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의학자들(근본주의자들,창조주의자들.....)의 주장
종교적 신성보단 보다 객관적이고 유물론적 가치관을 더 중시하는 여러 분야의 과학자들의 예수의 십자가형에 대한 평가는--십자가형은 사실이지만 절대로 죽은것은 아니다,따라서 부활이란 등식은 성립불가이다.-- 종교적 믿음을 기반으로하는 성의학자들에겐 도저히 받아들일수없는 주장들이었다.
자신들의 성의에 관한 분석과 종교적 신성을 증명하고자 성의학자(창조주의자)들은 일반과학자들의 주장에 대해서 반박을 하며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다.
그러나 결론부터 확인하자면 그런 의견들은 개인의 주관적인 믿음에 의해, 엄연한 증명이 수반되어야하는 과학의 본질을 망각한 헤프닝들이었다.
이장에선 이런 성의학자(창조주의자)들의 궤변을 살펴보자.
그 첫번째로 성의학자(창조주의자)들은 반드시 사후에 일어나는 사체경직의 증거로서 예수가 양손이 묶인채 십자가에 매달려있었을거란 주장을 하였다.
이런 주장에 뒤셀도르프 대학의 법의학 연구소장 볼프강 폰테 교수는 가볍게 일축을 해버렸다.
"양 손을 홤께 묶어두었다는것이 사체경직을 입증해준다는것은 도저히 납득할수없는 주장입니다.
성의상의 자세에서 양팔,또는 양손을 묶었다고 하면 더 정확히 말해 고정시켰다고 하면 이는 사체경직이 시작되기 전일겁니다.
사체경직이 시작되면 온몸의 근육이 조직이 돌덩어리처럼 굳어버리기때문에 양손을 모아서 묶는다는것은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엄청난 힘을 가해 돌덩어리처럼 굳어진 근육을 움직여야하니까요.
결론적으로 양 손목이 함께 묶여있었다는것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다른 측면을 고려해도 결론은 마찬가지입니다.
설사 양손이 묶여있었다하더라도 사체경직이 있었다는것을 증명할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조사결과는 오히려 사체경직이 없었다는것을 입증해주고 있습니다."
볼프강 폰테교수의 조언을 참조로 성의상을 한번 자세히 살펴보자.
성의상에 나타난 손 부위를 잘 보면 양손이 묶여있었다는주장이 타당성이 없음을 알수있다.
만약 붕대가 사용되었다면 이 부위의 지혈작용으로 인해 혈흔이 끊겨있을것이다.
하지만 해당부위의 성의상에서는 그런 흔적을 전혀 찾아볼수없다.
그리고 만일 손목부분이 묶여있었더라면 그 부분이 똑 바로 포개진것이 아니라 엇비슷하게 겹쳐져있을것이다.
지금 독자들은 자신의 양 손목을 겹쳐보기 바란다.
도저히 똑 바로 겹쳐짐이 어려운것을 당장 알수있을것이다.
서로 엇비슷하게 겹쳐진 상태에서 양손을 묶으려면 아마도 상당량의 붕대를 많이, 칭칭 감아야했었을것이다.
그러나...
성의상을 보면 매우 또렷하게 두 손과 손목의 흔적이,끊김없이 남아있다.
성의학자들(창조주의자들)의 다른 주장도 들여다보자.
성의학자들은 턱 고정용 붕대가 사용되었단 주장을 내놓았다.
턱 고정용 붕대라.....
이들은 예수의 머리가 아래로 처지는것을 방지하기 위해 예수의 처형직후 예수의 머리에 붕대가 감겼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성의상분석결과 붕대의 흔적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만일 성의학자들(창조주의자)들의 주장대로 머리에 붕대가 감겨져있었더라면 가시관씨움의 상처로 추정되는 머리와 이마주변의 상처도 모두 지혈되고 설사 그 흔적이 남았더라도 매우 희미하세 남아있었을것이다.
그러나 성의상의 예수의 머리부분에는 매우 또렷하게 상흔이 남아있다.(성의의 진위규명의 역사 (3) 편 참조)
이번에는 비정상적으로 늘어난 흉곽과 푹 패인 복부를 사체경직의 증거로 주장하였다.
