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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누스가 기원전 753년에 로마를 건국하다!

작성자소흥|작성시간26.06.10|조회수79 목록 댓글 0

 

로마 1 - 세계 제국 로마, 로마누스가 기원전 753년에 로마를 건국하다!

 

 

아놀드 토인비는 문명이란 도전에 대한 응전 이라고 말했으며 인류가 만든 23

문명을 들었는데.... 21세기에 이슬람문명과 힌두문명에 중국문명이 아직까지는

갸날픈 숨을 몰아쉬고 있기는 하지만이제 세계는 서구문명 하나로 귀일되었습니다.

 

서구문명으로 통일된 지구촌에서 일약 돋보이는 나라가 있으니 한류(韓流)” 를 만들어 낸

한국으로, 배용준의 겨울연가에서 시작된 한류는 대장금으로 이어지고 방탄소년단 과

싸이를 거쳐서 기생충과 오겜으로... 세계인들이 한국을 선망의 대상으로 보고 동경하며

"한국어" 를 배우는 시대가 되었으니 바야흐로 "한민족 융성의 시대" 가 시작되었습니다.

 

세계인을 사로잡은 "한류(韓流)" 는 서구문명의 한 갈래이니 저 "서구문명" 은 19세기 말에

동양에 전해졌는데, 일본의 선각자 후쿠자와 유기치는 네차례나 미국과 유럽을 방문한후

미국등 서구문명을 문화문명자유개인 등의 단어로 번역 및 조어(造語)해 소개했습니다.

 

유길준은 후쿠자와의 지도를 받아 미국을 다녀온 후에 서유견문록에서 남들이 말한 찌꺼기

(후쿠자와의 서양사정) 를 주워모았다고 했는데.... 한국인들이 누리는 서구문명의 원천인

"로마 문명" 에 대해 에드워드 기번과 시오노 나나미에 기대어 요약정리해 보기로 합니다.

 

 

동서고금의 인류 5천년 역사는 되풀이되는지라 현명한 자는 과거의 역사에서 미래를

배운다고 하는데..... 특히나 나라의 최고 지도자는 늘 외로운 법이니어느시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에 항상 안절부절 하는 법 입니다.

 

 

지도자가 나라 운명이 걸린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때 고전을 읽는 사람들이 있으니

영국의 두 수상인 윈스턴 처칠과 클레멘트 애들리가 그들인데두 사람은

그때마다 에드워드 기번 의 로마제국 쇠망사 를 되풀이 해서 읽었다고 합니다.

 

2차대전을 성공적으로 치러낸 윈스턴 처칠의 장엄한 명구들은 기번의 저서를 숙독함으로써 영감을

얻었다고 하며, 1949년 클레멘트 애들리는 700여년을 영국의 식민지로 다스려온 아일란드의

분리 독립문제에 대해 결정을 내려야 하는지라 로마 쇠망사를 2번이나 계속해서 읽었다고 합니다.

 

로마 제국의 역사는 불멸의 위대한 성공을 쌓아올린 나라가 세계를 정복해 대 제국의 위치에

오른 후에는 어이없게도 자신의 제국과 문명을 파국으로 몰아넣었으니.... 로마 대성공의

비결은 무엇이며 또 망하게 된 원인은 무엇인지 찬찬히 살펴볼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2000년에 처음으로 이탈리아등 유럽 7개국을 여행하면서 로마를 처음 방문한 이래 이탈리아는

5그 중에 로마는 3번을 여행했는데.... 포로 로마노 그 2천년전 유적을 거닐다가 돌무더기

너머 부숴진 신전을 바라보면서 어깨 너머에 신들이 앉아 지켜보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낀적이 있습니다.

 

 

 와이프는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새벽 5시에 교회로 가서 새벽 기도를 그르지 않는 독실한 크리스찬

기독교도인지라 유일신 사상에 젖었으니.... 로마를 2번이나 나와 함께 갔어도 결코 로마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여기는 것은 로마는 유일신이 아닌 수만명 신들을 숭배한 다신교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 제1권에서 지성에서는 그리스인 보다 못하고체력에서는

켈트인이나 게르만인 보다 못하고기술력에서는 에트루리아인 보다 못하고경제력은

카르타고인 보다도 뒤떨어지는 것이 로마인이라고로마인 스스로가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로마인 그들만이 그토록 번영할 수 있었을까요커다란 문명권을 형성

하고 그것을 유지할수있었을까요광대한 영토를 정복해 대제국을 건설한

것은 강한 군사력 덕분이고쇠망의 길을 걸은 것은 단지 교만 때문 이었을까요....

 

시오노 나나미의 이 말에 그만 낚여서... 로마인 이야기 15권에 또 하나의 로마인 이야기

까지 16권을 사서 읽었으며 그 외에도 로마 멸망 이후 지중해 세계와 황금빛 로마에

베네치아와 십자군 이야기등 모두 30권의 시오노 나나미씨의 책을 구입해서 읽었습니다.

 

 

로마의 역사에 관해서는 그간 수많은 저작들이 있지만 가장 오래된 당대의 책으로는 폴리비우스

의 역사 와 카이사르의 갈리아전기” 그리고 타키투스의 연대기” 와 역사” 등이 있습니다.

