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1살,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된 나의 통증
1) 척추측만증의 시작
나의 굳어짐의 역사는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되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우리학교에서는 단체로 척추측만증 검사를 실시하였는데 12살 때 이미 나는 15도 가량 척추가 휘어진 것으로 진단을 받았다. 그 때 의사선생님께서는 척추를 바르게 펴기 위한 별다른 방법은 없고 많이 휘지 않았고 일상생활에 불편함이 없다면 척추 수술은 굳이 필요 없고 평소에 '바른 자세를 유지'할 것을 권유하셨다. 부모님도 내가 통증을 호소하지 않았기 때문에 별 다른 방법을 찾지 않고 넘기셨다.
2) 두통의 시작
"엄마, 머리아파." 이 말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대학 진학 시까지 입에 달고 살았다. 당연히 아스피린, 타이레놀과 같은 진통제는 초등학교 때부터 항상 가방 속에 넣어다녔다. 어린 자식이 계속 머리가 아프다고 하니, 뇌에 이상이 있는 게 아닌가하여 부모님은 날을 잡고 종합병원에서 CT를 비롯한 각종 검사를 하게 하셨지만, 별 다른 병은 발견되지 않았고, 이 때 의사선생님께서는 '스트레스성 두통'으로 결론을 내리셨다.
지금 생각하면 초등학생 때 방과 후에 쇼파에 비스듬히 누워 티비를 보고 책상 위에 발을 올려 컴퓨터를 하던 습관이 나의 척추측만증의 원인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인체의 유기적 특성으로 인한 척추측만이 경추의 틀어짐을 야기하면서 두통이 온 것이 분명하다.
2. 나를 위한 것이 나를 망치는 것으로
여느 대한민국의 청소년이 그랬듯, 난 나를 위해 "성공한 삶=공부를 통한 입신양명"이라고 여겨 중학교 때부터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다. 젊어서일까, 중학교 때는 오래공부하면 어깨와 허리가 아팠지만 중간 중간 스트레칭으로 간단히 통증이 해결되었다.
문제는 고등학교 때부터 였다. 고1~고3, 재수시절간
아침 7시~오후 12시까지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공부하며 내 몸은 점점 더 굳어져갔다. 4년간 나는 말 그대로 책상에 앉아 교수님이 말씀하신 '굳어지는 운동'을 한 것이다. 공부에 열중할 수록 성적은 올랐지만, 수능이 얼마남지 않았던 10월에는 뒷목이 뻣뻣해져서 움직이기가 힘들었고 급기야 턱까지 아파왔다. 그 정도 되면 공부를 중단하는 게 맞았지만, 입신양명이 최후의 최고의 가치였던 20살의 나는 하루의 절반은 누워서 공부했다.
병원에 갈 시간도 없이 공부를 마치고 수능을 치룬 후 본격적으로 통증을 없앨 방법을 찾아 다녔다.
구조적인 문제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부모님과 나는 각종 병원과 대체의학을 찾아다녔다. 원래도 기억력이 안 좋지만, 안 좋은 기억은 더 잘 잊는 나는 그때 들인 시간과 돈에 비해서 기억에 남은 게 잘 없는데, 하도 충격적이라 기억나는 사건은 있다. 한 돌팔이 대체의학가는 내가 '순환'이 안 되어서 그렇다면서 생식기에 부황을 떠야한다고 말했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며칠을 고민하다 엄마 손을 잡고 같이 치료실로 들어가서 생식기 언저리에 미니부황도 뜬 기억이 있다. 말그대로 무지가 나를 더 병들게 한 것이다.
21살 대학 입학 후 모든 공부란 공부는 손에서 놓고 시험기간에만 잠시 책상 앞에 앉아서였을까 통증은 자연스럽게 해결되었다. 그래서 '역시 두통과 뒷목의 뻐근함은 스트레스 때문이었군'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가끔 편두통이 나를 괴롭혔지만 단순히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넘겼고, 아프면 진통제로 대충 해결하였다. 교정하지 않은 채 내버려둔 척추측만증은 더 심해졌고 이에따라 골반이 틀어져거 멋내려고 입은 미니스커트는 뒷 지퍼가 내 옆구리로 와있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한번씩 돌려 입었다. 이렇게 저렇게 해맑게 지내다가 나는 대학교 4학년 초등학교 교사가 되기 위한 임용고사를 눈 앞에 둔, 다시 수험생이 되었다.
3. 24살, 다시 찾아 온 통증 2탄
4년 만에 시작한 공부는 역시 잘 되지 않았다.
"역시, 나는 공부 체질이 아니야."라고 생각했다.
일주일 중에 4일은 편두통과 체끼로 시간을 날렸다.
이 때 나는 20살 때 비해 게을러 진 내 자신을 채찍질만 했다. 모든 집중력 저하의 원인을 내 '의지력 박약'과 '노오력'으로 돌리며 나를 탓했고, 심해진 스트레스는 폭식으로 풀었다. 일년간 살이 야금야금 10키로 정도 쪘다. 수험생이라 운동도 못한 탓도 있었지만, 스트레스성 폭식이 큰 영향을 미쳤다. 일주일에 3일만 약기운으로 겨우겨우 공부할 수 있었지만, 함께 공부했던 스터디원들의 도움과 그나마 남아있던 나의 근성으로 시험에 턱걸이로 겨우 합격할 수 있었다.
