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제26회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 시부문 당선작] 오장원
■공짜는 다다익선 외
공짜는 다다익선
내 초등학생 시절에는 주말마다 윗집에서 얼굴만 아는 고등학생 형이 항상 바이올린을 켰다 그 형은 나랑 같은 피아노 학원을 다녔다 형은 한구석에서 말없이 바이올린을 켰다 어느 날 피아노 개인실에 들어간 내가 친구랑 떠들었을 때 그 사람한테 들렸던지 원장님이 내게 한 소리 했고 난 피아노 학원에 무슨 바이올린이냐고 좀 욕한 적도 있었다 문에 있는 창 너머로 본 그 형의 얼굴은 신경질적이고 못생겼다 꼴값이다
윗집 형에 대해 엄마가 말하길 평소에는 현에 천을 감싸 연습하지만 가끔은 직접 소리를 듣고 체크를 해야 해서 주말 오후에는 가끔 제대로 켠다고 심지어는 윗집 아줌마가 양해를 부탁한다고 가끔 떡을 들고 찾아온다고 했다 아빠는 주말에 되도록 많이 자고 싶어 했기에 아침부터 시끄럽게 한다고 불평했지만 떡 말고 딴 것도 받아먹은 엄마가 좀 참으라고 어린애가 저렇게 노력하는 게 대견하지 않냐고 부탁하니까 아빠는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어릴 적 나는 집 밖으로 나가기 싫어했고 부모님을 따라 교회에 가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다 대신 짜파게티를 끓여 먹으면서 〈달빛천사〉나 봤다 〈달빛천사〉는 대강 이런 내용이다 1년 후에 죽게 되는 여자가 자신의 최후를 미리 감시하러 온 사신한테 자신이 노래를 좋아하는데 가수가 되어 노래를 부른 후에 죽게 해달라고 빌었다 주인공의 처지를 동정한 사신이 여자를 가수로 만들어주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슬프고 재밌는 일이 일어나는 애니다 〈달빛천사〉를 보다가 1시가 되면 윗집에서 약속이나 한 듯이 사라사테의 치고이너바이젠을 켰다 당시 내가 다니던 피아노 학원 원장님이 말해준 건데 항상 제목이 헷갈려서 난 바이젠이라 줄여서 불렀다 바이젠은 뭔가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아름답다고는 생각했다 바이젠은 밝은 음악은 아니었다 좀 비싼 돈가스를 파는 경양식집이나 재미없는 고전 영화에나 나올 법한 곡이었다 난 바이올린보다 피아노를 좋아했다 피아노 소리는 부드러웠지만 바이올린은 귀를 꼬집는 못생긴 사회 선생님처럼 까다로운 소리를 냈다 그래도 듣다 보니 나쁜 곡 같지는 않았다 윗집 형은 8분짜리 곡을 중간에 틀리면 잠시 멈춘 뒤 다시 이어갔는데 매번 비슷한 곳에서 틀렸다 틀릴 때마다 나는 약간 웃기도 했지만 반복되자 상황이 아쉽기도 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그 형은 피아노 학원에도 보이지 않고 나는 형의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게 되었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내겐 바이젠 연주가 더 아름답게 들리기 시작했다 실제로 더 아름다워졌는지도 모른다 처음에도 잘 켰다고 생각했으나 나중에는 바이올린 특유의 삑사리로 5분 후반에 칭칭팅팅거리는 파트가 예술이 되어갔다 몇 달 간 형은 바이젠을 완성해나갔고 그 사이에 〈달빛천사〉는 종영했다 이제 형은 바이젠을 연주하면서 틀린 부분은 계속 틀리지는 않았지만 열 번 중 두세 번은 틀리거나 좀 미숙하게 켰다 그때마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한 번 더, 한 번 더 어느 날은 교회에 다녀온 후 바이젠을 들은 아빠가 저게 바로 1만 시간의 법칙이라고 저렇게 1만 시간을 연습해야 1등이 될 수 있다고 저렇게 살아야 한다고 내게 밥상머리 앞에서 훈계하기도 했다 난 그걸 반박하고 싶어서 1만 시간의 법칙이 처음 나온 책을 도서관에서 찾아보았다 그 책은 재밌게도 실제 