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유코 카 캐리어스(Eukor Car Carriers)

작성자대 륙|작성시간11.06.07|조회수1,382 목록 댓글 0

유코 카 캐리어스
10억달러 : 유코 카 캐리어스(Eukor Car Carriers)

"현대(HYUNDAI)와의 관계를 유지하라"
유코 카 캐리어스는 스칸디나비아 모기업들과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과거에 이룰 수 없었던 사업성과를 달성하여 현대상선이 취약했던 부문에서 크게 성장했다.


매끄럽게 단장한 자동차운송선이 거친 파도를 헤치며 당당한 모습으로 세계경제의 근간이자 현대문명의 산물인 화물을 싣고 세계 무역 경로를 누비고 있다. 이들은 전세계에서 매년 생산된 자동차의 4분의 1을 생산지에서 목적 시장으로 운반하기 위해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부지런히 애쓰고 있는 7대양의 일꾼인 자동차 운반선이다.

한국이 산업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된 수출시장에서 자동차 산업의 성공에 따라 자동차 해운 역시 전략적 중요성을 갖게 됐다. 시장 분화에 의해 자동차 해운의 중요성은 배가되었고 이는 최근 수 년 동안 이루어진 외국인 직접 투자로는 단일 최대 규모의 투자 배경이 되었다. 즉, 유럽의 유력한 해운 회사 두 곳이 현대상선(HMM)의 자동차 수송선 부문을 매입하여 이번 호 Korea Success Story에 실린 "0억 달러"기업인 유코 카 캐리어스를 출범시키게 된 것이다.

1980년 당시 현대그룹이 출범시킨 HMM 자동차 수송선 부문의 주요 임무는 현대자동차에 대한 독점적 해외시장 운송이었다. 2002년 8월 스웨덴의 Wallenius Lines AB와 노르웨이의 Wilh. Wilhelmsen ASA 양사에 대부분의 주식을 13억 달러에 매각하기 전에 HMM은 과도한 부채로 인해 경영 압박에 시달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동차 운송 실적은 이미 매년 2백만 대를 넘어 이 부문에서 연간 10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있었다. 현대자동차의 지속적인 수출 호조에 힘입어 사업은 성장 가도를 달렸으나, 이 회사의 미래성장의 핵심요인은 창업자에 의해 계속 경영되는 것보다 한국 회사에 대한 외국 투자에 의해 훨씬 더 큰 가치가 창출된 또 다른 사례가 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볼보 코리아가 전신인 삼성중공업 건설장비 부문이 할 수 없었던 방식 즉 모기업의 전세계 네트워크를 활용했던 방식(Korea Success Story 2007년 7/8월호)과 유사하게 유코 카 캐리어스는 외국계 모기업 두 곳의 거래 시스템과의 연계를 통해 막대한 시너지 효과와 더불어 효율성, 수익성을 높일 수 있었다.

해운산업의 틈새시장
현재 유코 카 캐리어스는 특수 건조된 자동차운반선 100대 이상을 운영하고 있으며, 매년 330만 대의 자동차를 전세계로 운송하여 미화 18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이 같은 수치에는 해외로 운송되는 현대와 기아 자동차 약 2백만 대와 유코의 모항으로 귀환하는 과정에서 한국과 기타 시장을 경유할 때 인도되는 외국기업 생산 자동차 130만 대가 포함된다.

그렇다면 스칸디나비아 기업 두 곳은 어떻게 한국 기업의 대주주가 되어 재정 안정을 회복하고 현재의 성공을 구가한 것인가?
주한 유럽상공회의소(EUCCK) 의장을 겸임하고 있는 유코 회장 겸 CEO 칼 요한 하그만은 먼저 자동차 운송선사에 수반되는 일들은 고도의 전문성을 띠지만 투자회사 두 곳의 배경과 크게 부합한다고 설명했다. 하그만은 "물건을 상자에 담는 컨테이너 운반선에 반해, 화물을 배에 싣고 보호장치가 전혀 없는 상태로 화물을 실어 나르고 있다. 따라서 안전성에 크게 주력하고 있다. 물론 해운업 전체로 볼 때 이 부문은 의미있는 틈새시장"이라고 말했다.

