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2 - 첫번째 세워진 나라 엘람왕국과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문명!
이란인들은 그리스나 로마 제국과 오래 싸웠던 경험인지 자존심이 강한 민족으로 알려져 있는데, 고대 왕조들을
보면... 엘람(기원전 2700년 ~ 기원전 539년, 2161년간) - 메디아(기원전 678년 ~ 기원전 549년, 130년간)
-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 그리스인의 헬레니즘 왕조 - 아르사케스 왕조 - 사산조 페르시아가 고대 왕조들 입니다.
중세는 이슬람 제국(651년 ~ 861년, 211년간) - 우마이야 왕조 - 아바스 왕조 - 이란의 막간(821년 ~ 1062년,
242년간) - 타히르 왕조 - 사파르 왕조 - 사만 왕조 - 지야르 왕조 - 부와이흐 왕조 - 튀르크(셀주크
및 오스만) 몽골계 정복 왕조들 및 고르 왕조 - 호라즘 왕조 - 일 칸국 - 티무르 제국 - 카라 코윤루 입니다.
근세 이후는 사파비 왕조(1501 ~ 1736, 236년간) - 아프샤르 왕조(1736 ~ 1796, 61년간) - 잔드 왕조(1750 ~ 1794,
45년간) - 카자르 왕조(1794 ~ 1925, 132년간) - 팔라비 왕조(1925 ~ 1979, 55년간) - 이란 이슬람 공화국 입니다.
이란에서 일어난 고대 최초의 국가는 엘람 왕국이니 기원전 2700년에 이란 중부지방에 세워져서 ~ 기원전
539년 까지 2,161년간(?) 이나 존재했던 왕국으로 엘람의 영토에서 사람들은 엘람 신앙을 믿었습니다.
엘람 왕국은 무려 2천년을 이어 오다가 기원전 646년에 이르러 아시리아의 왕 아슈르바니팔이 엘람의 수도
를 침공해 철저한 약탈과 파괴를 하니 쇠퇴하게 되어 기원전 539년에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에 망합니다.
기원전 2350년경 이란의 서쪽 이라크 지방에서 아카드제국이 출현하니 사르곤왕은 메소포타미아를 통일해
거대한 제국을 세웠으나 기원전 2150년경 구티족의 침공으로 망했고 이후 우르왕조와 바빌로니아,
그리고 신아시리아에 이어 메디아 왕국이 출현했는데 결국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가 통일 제국을 세웁니다.
엘람 왕국의 역사를 말하기 전에 먼저 이란인들이 큰 영향을 받았던 서쪽 이라크 지방에서 일어난 세계 4대문명
중에 하나이자 인류 최초의 문명이라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수메르인들의 역사 부터 살펴보기로 합니다.
아브라함이 살았던 땅이라는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두 강의 사이 이라크 남부 “우르” 는 세계
최초의 문명인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문명의 중심 도시인데, 엘람 보다 천년이 빠른 기원전
4000년 부터 문명이 발달하기 시작했으니 수메르인들이 만든 문명인 우바이드 문화가 일어납니다.
기원전 40세기에 메소포타미아(이라크) 의 수메르는 20여개의 독립된 도시국가로 나뉘어져 있었으니
도시는 엔시(ensi 성직자) 와 루갈(lugal 왕) 이 통치하였는데, 도시 국가 중에 키시 (Tell
Uheimir) 는 수메르를 통일하지는 못했지만 서열이 높고 영향력이 강했으니 첫번째 루갈을 배출합니다.
니푸르 (Nuffar) 는 엔릴의 도시이며 수메르에서 종교적으로 가장 중요한 상징적인 도시로, 루갈
들이 '니푸르에서 엔릴에게 선택받은' 수식어를 차용했고 이신 (Ishan al-Bahriyat)
은 우르 제3 왕조가 멸망한후 망명자들에 의해 왕조가 설립되어 패자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라가시 (Al-Hiba) 는 이신과 기르수를 정복하고 영역국가의 첫 발을 내딛은 도시인데 세 도시는
수로로 연결되었으며 움마 (Umma) 와의 긴 전쟁은 역사상 최초로 기록된 전쟁이며,
라가시의 엔시 중에 하나인 구데아는 .....주 신전인 에-닌누 닌기르수 에게 봉헌 되었습니다.
