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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호](대토론회 발제문) 청소년 소설에서 ‘성장’의 의미와 범주ㅣ 이인화

작성자임어진|작성시간11.08.29|조회수890 목록 댓글 0

 

 

청소년 소설에서 ‘성장’의 의미와 범주

 

이 인 화 

 

  

“자아 발달은 성숙이며, 그것을 강요할 방법은 없다.

우리는 다만 문을 열기 위해 노력할 수 있을 뿐이다.”  

-Jane Loevinger

 

 

1  청소년 소설의 키워드, ‘성장’

 

2008년, 김려령의 『완득이』와 전아리의 『직녀의 일기장』 등이 청소년 문학상을 수상하고 대중적으로 많은 인기를 끌면서 청소년 문학에 세간의 관심이 쏠렸다. 문학을 향유하는 새로운 주체가 발견되었다며 청소년 및 청소년 문학에 대한 논의가 뜨거웠다. 청소년은 누구인가, 청소년 문학 ․ 청소년 소설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했으며, 2009년에는 청소년 소설과 성장 소설의 관계에 대한 집중적인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1)

한국에서는 청소년 소설은 적어도 청소년이 읽기에 적합한 소설이어야 한다는 합의가 있었다. 그러나 청소년 독자들이 청소년 소설을 수용하는 양상이나 원리에 대한 실증적인 연구는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청소년기의 발달 특성을 고려하자면 성장 소설이 가장 대표적이고 적합한 유형이라는 견해가 상식적인 수준에서 통용되었을 뿐이다.2)

이후 문학 독자들의 욕망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이 뒷받침되면서 ‘성장’에 대한 갈증이 설명되기도 했다. 성년식을 제대로 치르지 못한 채 성인 아닌 성인이 되는 한국 사회의 미성숙성이 청소년 문학에 대한 수요를 키웠으며,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청소년 문학은 성장 서사를 지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같은 풀이는 오늘날 10대의 성장을 다룬 작품을 사회 소설의 하나로 끌어올리기도 한다.3)

청소년 소설의 역사나 장르 명칭에 대한 논의 등은 기본적으로 청소년 소설의 정체성을 규명하고 인정받기 위한 투쟁이었다고 판단된다. 그중에서도 성장 소설과 청소년 소설을 두고 펼쳐진 논의는 여러 면에서 의미가 있다. 성장 소설과 청소년 소설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밝혀내려는 그간의 연구들은4) 청소년 문학의 중핵을 ‘성장’에 두고 청소년 문학 창작과 평가의 키워드로 삼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장르 간 변별점을 찾으려는 시도는 청소년 문학만의 특성을 예각화하기 위한 노력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동안 청소년 소설 논의에서 성장은 주요 키워드로서 논의를 생성하고 전개시키는 데 기여해 왔다. 청소년 시나 청소년 소설, 판타지 소설, 역사 소설 등 청소년 문학을 구성하는 여러 가지 하위 장르들이 존재하는데, 그 모든 것들을 통어하는 개념으로서 성장의 중요성을 부인하기 어렵다.

청소년 소설과 성장 소설 간 혼동을 겪던 초기 논의는 차츰 청소년 소설의 핵심적 수용자로 청소년을 설정하는 방식으로 청소년 소설을 성장 소설로부터 분리하고자 했다. 성장 소설과 청소년 소설은 상이한 문학적, 미학적 규범을 지녔다기보다는 독자의 연령대로 구분된 수용자 중심적 구분이라고 본 것이다.5) 그러나 동시에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문학이니만큼 성장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지속적으로 존재해 왔다.