개인소유의 스웨덴 기업 Wallenius Lines는 자동차운송업계의 선도업체로, 1955년 세계 최초의 자동차운반선, 즉 체증이 심한 오대호와 로렌스 항로를 운항하기 위해 설계된 크레인이 탑재된 MS 리골레토와 MS 트라비아타를 선보였다. 이 회사는 이후 1960년대 초 일본산 자동차 운송의 선도업체가 되었으며, 이를 통해 업계의 선두 자리를 확고히 하였다. 노르웨이 최대 해운 상장기업인 Wilhelmsen은 전통적으로 "로로선"("ro-ro") 화물 회사로 유럽과 호주간 무역을 전담했다. 이 회사는 1983년 자동차운반선 타카야마를 취항시킴으로써 자동차수송업에 진출했다.

Wilhelmsen은 자동차 수송업체 NOSAC(Norwegian Specialized Auto Carriers)의 지분 50퍼센트를 인수하여 역량을 확대했다. 1987년 Wilhelmsen은 Den Norske Amerikalinje(Norwegian America Line, NAL)의 기업연합에 제휴사로 편입됐다.

"13시간 안에 스톡홀름에 도착하겠다"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Wallenius와 Wilhelmsen은 1999년 Wallenius Wilhelmsen Lines라는 합작회사를 설립했고, 2006년에는 Wallenius Wilhelmsen Logistics로 상호를 변경했다. 모기업 두 곳은 한국에서 오랫동안 별도로 활동했으며, 합작회사가 설립된 후 서울 시내 유명한 교보빌딩에 사무소를 개소했다. 이 같은 조치는 한국 내 영업을 강화하고 추후 한국에 대한 대규모 투자의 토대를 마련하는데 기여했다.

합작회사를 설립하기 2년 전인 1997년, 스웨덴 해군 장교와 변호사 경력을 거친 칼 요한 하그만은 국내 해운 시장에서 회사의 이익을 강화하기 위해 Wallenius Lines AB의 한국 현지법인 CEO로 부임했다. 외국계 해운회사의 대표로서 하그만 사장이 국내 시장에 진출하는데 겪은 어려움에는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에게 자동차 해운을 아웃소싱하라는 제안이 거부당한 일도 포함된다(당시 현대는 기아와 합병하여 두 기업 모두 현대상선을 통해 완성차를 해외로 운송하고 있었다).

하그만 사장은 1999년 스웨덴으로 돌아가 본사 CEO에 취임했다.

하지만 금융 위기를 거치는 동안 한국 자동차산업의 거대 기업 두 곳이 합병할 수밖에 없었던 일련의 요인들이 현대상선에도 영향을 미쳤다. 더욱이 현대그룹의 해체와 해운업의 주기적인 경기침체로 인해 HMM의 재정 위기는 더욱 악화됐다.

그 결과 그로부터 2년 후인 2001년 하그만은 스톡홀름 사무실에서 HMM 임원의 전화를 받으면서 Wallenius와 Wilhelmsen의 운명을 바꿀 스토리의 주인공으로 재등장했다.

하그만은 "민원 전화라고 생각했다. 아주 간단명료한 대화였는데 단도직입적으로 이렇게 묻더라. '우리 회사를 사고 싶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렇다'고 대답했다"고 통화내용을 정확하게 설명했다. 하그만이 한 달 안에 아시아 출장을 계획 중이니 서울에 들러서 HMM과 자세히 논의하겠다고 말하자, 현대 임원은 "진심이라면 13시간 안에 스톡홀름에 도착하겠다"고 말했다.

독점 계약
HMM 경영진은 하그만과 통화를 나눴던 임원과 함께 서울 김포공항에서 이륙하기 직전의 스톡홀름행 비행기를 타고 정말로 13시간 안에 도착했다. 하그만은 "이틀동안 담판을 짓고, 협상을 하는 데는 1년이 걸렸지만 합의내용은 한국은행과 현대자동차 등의 도움으로 첫 만남에서 합의했던 내용과 대동소이했다"고 회상했다.