바이올리니스트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를 실었다 다만 아빠가 아는 것과는 차이가 있었다 아빠는 제대로 아는 게 없다 책이 말하길 스무 살 이상의 바이올리니스트들을 하급자, 중급자, 상급자 세 그룹으로 나눠서 관찰해보니 하급자들은 6천 시간 정도 연습했고 중급자 이상은 1만 시간 이상을 연습했다는 거다 그런데 중급자들이 상급자들보다 연습량이 더 많았다 상급자 그룹은 중급자 그룹보다 재능이나 경제적 배경이 더 좋았기에 연습 시간이 적어도 더 훌륭하게 연주했다 나는 중급자들이 1등으로 노력해도 1등이 될 수 없다면 왜 바이올린을 하는 거지, 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걸 아빠한테 말해주니 어린놈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화냈다 나는 좀 억울했다 그 사이에도 형의 바이젠은 여전히 점점 예술이 되어갔다 그리고 곡이 끝난 뒤 난 육성으로 아무도 없는 집에서 한 번 더, 라고 좀 크게 말하기도 했다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말한 후에 곡이 한 번 더 나오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주말에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은 〈달빛천사〉가 방영되기 시작했다 자본의 논리로 재방영된 거지만 그 당시에는 단순히 〈달빛천사〉를 다시 볼 수 있어 좋았다 다시 보니 〈달빛천사〉가 어떻게 슬프고 어떻게 재밌는지 약간은 알 수 있었다 그건 바이젠도 그랬다 그 당시 난 치고이너바이젠을 네이버에 검색한 뒤 프로가 연주하는 걸 들어서 프로와 형의 격차를 느낄 수 있었다 정확하게 어떻게 좋은지는 몰랐지만 프로가 더 잘 연주하긴 했다 킬링 파트에서 프로가 음을 더 잘 찔렀다 그래도 난 형의 바이젠을 생생하게 듣는 그 순간이 더 좋았다 그 이유를 아빠나 엄마에게 물어봐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기에 난 답답했다 〈달빛천사〉의 마지막 에피소드가 두 번째로 방영되던 어느 가을날 1시에 윗집에서 처음으로 실수 없고 흠잡을 데 없는 바이젠이 연주되었다 연주 도중 난 말할 수 없는 전율을 느꼈고 칭칭팅팅 하는 삑사리 부분에서 노력하는 형의 얼굴이 제멋대로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간지가 있는 표정이었다 탕탕탕 하고 현을 튕긴 후 찌리찌리링 하고 연주되는 후반부를 들은 나는 연주가 끝나지 않길 바랐다 그럼에도 곡은 끝났고 나는 잠시 여운을 즐긴 뒤 나지막이 한 번 더, 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아쉬워하며 〈달빛천사〉의 엔딩을 봤다 역시 〈달빛천사〉는 좋았다 주인공의 분투가 사람 마음을 애달프게 만들었다 허지만 내 마음이 어떻게 애달픈지 잘 몰라서 다시 한번 보면 좋을 것 같았다 그날 저녁 우리 가족은 집에서 뉴스를 보며 고기를 구워 먹었다 그런데 갑자기 바이젠이 윗집에서 다소 큰 소리로 연주되기 시작했다 매일 저녁 뉴스를 보는 아빠가 순간 짜증을 냈지만 내가 들을 만하다고 한번 들어보자고 했고 엄마는 애가 저렇게 말하는데 넘어가자면서 내 편을 들어주었다 화가 난 아빠는 뉴스를 끄면서 애새끼가 잘하면 얼마나 잘하겠냐고 비꼬았다 끈적끈적한 도입부가 잘 흘러나왔기에 이번에도 좋을 것 같다고 나는 생각했고 몇 분 듣던 아빠도 잘한다고 인정했다 연주를 듣던 엄마는 윗집 형이랑 친해지라고 한마디 보태면서 우린 아름다움을 누렸다 바이젠은 후반부의 칭칭팅팅 하고 탕탕탕 하고 찌리찌리링 하면서 완벽해졌고 끝이 났다 다 들은 우리는 그 곡에 어떤 말도 붙이지 않았다 형은 그 이후로 어떻게 됐는지는 잘 모르지만 근황이 없는 걸 보니 그쪽으로 크게 성공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난 가끔 속 시끄러울 때나 불안할 때 심지어 좋을 때도 치고이너바이젠을 꼭 두 번은 듣게 되었다
오장원_1995년 출생.