이처럼 청소년 문학과 성장 소설 간 관계를 규명하기 위한 논의들은, 최근 들어 성장의 의미를 세분화는 방향으로 정리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청소년 소설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성장’이란 개념은 아직도 상당히 다양하고도 혼란스럽게 사용되고 있다. 현재 한국 청소년 문학의 생산과 평가 과정에서 ‘성장’이 어떻게 정의되고 통용되는지를 살펴보는 과정은 청소년 문학이 넘어야 할 경계와 지켜야 할 경계를 가늠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2  ‘성장’의 스펙트럼

 

(1) 온건한 사회화로서의 성장

 

청소년 문학을 바라보는, 여전히 공고한 한 축은 사회화로서의 성장을 강조하는 입장이다. 아동기는 벗어났지만 성인이 되지는 못한 청소년들은 앞으로 더 많이 성장해야 하는 존재로 간주되는데, 이때의 성장이란 기존 사회 체제로 원만히 진입하는 사회화와 밀접한 의미이다. 본래 성장 소설이란 주인공이 근대적 시민 사회의 구성원이 되기 위해 문화적 교양을 쌓고 주체 정립의 시련을 겪는 과정을 제시하는 소설의 유형이다.6) 물론 서구의 성장 소설이 안정적인 내적 형식을 갖추고 있다고 할지라도 순탄한 제도로의 입사(入社)만을 그리는 것은 아니며 성장에의 거부나 유예가 드러나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의 초기 청소년 소설들은 주로 전자의 성장 개념에 착목하였으며, 청소년 소설에 대한 평가 역시 교양의 습득이나 소명 의식의 획득 여부에 따라 달라졌다.

논란의 여지가 있기는 하지만 언론에 의해 청소년 소설이라고 지칭되기도 했던 황석영의 『개밥바라기별』(문학동네, 2008)이나 이상권의 『난 할 거다』(사계절, 2008) 외에도 박상률의 『나는 아름답다』(사계절, 2002), 임정진의 『발끝으로 서다』(푸른책들, 2006)와 같은 작품들은 성장 서사의 도식을 순탄하게 따라간다. 『개밥바라기별』이나 『난 할 거다』는 성인 화자가 자신의 유년 시절을 회고조로 서술하고 있다. 현재에 비추어 과거에 의미를 부여하고, 과거에 비추어 현재 자신의 모습을 정당화하는 과정 속에서 독자들의 공감을 얻고 독자들을 설득하려는 노력이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작품에서는 십대를 관통하고 있는 경험자아가 자신의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대신, 자기애 강한 성인 화자가 과거사를 정리하게 되므로 정작 현실을 살아가는 청소년들의 모습은 뒷전으로 밀려난다. 이와 같은 자전적 성장 소설은 서술자 혹은 작가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경험과 기억을 정리하고 세계관을 표명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겠으나, 청소년 소설의 정체성을 중심에 놓고 보았을 때는 대상화된 십대를 그린다는 평가를 피해 가기 어렵다.

『발끝으로 서다』는 한국인 ‘재인’이 영국으로 발레를 배우러 유학을 가 ‘제인(Jane)’으로 살아가면서 겪는 문화 차이나 가족 간 갈등 문제를 해결해 가는 과정을 통해 ‘더 이상 울보 제인이 아닌’ 성숙한 ‘나’로 자립하는 이야기이다. 『나는 아름답다』 역시 『발끝으로 서다』와 마찬가지로 전형적인 성장 서사의 틀을 따른다. 주인공 선우는 좋아하던 미술 선생님의 결혼과 수현의 죽음으로 인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작가는 청소년기에 겪을 법한 혼란을 주인공의 자각으로 헤쳐 나가는 과정을 보여 줌으로써 매우 긍정적인 전망 속 ‘예정된 성장’을 성취한다.

이러한 작품들의 등장은 독자들의 작품 수용 능력과도 무관하지 않다.

 

일반적인 성장 소설과 달리 다소 어둡고 다루고 있는 소재도 매우 ‘미드(미국 드라마)’적이다. (……) 정신 분석의 잣대를 들이댈 필요가 없을 정도로 너무 뚜렷하고 스키마(schema)틱하다. 괜히 손을 대고 싶지 않을 정도로 강렬하고 숨김이 없이 적나라해서 도리어 반감이 드는 설정들이다. 그럼에도 읽을 만은 하다. 그렇지만 이걸 아이들이 볼 필요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여 청소년을 다룬 소설이라고 보는 것이 옳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7) (밑줄: 인용자)

 

