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그때 그시절

추억의 귀향길2

작성자beautiful chiro jang|작성시간26.06.19|조회수2 목록 댓글 0

북새통에 소매치기를 당해 고향엘 가지못하고 발길을 돌려야하는

가슴 아픈 사연들도 많다.

 

 

경찰관들의 통제에 의해 질서 정연하게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모두가 소지품이 간단하다, 몸둥아리 하나 끼여 타기도 힘들어서다.

 

며칠을 역앞에 노숙하며 애써 기다렸는데도

단 시간에 표가 매진되어 고향엘 가지 못하는 이들도 부지기 수 였다.

 

명절 당일날 새벽부터 혹시나 기차를 탈 수 있지안나 싶어 또 모여들고

밤샘을한 이들도 많았다.

 

수없이 몰려드는 귀향객들중 표를 구하지 못해 무임 승차를 하는이들도 있어서

객차문앞에서 경찰관이 검표를 하기도 했다

노약자들은 힘에 부처 뒤로 밀리고 또 밀리고.....

 

일부 회사에서는 사전에 버스를 전세내어 사원들을 귀향길 목적지 까지

대려다 주는 곳도 있었다.

 

강남 터미널에도 수 많은 귀향객이 몰렸으며,관리자들도 움직일 수 가 없어서

먼 발치의 사람들은 긴 장대로 이용하여 통제를 하곤했다.

 

객차 발판에 까지 매달려 어�게든 타 볼려고 몸부림을 친다

발디딜 틈이없어 객실 화장실 안에도 4~5명식 신문지를 깔고 자리를 차지하다보니

용변을 볼 생각초차 힘들었으며 도착지까지 물이나 음료수를 마시는것은

절대 금물이었다.

 

이렇게 힘든 고향길이지만 명절이 아니면 부모 형제를 볼 수가 없어,

필사의 귀향 전쟁을 치루면서도 고향의 향수를 느끼며 기쁜 마음에 피로함을 몰랐다.

 

 

버스도 마찬가지다, 복잡다고 이차를 안타면 다음차도 마찬가지다....

무조건 타야한다.

 

트럭으로 떠나는 이들도 많았다,

트럭으로 영업하는 이도 있었으며, 같은 고향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 트럭 짐칸에 빽빽히 타고 고향 길을 재촉한다

당시는 인사 사고만 나지 않으면 경찰관 아저씨들도 눈감아 주는

훈훈한 정이있었다.

 

70년대 초 일본내 조총련소속 교포들이 고국을 방문한 획기적인 일도 있었다.

 

재래시장에는 풍성한 오곡백과가 수북이 �아져 나오고..

 

명절이 아니면 얻어 입을 수 없는 새옷..

 

새옷한벌.신발 한켤례 사주시면,,너무좋아 신발을 신고 새옷을 입고 잠을 자다

혼나기도 하고..

 

시골장에는 우리 어머님들이 곡식을 이고지고가서 팔면, 그 돈을로 재수용품

사고 자식들 고무신 한켤례씩 사서 먼길을 걸어서 오시곤 했지요.

 

당시 백화점이 먼지도 잘 모르던 때였습니다

시장이라하면 재래시장이 최고였지요.

 

온식구가 돠라가며 떡 방아간에서 앞에서 하루 종일 차례 올때만

기다리곤 했지요.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