2002년 12월 현대자동차, 현대상선, 채권은행인 한국산업은행(KDB)과 외환은행(KEB)의 대표단과 Wallenius와 Wilhelmsen의 양측이 협상을 통해, 스웨덴 기업 두 곳이 각각 HMM 자동차 운송 부문의 지분 40퍼센트를 미화 13억 달러에 매입하는 계약이 타결됐다. 현대/기아자동차는 나머지 20퍼센트 지분을 인수했다.

이에 대한 대가로 현대/기아자동차는 앞으로 자사 제품을 신설 기업을 통해 독점 선적하기로 약정했다. 현대/기아자동차의 제도적 지원을 확보하는 일은 거래가 성사되는데 결정적 요인이었고 1년이 걸린 주된 이유였다. 거래가 성사되자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은 "유럽"과 "코리아"를 조합한 상호를 고안하여 갈채를 받았다. 한편 당시 36세의 칼 요한 하그만은 회장 겸 CEO에 임명됐다.

하그만은 "그것이 오늘날의 유코 카 캐리어스의 시초이자 우리의 사명과 독자적인 정체성을 얻게 된 배경이다. 현재 우리는 한국의 외국기업이다. 회사는 한국에 기반을 두고, 주요 사업은 한국에서 나오지만, 자매회사인 Wallenius Wilhelmsen Logistics와 가장 효율적으로 실무를 공유하고 있으며,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하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했다"고 말했다.

스칸디나비아 반도 제휴사 두 곳은 HMM 자동차 운송업에 대한 대가뿐만 아니라 HMM이 부담하고 있는 선박부문 부채 미화 약 20억 달러를 부담하기로 합의했는데, 이는 두 기업의 시가 총액을 넘는 금액이었다.

이 문제는 지급 금액이 터무니 없이 높은 것 아니냐는 것을 놓고 두 곳의 매입 기업 내부에서 격렬한 논의를 촉발시켰지만, 최종 결론은 그들 고유의 가치 판단을 통해 그 정도 대가를 지불할 가치가 있다는 것이었다.

글로벌 리더십의 지위
하그만은 "경쟁사들이 할 수 없었던 것은 적절한 기업 분석이었다. HMM은 주요 경쟁사 중 하나였으며, 그런 관점에서 우리는 경쟁사를 제대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기업실사에 3주밖에 걸리지 않았으며 외부의 도움도 거의 받지 않았다. 우리는 현대상선을 제대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그만큼의 대금을 지불할 의사가 없었지만 우리는 했다. 우리는 HMM과의 시너지를 예측할 수 있었고 이 시너지를 우리 사업에 적용할 수 있는 방식을 알고 있었다. 우리는 다른 경쟁자에 비해 한 걸음 멀리 도약할 준비가 돼 있었고 그 점 때문에 현대상선이 우리에게 연락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거래의 주목할만한 특징으로는 아시아에 발판을 마련하여 중국이라는 신흥 경제 대국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당시 전세계에서 성장속도가 가장 빠른 자동차 제조사인 현대 자동차를 장기적인 산업파트너로 확보할 기회라는 점이다.

하그만은 "우리에게 현대와의 연계는 거절할 수 없는 절호의 기회였다"고 말했다.
이번 인수의 또 다른 성과는 Wallenius Lines AB와 Wilh. Wilhelmesen을 세계 자동차 운송시장의 선도 기업으로 발전시켰다는 점이다.

신생 기업을 재정적으로 안정시키기 위한 노력이 계속됐고, 2004년 11월 30일 유코는 KEB의 협력으로 KDB를 통해 미화 6억 8천만 달러에 달하는 자금 재조달 계약을 체결했다. 자금 재조달 패키지는 신디케이트론 미화 3억8천 달러와 3,200억원에 달하는 주식공모, 스와프 거래가 포함됐다. 당시 Wilh. Wilhelmesen ASA가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계약]은 유코의 재정 구조와 관련하여 신용 등급과 향후 캐시 플로, 재정적 유연성을 고려하여 유코에 가장 유리한 조건을 제공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한국으로의 입장권
이 같은 계약에 따라 Wallenius와 Wilhelmsen은 용선계약 중에 있는 다양한 규격기준과 용량의 60여 척의 선단을 인계 받았다. HMM으로서는 일촉즉발의 재정 위기에 처해 있었기 때문에 Wallenius과 접촉하기 전에 현금을 마련하기 위해 자사 소유 선박을 매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Wallenius와 Wilhelmsen은 미화 33억 달러 지급 약정의 대가로 무엇을 얻었을까?

