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두 댁 / 김수현
태양과 달은 밀물과 썰물을
조석으로 밀고 당기며
말간 갯벌을 게워낸다
생물들은 쉼 없이 숨구멍을 내며 고개를 내민다
봉두리에서 시집을 온 봉두 댁은
무릎 위로 고무장화를 끌어 올리고
양동이에 호미 한 자루 넣어 달그락거리며
동네 앞바다로 향한다
발목이 푹푹 빠지는 갯벌과
겨우 한 몸이 되려는 찰나
한나절 해는 봉두 댁의 곱슬머리 위로
납작 엎드려 지글거린다
호미보다 먼저 닿는
해풍으로 간간한 구슬땀에
낙지는 소스라치며 깊이 달아난다
저 멀리 밀물이 목전에 차오르는
찬 서리 목숨값을, 여러 해 지불했던 봉두 댁은
꺽꺽대는 숨통이 수평선을 지나는 것보다
행여나 자식들 입에 풀칠하지 못할까
빈 양동이 댕강거리는 소리에 자멸하며
묘연한 낙지의 행방을 쫓는다
* 봉두 댁 : 저자의 시어머니
김수현 시·에세이집 『사막화』
1976년 경기도 양평 출생, 영주.시흥에서 거주.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유아교육학 학사, 영남대학교 문학예술과정 수료. 종합문예지 《영남문학》제36회 영남문학 신인상 수필 등단. 영남문학인협회 이사, 경북일보 문학대전 수상. 경북관광체험 전국 문학공모전 금상. 제36회 전국죽계백일장 차하, 전국문학인꽃축제 백일장 차상, 제37회 전국죽계백일장 장원, 제14회 허암예술제 백일장 공모전 장려상, 제22회 국제지구사랑작품공모전 입선, 2023 제4회 문경새재문학상 우수상. 2023. 6. 9 암 투병 중 소천(향연 48세) 평택 서호추모공원에 안치.
세 번째 여름 앞에서, 우리는 알지 못한 사람의 삶을 몇 줄의 약력과 몇 편의 글로만 상상하게 됩니다. 그 불완전한 이해 위에서만 누군가를 기억할 수 있다는 게 때로 가혹하게 느껴지지만, 그럼에도 이력서가 아닌 또 다른 방식으로 남을 수 있다는 건 분명 의미 있는 일일 겁니다. 다 읽히지 못해 남아 있는 문장들, 그래서 어떤 이름은 여전히 현재형으로 머물겠지요.
누군가의 생을 안다는 것은, 사실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이 남긴 몇 줄을 반복해서 읽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 반복이 기억이 되는 순간, 사람은 이미 다른 방식으로 존재할 텐데요. 그럼에도 기억한다는 말은 역설적으로 위로가 아니라 끝내 그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고백에 가까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남겨진 문장들만 오래 남습니다. 읽을수록 더 오래 남는 방식으로.
그렇게 우리는 그 불완전한 이해를 기억이라 부르며 버팁니다,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다 읽히지 못해 남은 문장들. 신공 카페에서 ‘우주 말괄량이’라는 닉네임으로 머물다 간 우리의 문우 故 김수현 작가님을 다시 읽습니다.
댓글
댓글 리스트-
답댓글 작성자사무국2 작성시간 26.06.12 감사의 글
목련님, 따뜻한 위로의 말씀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수현이를 추모하는 자리에 함께 마음을 모아 주신 덕분에 그리움이 더욱 깊은 사랑으로 남았습니다.
건네주신 한마디가 슬픔에 잠긴 마음을 다독여 주었고, 수현이를 잊지 않고 기억해 주시는 마음에 큰 위로를 받습니다.
그 따뜻한 마음 오래도록 가슴에 간직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김미진 올림
-
작성자보이저氏 작성시간 26.06.10 김수현 시인님의 명복을 빕니다
-
답댓글 작성자사무국2 작성시간 26.06.12 감사의 마음
보이저님,
김수현 시인을 알지 못하심에도
먼 길 돌아온 바람처럼 따뜻한 추모의 글을 남겨주셔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름 하나에 마음을 내어주는 그 정성은
떠난 이를 향한 기도가 되어
남은 이들의 가슴에 잔잔한 위로로 스며듭니다.
수현이도 하늘에서
그 따뜻한 마음을 환한 미소로 받았으리라 믿습니다.
진심 어린 애도와 배려에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그 마음 오래도록 잊지 않겠습니다.
김미진 올림 -
작성자사무국2 작성시간 26.06.12
그리움은 가시가 되어
수현아,
아침 여덟 시만 되면
습관처럼 네 이름을 불러본다.
시 한 줄, 수필 한 문장에도
서로의 마음을 보태며
청도와 경산 사이를 오가던 시간들.
이제는 닿을 수 없는 목소리인데도
전화기를 바라보는 순간마다
그리움은 가시가 되어
가슴 깊숙이 박힌다.
2022년, 언니가 송암문학상을 받는다고
고고장구를 배우며 흘렸던 땀방울.
호텔 수성 피오니홀 무대 위에서
환하게 웃으며 축하해 주던 너.
그날의 장단은 멈추었지만
네 깊은 사랑은 멈추지 못해
세월의 강을 건너와
오늘도 내 가슴을 두드린다.
누군가 너를 기억하고
이름을 불러 줄 때마다
그리움은 다시 꽃이 되지만,
혼자 남겨진 저녁이면
보고 싶은 마음은 또 가시가 되어
가슴 한켠을 파고든다.
수현아,
너는 떠나도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리움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평생 함께 걷는 것인가 보다.
너를 생각하면
웃음 뒤에도 눈물이 고이고,
눈물 뒤에도 따뜻함이 남는다.
그래서 언니는 오늘도
그리움을 품은 채 살아간다.
언젠가 하늘 길 끝에서
다시 너를 만나는 날,
오랫동안 가슴에 머물던 그 가시도
환한 미소로 녹아내리겠지.
-
작성자사무국2 작성시간 26.06.12 그때까지는,
비 오는 새벽마다
네 이름 한 번 불러보고
네가 남겨준 깊은 사랑을 품고
하루를 걸어가려 한다.
- 너를 사랑하는 넷째언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