심사평
많은 분이 신인상에 응모해주신 만큼 즐겁게 읽은 작품이 꽤 많았다. 갈고닦은 것이 분명한 작품은 물론 자신의 생을 다 헤집고 벌려 쓴 작품도 손에서 놓기 어려웠다. 그러나, 그래서, 도리어 언제든 읽고 아껴줄 수 있는 작품이 아닌, 조금이라도 낯선 면모를 지닌 시인을 찾아내고자 했다.
기존 한국시의 형식과 내용을 체화하면서도 그에 침윤되지 않은 작품을 현실의 단면을 보여주면서도 도식적이지 않으며 감상에 휩쓸리지 않은 작품을, 쾌든 불쾌든 감각을 생생하게 공유하면서도 피상성에 머무르지 않은 작품을 찾고자 했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표현하기 어려운 불편이나 괴로움은 물론 기쁨마저 견딜 수 있을 것 같은 분을 찾고 싶었다. 누구에게든 영감을 줄 만한 시인을.
본심에 오른 응모작 가운데 오래 고민한 작품은 류가은의 「하나와 둘」, 조성배의 「중력」, 오장원의 「공짜는 다다익선」이었다.
「하나와 둘」 외 9편은 다양한 정체성에서 비롯한 경계인의 감각이 잘 느껴지는 시들이었다. 매력적이고 개성 있는 개인이 느껴지는 구어체의 활용과, 현실감이 확실한 상황의 제시가 돋보였다. 그러나 응모작 전반 고른 완성도를 보이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특히 전체적으로 시의 마무리가 앞선 매력적인 전개를 아우르지 못한 점이 신경 쓰였다. 앞으로 더 많이 쓰시면 극복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중력」 외 9편의 매력은 ‘없음의 있음’이라고 표현하면 합당할까. 현상의 빈자리를 형상화하는 언어의 유려함으로 고요를 잘 빚어내는 시들이었다. 아름다운 빈자리였다. 완성된 시인이었고, 앞으로 어떤 시를 써나가실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이미 좋은 시가 무엇인지 잘 아는 이의 쓰기였고 시적인 매력이 무엇인지 아는 이의 쓰기였다. 그래서 아쉬웠다. 너무 매끄럽기에 생기가 휘발된 부분을 다시 들여다보시면 좋겠다. 문장의 완급 조절을 잘하는 분이니, 조금 더 모험해보시기를 권한다.
「공짜는 다다익선」 외 9편을 놓고 토론이 길었다. 전반적으로 긴 시였음에도 마지막까지 독자를 붙잡고 가는 힘이 있었다. 넘치는 자의식의 수위가 아슬아슬했는데도 문장이 잘 받쳐주고 있어 계속 따라 읽을 수밖에 없었다. 흘러넘치는 자의식을 단속하지 않을 때의 위험을 모르지 않을 텐데 과감하게 끌고 가는 힘이 인상 깊었다. 과연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그가 앞으로 쓸 시가 기대되었다. 논의 끝에 「공짜는 다다익선」을 당선작으로 선정하였다.