우루크 (Warka) 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대표 메트로폴리스이자 수메르의 중심 도시로 길가메시
서사시의 주인공인 “길가메시가 우루크의 왕” 이며, 우르 (al Muqayyar) 는
우르 제3 왕조로 유명한 도시로 아브라함도 이곳 우르 태생으로 지구라트가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에리두 (Abu Shahrain) 는 수메르 최초의 도시이자 엔키의 도시이니 엔키는 바다의 신
남무와 출산의 신 닌마를 시켜 진흙을 가지고 검은머리의 사람들
(Sag-giga ; 수메르인) 을 만들었으며 대홍수와 방주등이 기록된 점토판이 발굴되었습니다.
성경에 “노아의 방주” 이야기가 나오는데, 우루크와 에리두등 수메르의 “길가메시 서사시” 를 주인공 이름만
바꾸고 그대로 옮긴 것으로 여겨지니, 이는 신바빌로니아가 유다왕국을 멸망시킨후 유대인들을
바빌론으로 잡아왔으니 농노 생활을 하면서 구약성경을 쓸 때 이 지방에 전해지던 이야기였기 때문 입니다.
길가메시 서사시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보다 1500년 앞선 이야기인데, 길가메시는 기원전 28세기경 키시를
멸망시키고 우루크를 126년 동안 지배한 왕이니, 3분의 1은 인간, 3분의 2는 신인 영웅이라는데...
인생 무상을 느끼고 영생을 얻기위해 대홍수에서 살아남은 우트나피쉬팀 (지우수드라) 를 찾아 길을 떠납니다!
B.C. 2900년경 천신 아누와 대지의신 엔릴 등 신들은 홍수로 인간을 멸망시키기로 작정하지만, 지우수드라
(Ziusudra) 노인은 물의 신 엔키의 귀뜸으로 대홍수를 미리 알고는 방주를 만들고 짐승들을
암수 한쌍씩 실어서 40일간의 표류 끝에 살아남으니 영생을 얻어 딜물 (Dilmun) 땅에서 영원히 삽니다.
길가메시가 영생을 얻기위해 찾아간 '우트나피쉬팀' 은 '지우수드라 (Ziusudra)‘ 라고도 하니, 천여년 후인
기원전 18세기에 정리된 최초의 대홍수 신화의 등장인물로 대홍수가 일어났을 때 살아남은 인류의
조상이라는데 이름의 의미는 '대단히 똑똑한 사람' 으로 성경 창세기에 '노아의 방주' 원형이라고 여겨집니다.
엔릴 신은 지상의 난잡함을 두고 볼수 없다고 판단해 대홍수를 일으키기로 하고 신들을 불러들여 '인간에게 누설
하지 않음' 을 전제로 '홍수가 나는 동안 신들만 잠시 지구 밖으로 대피하자' 는 사실을 비밀리에 알립니다.
인간 창조에 관여한 물의 신 엔키는 엔릴의 계획에 반대해 설전을 벌이지만, 결국 인간들에게 알려주지 않겠다고
맹세했으나 인간에게 누설하지 않으면 되는거지? 라는 자의적인 판단하에 도시의 왕이었던 아트라하시스
를 갈대 벽 밖에 세워두고는 '갈대벽' 에게 혼잣말을 해서 엿듣게 하는 편법으로 홍수가 일어날 것을 알려줍니다.
여기서 “아트라하시스” 라는 사람은 수메르 “지우수드라” 이 야기의 아카드어 버전으로
길가메시 서사시 에서는 “우트나피쉬팀” 으로 등장하는데, 오랜 후에 동로마
비잔틴제국의 헬레니즘 시대에 쓰여진 그리스어 버전에서는 “크시수트로스” 라고 나옵니다.
엔키 신은 아트라하시스에게 가로, 세로, 높이가 같은 정육면체에 이층 구조인 방주를 만들라고 지시하니,
마을 사람들과 방주를 건조해 예고받은 그날 마을 사람들과 방주 기술자 및 동원할수 있는 동물들을
한쌍씩 배에 태우고는 하늘에 해가 뜰때 문을 봉했고 신들이 우주로 대피함과 동시에 홍수가 시작됩니다.