위의 인용문은 구병모의 『위저드 베이커리』(창비, 2009)를 읽은 한 성인 독자의 감상이다. 이 독자는 『위저드 베이커리』를 ‘일반적인 성장 소설과 다르다’고 평가하고 있으며 그 이유가 ‘강렬하고 적나라한 내용’에 있다고 본다. 더 나아가 이 독자는 현실의 적나라한 모습을 청소년 독자가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는 청소년이 현재 무엇을 보고 듣느냐와는 무관하게 청소년이 들어야 할 것과 보아야 할 것을 재단하고 있는 태도이기도 하다.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들어야 할 청소년들에게 어른들 세상의 추한 모습은 알려주고 싶지 않은 것, 감추고 싶은 부분이기도 한 것이다. 때문에 교양의 완성과 사회화를 강조하는 청소년 소설을 강조하게 된다.8)

교양 형성으로서의 성장 개념과 청소년에 대한 보호주의적 입장을 작가와 독자가 공유함으로써 작품 속에는 전형적 알레고리가 반복되기 쉽다. 이는 청소년 소설이라는 장르에 안정감을 가져올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여기’에서 살아가고 있는 청소년들이 겪는 현실 속 폭력성, 정치성, 갈등의 첨예함은 휘발되고 만다. 이와 같은 양상은 현실의 청소년을 탐색하기보다는 작가들의 관념 속 청소년상, 자기 경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청소년상을 형상화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리하여 그 주인공들의 성장 역시 자신의 사회화 결과, 교양의 습득에 갇히는 양상을 띠는 것이다.9)

 

(2) 반(反)성장으로서의 성장

 

온건한 사회화로서의 성장에 대한 회의가 일면서, 그 대타항이 등장한다. 기존의 순응적 성장에 대한 주인공의 거부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소위 ‘반성장’이라 불리는 것들인데, 성장의 긍정적인 모델을 계속적으로 탐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반성장은 또 하나의 성장 모델이 될 수 있었다.

근대 이전의 로맨스와 달리 근대 소설은 합리성과 사회학적 인간관을 바탕으로 형성되었다. 하지만 합리성을 추구하되 여전히 불완전성을 지닐 수밖에 없는 근대 소설의 한계는 성장 소설을 통해 그 한계를 드러낸다. 성장의 과정이란 합리적인 상징계에 진입하는 경험이지만, 또한 상징계의 비일관성으로 인해 분열과 방황을 겪는 과정이기도 하다.10) 이와 같은 성장의 이중적 의미는 어른들의 근대적 기획인 대서사의 이중성에 상응한다. 계몽 서사이든 해방 서사이든 대서사는 사회를 통합적으로 해석하려는 기획이지만, 완전한 통합은 불가능함을 스스로 드러낼 수밖에 없다. 그에 따라 대서사 시대의 성장 소설은, 내 안에 이미 내재되어 있으며 벗어나기 어려운 사회적 규범과 함께 살아가면서 때로 동요하는 상태를 보여 준다. 하지만 ‘아버지의 권위’와 ‘어른들’에 대한 반항은 어디까지나 그들이 쳐 놓은 울타리 안에서 발생할 뿐이며, 소설적 리얼리티 역시 어른들의 합리성에 근거한 대서사와의 연관 속에서 얻어진다.11)

그러나 90년대 이후에는 사정이 달라진다. 대서사와 어른들에 대한 불신이 싹튼다. 그 때문에 성장 소설은 아버지의 권위뿐만 아니라 어른으로 자라나는 성장 자체를 거부하게 된다. 아버지의 권위를 부정하는 순간조차 아버지의 그늘 안에 머물렀던 이전 시대와는 달리, 대서사의 전제인 성숙한 합리적 감각은 더 이상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12)

 

“아빠는……우리한테 뭘 남겼을까?”

정후가 가만히 물었다. 정아의 흐느낌이 여백을 메웠다. 그래도, 뭔가 남겨 주지 않았을까? 어렸을 때 읽은 책 중에 그 얘기 기억나? 부자 아버지가 삼형제에게 유산을 남겨 주잖아. 과수원인지, 밭인지……암튼 그 곳에 보물이 숨어 있다고. 그런 것처럼 말이야, 라고 정후가 읊조렸다. 그래서 결국 보물이 있었던가? 뭔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하도 오래 전 이야기라 기억이 잘 안 나네.