한번 이치에 맞게 따져보자.
시체표면에 덮었던 아마포가 복부에 더 밀착을 하겠는가,아니면 흉곽부위에 밀착하겠느가?
평평하게 눕힌채 양손이 하복부위에 놓여졌다면 하복부보단 흉곽부위에 아마포의 흔저기 더 깊게 새겨지는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닌가?
여기까지 오자 이번에는 성의학자들(창조주의자들)은 두 엄지손가락을 가지고 사체경직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성의학자들(창조주의자들)의 주장은 정중신경의 손상으로 양 엄지손가락이 안으로 굽은 상태에서 사체경직이 일어나 그 자세가 유지되었다는것이었다.
과연 그럴까?
그럼 나머지 손가락은 어찌하여 온전히 쭉 펴진채 성의상에 자국을 남겼겠는가?
성의상의 그 부분을 확인해보면 외손이 오른손을 감싸고 이 자세를 고정시키기 위해 왼쪽 엄지손가락이 온른손 아래에 놓여있는것을 똑 바로 확인할수있다.
거기다가 손가락이 쭉 펴져있는 오른손은 긴장이 풀린채 자연스럽게 놓여있다.
이런 상태에서는 엄지손가락이 자동적으로 반대편 손밑에 놓이게 된다.
한번 지금 자신의 손으로 시험을 해보면 즉각 확인가능할것이다.
그리고 의학적으로도 분석을 하여보자.
이 손바닥의 안쪽에 위치한 정중신경의 손상이나 마비로 야기되는 질병은 수근관 증후군이 있다.
Carpal tunnel syndrome(수근관증후군)
그 증상으로는 정중신경이 어떤 원인이든 수근관 내에서 압박되면 신경속(nerve bundle) 내의 모세혈관의 순환장애가 발생하고 부종과 압박의 악순환이 형성되어 정중신경 영역의 저린 통증과 감각 이상 및 지각저하를 초래하고 진행되면 무지구근의 위축과 근력저하에 따른 무지대립운동의 장애를 초래한다.
가장 특징적인 증상은 주로 수면 중에 손이 저려서 잠이 깨거나 통증으로 수면이 곤란하다고 호소한다.
통증은 손을 흔들거나 들어올리거나 따뜻하게 하면 약화된다.
이 시기가 지나면 신경의 압박이 점차 심화되어 밤중에 저린 증상마저 없어지고 손가락의 감각이 무디어지기 시작한다.
더 진행되면 무지구근의 위축이 일어나고 무지의 내전근력저하로 물건을 쥐기 어렵게 된다.
40∼60세 여성에게서 많이 발병(남자대여자의 비율이 약 10:1이다)되고 비록 양측성이지만 대부분 많이 쓰는 쪽 손에 나타난다.
또한 반복적 육체적 노동이나 진동에 노출되어 손목을 많이 쓰는 젊은 환자들에게도 보인다.
임신여성의 20%는 체액의 정체가 수근관의 부종을 야기하여 정중신경을 압박하므로 이 증후군을 경험한다.
종합해보자면 이 정중신경의 손상으로 인한 육체적 피해는 남성보다 여성이 현저히 심하고 발병율도 무척 높다.
그리고 그 원인은 지나친 손목의 사용에서 비롯된다.
그럼 그 시대로 돌아가서 상황을 상상해보자.
그 당시 예수가 활동하던 시기는 서기 1년에서 약 33년 까지이다.
종이의 발명은 그후인 약 105년의중국에서이다.
종이가 없다는것은 물론 그에 대한 대체품이 있었겠지만 문자의 기록이 그리 활발하지 못했음을 짐작할수있다.
그 당시 고대의 중동지방에서 뚜렷한 주거지도 없이 직업도 없이 전도만을 행하던 예수가 과연 무엇에 그토록 손목을 사용했단 말인가?
변변한 기록매체없이 전도활동을 한 예수가, 더우기 발병율이 여성이 남성보다 10배나 높은 정중신경손상으로 인한 질병이 걸릴수가 있었겠는가?