응모하던 자의 자리로 몇 번이고 돌아가보았던 시간이었다. 셀 수 없이 낙방했고 낙담했다. 시를 피로 쓰지 말라고 선생님들은 말씀하셨지만, 선생님들이 뭘 알아요? 괴로워하면서…… 피라는 은유에 기대어 시대와 불화하거나 나 자신과 불화한다는 의식에 취한 것은 아닌가 자문하면서…… 시에 엮인 많은 분이 그러고 계시리라 자신의 피 같은 시를 보내주신 많은 분에게 응원을 보내고 싶다. 피는 또 보충하면 된다고. 많이 먹고 많이 읽고 많이 쓰시기를. 김복희(시인)
올해 신인문학상의 응모작 수는 예년보다 1.5~2배가량 많았다. 심사 시간 또한 꼬박 그만큼 더 늘어났으나 마음은 기뻤다. 박스 가득 들어찬 원고 중에는 AI를 사용한 흔적이 보이는 작품이 더러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시마저도 금방 손에서 놓진 않았다. 시로 만들기 위한 첫번째 씨앗이 무엇이었는지가 궁금해 더욱 들여다보았다. 본심에 오르지 못한 작품들을 정리하면서 하나씩 인사를 건넸다. 표제작의 제목을 부르고 고생하셨다고 속삭였다. 많은 분이 이 지면에 언급이라도 되기를 기다리고 계신 것을 안다. 개개인의 이름을 다 적지 못해 죄송스러운 마음을 담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에 열렬한 관심을 보여주심에 감사한 마음을 담아, 우리가 함께하고자 하는 것이 문학이라는 사실에 벅차고 든든한 마음을 담아 다시 한번 인사를 드린다.
본심에 오른 10편의 작품 가운데 내가 주목한 것은 유나이의 「유원」 외 9편과 류가은의 「하나와 둘」 외 9편이었다. 먼저 유나이의 「유원」 외 9편은 차분하게 다음으로의 한 걸음 한 걸음을 이어나가는 힘이 있었다. 그것은 전혀 소란스럽지 않았고 오히려 고요에 가까웠는데도 지나간 자리에는 금세 지워지지 않는 자국이 남았다. 그 자국을 한참이나 들여다보게 되는 시편들이었다. 그중에서도 「도미노」에 가장 마음이 갔다. 도미노를 세우듯 신중한 손길을 보여주면서도 무너뜨리는 일에, 또 그것을 말하는 일에 거리낌없는 태연함이 좋았다. 유나이의 시를 끝까지 지지하지 못했던 까닭은 시인만의 특색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안정적으로 시를 쓰는 것은 분명한 미덕이지만, 돌부리처럼 발에 채는 아주 작은 다름이 그 속에 있어야 새로운 시인이라는 호명이 가능하다. 계속 정진하며 쓰실 수 있기를 바란다.
류가은의 「하나와 둘」 외 9편은 시편 안에서도 짜임새가 있었다. 대개 가족 이야기가 중심이었는데, 그것이 작위적이거나 지루하지 않았다. 시를 전개하는 데 있어 세기를 조절할 줄 알고, 유머도 있었다. 내가 특히 좋아했던 시는 「사망 플래그」였다. 본심에 오른 모든 시편 중에 나는 이 시를 제일로 꼽았다. 투고자의 배치 의도와는 다르게 이 시를 맨 앞에 두고 끝까지 밀고 싶었다. 그런데 많은 것을 고려하는 심사 과정에 있어서 어떤 장점은 때로 단점이 되기도 한다. (모든 경우에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가령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던 가족 이야기가 10편 안에서는 충분히 매력적이었으나 그 이상을 생각하면 선뜻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이 이야기가 끝난 후에 이 시인에게 또 어떤 것이 남아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머지않은 미래에 지면에서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그때까지 나는 계속 류가은의 시를 궁금해할 것이다.