 

이현의 「그가 남긴 것」(『영두의 우연한 현실』, 사계절, 2009)에서 아버지의 죽음 이후 인물들이 아버지가 남긴 것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장면은 상징적이다. 아버지의 권위를 찾지 못하는 상태가 아니라 아버지의 권위와 역할 그 자체를 회의하기 때문이다. 

전아리의 『직녀의 일기장』은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직조되면서 녹록치 않은 현실을 살아가는 청소년들의 삶의 모습을 재기발랄하게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이다. 말썽만 피우는 주인공 직녀는 가족들의 홀대와 원만하지 못한 학교생활로 좌충우돌하며, ‘되도록이면 가볍게’ 살아가고자 한다. 하지만 결국 마지막에는 간호대에 수시 전형에 합격함으로써 삶에 달콤한 입맞춤을 하며 끝을 맺는다. 기존의 성장이 제도로의 편입과 소명 의식의 획득을 강조했다면 직녀는 그 반대편에 자리 잡는다. 이러한 직녀의 모습은 ‘무도덕성에 봉사하는 도덕성’13)으로 비판할 수도 있지만, 자신이 욕망하는 것을 찾아 나서고 발견해 내는 청소년의 모습을 형상화했다는 점에서 반성장의 일면을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교양 개념을 벗어나 존재하는 성장에 대한 탐색은 청소년이라는 주인공, 수용자와 만나면서 독특한 효과를 만들어 낸다. 반성장을 형상화하는 청소년 문학은 한국 사회에 깊숙이 내재되어 있는 여러 고정관념을 회의하고 재정의할 것을 요청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제, 청소년 문학은 기존의 세계관과 첨예하게 대립하는 지점에 위치하는 듯 보인다.

 

(3) 주체성의 확립으로서의 성장

 

기존 성장 관념의 대타항으로서 반성장을 논의하는 입장이 성장의 모델로 구성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주체적인 청소년’이다. 기존 세대의 가치관에 손쉽게 포섭되거나 타락하지 않는 청소년 주인공이 작품 속에 등장해 바람직한 인식의 주체이자 행동의 주체로 존립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14)

전복적이고도 대안적인 청소년상의 확립이 절실한 때이고, 이를 위해서는 청소년들의 자의식을 발달시킬 수 있는 서사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은 충분한 타당성과 시의성을 지닌다. 청소년기를 더 이상 미성숙의 시기로 규정하고 그들의 삶을 성인들이 통어해야 한다는 주장은 부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 질문이 생긴다. 이때의 주체성이란 무엇인가. 무엇을 함의하고 있는가. 청소년 (소설)을 바라보는 부당한 관점에서 비켜나 있는가.

 

청소년 소설에서 아버지의 질서를 맹목적으로 거부하는 인물도 문제지만 조력자에 의해 성장‘되어버린’ 인물도 문제이다. 이것은 아동 문학에서 아동을 보호의 눈으로 바라보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즉 이런 인식은 청소년들을 악에서 구해야 한다는 어른의 사명감을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한편 독자인 청소년에게는 일탈에 대한 짜릿함을 맛보는 오락물에 그칠 수도 있다. 이것은 청소년을 독자로 하는 소설로 보기에는 미흡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성장 과정이 그려지면서 구조적으로 모순을 안고 있는 인물의 내면화된 갈등과 문제 해결 방식을 찾아야 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15) (밑줄: 인용자)

 