하그만은 "이전에는 대다수 외국계 기업처럼 주변부에만 머물렀던 것에 비해 한국으로의 입장권을 제대로 얻은 기분이었다. 현대그룹과 한국은행에서 한국으로의 초대를 받은 외국기업으로서 우리는 실적이 우수한 한국 기업을 인수할 발판을 마련한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이 신설 기업은 유형자산과 기본적인 영업망이 부족했던 반면, 현대자동차와의 제휴로 독점계약이라는 주요 자산을 확보할 수 있었다. 또 다른 성과는 인적 자원으로, 유코는 회사의 점진적인 성장을 통해서는 달성할 수 없었던 이점을 곧장 점유할 수 있었다. 하그만은 "유럽인의 역량과는 다소 다르며 외국계 기업으로서는 확보하기 어려운 우수한 자질의 한국인의 역량을 확보한 것 같은 기분이다. 아시아에서 그런 역량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은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과 중국에서도 강력한 한국인의 경영 능력을 활용할 수 있게 된 것 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그만은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전략적 입지에 위치해 있는 한국에서의 입지 확보라는 이점과 더불어 한국 국민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높은 찬사와 인정을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첨단 기술에 의한 훈련 및 안전 시스템의 구현에도 불구하고, 해상 사고는 피할 수 없는 일이다. 2004년 5월 24일 밤 유코가 용선하여 한국에서 독일로 향하던 현대 No.105라는 선박이 싱가포르 남단의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수로로 알려진 말라카해협에서 석유를 가득 실은 일본의 대형유조선(VLCC)과 충돌했을 때 이 말을 다시금 상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 사고로 유코의 용선 선박은 일본산 중고차 1,200대와 현대/기아 신차 3,000대와 함께 침몰했다. 현대 No.105의 선원 20명은 침몰 직전에 다른 배로 옮겨갔다. 충돌로 인해 선박에서 부상을 당하거나 사망한 선원은 없었으며 더욱이 침몰로 인한 현지 수역의 오염은 발생하지도 않았다.
2004년 최대 해양 참사이지만, 책임소재는 법원에 계류 중이다.

대차대조표 개선
하그만은 "천만다행으로 부상이나 기름 유출이 없었다"고 말했다. 하그만은 사고로 인해 현대가 유감스러웠겠지만 화물보험에서 손실을 보상받았다고 덧붙였다. (자동차와 선박 보험 총액은 각각 4,000만 달러와 1,700만 달러를 합하여 미화 5,700만 달러였다).

이 사고로 인한 손실은 사고 발생 전후로 운송된 수백만 대의 자동차 중의 극소수일 뿐 유코의 신용이나 계약에 아무 영향도 주지 않았다. 실제로 2004년 첫 3분기 동안 세전 수익은 1,500억 원(미화 1억 4천만 달러)으로 2003년 같은 기간의 343억 원에 비해 4배 이상 증가했다. 오히려 사고는 회사 자체 선박 보유 프로그램에 박차를 가하여 선단 톤수의 획기적인 증가로 나타났다.

유코의 CEO는 "2002년에는 HMM이 선박을 단 한 척도 소유하지 않은 독특한 상황에 처했다. 이것은 기존 소유주 때부터 계속되던 현안이었다. 현재 대차대조표 개선을 위해 선박을 재매입하고 건조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2005년 초 유코는 사업자가 주문한 자동차운반선 15척이 인도될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이 같은 선박 인도는 유코가 인수한 HMM 부채 상환 자금 재조달을 통해 사상 처음으로 자사 명의로 주문을 발주할 수 있는 재량권을 갖게 되던 2005년 1월 14일이 마감시한으로 정해졌다. 즉, 선박당 자동차 6,500대를 실을 수 있는 자동차 전용운반선(PCTC) 4척을 현대삼호중공업(HSHI)에 발주한 것이다. 현재 한국 남서해안에 위치한 목포 HSHI 조선소에서 건조 중이며 2008년 상반기 중에 선박 4척이 인도될 예정이다.

