, 원기둥 밖의 색과 빛은 들어올 수 없는 더 깊은 곳으로.
시간은 충분해. 충분해. 충분해. 충 - 분해 . 추 웅 분해. 인수분해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처음부터 생각해 보자. 처음부터. 아주 처음부터
어른에 대한 불신 같은 거? 공격적인 글을 쓰고 싶지는 않아. 그림으로써 표현하는 것에 더 집중하고 싶어. 어째서 이렇게 글에 대해 스트레스받고 있는 거지? 그림에 더 고민하고 과감히 다시 그리고 질리는 이 그림체를 바꿀 생각은 없니
시간은 고작 3주 남짓. 3주도 채 안 남았구나.
그림을 그려 볼까
그래.
2009. 6. 11. 목요일
‘아빠의 고함 소리’를 그리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아빠의 고함 소리’는 내가 느끼는 두려움 중에서도 가장 큰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내게 큰 자리를 차지하는 두려움인 만큼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이 조심스러웠다. 글로, 말로, 그림으로는 정확히 표현할 수가 없다. 하지만 가장 명확히 느껴지는 두려움이다. 상상만으로도 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빨강과 검정의 기운이 사방에서 나를 한 순간에 압박하는 느낌. 아 이렇게 글로도 표현이 다 되지가 않는다. 답답하다. 두 번이나 그렸는데, 그나마 후에 그린 것이 더 마음에 드는 편이다. 하지만 100% 시원하게 끄집어내지 못한 것 같다.
그림을 다 완성했다. 이제 남은 것은 글. 이야기를 잇는 것. 화면을 구성하는 것.
2009. 6. 14. 일요일
아. 글을. 어떻게. 다시 다시 다시 미스터 다아시는 무슨.
자. 눈을 감고 머리를 정화시키자.
화제를 돌려보는 건 어때?
어른들이 모르지 않을 수도 있고. 좋은 어른들이 있을 수도 있지. 처음부터 너무 어른을 무시했다. 그치? 내가 2학년 2학기부터 ‘어른’이 되는 것에 민감해져 있어서 그래. 참 의미에서의 어른인 사람들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사실에 눈을 뜨고서부터. 그 부분을 작품에서 짚고 넘어가도 좋은데. 그렇게 되면 너무 하나의 작품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많아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뭐가 있지? 살펴보자.
어린이였던 시절을 잊고 어른의 눈으로 어린이들을 보는 것
진짜 눈여겨, 마음을 써서 볼 어린아이들의 두려움은 보이지 않는 것이라는 것
보이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역시 보이지 않은 것으로 다독여야 한다는 것
그것은 관심. 따뜻함. 사랑.
사실은 너무 정답 같은 그림책이다. 가장 중요한 것이 따뜻한 관심이며 사랑이라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모두 아는 사실인데. 모두 알고 있으면서 잊고 있잖아. 그래. 몰라서 그렇게 살아가지 않는 것이 아냐. 알지만 잊고 있는 거지. 모두의 마음속엔 사실 사랑.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힘은 바로 사랑. 따뜻함이야. 그것이 진리라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 그것이 뜬구름 잡는 소리라고. 꿈속이야기이고 동화일 뿐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해. 좋은 소리,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 정답. 같아서 죄송합니다. 뻔하지만 가장 중요해. 모두 알고 있지만 잊고 있는 그 가장 중요한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하고 싶었어요.
누군가의 표현을 빌어서, 썩을 대로 썩은 이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가장 소중한 것 한 가지. 사랑.
그래.
이렇게 죽 끄집어내고 나니까 좀 깔끔해졌네.
핵심은 어린이였던 시절을 잊고 어른의 눈으로 어린이들을 보는 것
진짜 눈여겨, 마음을 써서 볼 어린아이들의 두려움은 보이지 않는 것이라는 것
보이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역시 보이지 않은 것으로 다독여야 한다는 것
그것은 관심. 따뜻함. 사랑. 이구나.
하지만, 이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은 어른이 되어서도 똑같이 느끼는 두려움. 어린아이들만 느끼란 법 없는 두려움.
난 말야, 내가 김치를 잘 먹어도, 앞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불러도 아무 표정도 짓지 않는 삼촌이 무서워.
며칠 밤낮을 아무것도 먹지 않는 우리 집 금붕어 왕눈이가 내 곁을 떠나는 건 정말 싫어.
이제야 말하지만 엄마도 아빠도 모두가 바빠 온종일 텔레비전만 봤던 나의 생일날은 얼마나 외로웠던지.
아무리 이야기해도 아무도 내 말을 믿어 주지 않았던 날은 또 얼마나 답답했던지.
온 집 안이 무너질 것 같이 큰 아빠의 고함 소리를 들을 때면 내 가슴도 무너져 버릴 것만 같아.
감정에 대한 직접적인 글로의 표현은 그림으로 감정을 온전히 느끼는 것에 방해를 주겠지. 그림으로써 느끼길. 그림에서 더 많은 소리를 듣길.
아, 이 전에 썼던 글들을 보니까 훨씬 깔끔해지긴 했다. 아직 멀긴 했지만 훨씬 윤곽이 잡히고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내 마음속에도 온전히 스며들고.