위의 글에서 청소년 소설에서 성장을 포기하는 일의 어려움을 엿볼 수 있다. 사회의 변화에 동반되는 청소년 위상의 변화를 감지하고 청소년 소설이 변화해야 함도 인식하고 있지만, 정작 청소년 문학에 대해서는 성장에 대한 기존의 관념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청소년 문학에서는 보기 드문 SF 소설인 배미주의 『싱커』(창비, 2010)는 창비 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는데, 이 작품의 수상은 두 가지 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하나는 청소년 소설의 장르가 다양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는 점이다. ‘시안’과 ‘신아마존’이라는 색다른 공간을 창출하고 다른 생물과 신경적으로 접속할 수 있는 싱커라는 게임을 고안하는 등 탄탄한 상상력을 자랑하며 장르 문학의 성립을 추동한다. 다른 하나는 이상화된 청소년상이 그려졌다는 점이다. ‘시안’을 공간적 배경으로 미마와 부건, 칸은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모험심을 갖고 시련을 이겨내 결국 세상을 구원한다. 이 과정은 끊임없는 상징계의 방해, 어른의 간섭 속에서도 꿋꿋이 이루어지는 ‘주체적’인 여정이다.16)

결국 가장 최근의 논의라고 여겨지는 주체성 담론마저도 무언가를 행하는, 무언가를 해결하고 해소해 내는, 무언가를 이룩하는 청소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삶에서 맞닥뜨리는 문제를 해결하고 화해로 나아가는 일은 청소년을 비롯한 우리 모두의 바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 아닌 누구도 나를 대신해 숙고할 수 없으며 대신 행동할 수 없다. 문학 역시 ‘나’의 숙고의 대상, 행동의 대상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청소년 문학을 통해 주체적인 청소년을 형상화하고자 하고, 청소년 문학 읽기를 통해 주체적인 청소년이 형성되기를 원한다면 청소년 문학은 그들이 스스로 삶의 문제를 극복하고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수 있는 자양분을 만들어 주는 데 그 소임이 있다.

오랫동안 청소년 문학 속 성장에 대해 논의해 왔고, 논의의 수준을 상당히 진척시켰지만, ‘윤리적 계몽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강령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성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미련 사이에서 딜레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17) 이 딜레마는 청소년문학의 문학성을 강조하는 자리까지 끈질기게 따라다닌다.18)

작중 인물의 성장보다 중요한 것은 독자의 성장이다. 성장하지 않는 인물이 등장할 수도 있다. 무(無)성장의 서사는 그 나름대로 독자에게 의미를 갖는다. 청소년들을 편들어 주는 문학이 아니라, 그들의 삶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작품들이 등장할 때가 아닌가. 때로 청소년들은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 특권적 주체의 자리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3  ‘성장’을 넘어 다양성으로

 

성장 소설에 포섭되는 청소년 소설이 존재한다. 하지만 청소년 문학 모두가 성장 소설에 포섭될 필요는 없다. 지금까지 우리는 청소년 문학이 어떤 성장을 형상화하느냐에 따라 청소년 독자들이 성장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여겼던 것은 아닐까. 현실적인 수용자로서의 청소년에 대한 실증적인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청소년 소설의 독자인 청소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들이 실은 이념형에 지나지 않을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소년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청소년문학의 양상이 달라질 것은 분명하다. 그럼 점에서 ‘성장’에 대한 강조는 특정한 성장으로 이끌리지 않는 청소년에 대한 불안감의 표출이기도 할 것이다.

청소년 소설은 좀 더 다양화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청소년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청소년들이 어른들이 상상하는 모습으로 살아가든 그렇지 않든, 그것을 응시함으로써 현실의 청소년의 실제에 다가가야 한다. 현실 속에서 청소년들이 겪는 일, 느끼는 것, 생각하는 것, 대응하는 방식 등을 있는 그대로, 질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지독한 현실, 삶의 다양한 굴곡을 편견(그것이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없이 응시함으로써 청소년만이 아니라 청소년을 둘러싸고 있는 더 큰 맥락들을 읽어 내고, 청소년과 그 맥락들 사이의 관계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은 타자와의 만남을 통해 자기 안에서 보지 못했던 것을 발견하게 된다. 바흐친은 이렇게 묻는다. “만일 타자와 나와 뒤섞여버린다면 나는 과연 무엇을 얻어낼 수 있겠는가? 그는 내가 이미 보고 안 것만을 보고 알 것이며, 나 자신의 삶의 불가피한 폐쇄적 원환을 단지 그의 내부에서 반복하게 될 것이다. 차라리 그를 나의 외부에 그대로 내버려 두자.”19)

