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6,7-15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7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8 그러니 그들을 닮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10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11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12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13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
14 너희가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용서하면,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15 그러나 너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 묵상
‘주님의 기도’를 전하는 복음은 마태오 복음과 루카 복음입니다. 루카 복음 11장에서 제자들은 예수님께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달라고 청합니다.
제자들의 청에 예수님께서 알려 주신 기도가 바로 ‘주님의 기도’입니다. 주님께서 친히 가르쳐 주셨다 하여 ‘주님의 기도’라 합니다만, 어디 예수님께서 이 기도를 가르치기만 하셨겠습니까? 이 기도는 주님께서 친히 하셨던 기도이기도 합니다.
주님의 기도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구절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마태 6,10)라는 구절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내 뜻을 하느님께서 들어주시도록 청하는 것을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기도는 하느님의 뜻에 내 뜻을 맞추는 것입니다.
내 뜻에 따라 하느님의 뜻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따라 내 생각과 말과 행위를 바꾸는 것이 기도입니다.
겟세마니에서 바치셨던 예수님의 기도를 기억합니다.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루카 22,42)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길 기도하셨던 예수님의 기도는 겟세마니의 기도로 이어집니다.
하느님의 뜻이 이 세상에, 그리고 내 안에 이뤄지길 바라는 기도가 진정한 기도입니다.
오늘의 묵상
마태오 복음서는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6,8)라는 선언에 이어 주님의 기도를 소개합니다.
그러니 이는 불안이나 부족함을 달래고 채우려는 기도가 아니라, 아버지의 선하심을 바탕으로 한 신뢰의 기도입니다.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6,9)는 하느님의 초월성과 아버지로서 친밀함을 동시에 붙드는 고백이자 외침입니다. 이러한 친밀함은 개인에서 시작되지만 “저희”라는 복수형 표현 안에서 공동체로 확장됩니다.
그다음 세 가지 청원은 하느님 중심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6,9)는 하느님 스스로 당신 이름을 거룩하게 드러내시는 종말론적 장면을 떠올리게 하면서도(에제 36,23 참조), 백성이 현재의 삶에서 그분의 이름을 존중하는 자세를 포함합니다(이사 29,23 참조)
.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마태 6,10)는 구약의 야훼 통치 사상을 재해석한 종말론적 청원으로, 이미 예수님의 공생활 안에서 시작된 하느님 나라의 현존을 가리킵니다.
“아버지의 뜻이 …… 이루어지게 하소서.”(6,10)는 순종의 윤리로, 앞선 두 청원을 더욱 간절히 요청하는 백성의 호소가 됩니다.
이어지는 청원들은 인간의 삶을 다룹니다. “일용할 양식”(6,11)은 모호한 내일의 잔치가 아닌, 오늘 하루 생존에 필요한 것을 가리킵니다.
잘못의 용서는 우리가 용서하는 것이 하느님께 용서를 구하는 조건이 됨을 강조합니다.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6,13)는 삶의 시련에 주저앉지 않게 해 달라는 호소입니다.
그리하여 악에서 구해 달라는 마지막 청원이 이어지지요. 결국 주님의 기도는 하느님의 주권과 자비 앞에 인간의 연약함을 숨기지 않고, 조용히 봉헌하며 내맡기는 기도가 됩니다.
우리 삶이 힘들고 지칠 때, 주님의 기도가 우리 모두에게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