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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제20회 중봉조헌문학상 수필부문 당선작] 김근범 구다겸

작성자copyzigi|작성시간26.06.08|조회수84 목록 댓글 0

[2026 제20회 중봉조헌문학상 수필부문 당선작] 김근범

 

대상
태엽을 감는 손 / 김근범


아버지의 유품 가운데 낡은 기계식 손목시계 하나가 있다. 은빛이 바래 누르스름하게 변한 메탈 줄, 긁힌 자국이 켜켜이 쌓인 유리면. 하지만 그 안의 초침은 여전히 멈추지 않고 돌아간다. 나는 가끔 그 시계를 귀에 가져다 댄다. 딱, 딱, 딱. 기계의 심장이 뛰는 소리. 마치 아버지의 맥박이 아직 그 안에 살아 숨 쉬는 것만 같아, 차마 서랍 깊숙한 곳에 밀어두지 못한다.

생전 아버지는 매일 아침 태엽을 감으셨다. 출근 전, 넥타이를 매기 전, 거친 세상과 맞닥뜨리기 직전. 시계의 용두를 두 손가락으로 쥐고 돌리는 일은 하루를 여는 아버지의 첫 의식이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그것이 그저 낡은 시계를 가진 자의 번거로운 습관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마흔 중반의 가장이 된 지금에야 비로소 깨닫는다. 그것은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가장으로서 오늘 하루도 온전히 버텨내겠다는 무언의 결의였음을.

1592년 금산, 중봉 조헌趙憲은 칠백 의사와 함께 왜적 앞에 섰다. 구원병의 발길은 끊겼고, 등 뒤에서는 헛된 죽음을 피하라는 목소리가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그러나 그는 결코 돌아서지 않았다. 일찍이 지부상소持斧上疏의 도끼를 곁에 두고 대궐 앞에 엎드렸던 그 서슬 퍼런 손으로, 이번에는 기꺼이 창을 쥐었다. 끝내 전원이 산화했고, 지금 금산의 그 자리에는 칠백 개의 넋을 한데 모신 둥근 의총義塚만이 무거운 침묵으로 남아 있다.

사람들은 그를 ‘의義’의 상징이라 부른다. 오랫동안 나는 그 ‘의’란 웅장하고 비장한 자들의 전유물이라 여겼다. 역사의 거대한 물줄기 앞에서 기꺼이 목숨을 던지고, 그리하여 청사에 찬란한 이름을 남기는 것. 그런 대의는 나와 같은 범인凡人의 일상과는 아득히 먼 곳에 놓인 별 같은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낡은 시계가 손안에서 차갑게 만져질 때면, 내 안에서 오래 굳어 있던 그 별의 궤도가 쩍 하고 금 가듯 흔들렸다.

아버지는 평생 무명無名의 사람이었다. 역사책에 이름이 오를 리도, 훗날 의총에 깃들 영혼도 아닌—그저 새벽이슬을 맞으며 공장으로, 현장으로, 만원 버스 정류장으로 묵묵히 걸어 나가던 평범한 사람. 허리가 굽어가는 세월 속에서도 늘 반듯하게 다려진 작업복 셔츠를 입으셨고, 거래처의 어음이 부도나 하늘이 무너져 내리던 그 혹독한 겨울에도 식구들의 밥상만은 결코 거르게 하지 않으셨다. 우리 남매는, 생의 무게가 무섭도록 짓누르던 그 새벽에도 아버지가 어김없이 시계 태엽을 감으며 하루치 투지를 장전하셨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유품을 정리하다 그 시계를 내 손목에 차보았다. 줄이 헐거웠다. 아버지의 삶을 지탱했던 손목이 내 것보다 훨씬 굵고 단단했기 때문이리라. 그 서늘한 헐거움이 묘하게 가슴을 짓눌렀다. 아버지가 온몸으로 막아내고 채워 넣었던 그 자리를, 나는 아직 온전히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는 부끄러움이었다. 조심스레 용두를 돌려보았다. 손끝에 전해지는 작고 단단한 저항감, 팽팽하게 태엽이 감기는 감각. 아버지는 매일 아침 이 뻑뻑한 저항을 이겨내는 것으로 하루의 문을 여셨겠구나.

생각해 보면, 조헌의 도끼와 아버지의 시계 사이에는 같은 온도의 묵직한 힘이 흐른다. 도끼는 불의에 꺾이지 않겠다는 의지를 세상에 내리찍는 선언이고, 시계 태엽은 또 하루의 고단함을 꺾이지 않고 살아내겠다는 의지를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맹세다. 전자는 역사가 기억하고, 후자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칠백 의사가 쥐었던 창과 아버지가 쥐었던 용두의 무게는—나는 감히—결코 다르지 않다고 믿는다.