40일간 홍수가 지속되었고 아트라하시스 부부는 비둘기를 날렸지만 다시 돌아오니 물이
덜 빠진 것을 알았고, 다음 제비를 날렸으나 돌아오자 마지막으로 까마귀를 날려
돌아오지 않으니.... 드러난 뭍에 배를 정박하고 방주의 동물들 중 하나를
잡아 하늘에 번제를 드리자 굶주림에 시달리던 신들이 주변에 파리떼 처럼 몰려들었습니다.
살아남은 인간이 있음을 엔릴이 알게되고 엔키를 추궁한 끝에 그가 결과적으로 맹세를 어겼음을 깨닫고 분노
하나, 엔키는 "비밀을 폭로한 것은 내가 아니다. 나는 우트나피쉬팀에게 나타나 꿈을 보여주었는데,
그가 신들의 비밀을 들었을 뿐이다. 이제 그의 처우에 대해 상의하자!" 는 식의 억지스러운 말로 그를 달랩니다.
대지의 신 엔릴은 화가 났으나 자기들을 대신해 노동을 해주는 인간들이 없어지면 자기들도 굶는다는걸 깨닫고는
아트라하시스 부부에게 영생을 약속하며 태양이 뜨는 곳이자 신들의 낙원 '딜문' 에 거처할 권리를 부여합니다.
1853년 영국 탐사팀이 아시리아왕 아슈르바니팔이 세운 니네베 도서관에서 아카드어로 된 길가메시 서사시의
점토판을 발굴했으며, 1872년 홍수에 관련된 내용이 번역되면서 길가메시 서사시는 학계의 화제가
되었는데 나중에 발굴된 수메르어 판본은 주인공의 이름 등 아카드어 판본과 내용에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서로 다른 지역에서 따로 수천년 전해지던 길 가메시 이야기들을 처음 채록한 이들은 시간 순서 대로
진행되는 서사시가 아니라 시리즈물이었는데, 파편적으로 채록된 이야기들을 오랜 세월이 지나
바빌로니아 시대에 시간 순서대로 줄거리를 짜서 서사시로 정리한 것이 현재의 길가메시 서사시 입니다.
움마의 왕인 루갈자게시가 라가시와 우루크등을 쳐부수고 수메르를 통합했지만, 수메르 북쪽
아카드의 사르곤왕은 기원전 24세기에 이르러 수메르의 도시들을 공략해 차례대로
함락시키고 우루크도 정복해서 수메르 통일을 달성해 세계에서 처음으로 “제국” 을 세웁니다!
아카드 제국이 기원전 2154년 구티족의 침략으로 무너진후 라가시의 구데아 (Gudea) 가 부흥해
예술이 발달하고 신권정치를 표방했으나 기원전 2119년 우루크의 왕 우투헤갈이
구티족을 메소포타미아에서 몰아냈고, 기원전 2112년에 정권을 잡은 우르- 남무 왕이
우르 제3왕조를 건설해 북부 메소포타미아 까지 영향력을 미치면서 수메르는 부흥기를 맞습니다.
성문법 중 가장 오래된 우르- 남무 법전이 이때 제정되었으며 중앙 집권이 강해졌는데 초대 왕인 우르-
남무와 아들 슐기, 손자 아마르- 신의 비문을 비교하면 왕에게 붙는 수식어가 점점 화려해지다가
아마르- 신은 자기 이름 앞에다가 신의 이름 앞에 사용되는 결정문자 DINGIR 를 붙이기에 이릅니다.
수메르어는 셈족이 유입되면서 아카드어와 공존했는데, 기원전 2000년경 들어온 아모리인은 훗날
바빌로니아 제국을 건설했고, 이들은 같은 셈어파에 속하는 아카드어를 사용했으니 중세에
라틴어가 계속 사용되었듯 설형문자가 쓰이는 동안에 수메르어도 학교에서 종교 언어로 가르쳤습니다.
이란 엘람 왕국의 침략과 기원전 2004년에 이비- 신 지배하 약탈후 수메르는 아모리인의 지배하에 들어갔으니
청동기 시대로 접어들었는데 기원전 20세기~ 18세기의 아모리족 도시국가는 수메르의 왕명 목록에
'이신 왕조' 로 기록되었고 이후 “함무라비 왕 (기원전 1792년~1750년 재위) 의 바빌로니아” 로 넘어갑니다.