25살부터 교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대학교와 취직이라는 목표가 사라진 나는
여느 대한민국 청년과 다름 없이 "자기관리를 하는 삶=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하며 퇴근 후에는 대학원 공부, 영어공부 및 운동과 다이어트에 매진했다. 70kg에 육박했던 몸무게는 시험이 끝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어느정도 감량할 수 있었다. '채소와 닭가슴살'을 기본으로 나름의 변화를 준 식단을 자기관리하는 여자의 최고의 식단으로 여겼다. 때로는 반 아이들과 함께 먹는 급식도 신청을 하지 않으며 삼시세끼를 저런 식단으로 먹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혹독한 식단과 2시간 이상의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지 않으면 만족스러운 몸무게가 되지 않았고 요요가 찾아왔다.
4. 27살, 또 다시 찾아 온 통증 3탄
1탄에서의 두통
2탄에서의 두통+소화불량이었다면
3탄에서는 두통+소화불량+척추염좌였다.
원래도 원체 힘이 세고 운동신경이 좋았던 나는 데드리프트를 80키로 넘게 들곤 했다. 웨이트 트레이닝은 근육 단련에 참 좋은 운동이라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고, 중간에 신체에 대한 지식이 1도 없는 선생님을 만나서 고생한적을 제외하고는 좋은 선생님들을 만나 PT도 재밌게 했다. 문제는 어느정도 자신감이 생긴 후 PT에 수백을 쏟은게 아까웠던 내가 개인운동을 하면서부터 였다. 점점 중량을 높여가던 나는 데드리프트를 하다가 결국 허리를 삐끗하였다. 병원에 갔더니 '기립근 염좌'라는 병명을 진단 받았고, 다 나을 때까지는 절대안정이 필수적이었다. 식이, 운동 강박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나에게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었다. 이때는 정말 쓰고 있던 논문도 엎어진 상황에 운동도 못하게 되었었다. 원래 운동을 많이해서 입맛을 떨어뜨려 저녁을 간단히 해결하고 자거나 운동을 한 것이 아까워서라도 덜 먹는 것이 나의 방법이었는데, 운동을 하지 않으니 시간도 남고 운동도 안했는데 아까울게 없으니 내 맘대로 먹기 시작했다. 살이 불어나고나서야 아차 싶었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었다.
운동을 안 하는 대신 식단을 더 혹독하게 하려다보니 폭식증은 반복되었다. 먹고 토를 한 적은 처음이었다. 친구가 추천해준 유명한 살 빠지는 약도 시도해보았다. 이 약을 복용하면 확실히 입맛은 사라졌다. 하지만 입이 바짝마르고 하루종일 하늘 위를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 들며 중추신경계를 자극하여 심장이 뛰어 불면증이 오는 부작용이 있었다. 무식하게 이때 수면유도제를 복용하여 자다가 숨이 막혀 죽을뻔한 경험을 하고 서는 일주일만에 약을 끊었다.
답이 없었다. 1년간 논문+체중증가의 고통으로 꽃다운 나이에 얼굴에 그늘을 달고 살았다. 이때 척추측만증에 효과적인 운동이 없을까하여 검색을하다가 알게된 것이 SNPE였다.
5. SNPE와의 만남.
SNPE를 접한 후 집 주변 수련할 수 있는 곳을 찾다가 박효병 선생님을 알게되었다. 처음에 알게 된 센터는 일주일에 두번밖에 개강이 안 되어 그렇게 시작했지만, 나중 되어서는 도저히 혼자서는 집에서는 지겨워서 할 수가 없어서 시크하고 건조하게 운동을 시키는 선생님을 따라 수련을 다른 요일에도 수강을 하여 일주일에 4회 수련을 하게 되었다.
백문이 불여일견.
집 주변센터에서의 수련을 시작으로 지도사 과정을 시작하며 SNPE를 조금 집중해서 수련한
2018년 11월부터 2019년 2월까지의 모습을 찍어보았다.
그리고 앞면 비포 애프터
확연한 변화는 다음과 같다.
1. 일단 가시적인 변화로 등에 표정이 사라짐. 피부결도 뭔가 다름.
2. 먹는 거 그대로 먹는데 몸무게도 4키로 감량
3. 초등학교 때부터 나를 괴롭힌 편두통은 그냥. 너무 허무하게도. 단박에 사라짐. SNPE이후 편두통이 찾아온 적 단 한번도 없음. 좀 이상하다싶으면 후두골 풀어주면 됨.
4. 보건실에서 소화제를 일주일에 1회이상 갖다먹을만큼 단골이었지만, 이제 한 학기에 한번정도.
5. 어깨, 허리 라인이 달라짐.
SNPE를 시작하고서는 식단조절을 못(안)했다. 앞으로도 닭가슴살 위주의 식단은 나에게 강박을 가져다 줄 것을 잘 알고 있기에 다시는 시도할 생각이 없다.
나에게 있어 좋은 식단이란,
1. 생식을 챙겨먹는 것
2. 한식 위주의 균형잡힌 식사를 적당히 먹는 것
이 두 가지 간단한 기준만 존재할뿐, 이 안에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먹는다.
난 사실 싫증을 정말 잘 느끼고 지루함을 못 견뎌하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사실 단순동작 반복의 SNPE가 너무 지겨워서 많이 수련을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같은 나태한 인간에게 이런 결과를 줄 수 있다는 것이 바로 SNPE의 영험함(?)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고질적인 척추측만증은 정도가 심하고 시간이 오래걸리기 때문에 이번 시험과, 논문 심사가 끝나면 집중 수련을 통해 몸을 제대로 한번 만들어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