한편 최고 자동차해운업체인 Nippon Yusen Kaisha (NYK)와 Mitsui OSK Line (MOL)의 운반능력에 맞먹는 100척의 선단을 달성하기 위해 유코는 용선을 계속했다. 일례로, 2004년 8월 유코는 일본의 Imabari Shipbuilding 해운 자회사 Shoei Kisen와 올해와 2008년 선박 인도에 이어 10년 동안 6,400대급 "신조 선박" 4척을 용선하기로 합의했다. 현재 신조 선박 20척을 다양한 출처를 통해 용선하고 있으며, 일부 선박은 매입 옵션이 걸려 있다.

귀로 화물의 도전
이와 같이 신조 선박이 크게 늘어난 결과, 경쟁이 치열한 세계 시장에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던 유코 선단의 매출액도 크게 늘었다. 하그만은 "현재 우리가 보유한 선박 100여 척은 기존의 낡은 선박 일부를 선단에서 제외시켰기 때문에 처음 시작할 때의 60척과 같지 않다"고 말했다. 하그만은 선박 40척을 추가했으며 리드 타임이 3-4년이기 때문에 35척이 이미 발주된 상태이며, 이는 세계무역 전망에 대한 유코의 자신감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례로 필자가 유코 서울 본사에서 하그만 사장을 만났을 때, 하그만 사장은 한 주 뒤인 9월 21일 금요일에 선박 1척을, 2008년 10월 12일에 3척을 인도 받을 예정이라고 설명하며 2002/2003년에 내려진 투자결정이 이제야 결실을 맺고 있다고 했다.

하그만은 "서비스 수준을 높이고 화물 처리 방식에 대해 자매회사의 벤치마크를 이용하여 세계 최고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현재 한국산 자동차의 운송뿐만 아니라 외국산 자동차를 일본과 중국, 전세계로 운송함으로써 회사는 한 단계 높게 도약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것은 유럽에서 아시아로 귀환하는 과정에서 회사가 개척한 귀로 화물 즉, 롤스로이스나 포르셰, BMW, 푸조 등과 같은 최고급 브랜드 자동차의 운송으로 증명된다. "자동차운송업이 극히 자본집약 사업이기 때문에 [귀로화물]은 우리가 직면한 최대 도전이며,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투자자산을 이용하는 가의 여부가 실제로 회사 수익성을 결정한다. 따라서 저화흘수선(화물 없는 운항)을 최소화할 수 있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보유하는 것은 우리가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고 부연했다.

이러한 점에서 결정적인 요소는 유코와 자매회사 Wallenius Wilhelmsen Logistics와의 관계다. 전자는 한국과 중국 화물 취급에 강점이 있고, 후자는 유럽과 미국 화물 운반에 강점이 있다. 화물 기반을 결합하고 선박을 교류하여 글로벌 네트워크를 형성함으로써 두 기업 모두 불균형을 해소하여 전체 선박 영업 실적을 개선하는데 성공했다. 하그만은 "예를 들어 미국에서 아시아로 수출되는 자동차는 거의 없다. 회사를 인수할 당시 한국에서 미국으로 가는 항해 횟수는 매월 30회였는데, 선박 가운데 29척은 빈 배로 돌아왔다. 비용 손실이 막대했다"고 지적했다. 하그만은 이러한 비용 불균형을 없애기 위해, 유럽에 자동차를 수송하는 유코 선박은 아프리카와 호주를 경유하거나 수에즈 운하와 페르시아만, 동남아시아와 인근의 중국 대련(외국산 차량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과 같은 항구를 거쳐 한국으로 회항하고 있다.

