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중부광역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작] 공광복
흰지팡이가 횡단보도를 건넌다
흰지팡이가 저어새처럼 걸어간다
비 오는 점자블록 길을
지팡이는 저어새 부리 흉내 내는지
나는 문득 흰지팡이 심정이 궁금해져서
우산을 접고 눈 감고 우산 끝으로 길 만져본다
점과 직선으로 돋은 점자들
감각이 무딘 우산은 점자 떠듬떠듬 읽어서
눈 대신할 만한 것들을 호출한다
손, 발, 귀는 길을 얼마나 볼 수 있을까
손과 발과 귀 끝이 고양이 수염처럼 뾰족해지는데
눈 감으면 길은 벼랑에 놓인 외나무다리, 비는 내리고
다리 밑에서 급류가 헛발을 노리는 것 같아서
핑계로, 나는 그만 눈을 뜬다
물음표 같은 것들 빗물에 흘려보내고
고민 없는 길을 걷는다 노랗고 KS마크 박혀 있는
종종걸음도 아닌데 걸을수록 흐트러지는 발걸음
길이 나를 자꾸 넘어뜨리려 한다 나는 휘청거리고,
버스 정거장이 도로 건너편에서 나를 기다리는데
발목이 노인처럼 지쳐간다
이 길이 그의 길이라니
흰지팡이가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신호등이 수 거꾸로 세며 불안한 눈 끔벅거리는데
점자 없는 길바닥 읽느라 난감한 지팡이와
움츠러든 엄지에 붙어서 길 더듬거리는 발가락들,
안개비 까닭 없이 추적거리는 사거리에
온몸 끝이 더듬이가 된 사람
길눈 어두운 지팡이 따라 밤길 가듯 걷는다
공광복_전남 화순 출생. 2016년 한국시학 시부문 신인상. 2024 중부광역신문 신춘문예 우수상. 저서 ‘우리, 홀로 설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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