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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학 시집 『저녁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온다』

작성자copyzigi|작성시간26.06.19|조회수65 목록 댓글 0

수건


닦는다
타락한 순결과 너덜너덜한 양심과
때로는 지려놓은 생활까지

닦고 닦다 스스로 너덜해지면
빨려

줄에서 펄럭이며
낱장으로 흩어지는 바람 냄새를 맡기도 한다

흙먼지 뒤집어쓰거나
똥을 치우고 얼룩을 지우다가 가는
수건의 삶을
누구도 귀하게 여기지 않아

마지막엔 불태워지거나 쓰레기통에 처박히지만
부고訃告도 없이 사라지지만

오늘도 한 장의 수건이
노동의 표정이 선명한 얼굴을 닦고 있다




저녁 인사


흔들리는 구절초 사이로 초록빛은 출렁이고 오후를 뛰놀던 햇빛은 쏟아져 흩어지고 바위를 흔들며 폭포수는 떨어지고 굴참나무 잎들은 물결 소리를 내며 찰랑이고 방울 소리 날아와 부딪혀 와르르 무너지고 참새 떼는 뭉쳤다 흩어지고 땅거미는 왼쪽부터 쌓여가 나는 거북이처럼 창 쪽으로 느릿한 걸음을 옮겨 기울어지는 하루에게 잠깐 손을 흔들어 주고




희망 사항


새로움이 돋는 내일이면 좋겠다

먹먹한 가슴이 풀어지는 날이면 좋겠다

행복의 보푸라기가 날리다 노을처럼 가면 좋겠다

나는 하품을 하고 너는 수채화를 그리는 동화 같은 날이면 좋겠다

눈부신 나신이 꿈같은 눈에 갇혀 사랑을 나누는 일이 홀연했으면 좋겠다

밤새 내리던 비 멈추고 푸른 하늘로 날아가는 기러기 같은 모습이면 좋겠다

어루만져 주지 않으면 안 되는 상처 난 곳을 보듬는 희디흰 손이었으면 좋겠다

무수한 벼랑을 지나 두려움 없이 뛰어다니다 허기를 달래겠다고 밥 한 술 뜨는 날이면 좋겠다



박재학_2013년 시집 『길 때문에 사라지는 길처럼』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시집으로 『지난 세월이 한나절 햇살보다 짧았다』 『끼니 거르지 마라』가 있다. 2022년 대전문학관 ‘시확산 시민운동’ 작가로 선정되었으며, 2019년, 2023년, 2026년 대전문화재단 창작기금을 수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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