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 글 | 김리리
니체가 말한 어린아이의 삶
열심히 글을 써도 책을 내기가 어렵다. 출판사들은 불경기를 이유로 출간 권수를 줄이고 있다. 새 책을 출판할수록 오히려 적자라고 한다. 그나마 힘들게 세상에 나온 책들은 독자를 만나기가 어렵다. 부모들은 이미 동화책은 사지 않고 도서관에서 빌려 보는 거로 인식한다. 아이들은 공부하느라 책 한 권 볼 시간이 없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작가들의 삶도 힘들지만, 아이들의 미래가 더 걱정이다. 책과 놀이를 빼앗긴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하면 우울하기만 하다.
열심히 노력해도 성공할 수 없는 사회. 우리는 희망이 사라진 시대를 살고 있다. 앞으로 어떤 글을 써야 하나 고민이 된다. 그리고 고민을 하면 할수록 열정은 식고 한숨만 늘어간다.
부산에 강연 갔다가 돌아오던 길에 차 시간이 많이 남아서 기차역 구석에 있는 서점에 들렀다. 어린이 책 부스는 학습 만화에 점령당해 동화책은 씨가 말랐다. 예상했던 바지만 괜히 울적하다. 씁쓸한 기분으로 돌아서는데, 다행히 인문학 부스에는 읽을거리들이 꽤 있었다. 이런저런 책들을 뒤척이다가 이진우 교수의 『니체의 인생 강의』(휴머니스트, 2015)에 눈길이 멈추었다. 니체의 철학은 매력적이지만 이해하는 게 쉽지 않다. 이 책은 니체의 사상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데 좋은 길잡이가 되어 주었다.
“신은 죽었다. 허무주의 시대가 도래했다. 100년 뒤에 찾아올 무시무시한 손님을 내가 지금 말하노라. 그것은 다름 아닌 허무주의다.”
130여 년 전에 니체가 했던 말이 가슴에 꽂혔다. 니체의 선견지명은 뛰어나다. 희망을 잃어버린 지금 많은 이들이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니체한테 묻기로 했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에 실린 세 가지 변신 이야기를 들어보자. 니체는 인간이 정체성을 찾고 자아를 형성해 가는 과정을 세 단계 변신을 통해 서술하고 있다.
“나는 이제 너희에게 정신의 세 단계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련다. 정신이 어떻게 낙타가 되고, 낙타가 사자가 되며, 사자가 마침내 어린아이가 되는가를.”
삶의 무거운 짐을 지는 낙타의 삶과, 기존의 가치를 부정하고 맞서 싸우는 사자의 삶, 그리고 마지막으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어린아이의 삶.
낙타의 삶이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무게를 지탱하며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인고의 삶이라면, 사자의 삶은 기존의 가치와 질서를 뒤엎고 자아를 찾아가는 단계라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삶의 완성 단계는 어린아이의 삶.
니체가 자아를 형성해 가는 과정의 마지막 단계에서 어린아이의 삶을 이야기했다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19세기의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년)는 어린아이를 어떻게 보았을까? 그리고 어린아이의 어떠한 삶이 니체로 하여금 자아 형성의 마지막 단계로 보게 되었는지 호기심이 생겼다.
“ 어린아이는 순진무구하며, 망각이며, 새로운 시작, 놀이, 스스로의 힘에 열심히 의해 돌아가는 바퀴, 최초의 운동, 거룩한 긍정이다.”
어린아이를 바라보는 니체의 시선은 이후 어떠한 이들이 어린아이에 대해 정의 내린 말보다 정확하고 훌륭하다. 그리고 그의 표현은 시적이기까지 하다. 니체가 왜 인간의 마지막 완성 단계를 어린아이의 삶이라고 했는지 충분히 공감이 간다.
“그렇다. 나의 형제들이여. 창조의 놀이를 위해서는 신성한 긍정이 필요하다. 정신은 자기 자신의 의지를 욕구하며, 세계를 상실한 자는 자신의 세계를 되찾는다.”
“신은 죽었다.”고 말했다는 이유로 많은 이들이 니체를 허무주의자로 오해하고 있지만, 니체는 긍정적인 삶을 이야기했다.
작가로서의 삶에 대한 고민도 니체가 말한 세 가지 변신 이야기 안에 답이 있는 것 같다.
무거운 삶의 짐을 짊어지고 묵묵히 자기의 길을 갔던 이들만이 사막을 횡단하게 된다. 그들은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도 걷고 또 걷고 단순히 반복되는 삶을 견뎌내야 한다. 그리고 사막을 횡단한 이들만이 삶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들에게는 남들에게는 없는 특별한 경험과 인고의 삶이 있기 때문이다. 그다음 단계는 사자의 삶이다. 기존의 가치와 질서를 뒤엎고 새로운 자아를 찾아가는 단계이다. 이 단계에 이르렀을 때에야 삶과 글이 함께 변하는 것 같다.
상상력의 전복은 삶의 변화에서부터 시작된다. 머리로 이해한다고 해서, 머리로만 꿈을 꾼다고 해서 이야기가 되어 나오는 건 아니다. 대부분 작가들이 낙타의 삶에서 사자의 삶으로 넘어가기 전에 고민을 많이 하게 된다. 지금 내가 하는 고민도 여기서 멈추어 있는 것 같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질서라는 게 경쟁을 통해 살아남는 아이들만 인간으로 대접받는 사회이다. 공부에 질식당하는 아이들, 경쟁으로 친구도 잃고, 놀이마저 빼앗긴 아이들을 지켜보고 아파하며 그들 편에서 글을 쓰고는 있지만, 그 길에서 무기력하게 멈추어 있다. 그러니 내 상상력도 낙타의 삶 속에서 멈추어 있는 것 같다. 이제는 기득권이 만들어놓은 기존 질서를 깨부수고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해야 한다. 어린이문학 안에서의 사자의 삶은 그러하지 않을까? 니체가 말한 삶의 마지막 완성 단계는 어린아이의 삶이다. 마지막 변신은 어린아이의 삶으로 돌아가 창조의 놀이를 위해 신성한 긍정을 해야 한다. 작가로서 어느 정도 완성 단계에 이르러서는 다시 삶을 내려놓고 몸을 가볍게 해야 한다. 성공한 아동문학가로 군림하며 또 다른 권력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마지막 단계에서 꼭 잊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어린아이의 삶을 자아 형성의 최종 목표로 생각한 니체는 참 멋진 철학자다. 낙타에서 사자로 사자에서 어린이로 끊임없이 변신하는 삶. 우리는 어린이문학으로 시작해서 다시 어린이로 돌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