진정한 의는 대개 환호와 박수 속에서 태어나지 않는다. 주저앉고 싶은 아침에도 억척스럽게 일어나는 것, 도망치고 싶은 삶의 자리를 끝끝내 지켜내는 것, 아무도 보지 않는 캄캄한 새벽에 홀로 시계 태엽을 감는 것. 그 모든 작은 결의들이 켜켜이 쌓여 한 사람의 고결한 의를 이룬다. 조헌이 금산의 혈투에서 물러서지 않을 수 있었던 것 또한, 어쩌면 그가 평생 수없이 많은 일상의 작은 자리들을 올곧게 지켜온 사람이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지부상소의 도끼는 어느 날 갑자기 들린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단단하게 감겨온 내면의 태엽이 마침내 그 자리에 이르러 터져 나온 결과물일 테니까.

나는 요즘 헐거운 아버지의 시계를 찬다. 그리고 매일 아침, 아버지가 그랬듯 용두를 돌린다. 손끝에 닿는 뻐근한 저항을 이겨내며 조용히 생각한다. 오늘도 꺾이지 말자고. 웅장하지 않아도, 이름 석 자 남지 않아도 좋으니, 저 금산의 칠백 의사처럼, 그리고 나의 아버지처럼, 내게 주어진 삶의 자리를 끝까지 지켜내는 사람이 되자고.

딱, 딱, 딱.

초침은 오늘도 멈추지 않는다. 한 시대를 지켜낸 의병의 혼이, 한 가족을 지켜낸 아버지의 투지가, 이제는 내 손목 위에서 하나의 박동이 되어 계속 뛰고 있다, 멈추지 않고.


 

우수상
여우재를 넘는 법 / 구다겸


“허이구야, 이런 얼빠진 놈.”

김포 여우재 설화를 처음 읽었을 때, 나도 모르게 혀를 찼다. 백 년 묵은 여우가 어여쁜 여인으로 둔갑해 어린 사내아이 입에 구슬을 넣었다 뺐다 하며 혼을 빼놓았다는 이야기. 아무리 어리다지만 여인의 치맛자락에 마음을 빼앗겨 넋 놓고 입술을 맞대고 있었다니, 어찌 그리 미련할까. 소년은 그 뒤로 매일 서당 가는 고갯길에 여우에게 붙들려 있었다.

놀라운 건 그 얼빠진 소년의 이름이다. 중봉 조헌 선생. 내게 ‘중봉’은 도서관 이름이고, 축제 이름이고, 동네 어디쯤 붙어 있는 익숙한 명칭이었다. 유학자이자 문인이며, 임진왜란의 참화 속에서 칼을 잡고 일어나 금산에서 칠백 의병과 함께 장렬히 순절한 인물이 아닌가. 유혹을 이기지 못해 샛길에서 헤매던 아이가 훗날 대의를 위해 목숨을 던진 사람이 되었다니. 위인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크게 휘청대며 제 길을 찾아가는 사람인지 모르겠다.

영웅들도 처음부터 큰길만 걷는 사람은 아니었다. 김유신에게는 천관녀의 집 앞에서 멈춰 선 밤들이 있었고, 오뒷세우스도 사이렌의 노래에 옴짝달싹 못하던 시간이 있었다. 중요한 것은 샛길에 발을 들이지 않았느냐가 아니라, 그곳에서 무엇을 보고 어떻게 돌아 나오느냐일 것이다. 유혹은 사람을 무너뜨리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사람의 그릇을 시험한다. 흔들려 본 사람만이 자기 안의 약함을 알게 되고, 붙들려 본 사람만이 다시 걸어야 할 길의 방향을 배우지 않을까.

처음 여우를 만났을 때, 어린 조헌은 여우 구슬의 달콤함에 속절없이 당했다. 점점 병색이 짙어지는 제자를 보고 훈장은 말한다. “그 처녀는 사람이 아니라 여우다. 또 구슬을 네 입에 넣거든 입을 꽉 다문 채 달려오너라.” 나는 이 대목에서 멈칫했다. 중요한 건 구슬을 빼앗는 게 아니었다. 여우가 여우인 줄 알아보는 눈과 입을 벌리지 않으려는 의지였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여우가 구슬을 뺏으려 달려들자, 어린 조헌은 구슬을 꿀꺽 삼키고 만다. 훈장은 아까운 보배를 잃었다며, “이제 너는 땅의 이치는 환히 알지만, 하늘의 뜻은 모르게 될 것”이라고 한다. 자칫 구슬을 삼킨 덕에 신묘한 능력을 얻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는 그 말속에서 결핍을 보게 된다. 너무 급하게 제 안으로 들여보낸 힘, 그래서 한쪽은 환해졌으되 다른 한쪽은 끝내 어두워진 운명 같은 것. 또는 하늘의 뜻은 바꿀 수 없으니 주어진 삶 안에서 충실히 살라는 계시일지도.