청소년의 삶을 나의 외부에 존재하는 것으로 인정하고, 그것을 나의 관념 안에 포섭하는 대신 청소년 삶의 독자성과 자율성의 기제를 밝히는 작업이 간단치는 않을 것이다. 이미 자신의 가치관을 공고히 하고 생의 경험을 축적한 성인이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는 것, 게다가 바라보아야 할 대상이 늘 불안하고 불안전하다고 여겨지는 청소년이라는 것이 선지식과 선입견의 작동을 부추기기 쉽다. 그러나 성인들의 선개념이 때로 오개념이거나 폭력으로 작용할 수 있고, 어떤 순간에는 성장을 가로막을 수도 있다.

끈질긴 응시를 바탕으로 창작된 청소년 문학에는 성장의 양상을 찾기 어려울 지도 모른다. 우리가 주위에서 응시하게 되는 청소년들은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나도 성장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응시했던 그들의 삶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함으로써 ‘독자의’ 성장을 도모할 수는 있다. 신여랑의 「화란이」(『자전거 말고 바이크』, 낮은산, 2008)는 독자들로 하여금 그동안 모른 척했던 혹은 모르는 척 하고 싶었던 ‘화란이’의 존재와 그 너머에 있는 사회의 문제를 바라보게 한다. 우리가 바라는 생기 넘치고 재기발랄한 청소년, 그 이면에는 ‘화란이’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서술자가 지칭하는 ‘너’는 성인 독자이기도 하지만 청소년 독자이기도 하다. 사회의 내부자인 ‘너’와 내부로부터 배척당하는 ‘화란이’는 현재의 사회 구조를 생산한 ‘원인 제공자’와 이 사회의 ‘희생양’의 관계20)라고만 단정 지어 말할 수 없다. 청소년들 역시 엄연한 이 사회의 구성원이며 시스템을 움직이는 주체이다. ‘화란이’가 아웃사이더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를 존재하게 하고, 사회 공동체에서 몰아낸 것이 성인이라는 생각에는 청소년에 대한 편견이 담겼다. 오히려 이 작품은 독자를 ‘너’로 호명함으로써 성인은 물론 청소년까지도 사회적 타자의 문제에 동참시킨다.

자신이 속한 세대의 삶, 현실 속 나의 삶 혹은 나와 다른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견디는 것은 독자 입장에서도 역시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것을 견디는 과정 역시 독자를 성장하게 하는 일이다. 청소년들이 자기 삶의 주체로서 성장해야 한다는 담론에서조차 계몽성을 탈피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주체성의 주체가 누구인가와도 관련된다. 많은 작품들이 청소년 일반의 주체성으로 귀결되다 보니 개별적 주체로서의 주체성을 사라지고 만다. 성별, 연령, 계급, 지역, 가치관, 성격, 경험 등 개별 주체를 구분하는 수많은 지표들이 제각기 살아갈 인물을 구성한다면, 모든 청소년과 모든 인간에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결말로는 이어질 수 없을 것이다.21)

더불어 청소년 소설에는 화해로운 결말보다는 아이러니와 균열이 더욱 많아져야 한다. 구병모의 『위저드 베이커리』가 의미 있는 까닭은 청소년들에게 핑크빛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은 계속되고 시련은 끝나지 않으며, 우리는 그 시간의 켜를 견뎌 나아가 함을 역설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둘러 갈등을 봉합하거나 갈등으로부터 도망치는 대신 상처를 응시함으로써 그 안에 존재하는 우리 삶의 아이러니와 미세한 균열들을 포착하는 미덕을 지녔다.

김려령의 『우아한 거짓말』(창비, 2009) 역시 아픈 현실을 그려 내기 위해 애쓰고 있다. 우리 모두의 삶에 얽혀들어 있는 관계 맺기의 문제, 상처, 그 치유의 과정을 보여 준다. 하지만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인물들을 인정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더구나 ‘가해자’ 입장에 처한 사람들조차 온 힘을 다해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소중한 사람들을 지켜내고 있음을 확인하는 것은 더더욱 힘든 일이다. 하지만 “이들을 두고 성장을 거부하는 아이들이라고, 혹은 그런 어두운 시간을 지나면서 성장하거나 혹은 못하기도 한다고 말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를 묻게”22) 된다.  