인프라 투자
유코의 CEO와 경영진은 회사가 귀로화물을 유치할 수 있었던 것은 Wallenius/Wilhelmsen가 다른 기업은 지불할 수 없었던 프리미엄을 현대상선 자동차 운반 부문에 지불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스웨덴 조선회사 Rederi AB Transatlantic의 전무이사로 취임하기 위해 올 연말에 퇴임할 예정인 하그만은 "경쟁사는 우리는 쉽게 창출할 수 있는 시스템 시너지 효과가 없다. 따라서 한국기업인 이상 비아시아권 화물에 대해 신속하게 접근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지만 우리는 자매회사와의 협력을 통해 이상적인 조화를 달성했다"고 말했다.

전세계에 걸쳐 물류 효율을 달성하려는 유코의 노력은 한국에서의 성과로 보완되었다. 회사는 한국의 다양한 항구를 통해 활동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가장 중요한 항구는 현대자동차의 본거지인 울산으로 규모면에서 세계 최대를 자랑하고 있다. 매년 450차례 기항하고 있는 유코는 전세계로 판매되는 현대 제조 자동차를 130만 대 가까이 울산에서 선적하고 있다. 그 건너편 한반도에는 유코에 두 번째로 중요한 평택항이 있는데, 여기서는 기아가 생산한 다수의 자동차를 싣고 있으며, 회사는 선적 병목현상을 없애기 위해 평택항 기반시설에 대한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다. 부사장 피터 톰슨의 주도 아래 유코는 현재 미화 1억 2,000만 달러에 달하는 터미널 2곳을 건설하고 있으며 2008년 여름 개장할 예정이다. 터미널이 완공되면 유코는 기아 자동차 선적 효율을 늘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으로 오는 수입자동차 하역 수단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기아자동차에 인접하여 건설되고 있는 두 개의 시설은 인접한 자동차 전용 터미널 4곳으로 이루어지는 단지를 조성할 것으로 보이는데, 완공되면 세계 최대 규모가 될 것이다.

세금 부담 경감
이 같은 약정은 대단히 중요한데, 유코는 지난 4년 동안 한국 조선소와 무려 미화 25억 달러에 달하는 25척의 조선 계약을 체결함으로써 가동 자본금(mobile capital)에 집중 투자하였다.

한국 정부는 자국에 적용되는 세금 제도를 근본적으로 변경하여 해운업 발전을 장려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코 카 캐리어스와 한국 해운업계의 기여는 간과된 부분이 있다. 해운업에 대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권고에 따라 한국 해운업자들은 세금을 납부하는 대신 선박당 수수료를 납부하게 되었다. 하그만은 이 같은 조치는 다른 국내 해운업자와 협력하여 유코가 제출한 청원에 대한 직접적인 대응 조치였다고 설명했다.

하그만은 "당시 한국은 이 제도를 실행하지 않았다. 우리는 영국과 덴마크, 네덜란드 등 기타 해운국은 이미 실행하고 있으므로 한국도 채택해야 한다고 요청했고, 그에 대한 한국정부의 대응은 훌륭했다. 불과 1년 전에 이 문제를 정부측에 처음 제출했는데, 현재 새로운 제도가 실시되고 있다. 이는 한국의 해운정책이 대단히 적극적이며 법률제정을 통해 조선업뿐만 아니라 해운업에도 장기적으로 집중해 왔음을 보여주고 싶어한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말했다.

국제 물류 산업은 한국의 지속적인 발전의 조용한 동반자이지만, 이러한 혜택을 받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노력을 알지 못한다. 한국 제품이 널리 알려져 해외 시장에서 크게 인정을 받고, 한국인들이 외국 브랜드에 친숙해지면서 외국 교역량이 증가한다면 물류업의 중요성과 이를 촉진하는 해운업자의 중요성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유코는 제반 상황의 특유한 결합으로 배가된 자동동차 운송업에서의 틈새 역량으로 한국 내 외국인 투자 기업에서 가장 빛나는 그룹, 즉 10억 달러 클럽의 대열에 들어설 수 있었다.

자동차 수송업체
현재 연간 차량 생산량 6,400만 대 중 25 퍼센트 가량은 선박으로 수출되고 있기 때문에, 자동차운반선 부문은 세계 자동차 공급망의 주요 요소가 되었다. 2010년까지 전세계 자동차 생산량이 7,300만 대에 달하면 수송 용량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거래 규모는 다음 8개 해운회사에서 담당하고 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