수메르 문명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꽃피웠던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사이의 초승달 모양의 땅에 먼저
존재했던 문명이니, 수메르 문명에서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뻗어 나왔으며... 메소포티미아 문명은
그리스~ 로마 문명의 근원이 되었으므로..... 수메르 문명 덕분에 오늘의 서양 문명이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1853년 롤린슨은 아카드인들이 자신들의 선조들을 수메르인 이라고 불렀으며 수메르 라는 땅에
대해 말했다는 증거도 제시했으니 구약에서 말하는 시날의 땅으로 그곳은 이집트인
들이 신들이 이집트로 건너왔다고 말하는 타네테르 Ta Neter(주시자의 땅) 이었다고 합니다.
수메르인들은 가마를 발명했고 벽돌을 사용했으며 역사상 최초로 바퀴와 수레를 만들었고 배와
항해술, 국제 무역, 법률, 법정, 배심원, 작문, 음악, 악기, 춤, 가축, 동물원, 전쟁, 기술공,
창녀도 있었는데 무엇보다 하늘과 '하늘로 부터 지구로 온' 신들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아카드인이나 수메르인은 하늘에서 지구로 온 방문자들을 결코 신이라고 부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신성한 존재나 신이라는 개념은 이후 다른 종교를 통해 우리들의 언어와 사고 속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근대 서구문명의 뿌리가 기원전 1000년 그리스와 유대, 기원전 2000년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 혹은 기원전
3000년 이집트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기원전 4000년 수메르에 있다는건 충격적인 사실이었으니 수메르인
들이 '오래전의 날들' 이라고 불렀던 시대, 곧 '대홍수 이전의' 수수께끼 같은 시대로 소급되어야 할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창세기가 시작되었다는 B.C. 3700년경에 일어나 B.C. 3100년경 까지 이어진 우루크
문화 시대에 인류 최초의 문명이라 불리는 우루크와 우르등 도시국가들이 출현하니
B.C. 2900년경 우루크 1왕조가 시작된 이래 B.C. 2355년 움마의 왕 루갈자게시는 우루크를
비롯해 수메르 통일왕국을 세우나.... B.C. 2330년 아카드의 침공에 패해 엘릴의 문으로 끌려갑니다.
세계 불가사의 건축물의 하나인 바빌론의 공중정원은 하늘과 땅 사이에 만들어진 정원이며, BC 3500년경
우루크 문화 (수메르 문명) 에서 하늘의 신(神) 에게 제사를 지내던 지구라트도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만든 건축물인데 기독교 구약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바벨탑은 이 지구라트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보여집니다.
BC 2330년 세계 최초 제국인 아카드 제국의 사르곤왕이 남진해 수메르를 정복하고 메소포타미아를 통일해 황제
가 되었으나, 그후 아카드를 멸망시키고 구티 왕조가 들어섰다가 BC 2150년경 수메르인들이 구티족을
몰아내고 우르 제3왕조를 건설해 수메르를 부흥시켰으며 함무라비왕의 바빌로니아가 메소포타미아를 지배합니다.
함무라비대왕 𒄩𒄠𒈬𒊏𒁉 Hammurabi 은 바빌로니아 제1왕조인 아무르 왕조의 6대 왕
으로 기원전 1792년에서 기원전 1750년까지 바빌로니아 왕으로 메소포타미아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중앙집권 왕국으로 키웠으니 최초의 성문법전 함무라비 법전으로 유명합니다.
함무라비는 방어용으로 성벽을 높이고 신전을 신축했으며 기원전 1787년 이신 정벌, 기원전 1776년
에서 1768년에 라르사와 싸워 이겼고 기원전 1766년 "이란의 엘람 왕국" 이 메소포타미아
평원을 침범해서는 에슌나 제국을 멸망시키자..... 함무라비는 라르사와 동맹해 엘람을 격파합니다.
함무라비는 동맹 당시 군사 지원에 소극적이었던 것을 구실로 기원전 1763년 라르사를
점령함으로써 남쪽 메소포타미아를 지배하였으며 예전의 동맹국이던 북쪽 마리
를 비롯 많은 왕국을 복속시키고 메소포타미아를 통일하는 대제국을 건설하게 됩니다.