언행이 아닌 기록에 의한 전도가 전연 이루어 지지 않았으며,특히 예수의 십자가형전에 로마에 의한 혹독한 고문에 의해서라도 이 정중신경의 손상때문에 양 엄지손가락이 안으로 굽어져 사체경직이 일어났다는것은 더더욱 말이 안된다.
그 이유는 정중신경손상시 일어나는 수근관증후군의 대표적인 증상은 엄지를 포함한 모든 손가락이 점점 안으로 굽혀지지 않아서 도구를 잡을수가 없다는것이다.
그러므로 정중신경의 손상으로 예수의 양 엄지손가락이 굽은후에 사체경직이 일어났다는것은 매우 불합리한 주장인것이다.
이런 일련의 성의학자들(창조주의자들)의 터무니 없는 주장들이 일반과학자들에게 모조리 반박당하자 미국의 성의학자 로버트 버클린(이자는 법의학자이다!)아주 기막힌 주장을 하였다.
시신의 사망원인을 밝히기위해선 사체해부가 필수란것이었다.
이런 그의 주장에 대해서 성의의 주인공이 사망상태였는가 아니었는가의 촛점에서 사체해부로 사망원인을 밝히자는것이 합당한가 하는 질문이 던져졌다.
물론 그는 대답을 회피했다.
그리고 누워있는 시신에서 출혈이 있을수 없다는 말도 자신이 사망했다고 주장하는 성의의 주인공이 똑 바로 선 자세에서 사망했을것이라는 말도 일절 하지 않았다.
그리고 생각해보자.
이미 2000천년 가까이 시간이 흐른 한 인간의 사망원인을 밝히는데 사체해부라니...이게 과연 법의학자로서 할말인가?
이처럼 성의학자들(창조주의자들)의 눈물겨운 투쟁은 그들의 종교적 믿음에 의거하여 예수는 십자가형으로 죽었고 삼일만에 부활했다는 성경의 내용을 그대로 일반화를 거쳐 유지하려는 쇼에 지나지 않는것이었다.
종교적 신성보단 보다 객관적이고 유물론적 가치관을 더 중시하는 여러 분야의 과학자들의 예수의 십자가형에 대한 평가는--십자가형은 사실이지만 절대로 죽은것은 아니다,따라서 부활이란 등식은 성립불가이다.-- 종교적 믿음을 기반으로하는 성의학자들에겐 도저히 받아들일수없는 주장들이었다.
자신들의 성의에 관한 분석과 종교적 신성을 증명하고자 성의학자(창조주의자)들은 일반과학자들의 주장에 대해서 반박을 하며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다.
그러나 결론부터 확인하자면 그런 의견들은 개인의 주관적인 믿음에 의해, 엄연한 증명이 수반되어야하는 과학의 본질을 망각한 헤프닝들이었다.
이장에선 이런 성의학자(창조주의자)들의 궤변을 살펴보자.
그 첫번째로 성의학자(창조주의자)들은 반드시 사후에 일어나는 사체경직의 증거로서 예수가 양손이 묶인채 십자가에 매달려있었을거란 주장을 하였다.
이런 주장에 뒤셀도르프 대학의 법의학 연구소장 볼프강 폰테 교수는 가볍게 일축을 해버렸다.
"양 손을 홤께 묶어두었다는것이 사체경직을 입증해준다는것은 도저히 납득할수없는 주장입니다.
성의상의 자세에서 양팔,또는 양손을 묶었다고 하면 더 정확히 말해 고정시켰다고 하면 이는 사체경직이 시작되기 전일겁니다.
사체경직이 시작되면 온몸의 근육이 조직이 돌덩어리처럼 굳어버리기때문에 양손을 모아서 묶는다는것은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엄청난 힘을 가해 돌덩어리처럼 굳어진 근육을 움직여야하니까요.
결론적으로 양 손목이 함께 묶여있었다는것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다른 측면을 고려해도 결론은 마찬가지입니다.
설사 양손이 묶여있었다하더라도 사체경직이 있었다는것을 증명할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조사결과는 오히려 사체경직이 없었다는것을 입증해주고 있습니다."