여우 구슬은 세상 온갖 유혹의 압축된 형상이다. 달콤하고 매끄럽고, 잠깐 입안에 넣고만 있어도 정신이 아찔해지는 것. 혀끝의 쾌락에 젖어 진기가 빠져나가는 줄도 모르고 넣고 빼기를 반복하게 만드는 요물. 그러나 중봉을 중봉답게 만든 것은 여우 구슬을 삼킨 일이 아니라, 그보다 먼저 있었을 ‘어떤 순간’이었을 것이다. 아름답고 달콤한 쾌락 뒤에 숨은 치명적 위험을 인지하고, 서당으로 돌아가려고 마음 먹었던 순간.

중봉은 유혹을 한 번도 보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 유혹의 정체를 가장 가까이서 끝까지 들여다본 사람이었다. 그랬기에, 훗날 나라의 위태로움 앞에서 물러서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눈앞의 안락과 타협이라는 또 다른 여우 구슬을 뱉어내고, 더 크고 무거운 뜻을 삼킨 사람. 그는 한 사람의 선비에 그치지 않고, 시대의 선봉장으로 남았다. 하늘의 이치를 몰랐기에 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인간으로서 할 바를 다 했다. 결핍으로 죽었으나, 역사 속에 영원히 살게 되었다.

나 역시 날마다 작은 여우재 하나쯤은 넘고 산다. 시시때대로 손바닥만 한 화면을 켜는 순간이 그렇다. ‘잠깐만 봐야지’, 숏츠로 시작했는데 어느새 본 영상으로 넘어가 있고, 공연장에 함께 있는 듯 프론트맨이 “소리 질러!” 하면 “예아압” 이러고 있다. 그마저도 끝까지 보지 못하고 밑에 달린 다른 영상들로 옮겨 다닌다. 금세 잊힐 얼굴, 자극적인 말들이 구슬처럼 입안에 들어온다. 배터리 경고가 뜬다. 화면이 어두워진다. 퀭한 여자 하나가 비친다. 식겁. 입안의 구슬에 정신 팔린 사이 정보는 많아졌지만, 정작 무엇을 믿고 어디로 가야 할지는 모르고 있다는 자각에 뒤통수가 싸하다.

유혹을 이기는 일이란, 구슬을 삼키는 것처럼 대단한 무언가를 얻는 일이 아니라, 함부로 입을 벌리지 않는 일에 가까운 것 같다. 얼른 반응하지 않고, 금세 휩쓸리지 않고, 반짝이는 것을 봐도 곧장 제 안으로 들여보내지 않는 일. 한 번쯤 멈춰 서서 이게 정말 내 것이 될 수 있는지, 아니면 내 기운만 빼앗아 갈 것인지를 살피는 일. 여우재 설화가 오래된 전설이면서도 낡지 않은 까닭은, 여우가 어여쁜 여인의 얼굴로만 오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때로 칭찬의 말로 오고, 때로는 편한 변명으로 오고, 때로는 말초를 자극하는 쾌락으로 온다. 그럴 때 필요한 건, 영리한 혀가 아니라 단단한 입이다.

그 얼빠진 소년이야말로 우리와 가장 가까운 얼굴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안개 낀 고개에서 발길을 멈춘다. 안되는 줄 알면서도 달콤한 것 앞에서 입술을 내준다. 중요한 것은 샛길에 들지 않는 재주가 아니라, 거기서 무엇을 알아보고 어떻게 돌아 나오느냐일 것이다. 중봉의 위대함도 그 대목에서 시작되었을지 모른다.

나 또한 크고 작은 여우재를 계속 지나며 살 것이다. 어떤 날은 구슬을 입안에서 오래 굴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중봉 선생의 어린 날 이야기에서 끝내 붙드는 것은, 여우가 여우인지 알아보고 구슬 문 입을 닫는 순간이다. 한 사람의 운명을 가르는 것은, 세상의 모든 이치를 얻는 일이 아니라 샛길의 안개 속에서도 큰길을 잊지 않고 돌아가려는 태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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