아시리아와 신바빌로니아를 거쳐 BCE 539년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의 키루스대왕이 메소포타미아를 지배해
제국을 세웠으나, 페르시아는 알렉산드로스 3세에게 정복되었고 후계자들이 싸운 디아도코이 전쟁을
거쳐서 안티오키아의 셀레우코스 왕조가 지배하다가 이란 지방에서 일어난 파르티아 왕국의 지배 아래 들어갑니다.
파르티아가 사산 왕조 페르시아에 멸망하자 바빌론등 메소포타미아는 페르시아와 로마 제국의
각축장이 되니.... 사산 왕조 페르시아는 메소포타미아의 남부와 중부를,
로마 제국은 메소포타미아 북부를 점령하는데 로마 황제가 전쟁터에서 죽는 일도 발생합니다.
메소포타미아는 동쪽으로 이란 고원, 서쪽으로 소아시아, 남쪽으로 광활한 사막지역, 북쪽으로
카프카스와 연결된 개방적인 지형이니 외적의 침입이 잦았고, 지리적
영향으로 '지금 내가 소속되어있는 사회에서 잘 살아야 된다' 라는 현세적인 면이 더 강했습니다.
반면에 이집트인은 '지금은 힘들지라도 파라오를 믿으면 죽어서는 편안하게 안식을 취할수 있을거야'
라는 내세적인 면이 많았다고 하는데, 점성술의 발상지가 메소포타미아니 본래 점이라는
것이 내세의 평안 보다는 현세 지향적이라고 볼수 있는 부와 권력과 명예를 예측하는 학문입니다.
함무라비 왕은 BC 18세기경 세계 최초의 성문법전으로 알려진 함무라비 법전을 만들었고 그림문자와 설형문자,
60진법을 사용했고 학교, 도서관, 재판소, 병원등 다양한 공공 및 각종 사회 기반시설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수메르 (Sumer) 초기 왕조시대는 청동기 시대로 왕위를 세습하는 왕가가 시작되었으며 문자가더 보편화되고
왕이 신격화되며 수메르 문명이 꽃을 피운 시기니..... 바그다드 남쪽에 니푸르(Nippur) 라는 도시
에서 많은 유물이 발굴되었으니 이곳에는 당시 수메르인들이 주신으로 섬긴 엔릴 (Enlil) 신전이 있습니다.
다시 이란으로 돌아와 엘람은 이란 남부 후제스탄 지역에 위치했던 문명으로 이란고원에 문명이 들어서기 전인
기원전 3000년경에 먼저 정착하여 생활하였으며 서쪽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문명과 유사점이
많으나 차이점 또한 많기 때문에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일종이 아닌 인근에 있던 별개의 문명으로 분류 됩니다.
이란은 메소포타미아가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 땅이라는 뜻이라 지명 의미로도 벗어나 있는데, 아리안족
이 이동해 오기전에 엘람이라는 고대 왕국을 건설하였으나,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비해 엘람 왕국에 대한 고고학
발굴 작업이 많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발견된 유물 또한 적어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습니다.
엘람 왕국의 수도는 수사로 데즈강이 흐르며 이로 인해 토지가 비옥하고 밀과 과일이 풍부하였는데, 고대
서아시아 문명 중에선 이례적으로 수도의 이름에서 부터 국명이 유래하지 않은 경우이며
아시리아의 침공으로 폐허가 된 수도 수사를 아케메네스 왕조의 다리우스 1세가 다시 수도로 재건했습니다.
이란 지방의 엘람 사람들은 스스로를 가리켜 할타미, 자신들의 땅을 할탐티 (신의 땅) 라고
불렀으니, 엘람 문명은 중앙 집권적 통일 제국 보다는 부족별로 독립적으로
살았으나 왕국에 주변국이 침입을 하는 위급한 상황에 놓이면 서로 연합해 적을 물리쳤습니다.