제26회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 당선작은 오장원의 「공짜는 다다익선」 외 9편이다. 솔직히 말하면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결정하는 데 있어 마지막까지도 지지하지 않았다. 그러나 심사위원의 과반수가 의견을 모았기에 최종 동의는 하였다. 오장원의 시는 쉴 새 없이 사람을 몰아붙인다. 시의 진행이 매우 속도감 있고, 거기에서 오는 리듬도 있다. 말하고자 하는 바가 분명하며 무엇을 쓰고 싶어 하는지도 알겠다. 시인으로서의 심지가 곧은 사람이라는 것은 그의 최대 장점이다. 하지만 이 발산하는 과잉된 ‘나’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것은 이제 내게 남은 과제인 것 같다. 당선을 축하드린다. 소유정(『문학과사회』 편집동인)
시를 쓰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 누군가는 일상적인 언어로 다 말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어서
시를 쓰기 시작할 것이다. 누군가는 일상적인 언어 속에서 지속적인 불편을 느끼기 때문에 시인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여전히 이토록 많은 사람이 시를 쓴다는 사실은 우리의 일상적인 언어가 그만큼 비좁고 둔하다는 것을 역으로 말해주는 현상이 아닐까. 수많은 원고를 앞에 두고 충분히 헤아릴 수는 없는 세계들을 짐작해보았다. 그렇게 많은 세계의 표면들을 읽어나가는 것은 고되면서도 보람된 일이었다.
본심에 오르지 못한 응모작 중에서도 매력과 감동이 있는 작품이 적지 않았다. 많은 작품이 나름의 진정성, 즐거움, 정서, 감각을 품고 있었다. 그렇지만 신인상 심사에서는 어쩔 수 없이 새로움과 개성에 큰 가치를 부여하게 된다. 이미 본 듯한 어조와 스타일의 시, 개성적인 목소리가 드러나지 않는 시는 지지하기 어려웠다. 다른 양식이나 매체에서보다 특히 시에서 예리하게 두드러지는 것이 언어의 새로움과 익숙함에 대한 감각일 것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 신선하게 느꼈던 어휘의 조합과 목소리의 톤, 스타일이 어느새 익숙해지고 지루하거나 공허하게 느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응모작들에서 종종 볼 수 있었던 위태로운 어린아이의 목소리, 코스모폴리탄적 예술 애호가의 목소리는 기시감을 강하게 불러일으켰다. 이미 그런 목소리를 들려주는 기성 시인들이 있기 때문이다.
본심에 오른 작품에 관해 심사위원들과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중에서도 내가 주목한 것은 송시영, 류가은, 오장원의 시였다.
잘 억제된 목소리를 들려주는 송시영의 시에서는 언어의 한계에 대한 지속적인 고민의 흔적이 엿보였다. 언어의 경계에 대한 예민한 감각은 삶과 죽음,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경계에 대한 사색으로 확장된다. 그의 시가 보여주는 진지함은 괄목할 만한 것이었으나, 시에 전환이나 강약의 흐름이 없어 일정한 리듬의 모노톤 영상을 보는 듯 밋밋하게 느껴지는 면이 있었다.
류가은의 시는 파격을 과시하지 않는데도 언어가 묘하게 낯설고 감각적이었다. 마치 모국어 속의 외국어를 보는 듯했다. 그의 시에는 산만한 인상과 일상의 대화, 미끄러지며 분열하는 언어가 다채롭게 조합되어 있었다. 시에 그려지는 화자와 인물들의 관계도 재미있었고, 죽음이나 망각처럼 무거운 주제를 속도감 있는 산뜻한 언어로 다루는 것도 큰 장점이었다. 그런데 시편들의 수준이 들쑥날쑥했고, 지속되는 인상과 말의 조합이 약간은 미숙하게 느껴지는 면도 있었다. 차후에 그의 시를 다시 만날 기회를 기대하며 기다리겠다.