볼프강 폰테교수의 조언을 참조로 성의상을 한번 자세히 살펴보자.
성의상에 나타난 손 부위를 잘 보면 양손이 묶여있었다는주장이 타당성이 없음을 알수있다.
만약 붕대가 사용되었다면 이 부위의 지혈작용으로 인해 혈흔이 끊겨있을것이다.
하지만 해당부위의 성의상에서는 그런 흔적을 전혀 찾아볼수없다.
그리고 만일 손목부분이 묶여있었더라면 그 부분이 똑 바로 포개진것이 아니라 엇비슷하게 겹쳐져있을것이다.
지금 독자들은 자신의 양 손목을 겹쳐보기 바란다.
도저히 똑 바로 겹쳐짐이 어려운것을 당장 알수있을것이다.
서로 엇비슷하게 겹쳐진 상태에서 양손을 묶으려면 아마도 상당량의 붕대를 많이, 칭칭 감아야했었을것이다.
그러나...
성의상을 보면 매우 또렷하게 두 손과 손목의 흔적이,끊김없이 남아있다.
성의학자들(창조주의자들)의 다른 주장도 들여다보자.
성의학자들은 턱 고정용 붕대가 사용되었단 주장을 내놓았다.
턱 고정용 붕대라.....
이들은 예수의 머리가 아래로 처지는것을 방지하기 위해 예수의 처형직후 예수의 머리에 붕대가 감겼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성의상분석결과 붕대의 흔적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만일 성의학자들(창조주의자)들의 주장대로 머리에 붕대가 감겨져있었더라면 가시관씨움의 상처로 추정되는 머리와 이마주변의 상처도 모두 지혈되고 설사 그 흔적이 남았더라도 매우 희미하세 남아있었을것이다.
그러나 성의상의 예수의 머리부분에는 매우 또렷하게 상흔이 남아있다.(성의의 진위규명의 역사 (3) 편 참조)
이번에는 비정상적으로 늘어난 흉곽과 푹 패인 복부를 사체경직의 증거로 주장하였다.
한번 이치에 맞게 따져보자.
시체표면에 덮었던 아마포가 복부에 더 밀착을 하겠는가,아니면 흉곽부위에 밀착하겠느가?
평평하게 눕힌채 양손이 하복부위에 놓여졌다면 하복부보단 흉곽부위에 아마포의 흔저기 더 깊게 새겨지는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닌가?
여기까지 오자 이번에는 성의학자들(창조주의자들)은 두 엄지손가락을 가지고 사체경직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성의학자들(창조주의자들)의 주장은 정중신경의 손상으로 양 엄지손가락이 안으로 굽은 상태에서 사체경직이 일어나 그 자세가 유지되었다는것이었다.
과연 그럴까?
그럼 나머지 손가락은 어찌하여 온전히 쭉 펴진채 성의상에 자국을 남겼겠는가?
성의상의 그 부분을 확인해보면 외손이 오른손을 감싸고 이 자세를 고정시키기 위해 왼쪽 엄지손가락이 온른손 아래에 놓여있는것을 똑 바로 확인할수있다.
거기다가 손가락이 쭉 펴져있는 오른손은 긴장이 풀린채 자연스럽게 놓여있다.
이런 상태에서는 엄지손가락이 자동적으로 반대편 손밑에 놓이게 된다.
한번 지금 자신의 손으로 시험을 해보면 즉각 확인가능할것이다.
그리고 의학적으로도 분석을 하여보자.
이 손바닥의 안쪽에 위치한 정중신경의 손상이나 마비로 야기되는 질병은 수근관 증후군이 있다.
Carpal tunnel syndrome(수근관증후군)
그 증상으로는 정중신경이 어떤 원인이든 수근관 내에서 압박되면 신경속(nerve bundle) 내의 모세혈관의 순환장애가 발생하고 부종과 압박의 악순환이 형성되어 정중신경 영역의 저린 통증과 감각 이상 및 지각저하를 초래하고 진행되면 무지구근의 위축과 근력저하에 따른 무지대립운동의 장애를 초래한다.