엘람의 왕은 제국의 분열을 막기 위해 혼인관계로 결속력을 강화하여 충성을 얻어냈으며 이 정책은
왕국이 몰락할 때까지 계속되었는데,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천연자원이 부족했기
때문에 엘람 왕국의 돌과 나무, 철 등의 자원들이 필요했으므로 평화 시에는 무역을
통해 필요한 물품을 구입했지만 전쟁을 통한 약탈도 끊임없이 발생하여 늘 긴장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엘람 왕국은 기원전 2700년에 이란 중부지방에 세워져서 무려 2천년을 이어 오다가 기원전
646년에 아시리아의 왕 아슈르바니팔이 엘람의 수도를 침공해 철저한
약탈과 파괴를 하니 쇠퇴하게 되어..... 기원전 539년에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에 망합니다.
엠람 왕국을 약탈하고 파괴한 아시리아는 기원전 25세기에서 기원전 609년 사이에 중동에 존재했던 나라로
역사상 최초로 메소포타미아, 레반트, 이집트를 통일했으니 현대 시리아 라는 국호의 어원 입니다.
셈계 아시리아인들은 메소포타미아 및 아나톨리아 반도에서 상인으로 활동했는데 기원전 2,600년~ 기원전
2,500년 무렵 도시국가 아수르를 중심으로 한 아시리아인들의 세력이 존재했으니, 아수르 라는
명칭은 기원전 24세기 아카드 제국 시대에 확인되며.... 이전에는 발틸 (Baltil) 로 불렸을 것으로 봅니다.
아시리아는 기원전 2025년에 우르 제3왕조로 부터 독립해 고아시리아를 건설했는데 그후 기원전
1430년에 미탄니 왕국의 지배를 받다가 독립한 이후 기원전 1363년 아슈르우발리트 1세가
티그리스강 유역과 토로스 산맥을 정복해 영토형 국가로 발전했는데.... 중아시리아 라고 합니다.
신아시리아는 기원전 911년 아다드 니라리 2세가 관료체계와 군사제도를 운영하면서 강한 국력을 구가
했으니 아슈르나시르팔 2세 치세때 서아시아 통제권을 확립하고, 수도를 님루드로 천도했으며,
거대한 궁전과 성벽을 건설하고 수많은 시설을 건립하여 세계 최대의 도시들 중 하나로 만들었습니다.
티글라트 필레세르 3세는 대외 원정에 나서 시리아와 페니키아, 이스라엘 왕국을 정복하고 바빌론까지 차지
했으며 아들인 살만누아사리두 5세는 북이스라엘을 침공해 멸망시키고, 호세아왕과 이스라엘
10부족 전원을 포로로 잡아오는 전공을 올렸으니 오늘날 성경에 나오는 10부족의 후예들을 찾을수 없습니다?
사르곤 2세는 우라르투를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고 기원전 706년 수도를 님루드에서
두르샤루킨으로 옮겼지만 수도를 옮긴지 1년만에 아나톨리아 중부 지역에서
타발과의 전쟁 도중에 전사하여 아들 센나케립이 즉위한 후 니네베로 수도를 옮깁니다.
센나케립은 네르갈신의 신전을 재건하고 대외 전쟁을 치러 신아시리아 제국의 패권을 확립
했으니, 남유다 왕국의 예루살렘을 침공하여 히즈키야 왕을
포위했던 일은《성경》에 등장하는지라 잘 알려진 편인데 많은 보물을 건네받고 돌아옵니다.
장남인 아르다무리수를 왕세자에서 폐위하고, 에사르하돈을 왕세자로 임명하여 원한을 사게되니,
남유다 원정에서 철수한후 니스록 신전에서 장남에게 살해되자 에사르하돈이 즉위해
부왕의 암살에 관여한 인물들을 처형하니..... 아르다무리수 등은 숙적인 우라르투로 망명합니다.
에사르하돈은 아시리아를 위협하던 킴메르족을 격퇴하고 기원전 673년 겨울, 이집트를
침략했으나 패배해 원정을 중단하고 본국으로 복귀해야 했는데
이집트 침공이 실패한후 건강이 악화된 데다가 우울증까지 겹쳐 상황이 안좋았습니다.
그러나 아시리아는 질병을 신이 내리는 형벌로 생각하여, 병에 걸린 왕은 신들이 그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근거로 여겼기 때문에, 에사르하돈은 고통을 참아가면서도 건강 상태를 신하들 앞에서 숨겨야 했습니다.
기원전 671년 에사르하돈은 제2차 이집트 침공을 단행했는데 1차 원정 보다 더 많은 군대를
동원했으니, 어느정도 성공을 거두어 이집트의 수도였던 멤피스를 탈취하고 약탈했습니다.