 

폴리비오스(기원전 203년 기원전 120)은 헬레니즘 시대의 그리스 역사가로 기원전 220년에서

기원전 146년 시대를 다룬 책 "히스토리아" 로 유명하니.... 그리스의 대표적 역사가로 흔히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폴리비오스를 뽑으니 폴리비오스의 권력분립 사상과 정체(政體) 의

정치적 균형에 대한 이론은 후대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과 미국 헌법 초안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폴리비오스는 기원전 203년경에아카이아 동맹의 주요 구성 국가였던 아르카디아 의

메갈로폴리스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가 유력한 지주정치가라 군사와 정치를

깊게 살펴볼 수 있었으며 기원전 170년 1년 임기의 장군단의 전단계로 여겨지는

기병 대장(hipparchos) 에 선출되었으니 아카이아 연맹의 독립 유지에 주력하였습니다.

 

폴리비오스의 아버지 리코르타스는 마케도니아 왕국의 페르세우스와 로마가 전쟁을

벌일때 중립을 주장한 파당의 우두머리였기 때문에 로마인의 의심을 받아 기원전

168년 로마에 인질로 잡혀가는 아카이아 귀족 1,000명에 포함되었으며 17년간

억류되었는데 로마에서 높은 교양 수준으로 로마 유력 가문에서 인정을 받게됩니다.

 

 

3차 마케도니아 전쟁에서 승리한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는 그에게 자신의 아들 파비우스와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장남으로 입양된 사람으로 소 스키피오)

의 교육을 맡겼는데 제3차 포에니 전쟁에서 카르타고를 무찌른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

의 가정 교사로서 폴리비오스는 스키피오와 오랜 우정을 나누었으며 조언자 역할도 했습니다.

 

소 스키피오는 기원전 146년 카르타고를 무참하게 파괴하는데 기원전 150년에 아카이아인

인질이 석방되었을 때폴리비오스도 집에 돌아가게 되었지만 바로 다음 해에

친구와 아프리카로 가서 로마군에 의한 카르타고 함락을 지켜보며 이를 기록했으며

카르타고 멸망후 히스파니아(에스파냐)와 아프리카 대서양 해안으로 여행한 것으로 보입니다.

 

 

 같은 해 코린토스가 파괴된후 그는 그리스로 돌아와 자신의 연줄을 이용해 그곳 상황을 완화하고자

하였는데 폴리비오스는 그리스 도시에 새로운 정치 체제를 마련하는 어려운 일을 맡았으며,

이 직위로 인해 그는 높은 신망을 얻었으며 그후 로마에서 역사서를 편찬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자신이 역사에서 다루는 지중해 여러나라에 긴 여행을 떠나서는 유적지에서 직접

지식을 얻었으며 또 자신이 다루던 역사적 사건을 자세하게 쓰기 위해

참전 병사들을 찾아 대화도 나눈 것으로 보이며또 서고 문서들도 열람했습니다.

 

 

그는 누만티아 전쟁 당시 스키피오와 에스파냐로 가서 군사 조언자가 되기도 한 것으로 보이며나중에

이 전쟁에 대한 글을 썼지만 지금은 전하지 않으며 이후 그리스에 돌아간 것 같으니 그곳에

그의 조상(彫像) 과 비문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며..... 기원전 118년에 낙마로 죽은 것으로 보입니다.

 

폴리비오스의 첫 저서는 그리스 정치가 필로포이멘의 전기로플루타르코스는 이 책을 참조

했으며 또 그는 로마와 그리스의 군사 전술을 다룬 전술이라는 제목의 광범위한 저작

을 남겼지만 이 책의 일부가 그의 주저로 20년간 40장으로 로마에 대해 저술한  역사

에 들어있는 것 같은데..... 그의 최대 저서인 역사는 앞쪽 5권까지 온전하게 남아있습니다.

 

 

 폴리비오스는 역사서문에 어지간히 어리석은 게으름벵이가 아닌한 불과 53년만에 로마인이 이룩한

이 위업이 어찌 가능했는지 알고싶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라고 적었는데 저 53년이란 기원전

202년에 결국 한니발의 패배로 끝나는 제2차 포에네 전쟁으로 부터 기원전 146년에 카르타고를

멸망시킨 제3차 포에니전쟁이 시작된 해 까지를 가리키는데 이후 로마는 지중해의 패자가 되었습니다!

 

나중에 사실상 첫 황제가 되는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자신이 치른 갈리아 전쟁에 대해서 갈리아 전기

라는 책을 저술했으니 1인칭이 아니라 3인칭으로 자신을 지칭한게 특이한데.... 제 1첫 문장이

“Gallia est omnis divisa in partes tres.  갈리아는 셋으로 나눠져 있다.”  처럼 간격한게 특색입니다.