순우 쌤의 말씀대로 화자를 ‘동생’에서 ‘나’로 바꾼 것은 정말 잘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물론 동생이 말을 했어도 더 다듬고 다듬고 또 다듬다 보면 더 좋은 글이 나왔을 수도 있었겠다. 하지만 첫 작품임을 생각하고 나의 내공을 생각한다면 훨씬 깔끔하다. 지금이.
책상 앞에 걸려 있는 별 스티커 붙이는 달력을 보았다. 참 차근차근 잘 해 왔다 싶다. 행사가 있던 날을 제외하고는 하루도 빠짐없이 하루에 짧게는 2시간, 길게는 15시간을 의자에 앉아 지냈다.(세어보니 15시간. 헉 15시간이라니. 후달달)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의 힘이란, 이런 거구나.
작품을 하는 기간 동안 단 한 번도 귀찮아서, 하기 싫어서 하지 않은 날이 없다. 1분 1초가 아까워 책상 앞, 이젤 앞에 앉아 있었다. 행사가 있어 작품을 만지지 못했던 날들도 그리 찝찝한 기분은 아니었다. 다시 돌아가서 열심히 주물럭거릴 것이므로.
아아 재미있다. 학교 다니며 이렇게 한 가지에 몰두해 본 적이 있었던가. 숙제하는 시간이, 책 읽는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처음이다. 작품인데도 2학기 때의 발표가 아닌 1차 발표를 한다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일찍 발표하게 되어 내게 주어진 짧은 시간에 대한 미련은 없다. 지난 4개월 동안(이것저것 빼고 나면 3개월), 나는 ‘열정’ 그 자체였다. 늘 하고 싶은 것이 많고 특정한 어떤 것 하나에 우선순위를 두지 못할 만큼 많은 것을 좋아했던 내가, 단 하나에 우선순위를 두고 이렇게 몰두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행복하다. 감사하다.
2009. 6. 15. 월요일
제목을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응?
가장 중요하지만 잊고 있었던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책
아아 어린아이들을 위한 그림책이 아니었다면 좀 더 쉬웠을 수도 있겠다.
어른들을 미워하게 하고 싶지 않아.
왜 몰라 주냐며 답답함을 표하고 있다.
여길 좀 보세요. 귀를 기울여.
오. 그림을 좀 더 그릴까.
“절대 보지 마세요. 절대 듣지 마세요!”
하며 땅 속에 비밀 기지를 만들어 놓고 있는 소녀가 살짝 살짝 말하는 거.
후에는 동생이 발견, 소녀를 끄집어내어 꼭 안아 주는 것.
AM 1:00
아 편집은 고달픈 시간의 연속. 컴퓨터 앞에 앉아 있기 싫으다다다다.
2009. 6. 16. 화요일
어두운 파랑의 감정을 그린 그림을 볼 때면 정말 무서움을 느낀다. 가슴이 콕콕 찔려 온다.
그림을 그릴 때만은 나의 감정에 혼신을 다했기 때문이리라. 왜냐하면 나는 그 언젠가부터 나의 감정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을 꿈꾸고 꿈꿔 왔으니. 그 그림들은 곧 나의 감정이다. 그림들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울렁울렁 아프지만, 아픈 감정을 남김없이 표현해 낸 것에 대한 미소도 같이 지어진다.
2009. 6. 17 수요일
왕잉국꽉 ‘원고’를 쓰는 일은 정말이지 날 딱딱한 사람으로 만들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야. 어째서 원고를 쓸 때 자유롭지 못한 것이야. 형식에 매여서 하고 싶은 말을 못하고 있는 느낌이야. 겉도는 느낌. 형식도 중요하지. 그치만 더 중요한 건 알맹이.
2009. 6. 19. 금요일
미숙하기 그지없는 나의 작품을 두고 하는 ‘잘했다, 훌륭하다’ 칭찬들에 제 발이 저린다.
작품의 주제에 대해 얼마나 절실한가.
나는 내 가장 가까이에 있는 어린아이, 내 동생 건희에게 따뜻함을 얼마나 느끼게 해 주고 있는가.
작품의 완성도를 좇으며 기술적인 것에 허덕이다 보니 ‘작품성’을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왜 한 발짝 떨어져 보는 것을 잊었어. 왜 좀 더 시적이지 못했어.
2009. 6. 20. 토요일
작품을 포함한 원고 자체의 제목은 “가장 중요하지만 잊고 있었던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이야기”로 정했어. 첫 제목이었던 'Be a Child' 또한 같은 이야기였지. ‘순수’를 잃지 말자. ‘순수함’ 그 자체인 어린아이가 되자. 그리고 작품에서도 같은 이야기를 했어. 작품에 임하는 나의 이야기 또한 ‘꿈’을 실행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 그래. 내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들은 보이는 것이 아냐.
그 누구도 아닌 ‘날’ 깨우기 위한 3개월의 시간. 이건 가장 중요하지만 잊고 있었던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이야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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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선진
1991년 대한민국에서 태어났으며 금산 간디학교에서 공부했다. 그림 그리기, 콧노래 부르기, 이야기 나누기, 주위사람 흉내 내기, 우스갯소리를 모두 할 수 있는 작은 일상을 좋아한다. 지금은 세상에 없지만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