그러나 이집트 제25왕조 흑인 파라오 타하르카는 남쪽으로 피신했고 2년후 멤피스를 탈환하며 아시리아
가 점령한 지역을 수복하자 에사르하돈은 제3차 이집트 침공을 계획해 원정을 떠났으나
이집트에 도달하기 전에 갑작스럽게 죽으니 극심하게 악화되었던 건강이 사망의 원인으로 거론됩니다.
아시리아의 명군 아슈르바니팔이 할머니의 도움을 받아 왕위에 올랐고, 기원전 664년 아버지의 숙원
이었던 이집트를 정복했는데, 직할령으로 통치하는 것 보다는 조공을 제공하는
봉신국으로 두기를 원해 프삼티크 1세를 이집트 제26왕조(사이스 왕조) 의 파라오로 즉위시켰습니다.
원정에서의 업적뿐만 아니라 아슈르바니팔은 무예에도 능했고, 지식욕도 왕성하여 학문에 대한 식견
이 높았는데 본인이 수집한 점토판 문서들을 모아 수도인 니네베에 세계 최초의 체계적인
도서관을 세웠으나 포로들을 잔혹하게 죽였으며, 사자 사냥 등의 블러드 스포츠를 즐기기도 했습니다.
아슈르바니팔의 치세때 형인 사마쉬슈므킨이 다스리던 바빌론에서 반란이 일어나 2년이 넘는
포위전 끝에 바빌론이 함락되었고, 샤마쉬슈무킨이 사망하면서 반란이 진압되었는데,
이때 바빌론의 반란을 지원한 "이란의 엘람 왕국" 도 침공해 수도를 약탈하고 파괴했습니다.
아시리아는 승리를 거두는 군사 강국이었지만 세력을 넓힐수록 더 많은 세력과 대치해야 했고, 가혹한
통치방식 때문에 적대 세력이 많아져 정국이 안정적이지 못했으니, 아슈르바니팔은
눈을 감을때, 조국 아시리아가 분란에 자주 직면하는 세태를 두고 통곡하는 말을 남기며 붕어했습니다.
"짐은 신과 인간을, 죽은 자와 산 자를 잘 대접했으나 질병과 고통, 불행이 닥친 이유는 무엇인가? 나라
의 분란과 가족의 불화를 참을수 없다. 마음을 어지럽히는 사건들 때문에 괴롭다. 마음과 육신의
고통이 짓누르니 고뇌에 울부짖으며 삶을 마감하노라, 죽음이 짐을 쓰러뜨리노라. 비탄과 한탄
에 젖어 밤낮으로 울부짖노라. 신이시여, 언제까지 저를 이렇게 다루시겠습니까? 저를 구원해 주소서."
아슈르바니팔 사후, 후계자 지위를 놓고 아들인 신 샤리 이슈쿤과 아슈르 에텔 일라니 사이에
내전이 벌어졌고 아슈르 에텔 일라니가 왕위에 올랐으나 도움을 주었던 내시인
슈무 리시르가 잠시 왕위에 올랐다가 후계자 경쟁에서 밀렸던 샤리 이슈쿤에게 제거됩니다.
아슈르바니팔 왕 후반기부터 시작된 제국의 쇠퇴는 내란을 거치면서 심해졌고, 아시리아의 뒷목을
잡고있던 바빌로니아는 이 기회를 틈타 아시리아 세력을 바빌론에서 완전히 추방하는데 성공합니다.
이후 아시리아는 본토를 지키는 것도 불가능해질 상황에 이르렀고, 이집트 및 리디아와
동맹을 맺었지만...... 기원전 612년 이란의 메디아 왕국을 비롯해
신바빌로니아, 스키타이, 킴메르, 유다, 엘람, 킬리키아 7국 연합군의 공격으로 멸망합니다.
이후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 제국 시대에 아수르 등의 도시가 재건되어 회복되면서 정체성을 유지
하게 되었고 아르사케스왕조 파르티아 제국과 사산 왕조 페르시아 제국을 거치면서 메소포타미아
북부 지역에 아시리아의 이름을 딴 아시리스탄주가 설치되어 아시리아인들의 문화가 전수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