가장 특징적인 증상은 주로 수면 중에 손이 저려서 잠이 깨거나 통증으로 수면이 곤란하다고 호소한다.
통증은 손을 흔들거나 들어올리거나 따뜻하게 하면 약화된다.
이 시기가 지나면 신경의 압박이 점차 심화되어 밤중에 저린 증상마저 없어지고 손가락의 감각이 무디어지기 시작한다.
더 진행되면 무지구근의 위축이 일어나고 무지의 내전근력저하로 물건을 쥐기 어렵게 된다.
40∼60세 여성에게서 많이 발병(남자대여자의 비율이 약 10:1이다)되고 비록 양측성이지만 대부분 많이 쓰는 쪽 손에 나타난다.
또한 반복적 육체적 노동이나 진동에 노출되어 손목을 많이 쓰는 젊은 환자들에게도 보인다.
임신여성의 20%는 체액의 정체가 수근관의 부종을 야기하여 정중신경을 압박하므로 이 증후군을 경험한다.
종합해보자면 이 정중신경의 손상으로 인한 육체적 피해는 남성보다 여성이 현저히 심하고 발병율도 무척 높다.
그리고 그 원인은 지나친 손목의 사용에서 비롯된다.
그럼 그 시대로 돌아가서 상황을 상상해보자.
그 당시 예수가 활동하던 시기는 서기 1년에서 약 33년 까지이다.
종이의 발명은 그후인 약 105년의중국에서이다.
종이가 없다는것은 물론 그에 대한 대체품이 있었겠지만 문자의 기록이 그리 활발하지 못했음을 짐작할수있다.
그 당시 고대의 중동지방에서 뚜렷한 주거지도 없이 직업도 없이 전도만을 행하던 예수가 과연 무엇에 그토록 손목을 사용했단 말인가?
변변한 기록매체없이 전도활동을 한 예수가, 더우기 발병율이 여성이 남성보다 10배나 높은 정중신경손상으로 인한 질병이 걸릴수가 있었겠는가?
언행이 아닌 기록에 의한 전도가 전연 이루어 지지 않았으며,특히 예수의 십자가형전에 로마에 의한 혹독한 고문에 의해서라도 이 정중신경의 손상때문에 양 엄지손가락이 안으로 굽어져 사체경직이 일어났다는것은 더더욱 말이 안된다.
그 이유는 정중신경손상시 일어나는 수근관증후군의 대표적인 증상은 엄지를 포함한 모든 손가락이 점점 안으로 굽혀지지 않아서 도구를 잡을수가 없다는것이다.
그러므로 정중신경의 손상으로 예수의 양 엄지손가락이 굽은후에 사체경직이 일어났다는것은 매우 불합리한 주장인것이다.
이런 일련의 성의학자들(창조주의자들)의 터무니 없는 주장들이 일반과학자들에게 모조리 반박당하자 미국의 성의학자 로버트 버클린(이자는 법의학자이다!)아주 기막힌 주장을 하였다.
시신의 사망원인을 밝히기위해선 사체해부가 필수란것이었다.
이런 그의 주장에 대해서 성의의 주인공이 사망상태였는가 아니었는가의 촛점에서 사체해부로 사망원인을 밝히자는것이 합당한가 하는 질문이 던져졌다.
물론 그는 대답을 회피했다.
그리고 누워있는 시신에서 출혈이 있을수 없다는 말도 자신이 사망했다고 주장하는 성의의 주인공이 똑 바로 선 자세에서 사망했을것이라는 말도 일절 하지 않았다.
그리고 생각해보자.
이미 2000천년 가까이 시간이 흐른 한 인간의 사망원인을 밝히는데 사체해부라니...이게 과연 법의학자로서 할말인가?
이처럼 성의학자들(창조주의자들)의 눈물겨운 투쟁은 그들의 종교적 믿음에 의거하여 예수는 십자가형으로 죽었고 삼일만에 부활했다는 성경의 내용을 그대로 일반화를 거쳐 유지하려는 쇼에 지나지 않는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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