또한, 소설 속 등장인물로서만이 아니라 청소년 문학의 수용층으로서 청소년에 대한 탐색도 꾸준하게 이어져야 할 것이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청소년 문학의 주요한 장르적 특징 중 하나로 수용층의 특수함을 들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청소년 문학 논의에서는 수용층에 대한 탐색이 미진하다.

기존의 청소년 독자에 대한 사회적, 이론적 담론은 청소년 ‘문화’의 틀보다는 청소년 ‘문제’의 틀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았다.23) 청소년 혹은 중고등학교의 독서 문화도 즐거움이나 사유 그 자체보다는 치료와 극복, 교육이라는 차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24) 청소년 문학계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청소년 문학이 청소년 문학답기 위해서는 청소년의 문제가 아닌 청소년의 존재 자체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며 청소년 문학의 수용자이자 작가로서의 청소년에 대한 질문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청소년소설이 적극적으로 환기하는 독자에 대한 질문은 실증적인 차원에서든, 논리적인 차원에서든 지속적으로 제기되어야 한다. 또한 청소년들이 쓴 작품을 되짚어 보며 그들의 삶에 닥친 현재의 문제는 무엇이며,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문제는 무엇인지 파악하는 작업도 필요할 것이다.

청소년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는 것은 어쩌면 성인들에게 더 힘든 일일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성장의 강박에서 벗어난 청소년 문학은 어른들에게 또 하나의 도전이 될 지도 모르겠다.

 

 

4. 넘어야 할 경계와 넘지 말아야 할 경계

 

최근 몇 년간 지속되어 온 청소년 문학의 열기는 그 자체로 유의미하다. 문학의 장을 넓히고 문학 수용층의 확대를 이루었다는 점뿐만 아니라 문학의 지형을 보다 복잡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청소년 문학은 관성처럼 배어 있는 교육에의 의지와 각질화된 성장 개념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성장에 대한 강박으로부터 벗어나자는 생각은 이미 공언된 바 있으나 선언만 무성할 뿐, 실제 작품과 비평에까지는 널리 확산되지 못한 듯하다. 청소년의 삶, 성장, 그리고 그 형상화의 삼각관계가 다변화되지 못한다면 청소년 문학 자체가 성장하기 어려울 것이다.

개개의 청소년들은 이미 독립된 주체이며 각자의 생을 온 힘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 청소년 소설에 구현된 성장을 통해 청소년의 의식을 변화시키고 고민을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은 어른들의 지나친 욕심일지 모른다. 때문에 청소년 문학은 ‘청소년’을 드러내는 동시에 ‘삶’의 문제에 천착해 나가는 데 진정한 소임이 있는지 모르겠다. 청소년들을 특권적 주체로 만들어버리는 우를 범하지 않으면서, 청소년들의 일상적 ․ 비일상적 삶에 대해 끈질기게 응시하면서 말이다. 

문학은 독자를 성장하게 한다. 또한 성장하게 해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진정한 문학은 독자를 타락시킬 수 없음도 기억해야 한다.

 

 

이인화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지금은 청소년, 문학, 소통에 대해 고민하며 현대소설교육과 청소년문학을 공부하고 있다.

  


1) 조은숙(2009), 「풍문 속의 ‘청소년문학’ -성장소설 대 청소년소설 논쟁에 부쳐」, 『창작과비평』 146, 창비., 오세란(2009), 「청소년문학과 청소년문학이 아닌 것」, 『창비어린이』 24, 창비어린이., 김명순(2009), 「청소년 소설의 문학적 성격과 문제점」, 『현대문학이론연구』 36, 현대문학이론학회 등.

2) 최배은(2005), 「한국 근대 청소년소설의 형성 연구」, 『한국문학이론과 비평』 27, 한국문학이론과 비평학회.

3) 원종찬(2010), 「우리 청소년문학의 발전 양상」, 『한국 아동문학의 쟁점』, 창비.