오장원의 시에는 대번에 독자를 사로잡는 강렬한 에너지가 있었다. 이 에너지는 재기발랄한 입담을 가진 이야기꾼의 수다를 통해 표출되는데, 시니컬하고 위악적인 어조는 반복을 통해 애잔한 여운을 남겼다. 사실 강렬한 에너지가 돋보이는 만큼 우려되는 면도 많았다. 시들의 편차가 클 뿐 아니라, 다듬어지지 않은 에너지가 지나치게 공격적이거나 장황하게, 혹은 불필요한 위악으로 발휘되는 측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기 시 세계를 오래 펼쳐나가기 위해 시인은 자기 언어가 발휘하는 효과를 성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여러 우려에도 결국 그의 작품을 지지한 까닭은 어쨌든 시 쓰기에서 자기만의 목소리와 그 목소리를 밀고 나갈 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많은 고민과 논의가 있었으나 심사위원들은 오장원의 작품을 당선작으로 정하기로 뜻을 모았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응모해주신 모든 분께 응원과 감사를 전한다. 이희우(『문학과사회』 편집동인)
일정한 수준에 도달했음에도 수년간 일종의 시작(詩作) 관행으로 자리 잡은 허구적이고 환상적인 세계를 자신의 세계 인식의 대리로 앞세워 이제 막 성찰이 시작되어야 할 문제를 회피해버린 시라든지, 신변잡기를 나열하다가 길어진 시를 예심 과정에서 자주 마주쳤다. 이런 시편들은 공통적으로 ‘매끄럽고 피상적’이었는데, 혹시 이것이 모종의 감상주의를 암시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어법은 반낭만주의적이나 세계 인식이 감상적이어서 일어나는 불균형을 섬세한 시작법으로 위장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자기 연민을 미화하는 작품들도 자주 눈에 띄어 어떤 폐쇄적인 정동의 회로를 보는 듯했다. 이런 점에서 생활 감각과 세계를 보는 자신의 솔직하고 진솔한 태도가 잘 드러난 작품, 그리고 기존의 시작법에 기대어 억지로 씌어진 시가 아니라 심장으로부터 시작되어 손끝으로 흘러나온 작품에 심사의 중점을 두기로 하였다.
이런 기준 아래 내가 눈여겨본 응모작은 「하나와 둘」 외 9편, 「중력」 외 9편, 「spiderland」 외 12편, 「공짜는 다다익선」 외 9편이었다.
류가은의 「하나와 둘」 외 9편의 화자에게선 신랄한 목소리와 동시에 삶에 대한 확고한 최소한의 신뢰가 읽힌다. 「더블데이트」나 「사망 플래그」는 일상적인 대화의 한 부분에서 시작하여 적절한 상상이 더해지면서 일종의 상황극으로 나아가는데, 부조리극에 가까운 이 작품은 우리가 종종 처하는 일상의 암담한 단면을 눈앞에 제시한다. 그러나 전체 응모작들을 두고 보았을 때 시로 ‘만들기’ 위한 무리한 상상이 덧붙여지거나 결구가 잘 매듭지어지지 않아 아쉬움을 남겼다.
조성배의 「중력」 외 9편은 네 명의 본심작 중 형식적으로 가장 안정적인 성취도를 보여준다. 성실하게 걷는 사람의 반듯한 발자국 같은 시 속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정적이고 느릿하며 시선은 섬세하다. 낱말 하나하나를 낱낱이 공들여 썼다는 느낌이 확연하다. 그러나 기이하게도 이 시선과 목소리를 따라가 다다른 곳에서는 종종 텅 빈 공허함을 마주한다. 이 원고에는 「디오라마」라는 제목의 시가 두 편 포함되어 있는데, 그중 두번째 「디오라마」는 지리멸렬과 예정된 소멸이 한시적인 예술로 어떻게 체현되는지 보여주는 이 응모자의 자기 시론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부재와 소멸, 한시성과 영원회귀 같은 근현대 예술의 주제에 글쓴이는 지나치게 매혹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며, 이 시편들의 목소리와 어법이 과도하게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은 감점의 요인이 되었다.