 

고대 부터 현대 까지 많은 비평가들로 부터 거의 칭찬 일색인 훌륭한 문장력을 가진 책이니,  이는 내용

에 대한 것이라기 보다는 고전 라틴어의 문체라는 측면에서 훌륭하다는 것이니..... 당대에 키케로와

함께 라틴어의 양대산맥이니 오늘날까지의 라틴어 연구는 거의 이 책을 바탕으로 하여 이루어졌습니다.

 

갈리아 전쟁 시작 1년부터 알레시아 전투가 있었던 7년까지의 7권이 존재하며카이사르

의 비서였던 히르티우스가 전쟁이 끝난 8년째의 8권도 서술했는데 카이사르는 3인칭

으로 나오니 카이사르가 자신의 전쟁 성과를 홍보하기 위함이지만 읽는 사람에게

최대한 객관적으로 쓰여진 것 처럼 느껴지기 위해서 3인칭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 됩니다.

 

 

후세의 역사가의 저서가 아닌 전쟁을 직접 지휘한 이가 쓴 기록인 만큼 전투 전개과정이 잘 표현되고

더불어 입으로 전해지는 과정에서 붙는 뜬소문 및 역사와 문학이 잘 분리가 안되는

고대 사서의 특성상 생기는 문학적 창작이 개입할 여지가 없어 글의 사실성이 높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타키투스(55~117)는 로마의 역사가ㆍ웅변가ㆍ정치가니 뛰어난 저술가로 유명한데 남프랑스 나르보넨

시스 출신으로 짐작되는데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제위 69~79때 공직을 시작하여 88년에는 법무관

을 지냈고 97년에는 집정관에 선임되었으며 그후 아시아(터키 서부속주의 총독을 역임하고 117년에

사망했으니 위대한 역사가로 평가되는데.... 그는 역사를 사건 자체보다는 인물에 초점을 두며 서술합니다.

타키투스의 가장 주요한 저작은 그의 문필활동 후반기에 쓴 두 권의 역사서 "역사" 와

"연대기" 인데 『역사』는 105년경 저술된 것으로 네로 황제의 사망부터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사망(69~96) 을 다루고 있으며 『연대기』 는 110년 부터 집필한 것으로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사망 부터 네로 황제가 사망할 때 까지 (14~69) 를 다룹니다.

 

 

타키투스의 역사 는 고대에 로마 내전의 역사를 담고 있으니... 네로에 이어 갈바오토,

비텔리우스가 불과 몇개월 간격으로 제위에 올랐다가 내전의 희생양이 되고 내전을

끝낸 베스파시아누스의 치세가 시작되기까지를 담고 있으니 큰아들 티투스 비니우스가

유대인의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을 다루며유대인들에 대한 흥미로운 평가를 덧붙였습니다.

 

타키투스의 연대기” 는 "역사"보다 뒤에 저술되었지만 다루는 시기는 "역사" 보다 앞서니 아우구스

투스에서 네로에 이르는데타키투스는 "연대기" 에서 타락의 뿌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데

트라야누스(재위 98117) 치세를 거치며 자유와 원수정의 조화에 대한 희망을 버렸으며 원로원

을 굴종의 충동 에 사로잡힌 집단으로황제들은 비타협적이고 포악한 참주의 전형으로 그립니다.

 

로마의 탄생에 대해서는 호메로스의 서사시인 일리아드 가 참고가 되는데 소아시아의 트로이

는 테베 아가멤논을 총사령관으로 하는 그리스군의 침공을 당해 10년간 전쟁을 이어가다가

기원전 1184년에 그리스군이 사라지고 해변에 남겨진 거대한 목마를 선물로 오해하고는

그만 성 안에 들였으니..... 밤에 목마에서 나온 그리스군이 성문을 열면서 트로이는 멸망합니다.

 

 

왕족과 서민들이 모두 살해당하고 프리아모스왕의 사위인 아이네이아스만 일족을 이끌고 탈출하는데

아이네이아스는 미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와 인간 남자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니 아프로디테

신은 자기 아들이 그리스 병사의 손에 죽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해 탈출을 도왔으니 그들은

배를 타고 크레타를 거쳐 시칠리아를 지나 카르타고를 거쳐 신들이 이끄는대로 이탈리아로 북상합니다.

 

 

오랜 방랑 끝에 마침내 로마 근처 해안인 라비노에 도착했는데 그 땅의 왕으로 라틴족 이름이

유래하는 라티누스가 아이네이아스에게 반해 딸일 공주를 아내로 주어 정착하였는데,

그가 죽은후 아들 아스카니오스가 왕위를 물려받았고 30년을 다스린후 그 땅을

떠나서 "알바롱가" 라고 이름을 지은 새 도시를 건설하니 뒷날 로마의 모태가 된 도시입니다.

 

 

많은 세월이 흐르고 알바롱가의 왕 누미토르의 외동딸로 공주인 레아 실비아는 아버지의 왕위를

빼앗은 남동생 아물리우스에 의해 베스타(헤스티아신전의 여사제가 되었는데..... 어느 날

마르스신이 강변에서 잠깐 잠이든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에 반하게 되어 왕녀가 잠에서 깨기

전에 일을 치루었으니 그후 쌍둥이를 임신하게 되었고 로물루스와 레무스 쌍둥이를 낳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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