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이런 드라마가 있습니다. 물론 좋은 드라마가 이 작품뿐이겠습니까마는, 늘 우리는 이런 드라마를 보면서 위로받고 감동하면서, 새삼 세상을, 나를, 주변을 돌아봅니다. 그리고 처음 깨달은 것처럼, 글을 쓰고 싶어 환장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부추기곤 하죠. 그래서 소문난 드라마가 끝나면 블로그나 브런치에선 수많은 리뷰가 올라옵니다.
맞아요. 참 좋은 드라마입니다. 저 역시 이 드라마를 보면서 한꺼번에 몰아서 볼 수 있음에도 한 회 아니, 반 회씩 끊어서 보기가 담배 끊는 것보다 힘들 정도로요. 사람의 마음을 후벼파는 극강의 대사를 곱씹고 또 곱씹다 보면 가끔은 이 말이 내 생각인지, 작가의 생각인지 헷갈리기도 합니다. 그중에 최악은 그 대사를 적어두고, 반복해서 음미하는 동안 그 문장을 좋아하는 자신까지 꽤 괜찮은 사람이 된 것처럼 착각한다는 거.
예전에 「파리의 연인」이라는 드라마가 있었죠. 거기서 등장인물이 자기 심장을 가리키며 ‘내 안에 너 있다’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제 그런 말에 감동하지 않죠. 「나의 해방일지」에서 그 유명했던 대사 ‘나를 추앙해요’는 어떻고요. 한때 우리를 열병으로 몰아넣었던 말들, 딱 거기까집니다. 한번 소용되고 난 대사들은 재사용 금지인 반찬입니다. 가장 아름다웠던 대사일수록 가장 빨리 상투적으로 변해간다는 이 역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작가 지망생은 영원히 지망생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살면서 한 번쯤은 독후감을 써본 적 있을 겁니다. 그런데 열의 아홉은 ‘독후’보다 ‘독’에 머물러 책의 내용을 다시 말하는 데 그칩니다. 책의 내용은 읽는 독자도, 심사자도 거의 다 아는데도 말이죠. 독후감은 어떤 책을 읽은 후에 자기 생각을 적으라는 말이고, 이는 독자가 작가의 아래에 있는 존재가 아니라, 동등한 위치에서 자기 생각을 말하는 건데도 우리는 매번 착각하는 셈입니다.
다른 어떤 곳보다 작가 지망생이 많은 브런치에서 서두에 소개한 제목으로 올라온 글을 검색해 봤습니다. 그야말로 드라마 제목처럼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더군요. 리뷰든, 사유든 같은 제목으로 쓰인 글을 보면 어쩌면 하나같이 드라마 내용을 재탕해서 다시 말하는 걸까요. 이미 볼 사람은 다 봤고, 그에 관한 다른 사람들의 사유를 들여다보고자 읽었는데 역시나입니다. 여주와 남주의 주옥같은 대사들로 도배되어 있죠.
이 드라마 내용 중에 보조 작가(공동 작가)가 감독에게 묻어가고 싶다는 대사가 나옵니다. 마찬가지로 브런치에 올라온 드라마 리뷰를 보면 열이면 열, 드라마 내용에 묻어가는 글입니다. 본인 생각이 아님에도 작품 속 문장을 빌려 자기 생각을 표현했다고 착각하는 것을 봅니다. 왜 그럴까요? 그건 바로 작가가 이미 잘 만들어 놓은 문장은 내 마음을 설명하기 너무 편하기 때문입니다. 드라마 속 여주와 남주의 대사를 인용해 가며, 마치 그것이 자기 생각인 양 써 내려갑니다.
물론 인용 자체가 문제가 되는 건 아닙니다. 좋은 문장은 누구의 것이든 한 번쯤은 빌려오는 법이니까요. 문제는 빌려온 문장으로 끝내버리는 데 있습니다. 그 문장이 왜 내게 꽂혔는지, 내 경험과 어떻게 어긋나는지, 원래의 의미를 내가 어떻게 비틀어 읽었는지가 없습니다. 이 과정 없이 문장을 가져오는 순간, 그것은 인용이 아니라 복제에 가깝습니다. 결국 중요한 건 문장을 쓰는 일이 아니라, 그 문장 이후에 무엇을 말하느냐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거기서 멈춥니다. 그래서 얼핏 보면 꽤 잘 쓴 글처럼 보입니다. 댓글에서도 주거니 받거니 해가며 서로를 칭찬하고요.
이는 영화에 관한 리뷰도 마찬가집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자꾸 묻어가려 할까요. 영화든, 드라마든 왜 자기 생각은 없는 걸까요. 차라리 버젓이 인용하면 그나마 양반이고, 군데군데, 알게 모르게, 슬쩍슬쩍 자기 생각인 것처럼 주된 문장에 살을 덧씌워 자기 글인 듯, 자기 사유인 듯, 자기 삶인 듯 가져갑니다. “내 생각을 썼다”라고 말하지만, 정작 자신의 말은 없는 셈이죠. 결국 남는 것은 작품이 아니라, 작품을 흉내 낸 문장들뿐입니다.
차라리 저는 그런 리뷰를 쓸 바에는, 나만의 언어로 이렇게 쓰겠습니다.
‘이런 주옥같은 대사를 쓴 작가와 동시대를 살아서 행복합니다. 내가 늙어 죽을 때까지 건강하셔서 좋은 작품 많이 써주세요. 그래서 저 같은 사람도 외롭지 않게, 짜친 놈도 괜찮은 놈이라고 착각하며 살 수 있게 해주세요. 그리고 이 대사를 찰지게 연기한 배우님들도 오래오래 좋은 연기 보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