윤수혁의 「spiderland」 외 12편은 가장 신선한 작품 중 하나였다. 시의 화자는 시편 전체에서 삶의 비극적 국면을 지나면서 견유주의적인 긍정성을 가진 희소한 인물로, “붉고 푸른 우울과/소리 없이 우는 몇 가지 방법들을”(「우울의 해부」 결구) 알고 “우리는 모두 석유가 될 것이다”(「제6차 대멸종」)라고 단언하는 발 하나가 뜯겨 나간 거미로서, 추위에 얼어가면서도 “하필 이런 때에 웃음이 난다/새로운 패턴이 떠올랐기에”(「spiderland」)라고 자신이 직조할 집의 형태를 상상해낸다. 꼭 필요한 말만 새겨 넣은 간결한 형태의 시는 필연적으로 씌어졌다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근래의 시적 관습과 나란히 놓고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단순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이 시편들의 주인이 포기하지 말고 계속 자기의 말을 갱신해나가길 바란다.
가독성 높은 산문시의 형식을 빌려 수다스럽게 끌고 나가는 「공짜는 다다익선」 외 9편은 농담처럼 가벼운 문체, 어린이다운 솔직함 때문에 그 진정성을 오해받기 쉽지만, 뜻밖의 묵직한 주제들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표제작 「공짜는 다다익선」은 흔한 층간 소음의 문제를 경험과 수련을 통한 예술 구현/향유의 완성과 갱신에 대한 기록으로 끌어올리고 있으며, 「All that is」는 “그게 인생”이라는 상용구를 삶의 에피소드들 속에서 뽑아내 비애를 견디는 ‘훌륭한 범인(凡人)’의 친근한 표정을 클로즈업하고 있다. 「나는 그냥 죽은 엄마의 말을 기억한다」는 ‘인생에 답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말놀이 농담을 주고받는 듯한 콩트를 연상케 하는 산문시다. 특히 「마왕과 용사가 없는 공굴다리」는 중국 고전 문헌과 산문시 속의 또 다른 시를 오가며 강변 산책 중에 떠오르는 상념들을 풀어놓는다. 화자는 다른 시들에서처럼 태평하고 가벼운 어조를 띠고 있으나 동음이의 한자어들을 이용한 말놀이를 통해 시에서 인용하고 있는 고전과의 연결성을 획득하며, 중간중간 삽입된 또 다른 시를 통해 화자의 상념을 비애감으로 이끌고 있는 이유를 제시한다. 이 시는 원고가 중간에 결락된 것처럼 보이는데, 이 ‘시 속의 시’에 등장하는 ‘남자’의 첫 출현이 명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교호하는 두 편의 시는 화자의 ‘절단된 경험’을 지시하는 것 같다. 한자를 이용한 동음이의 말놀이가 과용되었다는 인상이 있으나, 죽은 후에도 햇빛이 일렁이는 한강 위에 발 없이 서서 “나는 해신(神)이 되었다고도 본다. 귀신(鬼神)도 신(神)이니까 신통력이 생길까 했지만 살아서 못 한 것을 죽어서도 할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지 아닌지”라고 읊조리는 화자의 혼잣말은 화려한 형식으로 다다른 비루한 현실 속 생짜의 감정을 담고 있다. 이는 껄렁한 태도를 고집스럽게 유지할 때 도달할 수 있는 삶의 비애와 태도를 보여준다.
고민 끝에 심사위원들은 「공짜는 다다익선」 외 9편을 당선작으로 정했다. 군데군데 허술한 어법이나 지나친 구어 사용, 치기 어린 태도가 엿보이지만 근래 보기 드문 뚝심을 지니고 있으며 삶의 아이러니와 예술의 문제를 전력으로 파고드는 힘이 돋보인다. 무엇보다 흡인력이 굉장하다. 평범한 윗집 청년이 슬리퍼를 신고 낡은 추리닝 차림으로 아파트 주차장에서 비보잉하는 것을 목격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당선을 축하하며 정진을 응원한다. 정한아(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