4) 오세란(2009), 「청소년문학과 청소년문학이 아닌 것」, 『창비어린이』 24, 창비어린이., 유성호(2010), 「발견으로서의 문학 읽기 -성장 개념을 중심으로」, 『문학교육학』31, 한국문학교육학회., 김성진(2011), 「청소년 소설의 장르적 특징과 문학교육」, 『비평문학』 39, 한국비평문학회 등.

5) 오세란(2009), 「청소년문학과 청소년문학이 아닌 것」, 『창비어린이』 24, 창비어린이.

6) 최현주(2000), 「한국 현대 성장소설에 드러난 ‘성장’의 함의와 문화적 양면성」, 『현대소설연구』 13, 한국현대소설학회.

7) 한미화(2009), 「‘화해하지 않는’ 새로운 청소년소설들」, 『청소년문학』 2009년 여름호, 나라말, p.75.

8) 허병식(2009), 「청소년을 위한 문학은 없다」, 『오늘의 문예비평』 72, 오늘의 문예비평.

9) 황광수・박상률 외(2004), 「청소년 문학, 시작이 반이다」, 『창비어린이』 4, 창비어린이.

10) 이언 와트, 전철민 역(1988), 『소설의 발생』, 열린책들, pp.18-21.

11) 나병철(2006), 「환상소설의 전개와 성장소설의 새로운 양상」, 『현대소설연구』 31, 현대소설학회.

12) 나병철(2006), 위의 글., 김종헌(2009), 「靑少年小說의 現實反映과 人物의 內面 成長」, 『아동문학평론』 34, 한국아동문학연구원.

13) 김성진(2011), 「청소년 소설의 장르적 특징과 문학교육」, 『비평문학』 39, 한국비평문학회.

14) 김화선(2009), 「청소년소설에 나타난 성장 서사 연구」, 『국어교육연구』 45, 국어교육학회., 유성호(2010), 「발견으로서의 문학 읽기」, 『문학교육학』 31, 한국문학교육학회., 오세란(2009), 「청소년문학과 청소년문학이 아닌 것」, 『창비어린이』 24, 창비어린이 등.

15) 김종헌(2009), 「靑少年小說의 現實反映과 人物의 內面 成長」, 『아동문학평론』 34, 한국아동문학연구원, pp.81-82.

16) 제3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인 이 작품의 심사평을 참고할 수 있다. 
   “청소년들이 발 딛고 선 현실을 정공법으로 실감 나게 묘파해 낸 수준작이 없다는 점은 올해도 여전히 갖게 되는 아쉬움이었다. (……) 청소년들의 하위문화에 대한 섬세한 관찰과 그들의 자생력에 대한 신뢰야말로 이 소설이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권여선・원종찬 외(2009), 「제3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발표」, 『창비어린이』 7권 4호, 창비어린이)

17) 정혜경(2008), 「이 시대의 아이콘 ‘청소년’(을 위한) 문학의 딜레마」, 『오늘의 문예비평』 71, 오늘의 문예비평., 소영현(2010), 「청소년문학이 질문해야 할 것들」, 『작가세계』 83, 세계사.

18) 고영직(2009), 「십대를 위한 ‘문학’을 위하여」, 『실천문학』95, 실천문학사, 2009년 가을.

19) 게리 솔 모슨 ․ 캐릴 에머슨, 오문석 차승기 외 옮김(2006), 『바흐친의 산문학』, 책세상, p.114.

20) 오세란(2009), 「청소년문학과 청소년문학이 아닌 것」, 『창비어린이』 24, 창비어린이, p.167.

21) 소영현(2010), 「청소년문학이 질문해야 할 것들」, 『작가세계』 83, 세계사.

22) 소영현(2010), 「청소년문학이 질문해야 할 것들」, 『작가세계』 83, 세계사, p.350.

23) 조한혜정(2002), 『왜 지금, 청소년?』, 또하나의문화.

24) 최인자(2006), 「청소년 문학 경험의 질적 이해를 위한 독서 맥락의 탐구」, 『독서연구』 16, 한국독서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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